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제120화 차원의 비밀을 엿보다.
“우리 일족을 대수림 밖으로 데리고 가주실 수 있겠소?”
“대수림 밖으로 나가고 싶다구요?”
카플로스의 말에 난 잠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대수림은 우리 영지에 있지만, 우리가 대수림을 가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이 아닌가? 생각해보니 우리가 대수림에 들어가는 것도 제약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내가 개척을 해야 들어갈 수 있는 지역이 늘어난다. 하지만 반대로 대수림의 존재들은 내가 허락해야 대수림에서 나올 수 있다.
아직도 나의 게이트 안에 존재하는 대수림이라는 미지의 세계는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세계수로 보이는 그 나무가 있는 곳은 애초에 내가 아직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 곳 같았고.
그리고 이들의 부탁.
대수림 밖으로 자신들을 데리고 나가달라는 이야기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가능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는 알아야 했다.
“일단 그게 가능한지 아닌지는 둘째로 치고, 왜 그런 부탁을 하는지 알고 싶군요.”
내 말에 카플로스는 옆에 있는 술잔의 술을 단숨에 비웠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한다.
“이 대수림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잘은 모릅니다.”
“그렇군. 사실 이곳은 멸망한 세상이오.”
카플로스의 말에 난 조금 놀랐다. 내가 예상하고 있던 부분을 그가 정확히 언급했기 때문이다.
내가 대수림을 멸망한 세상이 아닐까 생각한 것은 헤르티안 검술 때문에 만났던 마스터때문이었다. 그는 언데드였고, 원래 세상의 주민이었을 사람이었다.
경복궁 게이트로 들어가서 만나게 되었던 왕성 역시 언데드로 이루어진 곳이었고, 멸망한 왕국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이 대수림이라는 신비로운 장소는 예전에 멸망한 그 어떤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고.
“멸망한 세상이라면 당신들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던 것입니까?”
“하하하, 재미있는 질문이구려. 세상이 멸망한다고 해서 모든 생명체가 바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지 않소?”
하긴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멸망한 세상에서도 사람들이 힘들게 생존해가는 그런 이야기들은 많이 보던 스토리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멸종해가는 중이오. 마지막으로 우리 일족의 아이가 태어났던 것이 벌써 200년 전이오.”
그렇다면 이들의 수명이 최소 200년은 훨씬 넘을 거라는 이야기로 들인다. 그렇다면 물의 일족과 바람의 일족은 어떤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한 가지 생각되는 점은 있다. 물의 일족도 그렇고, 바람의 일족도 매우 협조적으로 나의 휘하에 들어오기를 바랐다는 것. 뜬금없이 휘하에 들어온다고 해서 땡잡았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는데 어쩌면 그들은 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카플로스 씨는 일족의 생존을 위해서 우리 휘하에 들어오고 싶다는 겁니까?”
“맞소. 우리는 매우 쓸모가 많은 종족이요. 우리의 노동력을 군주에게 대가로 내놓겠소.”
솔직히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좋은 일이다. 장인의 종족이라는 드워프를 휘하에 두게 된다면 엄청 많은 이점이 생길 테니까.
단지 내가 궁금한 것은 그 부분이 아니다.
“혹시 이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 기록해둔 것이 있습니까?”
“이 세계의 역사가 궁금한 거구려.”
“네, 아무래도 우리와도 무관한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이쪽으로 오시오.”
카플로스의 안내를 받아서 간 곳에는 도서관이라고 불릴만한 곳이 있었다. 혹시나 하고 물어봤는데 드워프가 책도 만들고 있었다.
물론 도서관 내에 있는 것들의 상당수는 제작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예를 들아면 ‘양날검의 절삭력과 파괴력에 대한 고찰’이라던가, ‘단창을 만들 때와 장창을 만들 때 착각하지 말아야 할 점 5가지’같은 책들 말이다.
그러다 한 쪽 구석에 역사에 관련된 책들을 찾을 수 있었다.
“편안히 읽어 보시오.”
“감사합니다. 아, 일단 우리 영지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군주의 권한으로 허락합니다. 물론, 우리 위하에 들어와야 된다는 것 정도는 이해하시겠죠?”
“생존을 위해 우리에게 선택은 없소.”
카플로스의 표정이 좀 굳어졌다. 아마도 우리에게 착취를 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여러분의 노동력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을 착취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 그게 정말이오? 지금까지 권력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고 저도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죠.”
“하하하하, 맞는 말이오. 내가 군주를 겪어 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판단을 한 것 같구려. 이 점은 사과하겠소.”
“괜찮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아무튼, 그러니 이주를 할 준비를 해주세요. 참고로 광산이라면 우리 영지에도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미스릴에서부터 철까지 상당한 광산이 있으니까요.”
“미, 미스릴이 있단 말이오?”
“네, 양도 많습니다. 지금은 코볼트 들이 노역을 하고 있긴 합니다만.”
“어허! 코볼트 따위에게 미스릴을 맡기면 엉망이 될 것인데! 안 되겠소. 빨리 이주할 준비를 마치겠소. 군주는 그동안 이곳에서 알고 싶은 것들을 보도록 하시오.”
