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135화 (135/182)

제135화

제135화 오염과 정화

-세계수의 온전한 지킴이가 지정되었습니다. 세계수의 가지가 온전한 세계수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폭 단축됩니다.

남은 시간: 3개월.

33명의 엘프가 지킴이로 지정되어서 혹시 한 번에 뿌리를 내릴까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이 애매한 숫자는 뭘까 싶었는데 할 수 없다. 이건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3개월이라…….”

냐앙.

그러고 보니 호야는 세계수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대수림에 있는 세계수를 싫어하는 것 같다.

“호야, 이 세계수는 괜찮아?”

냐앙!

그렇단다. 역시 내 예상대로 호야가 싫어한 것은 대수림의 세계수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한테 끼어든 불청객이라고 해야 되나? 그게 엘프 세계의 대성역이건, 엘프들이건.

냥! 냥냐앙!

호야는 엘프들에게 뭔가를 열심히 시킨다. 그리고 엘프들은.

“와, 저게 정령이구나?”

종류별로 정령들을 소환해서는 호야의 지시를 따르고 있다. 호야가 지시하는 것은 저게 될까 싶은 것들이다.

일단 가장 먼저 호야가 하고 싶은 것은 이 동네를 바꾸는 일인 것 같았다. 시베리아라는 동토를 옥토로 바꾸는 일.

문제는 그래 봐야 이곳의 기후가 문제일 텐데?

그런데 가만 보면 뭔가 놀이터를 만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키고, 세계수에서 뻗어 나온 여러 가지 씨앗들을 심는 등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는.

“이건 뭐 거대한 캣타워 같잖아! 심지어 원목, 아니 세계수 캣타워냐?”

냐냐냐냥!

호야가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는다. 놀이터 완성인 거다.

냐앙?

“뭐? 어쩔?”

나에게 호야가 사료를 가지고 와 달라고 한다. 그래서 난 호야의 말을 따랐다. 안 따르면 어쩔 것인가?

영지로 돌아가서 대형 고양이용이라고 하고, 우리 영지 백호들이 주로 먹는 사료들을 잔뜩 가지고 왔다. 그러자 호야가 갑자기 세계수의 꼭대기에 올라간다. 여러 가지 계단 같은 것들이 나와 있어서 호야가 올라가는 데 전혀 위화감이 없다.

거대한 캣타워 위에 올라간 호야는 크게 하울링을 하듯이 울기 시작한다.

냐아아아아아앙!

물론 그래 봐야 내가 듣기에는 겁나 귀여울 뿐이다.

“그런데 왜 저러니?”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레이아가 대신했다.

“동족을 부르시는 것 같습니다.”

“동족? 여기에 길냥이라도 있나? 그러기엔 너무 추운 동네인데?”

그때다.

어흐으응!

본능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울음의 주인공, 아니 주인공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거대한 덩치에 마빡에 왕(王)자를 가지고 있는 짐승.

바로 호랑이들이었다.

이 동네가 시베리아라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 저 녀석들은 시베리아 호랑이일 것이다. 문제는 녀석들의 덩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는 것이다.

보통 호랑이를 말하던 옛 문헌을 보면 그런 표현들이 있다.

집채만 한 크기의 호랑이가 나타났다.

물론, 현대에 와서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면 예전에는 집이 매우 작았나?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저 호랑이들의 덩치는 정말 집채만 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녀석들이다. 대충 봐도 한 3톤 트럭 정도의 크기니까. 그럼 애초에 호랑이의 덩치가 저렇게 큰가? 시베리아 호랑이가 덩치가 크다고는 하지만 정말 저렇게까지?

난 바로 관찰로 호랑이들을 살펴보았다.

-이름: 오염된 시베리아 호랑이.

미지의 기운에 잠식되어 변형된 시베리아 호랑이다.

즉, 몬스터화가 진행된 호랑이들이라는 이야기다.

“전투 준비.”

내 말에 엘프들이 전투를 준비한다. 하지만 호야가 말한다.

냐앙!

“음? 괜찮을 거라고?”

냥냥!

그렇단다.

하지만 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호랑이들은 뭔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그 사이에 있는 나나 엘프들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고는 세계수의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어흐응!

세계수의 냄새를 맡고 포효하는 호랑이들. 귀가 울릴 정도로 시끄럽다. 그러더니 세계수에 스크래치를 하기 시작한다.

‘저거 세계수 아작 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세계수가 대미지를 입었다는 메시지 같은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무려 세계수니까.

호랑이들은 그렇게 세계수와 비비적거리다가 세계수를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맨 꼭대기에 있는 호야를 향해.

그리고 각각 자신들의 발판을 찾은 후에는 그 자리에 그대로 흔히 냥모나이트라고 불리는 자세를 취한다.

냐웅.

그러고는 고양이처럼 울음소리를 낸다.

호야는 그런 호랑이들에게 다가가서는 한 번씩 핥기 시작한다. 호랑이들은 그런 호야의 핥음을 매우 경건하게 받아들인다.

풉!

난 입을 틀어막으며 웃음을 참았다. 너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 상황.

그리고 시스템은 다시 메시지를 보내온다.

-오염된 시베리아 호랑이들이 정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 녀석들이 정화되고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녀석들의 덩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정화는 됐는데, 한번 커진 덩치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건가?”

그때 새로운 메시지가 전해져 온다.

-세계수의 가지가 호랑이 무리를 가디언으로 받아들이고자 합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

세계수의 가지 정도 되면 자신의 의지를 시스템에 전달할 수도 있나 보다. 처음 알았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것을 승인할 존재로 나를 말하고 있다.

