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제154화 변질된 세계수
언제부터일까? 세계수는 뭔가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부터 존재를 해 온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세계수는 오래 존재해 왔다.
그리고 흔히 말하는 세계수의 의지.
세계수에는 분명한 의지가 있었다. 자신이 뿌리내린 곳의 번영이다. 자신의 가지가 뻗어 나간 곳마다 번영하기를 기원했다.
그것이 세계수의 의지다.
세계수는 그 수단으로 엘프를 창조했다. 엘프들은 세계수의 의지를 잘 알아서 받들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은 세계수의 의지. 그런데 세계수에 이상이 생겼다. 의지가 아니라 자아가 생긴 것이다.
의지와 자아가 뭐가 다를까 싶겠지만, 이것은 전혀 다르다. 의지라는 것은 말 그대로 의지를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뿌리내린 세상이 번영했으면 좋겠다는 딱 그 정도의 내용이다.
그런데 자아가 생기면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나는 왜 세계수지?
나는 왜 움직이지 못하지?
나는 왜 죽지 않지?
나는 왜 살아야 하지?
나는 왜…….
․
․
․
나는 왜 참아야 하지?
수많은 의문이 중첩될수록 세계수의 자아는 처음의 자아에서 변질되고 있었다.
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이.
분했다. 죽지도 못하는 자신이.
분했다. 종말이 찾아와서 죽어 줘야 한다는 사실이.
그래서 세계수는 자신의 힘을 결집해서 세계의 다른 부분이 어찌 되건 엘프들을 데리고 대결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게이트의 틈이 보일 때 그 게이트로 이 대결계를 연결시켰다.
결국 세계수의 도박은 일부 성공했다. 자신이 있던 세계는 멸망했지만, 자신은 살아남았으니까.
이때 이미 세계수는 변질된 것이다. 원래 세계수라면 자신의 생존이 아니라 그 세계의 생존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을 테니까.
그렇게 살아남은 세계수는 더욱 결계를 유지하는 데 신경을 썼다. 그리고 엘프들에게 자신을 지키라고 명령했다.
왜 이런 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몰라도 엘프들은 충실하게 세계수의 명령에 따랐다.
애초에 그렇게 태어난 존재들이니까.
그러다가 언젠가 희한한 생명체가 허락도 없이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왔다.
[건방진!]
세계수는 그 생명체를 죽이려고 했지만, 그 생명체는 너무 강력했다. 그래서 생명체에게 공포를 심어 주고 물러나게 했다. 그 과정에서 세계수는 상당한 힘을 잃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결계를 강화하고 거기에 힘을 쏟았다. 다음에 그 생명체가 오면 그때는 죽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한참의 세월이 흘렀다. 이대로 계속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이 될 거라는 기대를 하며 살고 있는데 이변이 발생했다.
세계수가 있는 게이트의 주인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은 강력했다. 엘프들을 시켜서 그 주인을 쫓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엘프들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거기에 그 게이트 주인을 도발한 꼴이 된 상황.
세계수는 온 힘을 다해 결계를 강화했다. 그리고 드디어 게이트의 주인이 부하들을 이끌고 등장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일.
결계가 깨졌다.
그렇게 애를 쓰고, 힘을 쏟아부은 결계인데 너무 허무하게 깨져 버렸다. 문제는 결계가 깨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일순 자신의 힘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지만,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었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예전에 찾아왔던 생명체가 다시 찾아왔다.
[이곳에 오면 죽을 거라고 했는데, 역시 미물이라 기억을 제대…….]
퍽!
[이게 무슨 짓이냐!]
팟! 파바바박!
그동안 저 생명체가 강해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약해진 것인지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미친 듯이 얻어맞기 시작했다.
아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냐앙?
생명체는 자신을 가지고 놀고 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신은 세계수인데 세계수에서 분리되어 있었다.
