제116화
제116화 찡찡이 요청
“이게 된다고?”
우리가 이키섬에서 출발을 하는데 배가 필요하지 않던 이유는 하나다. 바로 물의 일족들의 변신 능력.
물의 일족은 일단 한 번 본 수생 생물의 모습을 기억하여 변신이 가능한데, 불가사리나 해파리, 해마 같은 것들로도 변신이 가능했고, 심지어 조개류로도 변신이 가능했다.
그런 물의 일족이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 변신한 수생 생물은 바로 범고래였다.
범고래는 귀여운 외모로 상당한 인기를 끄는 고래이지만, 실제 성격은 매우 포악하고, 바다의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존재하는 고래라고 한다.
희한한 것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은 예전에 범고래가 인간을 공격했다가 인간들이 범고래를 잡기 위해 집중 공격을 퍼부어 멸종 위기까지 간 후에 지능이 높은 범고래들은 인간을 공격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고 들었다.
아무튼, 범고래는 상당히 컸기에 범고래로 변신한 물의 일족의 등에 거의 대여섯 명의 헌터들이 올라탈 수 있었다. 그리고 범고래의 능력인지 물의 일족의 능력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바다를 헤엄쳤다.
“놀라셨습니까?”
레라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놀랐다.
“놀랄 수밖에요. 바람의 일족은 하반신만 말의 모습이었다가 인간으로 변하는데 물의 일족은 변신의 범위가 매우 크네요?”
“호호, 우리들이 더 능력이 있다는 의미지요.”
그녀의 말에 옆에 있던 헬레나가 발끈한다.
“흥! 물이 없으면 생존하지도 못하는 하등한 것들이.”
헬레나의 말처럼 물의 일족의 가장 큰 단점은 강이나 호수, 바다가 없으면 큰 힘을 못 쓴다는 것이다. 이건 물의 일족이 물에 있을 때의 기준이고, 물이 없어도 웬만한 우리 영지 헌터들 정도의 전투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이 경우는 인간형으로의 전투력을 말한다.
“그래서 지금 누가 더 군주께 도움이 되고 있죠?”
“이익!”
헬레나는 평소에 신녀답게 침착한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 레라와 함께 있으면 전혀 다른 인격이 나오는 느낌이다.
“그런데 왜 굳이 나와 함께 타고 가는 겁니까, 둘 다?”
“군주님을 보필하기 위해서랍니다.”
레라의 대답.
“물의 일족의 사악함으로부터 군주님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헬레나의 대답. 사실 둘 다 덤벼도 내가 질 것 같지는 않다. 거기에 내 어깨에는 둘을 매우 흥미롭게 보고 있는 호야도 있으니까.
냐앙.
호야의 조용히 하라는 말에 둘의 입이 닫힌다. 확실히 세계 최강자 호선생이시다.
그렇게 둘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가라쓰시의 해안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각자 탈것을 가지고 온 상태라 우리는 물의 일족에서 내려서 각자의 탈것에 올라탔다.
참고로 바람의 일족과 물의 일족도 섬에서 탈것은 자기 취향대로 골라서 길들였었다.
이미 우리 영지에는 탈것으로 애용되는 그레이 울프나 말, 거기에 백호들까지 키워지고 있다. 백호들은 보통 사람이 키우기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에게는 고양잇과 동물들의 왕이신 호선생이 있고, 백호들도 나름 잘 먹이고 편하게 돌봐 주니 애들이 잘 적응 중이다.
특이한 것은 바람의 일족은 주로 그레이 울프를 선호하고, 물의 일족은 백호들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탈것을 길들이고 돌보고 있다. 말이 탈것이지, 얘들은 반려동물에 가까운 애들이라 정성을 들여서 돌봐야 한다. 그리고 인간 헌터들은 대부분 이걸 매우 좋아한다.
“이렇게 보니…… 상당히 많네.”
