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140화 (140/182)

제140화

제140화 다른 멸망

경계의 안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내 앞에 뭔가 영상 같은 것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예전에 왕성을 도착했을 때처럼.

난 가만히 그것을 살펴보았다.

‘기계화 세상인가?’

마치 미래를 다룬 SF영화를 보는 것 같은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의 주인들은 흔히 생각하는 안드로이드인 것 같았다.

로봇에 뇌를 이식한 그런 모습.

‘저래서 멸망한 건가?’

뇌를 안드로이드에 이식했다면 그것은 인간일까?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렇게 되면 결국 결정적인 문제가 생기는데, 바로 자손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모두가 뇌를 이식하면 결국 인간 그 자체는 남아 있지 않게 되니까. 물론 그 뇌를 계속해서 새로운 기계에 업로드한다면 그 뇌의 주인은 계속해서 영생을 살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 새로운 인간을 탄생시켜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겠지.

영상은 이 세계의 역사를 빠르게 훑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놀랍게도 인간이라고 해도 위화감이 전혀 없을 정도로 우리와 비슷한 종족이었다.

특별히 다른 점을 꼽으라면 머리 색이 총천연색이라는 정도? 그 외에는 키도, 덩치도, 인종도 비슷했다.

우리보다 나은 점이라면 인종 차별은 없는 세상인 것 같았다. 인종은 우리와 비슷한데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간들은 안드로이드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불안한 사회는 결국 자멸을 맞이한다. 특이하게 이곳에는 게이트가 등장해서 멸망한 세계가 아니었다.

인간들끼리, 아니 정확히는 안드로이드끼리 전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리전이었다. 자신들이 만든 것들을 대신 내보내서 전투를 벌이는 양상. 그러다가 직접 전투용 안드로이드들을 제작해서 서로 공격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렇게 전쟁이 다 끝났을 때 단 한 명의 안드로이드가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드로이드는 스스로의 전원을 차단한다. 아마, 인간으로 따지면 자살인 것 같았다.

그 후에 이곳에 게이트가 연결된다. 하지만 게이트는 주인을 찾지 못한다. 이유는 주인이 되어야 할 인간이 없었으니까.

게이트는 여기저기에 반짝이며 생성되다가 이내 결국 한 곳에 집중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은 바로 네바다 사막.

바로 이곳 51번 구역이었다. 하지만 게이트는 곧 힘을 잃고 만다. 오히려 원래 연결하려던 세상과 지구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안드로이드 세상과 지구를 겨우 연결하고는 힘을 잃고 만다.

“이렇게 된 거였군.”

냐앙.

호야는 한심하다는 듯이 운다. 나도 호야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들이 믿었던 영생의 방법은 틀렸다. 함부로 얘기하는 거 아니냐고?

봐라, 멸망을 하지 않았나.

“대군주님?”

캐서린이 나를 부른다. 내가 잠깐 가만히 서 있었다고 한다.

“아, 관찰로 뭔가가 보여서요.”

내가 정기훈을 보니 정기훈도 뭔가 파편을 본 것인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기훈 씨도 뭘 좀 봤습니까?”

“네, 보긴 했지만…….”

“멸망 과정도 봤습니까?”

“아뇨, 그냥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만 보였습니다.”

“그렇군요. 이 세상은 결국 서로 분쟁이 생기고, 나중에는 서로 죽이고, 죽이다가 마지막 한 개체가 남았을 때 그 개체는 스스로 전원을 꺼 버렸습니다.”

“아!”

정기훈은 안타깝다는 듯이 말한다. 그리고 캐서린은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냐는 듯이 우리를 본다.

“우리 예상대로 이곳과 연결된 곳은 기계 세상이 맞습니다. 그리고 멸망한 세계이구요. 인간과 거의 흡사한 종족이 살았고, 그들은 자신들의 뇌를 기계에 심었습니다.”

“그게…… 가능해요?”

“뭐 저한테 물어보셔도 가능한지를 설명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이들은 그것을 해내더군요. 그리고 결국 그것으로 인해서 멸망하게 되었구요.”

