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화
제127화 마나 바이러스
마나가 담긴 병균.
저들의 기술력으로 그것을 구분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일단 한 번 놀랐다.
“병균을 관찰할 수 있었던 건가요?”
“마법사들과 신관들은 그런 것을 연구하죠. 그리고 그들의 기술력은 지구가 가지고 있는 과학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헬레나의 말에 레라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해 줄래요?”
내 말에 헬레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왜 인간들은 멸종이 된 것이고, 여러분들은 생존하게 된 거죠?”
듣기에 따라서 사람들은 죽었는데 너희는 왜 살았냐고 들릴 수도 있어서 정정을 하려고 하는데 레라가 말한다.
“수명의 문제죠.”
“수명이요?”
“맞아요. 우리들의 수명은 인간보다 월등히 기니까요.”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드워프만 해도 수백 년을 살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군요. 수명이 문제가 될 수도 있었겠군요. 그런데 수명만이 문제라고 하기에는…….”
“그 병균은 임신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요.”
“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죠?”
나만이 아니라 누나도 흥분해서 묻는다.
“말 그대로 임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거죠. 종족 번식이 불가능해진다는 이야기예요.”
“잠깐, 물의 일족은 남자가 없어서라고 하지 않았어요?”
물의 일족은 여성체만 존재한다. 그래서 종족 번식이 어렵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말이 안 되지 않나?
“맞아요. 정확히는 임신을 시킬 수 있는 남자가 없었던 거죠. 다행인지 몰라도 인간에 비해서 물의 일족이나, 바람의 일족은 그 피해가 완전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저도 태어날 수 있던 거구요.”
헬레나는 자신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러니까 헬레나는 그 병균이 돈 이후에 출생한 바람의 일족이라는 이야기다.
“드워프의 경우는 인간과 다르지 않소, 지난번에 말했듯이 우리는 자손을 보지 못하고 있소.”
드워프의 말에 난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을 기억했다. 멸망으로 향해 가고 있다면서 했던 이야기.
단지 그 원인이 저 병균에서 시작된 것인지는 몰랐다.
“치료제는요?”
“여기요.”
헬레나가 말한다.
“여기?”
“네, 대성역이 치료제 역할을 하죠. 보통의 대성역은 안 되고, 대군주님이 보유한 대성역 정도가 되어야 가능하겠죠. 지구 말로는 업그레이드된 대성역 정도 되어야 그 병균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요.”
헬레나의 말에 누나가 한숨을 돌린다.
“누나는 어차피 임신 중이잖아요.”
“또 아니? 혹시 아기가 잘못될지.”
“그건 그렇지만, 여기는 대성역의 영역인데요.”
“내가 그래서 시우 널 선우보다 사랑하는 거야.”
“큭.”
난 누나의 말에 웃음 지었다. 하긴 예전부터 누나는 선우보다 날 더 챙겨 주시긴 했다.
“그런데 그럼 이 병균이 발견된 곳에서는 아이가 태어날 수 없는 건가요? 그러니까 임신 중인 상태라면?”
“임신 중인 아이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요. 하지만 더는 임신이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 병균은 단지 사람에게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물에도 전염되거든요.”
헬레나의 말에 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세계에 우리 같은 대성역은 없었나요? 헬레나의 말대로라면 그런 대성역이 있었다면 병균으로부터 자유로웠을 텐데요?”
“있었죠. 그리고 그 마지막 대성역이 대군주님의 눈앞에 있네요.”
“네?”
헬레나는 내 물음에 대수림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저 대수림이 바로 그 대성역이었다는 이야기?”
“정확히는 저 대수림의 중앙에 있는 세계수의 영향권이죠.”
내가 세계수가 아닐까 했던 것이 정말 세계수였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일이다. 그리고 그 세계수가 범상치 않은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업그레이드된 대성역일 줄은 몰랐다.
“그럼에도 그 세계가 멸망했다는 건가요?”
“정확히는 멸망된 세계에서 분리된 거죠. 이곳, 지구의 차원으로.”
그러니까 이 대수림은 멸망된 세계에서 떨어져 나와서 이 지구에 새로 둥지를 틀었다는 이야기다.
“어? 그럼 저 세계수가 우릴 공격할 수도 있는 건가?”
누나의 말에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호야는 늘 저 세계수를 경계했다. 내가 세계수로 가는 것을 막았다.
그 이유가 그냥 위험해서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는 아니었나 보다. 내가 세계수에 가서 세계수에게 먹히기라도 하면 세계수는 우리 지구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떠오르니 소름이 끼치는 기분이다.
“지구가 멸망하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에 그런 것이 있어.”
“어떤 거요?”
“인구 절벽으로 인한 인간 소멸. 근데 웃기는 게 뭔지 알아?”
인구가 줄어들면 결국 지구가 망한다?
“그건 인류의 멸망이지 지구의 멸망은 아니라는 거겠죠.”
“맞아. 그런데 헬레나 씨의 이야기대로라면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생명체들도 번식이라는 것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맞죠?”
“맞습니다. 식물들도 더는 새로운 싹을 틔우지 못합니다.”