총 인원은 바람의 일족에서 나온 기사단 150명, 물의 일족 200명, 인간 헌터들 150명이다. 이들의 숫자만으로도 500의 인원인 것이다.
역사에서 보면 십만 대군이니, 백만 대군이니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사실 500이 각자의 탈것을 타고 정비를 하고 있는 모습은 엄청 위압적이다.
솔직히 우리가 평소에 이런 것을 볼 일이 어디 있겠는가.
거기에 이번에 합류한 물의 일족을 제외하면 미스릴로 만들어진 갑옷을 입고 있다.
시연이와 시연이의 조수들이 열심히 만든 것으로 미스릴 특유의 백색에 가까운 반짝이는 색감은 성스러움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일까? 가라쓰시에 거주하는 많은 일본인들이 나와서 구경을 하고 있다. 물론, 사진도 막 찍는다.
“저기 외국인들이 왜 저렇게 많아?”
“몰라. 한국에 외국인들이 많이 산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외국인도 받아들일 정도로 한국은 개방적인가?”
“글쎄, 근데 외국인들 외모가 장난이 아닌데?”
“어머! 저기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도 있어!”
일본인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나에게 다 들려온다. 난 사람들을 대표해서 앞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했다.
“오늘 게이트가 있는 곳에서 전투가 벌어질 예정입니다. 그러니 헌터가 아닌 분들이나 헌터라도 이 전투에 참여할 의사가 없는 분들은 게이트 주변에 다가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말에 소리를 내서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다들 완전히 그곳에 안 가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거리를 벌리고 있을 거로 예상한다.
“전군, 출정하라!”
“네!”
누가 묻는다면 대답하겠다. 꼭 해 보고 싶었다. 워낙에 이순신 장군님의 팬이기도 하고, 이순신 장군님이 명량 대첩에서 한 그 묵직한 한 마디가 마음을 울리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냐앙.
호야가 가관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니 살짝 무시한다. 이 정도로 여기에서 내 뒤통수를 때릴 아이가 아니라 믿으며.
* * *
가라쓰시의 게이트 주인은 여성이었다. 가라쓰시의 게이트는 일본에 많지 않은 광산 게이트였다.
덕분에 그 안에서 마나가 함유된 철과 은, 그리고 금들을 캐고 있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안에 들어와서 광산에서 일하며 헌터가 되었다.
보통의 광산이라면 절대 없을 몬스터가 이곳에는 있었기에 광산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전투도 해야 한다는 의미였으니까.
덕분에 상당히 많은 규모의 헌터를 거느리게 되었고, 일본 내에서 영주의 직위를 상당히 빨리 얻게 되었다.
하지만 영주인 스즈키 하루는 이제 23살로 매우 젊은 영주였다. 반려동물인 강아지 찡찡과 함께 광산 앞에 있는 숲길을 걷는 것을 유독 좋아했다.
그런 그녀에게 이토 히로유키가 찾아왔다. 일본을 위해서 광산의 광물들을 제공하라면서. 일본인이라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하루는 어려서부터 순종적인 교육을 받았기에 그 말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래서 게이트 안에서 생산되는 광물의 5할을 이토 히로유키에게 상납했다. 하지만 그는 만족을 몰랐다. 5할에서 6할로, 6할에서 7할로, 이제는 9할까지 상납을 하는 상황이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하루의 게이트에 속해 있던 헌터들은 일을 그만두기 시작했고, 이토 히로유키는 그런 헌터들을 협박해서 결국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광산의 노예가 되다시피 했다.
그 후로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다가 대마도가 한국 군주의 손에 넘어가고, 이키섬도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 차례는 자신이 있는 가라쓰시의 게이트.
하루는 차라리 그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몰래 한국의 군주에게 연락을 할 방법을 찾았지만, 결국 이토 히로유키가 붙인 헌터에게 걸리고 말았다.
덕분에 지금은 게이트가 있는 자신의 방에서 감금되어 있는 상태다.