“딥러닝이 아니라 뇌 자체를 이식했다는 말씀이죠?”

“네, 그렇게 보였습니다. 인공지능은 이상하게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뛰어난 기계문명이 존재했던 거군요?”

“네, 그리고 여기에 등장했던 기계 몬스터들은 그들이 키우던 애완동물이랄까? 그런 존재들입니다. 마찬가지로 동물의 뇌를 이식한 존재들이더군요.”

하아아악!

호야가 극렬한 거부감을 보였다. 호야의 뇌를 기계에 이식한다? 그럼 그게 호야일까? 난 왠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는 영혼이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일 테니까.

아무튼 그렇게 뇌가 이식된 동물들이 인간을 보고 반가워서 달려들었는데, 인간의 입장에서는 걔들이 괴물로 보일 수밖에.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죽였을 거다. 아니, 고장을 냈다고 해야 되나.

그리고 동물처럼 움직일 수 있는 기계이니 그 기술력 자체는 매우 뛰어났을 것이고, 미국은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들을 개발해 낸 것이다.

뭔가 51번 구역의 비밀이 밝혀지는 느낌이랄까?

“게이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게이트가 맞습니다. 다행히 다른 게이트가 또 열린 것은 아니더군요. 지금 우리 세상에 열린 게이트가 원래 저 세상에 열리려고 했는데, 거기에 생명체가 모두 소멸하는 바람에 게이트가 이상 작동을 하고, 그게 이 세상과 우리 세상을 연결하고 힘을 잃었어요. 아마 아담 씨가 게이트를 얻었던 때가 그 힘을 회복한 후에 다시 게이트가 열려서인 것 같습니다.”

“아! 그러니까 그 게이트가 기계 세상이 멸망했기에 오류가 발생했다가 오류를 수정하고 기계 세상이 아니라 우리 세상으로 연결이 되었다는 거군요?”

“네, 역시 공무원이라 정리를 잘하시네요.”

“공무원이 정리를 잘할 거라는 얘기는 처음 듣는데요?”

“저도 생각 없이 해 본 말입니다.”

캐서린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다가 다시 묻는다.

“그럼 이곳은?”

“원래 네바다 사막과 기계 세상이 뒤섞인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더는 그냥 지구라고는 보기 힘들어 보이네요.”

“네. 그리고 문제가 더 있습니다.”

“문제요?”

“드레이크는 이곳에서 만들어 내거나, 내보내진 것이 아니라는 거죠.”

내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이거다. 드레이크가 여기서 비롯된 녀석들이라면 별문제가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그놈들은 어디서 나타난 놈들일까?

“대군주님의 기사단이 드레이크를 처리하는 데 문제가 있나요?”

“아뇨,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건방진 말씀이지만, 여기에 집중을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이곳에 연구원들과 그들을 찾기 위해서 보내진 수색대원들까지 합치면 수천 명의 인원이 실종된 상태거든요.”

드레이크가 네바다 사막에서 날뛰고 있다고 해도 사실 놈들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막을 헤집고 다닐 뿐이지.

하지만 여기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실종된 곳이라는 얘기. 확실히 일단은 이곳에 더 집중을 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그들의 생명 반응은 전해져 오지 않고 있으니까.”

“네…….”

캐서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혹시 가족이?”

“남편이 이곳으로 지원해서 왔어요.”

캐서린이 왜 이곳에 집중을 해 달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갔다. 남편이 이곳에서 실종되었다면 그럴 만한 일이니까.

“일단 더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다들 아무거나 만지지 말고.”

“네!”

우리는 가장 앞에서 선우가 움직이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51번 구역의 내부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었는데, 지하이고 매우 깊이 들어가는 구조인 것 같았다.

아마 게이트가 연결을 한 곳이 지상이 입구고 지하가 본체였던 것 같다랄까? 그쪽으로 연구동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이곳은 연구동이네요.”

캐서린의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는 연구동 내부를 살펴보았다. 여전히 생명 반응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지하로 계속 내려갈 때다.

