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2화
제162화 마계 사무라이 (2)
인간이라면 옆구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데 멀쩡할 수가 없다. 물론 저놈도 완전히 멀쩡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멀쩡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움직이는 데는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대단하군.”
놈은 별것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리고 두 개의 도 중 하나를 버린다. 그리고 긴 도를 양손에 든 채로 나를 노려본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도류를 사용하던 놈이 일도를 사용한다고 뭐가 크게 다를까 싶지만, 다르다.
마치 지금까지 싸웠던 놈이랑은 전혀 다른 놈이 된 것 같다. 게임으로 치자면 보스 몬스터의 2페이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게임의 보스 몬스터도 그리고 저놈도 같은 것이 있다.
어차피 잡힌다는 것.
놈의 움직임은 빨라졌고, 위력적으로 변했지만, 애초에 나도 전력을 다해서 상대를 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그러니 놈이 능력치를 올리면 나도 거기에 맞춰서 상대를 하면 된다.
확실히 일도류를 사용하는 놈은 이도류의 놈보다 월등하다고 할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결과는 같았다.
서걱!
난 놈의 몸에서 무거워 보이는 머리를 분리시켰다.
그러자 놈이 크게 웃는다.
어디서? 바닥에 떨어진 머리에서.
“대단하군. 대단해. 당신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그게 놈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뭔가 지나가는 잡몹에서 의미심장한 대사를 내뱉고 죽는 엑스트라로 승급한 것 같지만 신경 안 쓰기로 했다.
“다 쓸어버리지.”
내 말에 시호 수호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계 사무라이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 * *
우리는 총 열두 번의 마계 사무라이 무리들을 만났다. 그리고 모두 이겼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마계 사무라이들을 처치할 때마다 세계수의 새싹을 심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계 안에서 세계수의 새싹을 마냥 심을 수는 없다. 외부에서는 아무 조건 없이 심을 수 있었지만, 마계 안에서는 그게 안 되었다.
하지만 마계 사무라이들을 처리한 후에 심을 수 있다는 것은 첫 번째 집단을 죽인 후에 알게 되었다.
즉, 우리는 오사카에서 시작해서 도쿄 방향으로 점점 진군하면서 마계 사무라이들을 상대하면서 세계수의 새싹을 심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기사단을 부르는 편이 낫겠어.”
선우의 의견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기사단들을 소환하지 않았던 것은 위험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계에 오염되지 않을 방법으로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실험했고, 그중에 세계수의 가지를 갑옷에 새기면 마계화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험성이라는 것은 그 부분이었다. 기사단들이 입을 갑옷에 그 과정을 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조금 전에 내가 만든 포털을 이용해서 영지와 연락을 취해 보니 이제 기사단들의 갑옷에 작업이 다 끝났다고 한다.
“오늘은 일단 우리도 영지로 돌아가고 내일부터 도쿄로 가서 이토 놈을 끝장내도록 하자.”
“그래.”
우리는 내가 만든 포털을 이용해서 영지로 돌아갔다.
* * *
세계 곳곳에 마계화는 계속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일본이라고 하면 마계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리에 박혔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사람들이라고 착각을 하고 살아간다.
예전부터 탈아입구(脱亜入欧)라고 해서 아시아를 벗어나서 유럽에 속하자는 희한한 사상을 가진 이들이 많다.
발전을 이뤄서 유럽처럼 발전된 나라가 되겠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된 것이 나중에는 자신들은 아시아에 있는 유럽이고, 자신들은 유럽인이라는 착각을 하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라고 들었다.
아시아에 있는 유럽이라니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는 이룬 것 같다. 아시아가 아니라 지구를 벗어나서 마계에 속하게 되었으니까 확실하게 아시아는 벗어난 것 같다.
외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너희 때문에 우리 가족을 잃었어!’
‘너희가 문제야!’
‘너희는…….’
뉴스만 보더라도 일본인에 대한 혐오범죄가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들로 인해서 마계화가 진행된 것은 아니겠지만, 이미 사람들은 그런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이 마계화가 이토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일 테니까.
그렇게 일본인들이 지구촌의 관심을 한껏 받는 동안에 우리는 기사단들을 이끌고 도쿄로 향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끝장을 보자.”
선우가 질렸다는 듯이 말한다. 사실 예전에도 이토를 죽일 방법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이토를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가능했을 테니까.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마계화는 내 잘못인가? 그렇게 말하고 싶은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내 잘못은 아니다. 나를 탓할 사람은 탓하겠지만.
애초에 이건 이런 짓을 저지른 이토의 잘못이니까.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고?
[최시우 대군주는 이 일을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막말로 이토 히로시를 미리 죽였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TV에서 저렇게 떠들고 있어서다.
“대군주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정기훈은 혹여 내가 신경 쓸까 싶었는지 그렇게 말한다.
“당연하죠. 저런 사람들은 애초에 신경 안 쓰니까 걱정 마세요.”
“네. 다행입니다.”
정기훈이 웃는다. 그러고 보면 이 양반도 참 많이 변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 유용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죠. 다들 준비가 끝났나요?”
“네, 준비는 완전히 마쳤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네, 대군주님.”