“승인한다.”

-정화된 시베리아 호랑이 무리가 세계수의 가디언으로 지정됩니다. 세계수의 영역이 중성역으로 진화합니다.

원래는 그냥 성역이었던 세계수가 중성역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변화는 아직 남아 있었다.

-세계수의 영역 내의 기후가 변화됩니다. 이 기후 변화는 지구의 기후 변화에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동토, 말 그대로 얼어붙는 땅이라는 의미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얼어붙어 있고, 눈밭이나 얼음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시베리아는 동토로 불리지만 땅도 있고, 물도 있고, 나무들도 있다.

그럼에도 동토라고 부르는 것은 이곳의 기후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세계수가 변화시키는 것이다.

“날씨가 따듯하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아마 봄이나 가을이 아닐까 싶다. 우리 전세대는 뚜렷한 4계절이 있었다고 한다.

솔직히 지금 우리 세대만 해도 매우 짧은 봄, 가을 외에는 긴 여름, 긴 겨울이 있는 것이 한반도의 날씨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보통 봄이나 가을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많다. 봄은 조금 더 따듯한 느낌이고, 가을은 조금 더 시원한 느낌이다. 실질적으로 두 계절의 온도는 비슷할 테지만, 겨울을 빠져나와서 맞이하는 봄은 따듯하게 느껴지고, 무더운 여름을 빠져나와서 맞이하는 가을은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이니까.

지금 이곳의 기온이 딱 그런 느낌이다. 대충 20도 정도 되는 기온.

그걸 어떻게 아냐고? 온도계를 봤으니까 안다. 일단 난 세계수의 영역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새야!”

내 부름에 병아리처럼 몸을 감추고 있던 불새가 거대해지며 나에게 부리를 비비적거린다. 애교라고 하지만 뜨거운 놈이다. 말 그대로 뜨겁다.

냐앙!

호야가 세계수에서 뛰어 내려서는 내 어깨에 장착된다. 이건 진짜 장착이라고 해야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불새 위에 올라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하늘에서 세계수가 변화시킨 지역을 가늠해 보았다. 대략 반경 20km 정도 되는 지역이 따듯한 기후로 바뀌었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이는 결계.

아마 저 결계는 내 허락을 받지 않는 이상은 넘어오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것을 뛰어넘을 힘이 있다면 강제 진입이 가능할 것도 같지만, 사실 지금 이 세상에서 그게 가능할 사람은 없을 거다.

놀라운 것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동물들이 세계수 중성역의 구역으로 몰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표범과 스라소니, 곰과 여우, 늑대 같은 애들도 온다.

“동물의 왕국이냐?”

냐앙!

그게 좋은 거란다. 호야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쟤들은 대부분 오염이 시작된 애들이다. 그런 애들이 우리 중성역에 들어오면 오염이 정화된다.

오염된 녀석들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얘들은 생태계를 만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런 애들을 핸들링할 녀석들은 엘프들.

저들이 이곳을 잘 가꾸리라 믿어야겠다.

그렇게 세계수의 영역을 확인한 후에 난 땅으로 내려왔다.

“이레이아.”

“네, 대군주님.”

“이곳을 잘 관리해 줘. 동식물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목숨을 걸겠습니다.”

정말 그럴 것 같았기에 긴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호야와 불새를 데리고 다시 게이트를 넘어왔다.

* * *

“대군주님.”

“네.”

“최근 관측된 자료입니다.”

우리 영지에 관측탑이 생겼다. 그것의 용도는 세계수의 관찰이다. 세계수에 변화가 생기면 대수림에서의 활동이 위험할 수도 있기에 이 부분에 정기훈이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세계수가 줄었다?”

“네, 확연히 줄었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늘 관측하던 다른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줄었습니다.”

대수림의 세계수가 줄었다는 것은 지구로 가지를 뻗은 세계수의 영향일 것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세계수 근방에 있는 엘프의 숫자는 10만에 달한다고 했다.

절대로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숫자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들 대부분은 세계수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어쩌면 우리 세계수가 자랄수록 저 세계수는 기운을 잃어갈 수도 있겠군요.”

“네, 저희도 그렇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엘프들이 지금과 달리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레이아의 말에 따르면 대다수의 엘프들은 세계수의 영역을 벗어나면 급격히 수명이 줄어든다고 했다. 하지만 세계수가 계속해서 줄어든다면?

결국 그들도 목숨을 걸고 진격을 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세계의 세계수가 자랄수록 빨리 진행될 것이다.

“앞으로 경계를 더 철저히 해 주세요. 그리고 지구의 세계수를 계속해서 체크해 주시구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미국 헌터 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올 것이 왔다.

“뭐라고 하던가요?”

“특사를 파견한다고 합니다.”

“특사라……. 외교적으로 해결을 하겠다는 건가요?”

“그런 의미로 보입니다. 그리고 특사는 곧장 한국으로 온다고 합니다. 지금 날아오는 중일 겁니다.”

“대통령을 만나기 위함인가요?”

“일단 공식적으로는 그렇고, 대군주님을 뵙고 싶다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나를 어떻게 조종하기 힘들다. 그러니 외부적으로는 양국의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특사가 파견된 것으로 하고, 실질적으로는 나를 만나 보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담은 뭐라고 하던가요?”

“아담은 모든 것을 대군주님께 맡긴다고 합니다.”

“알았습니다. 그럼 특사는 시호 거리에서 만나기로 하죠.”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난 영지의 일들을 이것저것 지시한 후에 시호 거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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