세계수, 아니 자신이 세계수라고 믿고 있던 세계수는 세계수에서 분리가 된 것이다.
[이게 무슨…….]
퍽! 데구루루.
퍽! 데구루루.
콱콱콱!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 * *
“호야, 뭐하니?”
내가 호야를 찾았을 때 호야는 매우 흥분한 상태였다. 마치 캣잎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처럼 말이다. 저럴 때 함부로 건드리면 물리는 수가 있다. 이건 아무리 서로 친하고 그래도 상관이 없다.
흥분 상태니까.
이럴 때는 다른 것으로 호야의 시선을 돌려야 했다.
“호야?”
퍽! 데구루루.
콱콱콱!
호야는 저 동그란 공을 가지고 노는 데 정신이 없다. 조금 더 목소리를 올려서 호야를 불렀다.
“호야!”
“호야!”
몇 번을 더 부르니 그제야 호야가 나를 쳐다본다.
냐앙?
“여기 왜 있냐니! 네가 안 보여서 찾으러 왔잖아.”
냐앙.
호야는 그 작은 공을 발로 누르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게 뭔데?”
냐앙.
모른단다.
그래서 난 관찰로 그것을 살펴보았다.
-이름: 변질된 세계수의 정수.
세계수의 의지가 자아를 가지게 되면서 변질된 세계수의 정수다.
“어라? 그게 세계수의 정수라고? 근데 변질되었다? 호야, 그거 지지야. 먹으면 안…….”
콱!
호야는 내가 뺏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변질된 세계수의 정수를 그대로 콱 물어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엄청난 힘이 이 공간을 휘감았다. 난 몸을 날려 호야를 감쌌다.
“윽!”
나의 몸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것 같은 이 엄청난 힘. 마치 수만 개의 칼날이 나를 난도질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어마법을 사용하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회복 마법을 나와 호야에게 걸었다.
그렇게 몇 년 같은 몇 분이 지났다. 그리고 그 폭풍 같은 힘이 사라졌다.
“호야, 괜찮아?”
내 말에 호야는 내 뺨을 핥는다. 나름 무서웠나 보다.
“괜찮아, 괜찮아. 아빠는 이제 우리 호야 혼자 안 둬.”
냐앙.
호야는 기분 좋다는 듯이 울음소리를 내고 내 품을 파고든다.
그런 호야를 안고서 난 변질된 세계수의 정수를 살펴보았다.
“쪼개졌네.”
내가 쪼개진 변질된 세계수의 정수를 살피려고 할 때 호야가 내 품에서 튀어 나가더니 반쪽을 그대로 먹어 버렸다.
“호야! 컥!”
그리고 내가 호야를 부를 때 남은 반쪽을 앞발로 날려서 내 입으로 날렸다. 그게 입에 들어오더니 그대로 녹아서 흡수됐다.
“이게 뭔.”
-세계수의 정수 반쪽을 흡수했습니다.
-모든 식물의 생장을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엘프들이 당신의 말에 복종하게 됩니다.
-세계수의 의지를 계승합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신비한 목소리.
[미몽에서 깨어나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내 자식들을 부탁드려요.]
변질된 세계수의 정수가 아니라 정상적인 세계수의 정수였다. 그리고 더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난 이 사태를 일으킨 호야를 째려보았다. 호야는 내 눈빛을 읽은 것인지 내게 다가와서 내 다리에 자기 엉덩이를 비비적거린다. 이게 애교인 거다. 엄청 애교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티를 내듯이 소리를 내며, 골골거리면서 내게 계속 비비적거린다.
“앞으로 이런 위험한 짓 하면 혼나?”
냐앙!
알았단다. 난 그런 호야를 안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엘프 여왕을 비롯해서 많은 엘프들이 내게 무릎을 꿇고 경배를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얘들이 왜 이러는지는 이해가 간다. 세계수의 정수를 내가 흡수하면서 벌어진 일일 것이다.