인사를 한 후에 난 기사단을 이끌고 포털로 향했다.
* * *
마계 사무라이들은 계속해서 우리의 앞길을 막았다. 그리고 중간중간 처음 상대했던 중간 보스급 사무라이들도 등장했다. 하지만 더는 결투를 받아 주지 않았다.
그냥 다구리로 끝내버렸다. 뭘 더 주는 것도 아닌데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우리는 그렇게 거의 2주에 걸쳐서 마계화된 일본 내부를 관통해서 도쿄에 닿을 수 있었다.
“여긴 뭐 아주 가관이네.”
도쿄에 다가갈수록 우리는 확실히 공기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부근에서부터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이토가 주로 사용하던 언데드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막을 정도의 위협은 되지 못했다.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오히려 갈수록 숫자가 줄어드는 마계 사무라이들이었다.
특이하게 도쿄에 다가갈수록 마계 사무라이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는데, 덩치는 더 커지고, 강력해지고 있었다.
덕분에 도쿄 인근에 도착한 후에 오히려 우리는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것도 우린 극복해 냈다. 결국 우리는 도쿄에 입성하게 되었다.
“저게 도쿄?”
선우는 입을 벌리고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선우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다.
아, 여기서 우리라고 하는 것은 지구인들을 말하는 거다. 이종족들이야 애초에 도쿄를 몰랐으니까.
“오빠! 저게 뭐야?”
“그러게 말이다.”
도쿄에 입성했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건 그냥 하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그게 말 그대로 입성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거대한 성.
말 그대로 거대한 성이 우리 앞에 있었다. 사무라이들이 튀어나왔으니 일본식 성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생긴 것은 서양의 성처럼 생겼다. 그리고 관찰로 살펴보니.
-마왕성.
마왕이 된 이토 히로시가 살고 있는 성이다.
매우 간단한 설명. 말 그대로 마계에 있는 마왕성이고, 이토는 마왕이 되었다는 이야기.
“마왕이 됐다는 얘기네.”
“뭐?”
“이토 히로시가 마왕이라네.”
“그럼 저건 마왕성이냐?”
“어, 그런 것 같다. 일단 주변을 살펴보는 게 좋겠어.”
“알았어. 지시할게.”
선우는 곧장 각 기사단에 지시를 내려서 마왕성 주변을 탐색하도록 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결과를 얻었다.
우리 기사단은 오크, 인간, 바람의 일족, 물의 일족, 엘프 이렇게 총 다섯 종류의 기사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마왕성의 입구는 여섯 개였다.
즉, 우리 기사단 다섯과 시호 수호대가 각각 한 곳씩 맡아서 들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아예 한 곳을 잡아서 공략을 하면 어떠냐고? 이미 시도해 보았다. 그렇게 하면 진입이 불가능하다.
여섯 개의 입구를 동시에 진입해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참고로 마왕성의 크기는 웬만한 서울의 동 하나 정도의 크기다. 인간이 만들었다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크기다.
난 각각의 기사단장에게 통신용 돌멩이를 나눠주었다. 참고로 이 돌멩이는 단지 통신만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서 내가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만약에 기사단이 위험해진다면 그곳으로 향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다들 식량은 충분히 챙겼습니까?”
내 질문에 단장들이 힘차게 대답한다. 아공간 마법을 구현한 후에 드워프와 합작해서 그것을 아이템으로 만들어서 각각 기사단에 보급했다.
저들이 가지고 있는 식량은 최소 반년은 버틸 수 있는 양을 가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
그리고 식량은 우리 영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맛도 좋고, 영양도 매우 풍부하며, 체력을 회복시켜 주고, 피로를 풀어 주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영지에 있는 보조 인원들 중에 요리 스킬을 가진 이들이 합심해서 만든 것들이라 그렇다.
물론, 각 종족에게 맞춰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렇게 준비를 끝내고 우리는 마왕성에 진입했다.
* * *
“음?”
냐앙?
난 분명히 마왕성으로 시호 수호대와 함께 진입했다. 하지만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호야는 있다.
냥냥냥!
호야도 당황을 했는지 칭얼거린다.
“일단 잠깐 있어 봐.”
난 통신용 돌멩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아무도 응답이 없다. 심지어 시호 수호대도 그렇다.
“우리밖에 없나 보다, 호야.”
냐앙.
호야가 걱정하지 말란다. 자기가 있으니까. 난 그런 호야를 안으면서 말했다.
“문제는 우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지. 우리 무적 호야 님이 계신데 내가 걱정할 게 있으려고.”
냥냥.
호야가 당연하다는 듯이 가슴을 내민다. 그런 호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난 우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왕성의 내부로 짐작되는 곳인데 마치 게임에 나오는 던전처럼 통로가 있었고, 그 통로를 따라가니 통로가 여러 개로 나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이런 식으로 길을 찾아서 결국 마왕 이토가 있는 곳에 닿게 되는 구조 같았다.
“걱정이네, 다른 사람들은 우리처럼 떨어져 있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은 되지만, 난 우리 기사단과 시호 수호대를 믿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니까.
그때 내 앞에 뭔가가 나타났다.
“처음 만나게 되는군, 최시우.”
마왕 이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