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제157화 마계 주민 (1)
여자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은 뭐랄까?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여자는 울고 있는데 얼굴 표정이 울고 있는 표정은 아니다. 그냥 무표정하다랄까?
그렇다고 이 여자가 나를 속여서 뭔가를 얻으려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더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관찰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녀가 대단한 존재일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티거, 이 여자의 정체를 다시 한번 살펴봐. 표정이 이상해.”
난 한국어로 말했다. 당연히 저 여자가 못 알아들을 거로 생각해서다.
그런데 의외로 여자가 내게 말한다.
“저희가 이상하게 변하면서 표정도 마음대로 지을 수 없게 되었어요.”
“한국어를 할 줄 아네?”
“네, 전 K팝이랑 K드라마 팬이거든요.”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어릴 때 일본 애니에 빠져 있던 애들 중에는 일본어 능력자들이 상당했다. 물론, 걔들의 일본어는 애니 스타일의 일본어라는 것이 조금 문제긴 했지만. 그때의 경험으로 생각하면 이 여자가 한국어를 할 줄 안다고 해도 희한한 일은 아니다.
특히나 일본의 젊은 여성들 중에는 한국어를 일부러 배우는 사람도 상당히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것 같다. 그게 사실인지 너튜브의 이야긴지는 몰라도 말이다.
“내가 당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군요?”
“네, 저도 제가 이상한걸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표정이 참 희한했다.
“저는 나오라고 해요.”
“네, 나오 씨. 어떻게 된 거죠?”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났더니 이렇게 변했어요. 그리고 표정……. 얼굴의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인다랄까요?”
“잠깐 검사를 해 봐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그녀, 나오는 티거가 내미는 작은 바늘에 팔을 내밀었다. 티거는 그녀의 팔에 작은 바늘을 찌른 후에 분석에 들어갔다.
[나오 님의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얼굴의 근육은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합니다.]
티거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그렇다는 부분에 조금 놀랐다랄까?
그렇게 우리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다른 주민들도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 역시 표정이 비슷했다.
자신들 마음대로 제어가 안 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한 모습. 울고 있는데, 얼굴은 웃는다거나, 그런 식으로 말이다.
참으로 기괴한 일이었다. 원래 일본인들은 가면을 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들의 친절이 가면이라는 이야기다. 매우 친절한 것 같지만, 그 속내는 다르다는 얘기.
이건 실제로 일본인들 중에 상당수가 그렇다고 들었다. 십수 년을 같은 직장에서 생활했는데 연락처도 모른다거나, 상대가 결혼을 한 지, 안 한 지도 모른다거나 그런 일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표정의 부조화는 어쩌면 일본인의 특징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곳을 알아보는 일이기에 티거를 시켜서 여러 가지 시료를 채취하라고 했다.
어차피 그런 과학적인 부분은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이니까. 그 사이 난 이들과 대화를 해 보았다.
“당신들이 이렇게 변한 후에 당신들을 찾아온 이들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TV나 인터넷도 되지 않고, 라디오도 먹통입니다.”
젊은 남자가 내게 말을 한다. 그리고 난 다시 그에게 물었다.
“나 말고 이곳에 온 이들이 있었을 텐데요? 헌터들.”
“네, 있었어요. 몇 분이 오셨다가 우리 상태를 보고 놀라셨죠. 그리고 그 후에 도쿄가 있는 방향으로 가셨어요.”
나오의 말이다. 나오의 말은 진실이었다. 내 스킬은 이미 맥스를 찍었기에 상대가 동물이라도 거짓을 분간할 수 있다.
그러니 나오의 말을 분간하는 데 딱히 어려움은 없었다.
“도쿄 방향이라…….”
헌터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해당 헌터를 보유한 영주를 만났을 때 그들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지민 현황을 보면 헌터의 생존 여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니까.
“내가 당장 도울 부분이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당장 필요한 게 있습니까?”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변한 후에 우리는 음식도 먹지 않고 있거든요.”
“먹을 수 없는 건가요? 아니면 먹지 않는 건가요?”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단지 먹을 필요를 못 느낀다랄까요?”
그러니까 사실상 식량이 필요하지도 않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그냥 숨만 쉬고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
“다른 욕구 같은 것은 혹시 없습니까?”
이 부분은 매우 중요했다. 인간의 욕구는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도 같을까? 그게 궁금했다.
“글쎄요. 식욕도 없고, 성욕도 없고, 수면욕도 없고, 그 외에 뭘 하고 싶은 욕구 자체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거의 모든 욕구가 거세당한 사람들. 아니,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과는 거리가 멀어진 것 같은데.
난 나오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런데 욕구가 다 사라졌다면서 왜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이 문제다. 그녀는 처음에 자신들을 되돌려 줄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으니까. 그래서 구해 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가.
“글쎄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기억은 남아 있어요. 그때의 감정이 지금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로 돌아가면 뭔가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욕구는 거세되었지만 기억은 남아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본능적으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시료 채취를 끝냈습니다.]
티거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오에게 물었다.