키릭.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난 손을 들어서 일행들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기계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고양이다. 물론 기계로 만들어졌지만.

하아악!

호야가 그 기계 고양이를 보고 하악질을 한다. 그러자 기계 고양이가 반응을 하기 시작한다.

키릭! 킥킥! 키리릭!

이 세상의 고양이는 저런 식으로 울었던 걸까?

기계 고양이라고 해도 소리 자체는 원래 고양이 소리를 심었을 텐데 저런 소리를 낸다는 것은 우리 세상의 고양이와 내는 소리가 달랐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소리를 내면서 고양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호야를 향해 다가온다. 호야는 녀석이 다가오자 맹렬하게 솜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한다.

타다다다닥! 타다다다다다다닥!

겁나 빠르다. 이건 마치.

“로봇 청소기를 처음 본 고양이가 로봇 청소기를 공격하는 것 같은 모습이네요.”

“아, 딱 그거네요.”

정기훈의 말에 난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 호야가 그런 짓을 한 적이 있었다. 로봇 청소기를 큰맘 먹고 구입한 적이 있다.

너튜브에 로봇 청소기를 타고 다니는 고양이 영상을 보고 거기에 필받아서 했던 짓이다. 물론 내가 구매한 로봇 청소기는 호야에 의해서 사망했다.

호야가 워낙에 로봇 청소기와 친해질 생각이 없었거든.

그리고 저 기계 고양이를 대하는 호야의 행동은 그때의 행동과 비슷하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호야가 마음만 먹는다면 쟤를 가루로 만들 수도 있다는 정도?

하지만 왜 그런지 몰라도 호야는 기계 고양이를 가루로 만들 정도의 공격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자 기계 고양이는 신나서 호야를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맞으면서도 뭐가 그렇게 반가운 것인지.

호야는 그런 기계 고양이를 계속해서 떨어트려 놓으려다가 나중에는 한숨을 쉬면서 가만히 있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계 고양이는 호야에게 꾹꾹이를 하기 시작한다.

놀란 눈으로 호야가 기계 고양이를 밀쳤지만, 기계 고양이는 죽을힘을 다해서 꾹꾹이를 했다. 나중에는 결국 호야도 기계 고양이를 받아들이게 됐다.

말이 기계 고양이지, 기계 고양이에게도 털이 있었고, 그 털이 그냥 가발 같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털 자체가 움직이기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른 색으로 보이는 털은 매우 신비했다.

“저게 기계 고양이라구요?”

캐서린이 묻는다.

“네, 제 관찰에는 그렇게 나타나네요.”

“하지만 어디를 봐서.”

캐서린의 말처럼 내가 기계 고양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아마 모를 것이다. 녀석은 마치 호야를 어미처럼 따르고 있었다.

냐앙!

호야는 따라오지 말라고 하지만, 돌아다니면서 힐끗 뒤를 돌아보는 것이 따라오는지 살피고 있다.

저 기계 고양이는 고양이의 뇌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저 기계 고양이도 고양이의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그러니까 고양이의 제왕이라는 호야의 특성에 반응을 하는 것일까?

행동을 봐서는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말이다.

“이리 와.”

내 말에 호야를 따라다니던 기계 고양이가 빤히 나를 쳐다본다. 그러고는 호야를 한 번 쳐다보고는 호야가 고개를 끄덕이자 내게 신나서 달려온다.

애초에 반려동물의 뇌를 이식해서 만든 고양이라 그런지 사람에게도 반응을 하는 것일까?

폴짝.

녀석은 매우 가볍게 나에게 날아들 듯이 안겼다. 그리고는 골골송을 부르기 시작한다.

“허, 이게 기계라고?”

선우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살짝 쓰다듬어 보니 녀석이 반응을 한다. 진짜 고양이처럼.

“대군주님.”

그때였다. 정기훈이 나를 부른 것은. 그리고 그곳에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뭔가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세계 KFRD8932의 최후의 생존자.

그의 정보가 눈에 들어온다. 스스로 전원을 차단했던 바로 마지막 생존자랄까? 마지막 안드로이드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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