“네.”
코볼트가 미스릴를 캐면 뭔가 안 좋은 건가? 아직은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일단 난 역사책을 펼쳐보았다.
통역 마법을 하도 써서 스킬이 맥스가 된 후에는 다른 종족의 글도 완벽하게 한글처럼 읽을 수 있게 되었기에 읽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책은 드워프 일족의 역사와 그들이 전해들은 바깥 세상의 역사가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세상에서 구전되어 오던 창세기 시절부터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일단 이 부분은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이 대수림이 왜 멸망한 세계라고 하는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었으니까. 난 한참을 찾다가 그것에 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세계에 게이트가 등장한 것은 겨우 50년 전이었다. 그리고 게이트는 권력자들의 도구가 되었다. 그곳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자원들은 권력자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파멸의 전조였다는 것을 눈치챈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
․
․
․
결국 그렇게 생존자들은 대수림이라 불리는 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그때 우리는 알게 되었다.
이 대수림이라는 곳 자체가 멸망한 세계의 일부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의지만으로는 이곳을 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결국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이곳에서 나가게 해줄 수 있는 존재를 기다리거나, 혹은 서서히 말라서 멸망을 향해 나아갈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에 기록은 없었다. 아마 이 기록을 한 것이 마지막 기록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 세상도 결국은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봐야 된다는 건가?”
냐앙.
호야가 내 뺨을 핥는다. 호야를 쳐다보니 호야가 다시 말한다.
냥냥! 냥냐아아앙!
“그래, 내가 하기 나름이라고? 그렇겠지. 우리 세계에 게이트가 등장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피해갈 수 있을까?”
처음 게이트에서 신기한 농작물들과 고기를 얻었을 때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이것을 감춰야 한다고 말씀하셨었다. 권력자들에게 들어가게 된다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그 부분에서 난 아버지 말씀에 동의했었고, 그렇게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 세계와 이곳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점은 정보의 전달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세상은 세상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마음만 먹으면 실시간으로 알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마법이라는 신비한 수단이 있었다고 해도 누구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 그 차이에서 많은 부분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일한 것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바로 ‘욕망’이라는 괴물이 존재한다는 것.
게이트가 인성이 좋은 주인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이 부분은 그냥 랜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게이트의 주인이 된 이들이 ‘욕망’이라는 괴물에 잡아 먹히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이토 히로유키가 그런 것처럼.
정기훈에게 듣기로 드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고 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런데 게이트 주인이 되고, 그 게이트의 특이성이 뭔지는 알려지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결국 그는 대영주가 되었고, 군주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으로 한국을 정벌하겠다는 개소리를 지껄인다.
도대체 왜 그게 욕망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놈은 그러고 있다. 사람마다 원하는 것이야 다를 수도 있으니 이유는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내 기준에서는 그냥 미친놈일 뿐이니까.
그런데 그것이 그들만일까? 아닐 것이다. 세상은 넓고 또라이도 많은 법이니까.
“이 문제는 아무래도 더 심도깊게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다. 그치, 호야?”
냐앙!
그렇다고 한다. 아마 호야는 이런 것들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 이건 좀 오바라는 생각이 든다. 호야는 그냥 뭔가를 지키고 싶었을 것이고, 그게 아마 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 호야를 꼭 껴안았다. 부드러운 호야의 털이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어주고 부드러운 털이 입으로 들어온다.
“아, 털 들어왔어.”
퍽!
호야는 내 뒤통수를 때린다.
냥냥! 냥냥냥!
자기는 내 머리카락도 그루밍해주는데 그정도로 엄살이냐고 한다.
“아니, 호야! 이건 종의 문제라고.”
생각해보면 고양이나 강아지나 털을 많이 먹긴 할 것 같다. 그 외에 많은 털달린 동물들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사람은 왜 털이 입에 들어가면 그것에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는 걸까? 문득 궁금하긴 하다.
“아무튼, 가자. 우리 집으로.”
냐앙!
호야는 알았다며 내 어깨에 올라온다. 그리고 우리는 드워프들을 이끌고 우리 영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쫓아왔던 네발짐승의 실체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산양이었다. 정확한 이름은 ‘강철의 산양’이다. 이름부터가 강력한다.
체고, 그러니까 어깨까지의 높이가 낮은 편이라 키가 작은 드워프들이 탈 수 있는 탈것이었다.
드워프들은 산양에 연결한 수레들에 잔뜩 짐을 싣고 나와 함께 영지로 향했다. 드워프들의 수는 대략 200여 명이다.
카플로스에게 적대적인 드워프의 행방을 물으니 그들은 예전에 이미 멸종했단다.
잊혀진 유적을 통해서 시스템은 뭘 바란 것일까? 드워프를 찾기 바란 것일까? 아니면 게이트의 비밀, 아니 이 차원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알리려고 한 것일까?
그렇다면 시스템을 주관하는 것은 누군가?
신인가? 그런데 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 세상의 신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멸망한 세계와 우리가 연결된 이유는 뭘까? 괜시리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