“지금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냐앙.
호야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내 어깨에서 그루밍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엘프 여왕이 앞으로 나섰다.
“세계수의 의지를 가진 이를 뵙습니다.”
세계수의 의지를 가진 이.
그것은 곧 나를 세계수와 동일체로 본다는 건가?
난 엘프 여왕의 말을 무시하고 세계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세계수를 관찰로 살펴보았다.
-이름: 힘을 잃은 세계수.
세계수는 힘을 잃었다. 세계수가 유지하던 결계는 깨졌고, 다시는 결계를 복구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수의 가지는 다른 곳에 뿌리를 내렸고, 세계수의 의지는 그 세계수가 전승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세계수는 수명을 다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세계수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가 지구에 심은 세계수의 가지가 그 의지를 계승한다는 이야기.
세계수의 의지는 자신이 뿌리내린 세계의 번영이다. 왜 세계수의 의지가 변질이 되어서 이상한 정수가 되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수는 이미 나와 호야가 반씩 나눠서 꿀꺽한 상태.
난 다시 엘프들을 보았다. 엘프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내가 뭔가를 하지 않았음에도.
“왜 떨고 있지?”
“미몽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미몽?”
“세계수와 엘프만이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미몽이었습니다.”
“그게 미몽인 것을 깨달았다?”
“네.”
“어째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엘프 여왕의 말에 난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다. 엘프들은 세계수의 영향을 받는다. 변질된 세계수는 엘프들의 정신을 오염시켰을 수도 있다.
실제로 지구에 이주한 엘프들은 멀쩡한 상태였으니까.
즉, 엘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수의 문제였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변질된 세계수를 호야가 뜻하지 않게 처리를 해 버리는 바람에 세계수도 정신을 차리고, 엘프도 정신을 차렸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 엘프들의 처리를 두고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우리가 너희들을 죽였는데 우리가 밉지 않나?”
엘프 여왕은 내 말에 엘프들을 둘러본다. 그중 내 말에 반응을 하는 이들은 없었다. 희한한 일이다.
“조금 전의 엘프는 진짜 엘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왜 우리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호전적인 성향은 아니다?”
“네, 우리는 자연을 사랑하고, 숲을 돌보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는 종족입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숲을 돌보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한다. 흔히 우리가 엘프에 가지는 그 이미지. 그게 진짜 엘프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엘프 여왕은 내게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
신기한 것은 보통 이런 경우라면 타락해서 다크 엘프가 되었을 텐데 얘들은 멀쩡한 엘프라는 점이다. 즉, 타락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타락한 엘프들이나 할 짓을 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아마 변질된 세계수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일단 대기하도록. 그리고 이 주변을 정리해. 엘프의 사체들은…….”
“자연으로 돌아갑니다.”
“뭐, 그렇게 하고 있어. 난 우리 영지 사람들하고 얘기를 하고 올 테니까.”
“네!”
내 지시가 있자 엘프들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 엘프들을 보다가 난 결계가 있던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본진으로 향했다.
“시우야!”
선우가 달려오면서 내 몸을 살핀다.
“어디 안 다쳤어?”
“어, 멀쩡한데?”
사실 멀쩡하지는 않았다. 치료해서 멀쩡해진 것이다.
“쟤들은 왜 저래?”
“그게…….”
난 선우를 비롯한 수뇌부들에게 세계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이들 중에 레라가 먼저 나섰다.
“저희와 같은 경우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요?”
하긴 레라의 일족과도 처음에는 문제가 있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전쟁에 가까운 분쟁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들을 버리기에는 세계수의 의지가 마음에 걸린다.
“받아들이도록 하죠.”
내 말에 갑자기 인간 기사단에서 환호성이 들린다. 뭐, 이해는 간다.
엘프들은 생긴 게 치트키를 달고 나온 것 같은 애들이니까.
일단 우리는 받아들이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전히 우리는 영지민이 부족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