“나랑 같이 밖으로 나가 보겠습니까?”
“네, 그렇게 할게요.”
난 그녀를 데리고 경계선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밖으로 나가려는데 나오는 그 경계를 넘지 못했다.
“저는 나갈 수 없는 것 같아요.”
“음 경계를 넘지 못한다라. 한 가지 더 시도해 볼 것은 있습니다. 제 손을 잡으세요.”
냐앙.
호야는 뭔가 불만스럽다는 울음을 터트린다. 그런 호야를 달래면서 난 나오의 손을 잡고 귀환 마법을 사용했다. 이것으로도 그녀를 데리고 나가지 못한다면 포기해야 한다.
“귀환.”
곧 주변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 * *
다행히 내 시도는 성공했다. 나오를 무사히 마계에서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내가 귀환 포인트로 만들어 둔 곳은 영주성의 한 방이었다. 아무도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해 둔 곳으로 나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앗!”
나오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갑자기 자리에 주저앉는다.
“무슨 일이죠?”
그때 나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그녀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퍽! 냐앙!
내가 나오에게 당할 일은 없다. 하지만 나보다 먼저 호야가 움직였다.
“땡큐.”
그렇다고 나오를 죽인 것은 아니다. 기절을 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궁금한 부분.
나오는 왜 나를 공격했을까?
공격을 할 거라면 마계에서도 공격이 가능했다. 일부러 허술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니까. 거기에 그곳에는 다른 주민들도 많았다.
즉, 여기에서 나를 공격하는 것보다는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다는 것. 그런데 거기에서 나오는 나를 공격하지 않았고,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돌변했다.
난 일단 그녀를 마법으로 구속한 후에 정기훈을 불렀다.
“이 여자는 뭘까요?”
정기훈은 웬만해서 놀라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상당히 놀란 모습이다.
인간으로 보이는데 이마에 뿔이 나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니까…….”
난 정기훈에게 일본 본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안으로 더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본 것들과 시료를 채취해 왔다는 이야기.
“허, 정말 별일이 다 벌어지는군요.”
“그렇죠. 문제는 아직 이토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를 모른다는 거죠.”
“네, 그리고 이 여자는 이곳으로 오자마자 갑자기 공격성을 보였다고 하셨습니까?”
“네, 호야가 막긴 했지만요.”
“호야 님이 나설 정도면 바로 공격을 했다는 이야기겠군요?”
나랑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고, 원래 호야를 알던 사람이 아니면 보통은 호야를 호야 님이라 부른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냐고 했지만,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느낀다니 그냥 내버려 두었다.
“글쎄요, 그냥 짜증인지도 모르겠네요.”
호야는 마계에 들어갔을 때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그래서 그런 거로 생각한다.
“일단 연구팀에 시료를 보내겠습니다.”
“네, 그리고 다른 연구팀에게 이 여자를 분석해 보라고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영주들이 도착했습니다. 회의는 내일이지만 지금 보시겠습니까?”
“그러는 편이 나을 것 같네요.”
“네, 알겠습니다.”
난 잠시 후에 영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영주들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하지만 몇몇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영지의 헌터들을 잃었기에 그런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대군주님을 뵙습니다.”
“일단 일본의 본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제가 오늘 그곳에 갔다 왔습니다.”
“네? 정말이십니까?”
“네, 그리고 그곳에서…….”
난 일본 본섬의 상태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영주들은 상당히 놀란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그들은 일본이 조국이다 보니 그럴 수 있다. 거기에 영주들 혹은 지인 중에는 본섬에 가족이나 지인을 둔 이들이 있을 테니까.
“심각한 상태군요.”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영지의 헌터들을 진입시키는 것은 중지시켜 주세요. 제가 직접 들어가서 더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군주님. 개인적으로 도쿄에 가족은 없지만, 우리 영지민들 중에는 상당수가 본섬에 가족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을…….”
“네, 일단 한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그 사람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를 먼저 실험해 보겠습니다. 당장은 그곳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파괴를 하는 일이라면 몰라도 다른 일은 가능할 것 같지가 않거든요.”
“물론입니다. 저희는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단, 일본 본섬에서 외부로 빠져나오는 인간이나, 생명체들은 차단해 주세요. 내 생각에 그 안에 있을 때는 괜찮지만, 밖으로 나오면 공격성을 가지는 것 같거든요.”
“순찰을 돌도록 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 주세요. 다들 이걸 하나씩 받으세요.”
내가 그들에게 나눠 주는 것은 작은 돌멩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건……?”
한 영주가 묻는다.
“거기에 마나를 주입하면 영주성과 통신이 가능합니다. 일종의 무전기라고 생각하면 편할 겁니다.”
이것은 마정석으로 만든 통신기구다. 현대의 전화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나름 첨단의 도구다. 다만 미리 정해진 곳과만 통신이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 저희는 돌아가서 순찰을 강화하겠습니다.”
“네, 그렇다고 절대로 진입은 하지 마시구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 영주들을 돌려보낸 후에 난 나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오는 온몸이 결박당한 상태로 난리를 치고 있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