원래 하루는 한류에 빠져 있던 요즘의 젊은 일본 여성 중의 하나였다. 물론, 그래서 한국 군주의 휘하에 들어가길 희망한 것은 아니다.
이토 히로유키가 너무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마을에서 자고 나란 그녀는 이 마을 사람들이 풍족해지길 바랐다. 그래서 게이트를 개방한 것인데 그것이 이렇게 이 마을에 피해가 될 줄은 몰랐다.
광산에 속한 마을 사람인 헌터들은 입장을 할 때마다 원망스럽다는 눈빛으로 하루를 노려보고 간다.
원래는 감사하다면서 매일 하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던 이들이 말이다. 하루는 자신의 내부에서 뭔가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때 한국의 군주가 가라쓰시로 넘어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신의 게이트 헌터 중에 동창생인 헌터가 몰래 소식을 전해 준 것이다.
하루는 그래서 어떻게 자신의 뜻을 전할까 고민하다가 자신의 반려동물인 시바견 찡찡이에게 부탁을 했다.
“찡찡아, 한국의 군주님에게 내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을까?”
멍멍!
찡찡이는 꼬리를 흔들며 헥헥거린다. 그 모습에 하루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 가족들은 이토 히로유키가 본섬으로 잡아가서 가둬 놓은 상황이다.
가족을 인질로 삼은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이들에게 협조를 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찡찡이가 유일한 가족이자 협력자였다.
“찡찡아, 부탁해.”
하루는 찡찡이를 꼭 껴안았다. 혹시나 찡찡이가 한국의 군주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있다.
일본 방송에서 나오는 한국의 군주는 피도 눈물도 없고, 일본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한다는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으니까.
물론 그것을 다 믿지 않는다. 영웅이라던 이토 히로유키의 민낯을 이미 경험했기에.
멍멍!
찡찡이는 곧장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 찡찡이를 보며 하루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 * *
멍멍! 멍멍멍!
“어머, 귀엽다.”
시연이가 어디선가 달려온 시바견을 안으며 말한다.
“그러게, 귀엽네.”
고연주도 시바견의 모습에 정신을 못 차린다. 하지만 시바견은 둘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이 버둥거리면서 나에게 오려고 한다.
“나한테 할 말이 있니?”
멍멍! 멍멍멍! 멍멍!
시바견의 짖음이 그냥 보통 강아지들과 달라서 난 집중해서 녀석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관찰을 해 보니.
-이름: 찡찡(24레벨).
반려인: 스즈키 하루.
스즈키 하루의 반려견이라는 설명. 거기에 레벨도 있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하나.
“너 여기 게이트 주인의 반려견이구나?”
멍멍!
내 말이 맞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날 찾아왔을까?”
멍멍! 멍멍! 멍!
“그러니까 네 반려인을 구해 달라고?”
멍!
그렇단다.
“네 주인은 지금 어디 있는데?”
멍멍!
“게이트가 있는 방에 갇혀 있다고?”
멍!
“흐음…….”
이곳의 게이트 주인도 갇혀 있는 상태라고 한다. 난 이토 히로유키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도대체 자국의 영주들을 핍박해서 뭘 얻어 낼 수 있는 거지?
그렇게 하면 나라도 협조를 하지 않을 거다. 그런데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수성인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노골적이다.
어쩌면 자신들이 있는 본섬 외에 이곳 후쿠오카 지역이나 위쪽 홋카이도 지역은 일본이라 생각하지 않는 걸까?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긴 하지만.
골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그런 성향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솔직히 한국인인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오히려 난 뭔가 숨기고 노리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보통 소설에서 나오는 특이한 특성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일단 넌 따라와. 네 주인은 구해 줄게.”
멍멍!
찡찡이가 기쁘다는 듯이 꼬리를 흔든다. 그런 녀석을 안고 조금 더 가니 우리들을 가로막는 이들이 등장했다.
희한한 것은 이키섬 때보다 헌터들의 레벨이 전체적으로 올라가 있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