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제130화 대수림의 충돌 (1)
이경호는 아이돌 그룹 백신의 멤버였다. 썩어 빠진 가요계에 백신이 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너무 야심 차게 드러내는 바람에 시작과 동시에 여러 기획사의 공동 전선으로 묻혀 버렸다.
그 후에 제주에 살고 있는 부모님에게 찾아가서 귤 농장 일을 도우면서 살고 있다가 고연주를 만나게 되었고, 고연주의 게이트에 들어가게 된다.
연예계에서 상처를 입었던 이경호는 비슷한 사람들과 같이 헌터로 지내면서 나름 마음의 치유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고연주의 게이트에 문제가 생겼고, 자신을 도와줬던 고연주를 위해서 목숨을 걸 의리를 보였다.
일은 어이없이 끝났고, 고연주는 최시우라는 군주의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고, 이경호 역시 그녀를 따라서 그의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헌터로 지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애들 장난 같은 그런 소꿉놀이였다.
거기에 압도적인 최시우의 힘.
남자로 태어났기에 그것에 끌렸다. 그래서 기사단에 자원했고, 열심히 수련을 하고, 레벨업을 하면서 기사단의 조장까지 맡게 되었다.
비교적 초기에 레벨업을 시작한 운도 작용을 했고, 무엇보다 우직한 그의 성격이 기사단에 잘 어울렸다.
그런 그가 오늘은 기사단의 수습 기사들을 데리고 대수림으로 사냥을 나선 참이었다.
“대군주님께서 대수림에서 엘프들과 분쟁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던 것들 기억하지?”
“네!”
“엘프들이 보이면 사냥은 즉시 종료하고 돌아간다. 그러니 대수림의 깊은 곳까지는 가면 안 되겠지?”
“네!”
“좋아, 우리가 오늘 잡을 몬스터는 트롤들이다. 알다시피 트롤은 포션의 재료로 쓰인다. 그 정도로 태생적으로 재생력이 뛰어난 녀석들이니 특히 주의하도록. 절대 혼자서 맞서지 마라.”
현재 이경호가 맡고 있는 수습 기사들의 숫자는 총 20명이다. 그 외엔 그들의 안전을 위해 따라온 정식 기사단 4명과 이경호까지 총 25명이다.
이것이 대수림 사냥을 위한 최소인원이다. 대군주 최시우의 명에 따라서 모든 기사단들은 최소 그 정도 인원이 모여서 사냥을 하도록 했기 때문.
요 며칠 별다른 일은 없었다. 수습 기사단원들은 열심히 사냥을 시작한다. 이경호는 그런 수습 기사단을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겨우 몇 달 자신이 앞서 있을 뿐이지, 저들 역시 분명 훌륭한 기사단이 될 거라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때.
파바밧! 챙!
숲에서 갑자기 화살이 날아온다.
“습격이다! 기사단원은 트롤들 처리하고, 수습 단원들은 방어 진형으로!”
이경호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트롤은 네 명의 기사단원들이 빠르게 처리했다. 그들에게 트롤을 처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이경호를 비롯한 기사단원들은 전투 경험이 풍부했다. 이미 일본 헌터들과 적지 않은 전투를 치렀고, 예전부터 함께 사냥을 했기에 손발이 잘 맞았다.
“수습 단원들의 보호를 우선한다. 그리고 경계를 하며 대수림을 빠져나간다.”
“정렬하라!”
부조장의 외침에 수습 단원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렬을 하기 시작한다. 그간 받았던 훈련이 헛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특히 이 조에 속한 수습 단원 20명 중 15명은 군필자들이고, 나머지 다섯은 여성들이었지만, 군 훈련에 필적하는 훈련을 받았기에 움직임은 마치 하나가 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경호는 이 와중에도 그런 단원들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신호탄을 쏴라.”
이경호의 지시에 신호탄이 쏘아 올라갔다. 확약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고, 마법진이 새겨진 물건으로 실제 효과는 화약으로 작동하는 신호탄과 거의 동일하다.