식물도 번식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좀 충격적이다. 사실 지구 멸망 시나리오에서 대부분은 인간이 멸망하는 거지, 지구가 멸망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은 그것을 지구 멸망이라고 건방지게 말하는 것이다. 마치 지구가 자신들의 것이라는 것처럼.
하지만 인간은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 중의 하나일 뿐이지 않은가.
“정말 지구의 생명체들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네요. 이토는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어쩌면 이토라는 인간의 뜻이 아닐 수도 있어요.”
레라의 말에 난 그녀를 쳐다보았다.
“예전에도 인간 세계에서 비슷한 짓을 한 존재가 있었죠.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뭔가의 의지에 자신이 꼭두각시처럼 놀아났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군주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뭔가가 있을 수 있다는 건가요?”
“대군주님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 반대의 존재도 존재하지 않을까요?”
생각해 보니 레라의 말이 맞는다. 시스템은 나에게 매우 호의적이다. 거기에 호야라는 말도 안 되는 먼치킨 고양이도 있다. 호야는 나를 위해서 내가 옳은 길로 가게 만드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아닌 존재도 있지 않을까? 악의로 꽁꽁 뭉쳐 있는 그런 존재가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한 세계가 멸망했다는 것은 그런 것이 없다고 하기 어려울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군주님 같은 사람에게 악신이 역사하는 일은 없어요. 애초에 그는 그런 성향인 인간이겠죠.”
헬레나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왕성의 원래 주인도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았던 왕이었다. 그러니 결국 그것을 선택한 것은 인간 자신이라는 이야기고, 이토는 그것을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좀비라든가, 병균이라든가, 급격한 헌터들의 레벨 업 같은 것도 다 그 영향일 수도 있겠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들의 레벨 업은 우리 같은 영지가 있지 않은 이상은 비정상적이죠.”
아직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 부분은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알았어요. 누나는 이것을 치료할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혹시나 모르니까 연구원들에게 이 병균이 가진 위험성은 꼭 주지시켜 주시구요. 대성역 안에서만 연구를 해 주세요. 밖에도 경복궁 안에 연구실을 만들 수 있도록 해 볼게요.”
“그래,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
난 곧장 집무실로 돌아갔다.
* * *
정기훈에게 헬레나와 레라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기훈은 평소와 다르게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멸망을 부르는 병균이군요.”
“네, 그런데 그게 시작일 뿐이지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 문제예요. 아직 저들에게 락이 걸려 있는 것인지 뭔가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자신들 세계의 멸망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못하더라구요.”
“그렇군요. 일단 이 부분은 제가 세상에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우리 교민들을 불러와야 될 것 같네요.”
“네, 그건 대통령님과 상의해서 결정하세요. 일단 우리 대성역의 영역에 들어오면 영향은 사라진다고 하니.”
“알겠습니다.”
정기훈이 나간 뒤에 난 황금 캣타워에 늘어져 있는 호야에게 다가갔다.
“호야.”
냐앙?
“저 세계수로 가면 내가 위험해지는 거지?”
냥!
당연하단다.
“저 세계수가 업그레이드된 대성역이라고 하던데?”
냐앙?
모르겠다는 표정. 근데 이건 진짜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호야가 대단한 존재라고 해도 그런 부분을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있을까 싶기도 하니까.
“하지만 호야, 언젠가는 거기에 내가 가야 하는 거지?”
냐앙. 냥냥. 냥냥냥냥.
“완전히 준비가 된 후에 가야 한다고? 거기에서는 너도 날 도와줄 수 없다고?”
냥!
그렇단다. 호야도 도와줄 수 없는 싸움이라면 결국 대군주와 대군주의 싸움이려나.
세계수가 있다는 것은 거기에 엘프 종족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데 결국 엘프와 결판을 지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우리 수련이나 하러 갈까?”
냥!
좋단다.
호야는 즉시 갑옷을 활성화시켰고, 나도 갑옷을 활성화시키자 호야가 내 어깨로 올라온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대수림의 정복되지 않은 곳으로 향했다.
* * *
대한민국에서 발표된 내용에 세계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펜데믹이 끝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인데, 이전 펜데믹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류 멸망 시나리오가 등장했다는 이야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본발 병균.
그것을 세계보건기구 WHO는 마나 바이러스라 명명했다. 마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그 자체로 고열로 인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지만, 더 심각한 것은 그 마나 바이러스는 사멸되지 않고, 숙주가 죽으면 사방으로 퍼진다는 것이다.
현재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대한민국의 대군주 최시우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뿐이다.
이미 감염된 사람은 경복궁 근처로 가야 하고, 아닌 이들은 최소한 최시우의 영역권에 들어가야 안전할 수 있다고 알려졌다.
물론,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사람은 당해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것이 보통이니까.
하지만 오키나와에 퍼진 마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그 일대에 어떤 생명체도 번식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중증 감염자는 그것만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아닌 이들에게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열리는 셈.
인간에게만 통용되는 바이러스도 아니고, 인수에 식물까지 전염되는 무서운 바이러스의 등장은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일단 모든 일본과의 교역을 비롯한 교통수단 자체를 차단해 버렸다.
거기에 자국 내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한 구역으로 이주시키고, 반쯤 감금하게 된다. 일본인 자체가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마나 바이러스에 대한 포비아가 불러온 결과였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러면서 이토를 향한 분노 역시 세계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