“각자 호버 보드에 올라타도록.”
호버 보드는 아직 모든 인원들에게 배정되지 않았지만 사냥을 가는 이들은 보급형 호버 보드를 대여해 준다.
그렇기에 각자 자신의 호버 보드에 올라탈 수 있었다.
“외곽으로 빠진다. 천천히 움직이도록.”
걸어서 가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호버 보드가 훨씬 유리하다. 속도도 속도지만, 호버 보드에는 기본적으로 실드 마법이 인첸트 되어 있기에 방어 용도로도 괜찮은 것이다.
다행이랄까?
엘프들의 공격은 더 이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군주의 말에 따르면 엘프들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을 거라고 했으니까.
이경호는 평소보다 더 긴장한 상태로 천천히 후퇴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정지!”
이경호는 앞에 나타난 엘프 무리를 보고 정지를 외쳤다. 엘프들의 숫자는 열 명.
숫자는 이쪽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지만 레벨 자체는 저들이 월등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대수림에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저들은 페널티를 받아서 레벨 자체의 차이는 크지 않다. 오히려 기사단원들의 레벨이 더 높다.
하지만 저들은 이미 수백 년을 살아온 존재들,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고 대군주는 긴장하라고 했다.
“우리를 습격한 이유가 뭐지?”
이경호가 앞으로 나서서 말한다. 그러자 엘프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말한다.
“너희는 대수림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됐다. 개인적으로 유감으로 생각하지만 살아서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를 죽이겠다는 얘긴가?”
“그렇다.”
“그게 쉬울 리가 없을 텐데?”
“훗, 100년도 못 사는 인간 주제에 교만하군.”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었다.
“전투 대형으로.”
이경호의 말에 기사단원과 수습 단원들은 전투 대형을 갖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엘프들 역시 전투 대형을 갖춘다.
양 진형의 결정적인 차이는 엘프들은 원거리 공격에 특화되어 있는 이들로 보인다는 것이고, 기사단은 근거리 전투 위주라는 부분.
하지만 원거리 공격인 활 공격이 기사단에게 대미지를 줄 수 있느냐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팅! 팅팅! 팅팅!
활들을 완전히 쳐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대미지를 입지는 않았다.
기사단과 수습 단원들 모두 드워프들이 만들어 준 갑옷을 장착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미스릴로 만들어진 갑옷들은 레벨이 다운된 엘프의 화살에 별다른 대미지를 입지 않았다.
잔뜩 긴장했던 것에 비해서 허무한 결과였다. 그리고 이제 당황하는 쪽은 기사단 쪽이 아니라 엘프들이었다.
“무슨!”
엘프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경호가 그런 그 모습을 보고 말한다.
“저들의 활은 우리 갑옷을 뚫지 못한다. 공격하라!”
파밧!
기사단원과 수습 단원들은 익숙하게 배운 보법을 이용해서 거리를 좁혔다. 이제 당황해야 하는 것은 엘프들.
하지만 경험이라는 것은 무시할 것이 못 된다. 엘프들은 나름 침착하게 대응을 하기 시작한다. 엘프 하나에 둘씩 붙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활을 주로 사용하지만 엘프가 검술이 약한 것은 아니다. 엘프들은 주로 레이피어 같은 찌르기 전용 검을 사용하는데 그 검으로 급소를 노리며 예리한 공격을 해 왔다.
하지만 그 찌르기는 갑옷 사이를 노리는 것인데 기사단과 수습 단원들의 갑옷에는 그런 부분이 거의 없었다. 관절 부분에 틈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도 가드가 씌워진 것이기에 엘프의 검이 침범할 수 없었다.
그러나 롱소드를 사용하며 베기를 주로 이용하는 기사단의 검은 위력적이었다.
검의 중량과 힘의 차이랄까?
기사단과 수습 단원들은 힘을 올리는 것을 좋아했기에 힘 있는 전투를 선호했다. 기사라는 이미지가 약간 그런 부분이 있지 않은가.
거기에는 여성 수습 단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능력치 중에 힘을 가장 많이 올렸기에 여린 외모와 다르게 강력한 일격을 사용한다.
쾅!
하지만 마나를 사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수백 년을 살아왔을 엘프가 앞선다. 그렇기에 양쪽은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5분 정도의 전투가 이어졌다.
엘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당황하기 시작한다. 인간 정도야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사실 인간들을 죽일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제압한 후에 대군주와 협상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어렵게 되었다.
제압을 하기는커녕 죽이는 것도 쉽지 않다. 당연한 얘기지만 보통 죽이는 편이 제압을 하는 것보다 쉽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세계수의 영역이었다면 저들은 엘프 대장 혼자서도 모두 제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수림은 엘프들의 힘을 억제한다.
이것은 대군주가 말했던 것처럼 이 세계에 엘프들이 기생을 하기에 벌어진 일. 엘프 자신들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너무하네.”
엘프 대장은 그런 상황에서 결국 지원군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바람의 정령 소환.”
원래라면 최상급 정령까지 소환할 수 있는 그녀지만, 대수림 내에서는 하급 정령을 소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 하급 정령으로 전투를 하기는 어렵다. 대신 전령으로 사용하기는 매우 편리했다.
“조금만 버티면 지원군이 올 거다. 최대한 진형을 지켜 내라.”
엘프 대장의 말에 엘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기사단과 수습 단원들이 유리하다지만 제압을 하거나, 처치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양쪽은 그렇게 서로 지원군을 기다리며 대치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먼저 도착한 것은 엘프의 지원군이었다.
“젠장.”
이경호는 수십 명의 엘프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어떻게든 대수림을 빠져나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조장.”
단원이 이경호를 부른다. 그런 그를 보며 이경호가 말한다.
“미안하다. 하지만 우리는 목숨을 걸고 수습 단원들을 탈출시킨다.”
“네!”
겨우 몇 개월이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이렇게 목숨을 거는 전투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솔직히 일본 헌터들과 싸우면서 사람을 죽여 본 이들도 많다. 이경호를 비롯한 그의 조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인이라면 일본을 싫어한다. 그것은 역사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본인 전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상대했던 것은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망령들이었기에 그들을 베는 것에 별다른 망설임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예상했던 이는 아마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군대를 다녀오지만, 군대를 간다고 북한국을 죽인다는 이야기는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자신들의 변화에 자신들은 잘 못 느끼고 있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기사단원들은 당연히 수습 단원들을 살리고 자신들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식.
이경호는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돌로 시작해서 기사가 될 줄은 몰랐으니까.
“지금에 와서 말하는데 전 백신 팬이었습니다.”
“그러냐?”
“네, 큭큭. 백신이 다시 무대에 서는 모습을 못 보는 게 아쉽네요.”
“나도 그래. 천국에 가면 실컷 보여 주마.”
괜히 중2병 같은 소리도 해 본다. 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다.
“저들을 제압하라!”
엘프 대장의 외침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 외침에 따라 엘프들이 일제히 돌격을 해 온다.
그 모습에 이경호가 뒤를 보며 말한다.
“우리가 시간을 끌겠다. 호버 보드를 타고 도주해라.”
“조장님!”
“명령이다!”
수습 단원들은 자신들의 앞을 막고 있는 기사단원들을 눈에 담는다. 반드시 이 복수를 할 거라고 다짐을 하면서.
그런데 그때다.
냐앙!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울음소리. 그리고 엘프들의 행동이 그대로 멈춰진다. 그리고 그들은 하늘을 쳐다본다. 그리고 하늘에는 거대한 불새를 타고 있던 한 남자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내리는 것이 눈에 보인다.
쾅!
엘프들과 단원들 사이에 난입한 그는 엘프들을 보며 낮게 으르렁거리듯이 말한다.
“감히! 우리 애들을 건드려?”
냐앙!
그리고 이어지는 귀여운 울음소리. 이경호는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직접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