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제163화 마왕성 (1)
내 앞에서 말을 걸고 있는 것은 이토 히로시. 이 마계의 마왕이었다.
하지만.
냐앙.
호야는 저게 가짜라고 한다. 관찰로 살펴보니 진짜 가짜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분신이다.
“그러게. 나도 대면을 하는 것은 처음이군. 비록 분신이라고 해도 말이지.”
“하하, 애초에 이것이 분신이라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했다. 지구 유일의 관찰 마스터.”
유일의 관찰 마스터라. 놈은 나의 정체성을 그렇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관찰이라는 스킬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앞에 분신을 보낸 이유는?”
“한 가지 제안을 하기 위해서다.”
“제안?”
“그렇다. 일본은 가만히 내버려 둬라. 그렇다면 나머지는 건드리지 않겠다.”
저 말은 내가 일본을 포기하면 다른 지역은 마계화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런데 웃기는 일이다.
진짜 놈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었다면 내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됐다. 내 앞에 나타나서 저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놈이 내가 마왕성에 들어온 것을 엄청 경계한다는 이야기고, 내가 마왕성을 공략할 경우 놈에게 치명적인 뭔가가 있을 거라는 의미가 되니까.
즉, 내 앞에 나타났다는 것 자체가 놈이 약점을 드러내는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왜? 쫄리냐?”
“이놈!”
“네가 네놈한테 왜 놈 소리를 들어야 할까? 난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 말이지.”
“후회할 것이다.”
“후회하고 있지. 예전에 그냥 도쿄로 가서 어떻게든 널 찾아서 죽여 버렸으면 이렇게 번거로울 일도 없었을 텐데.”
“흥, 지구는 지금부터 마계화가 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네게 있다.”
“말은 바로 하자. 마계화를 일으키는 것은 너지, 내가 아냐. 그리고 내가 무슨 지구방위대도 아니고 지구 전체를 책임질 이유라도 있어? 미친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넌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구나?”
내 말에 놈이 부들부들 떤다. 물론 그러면서 나를 공격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본체가 와도 나랑 맞짱을 뜨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는데 분신 따위가 덤벼 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저 분신은 애초에 나와 대화를 위해서 만든 놈이라는 것을 딱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네놈, 지구를 대표하고 있지 않나?”
“내가? 설마 그런 귀찮은 일을 내가 왜?”
“그렇다면 지금까지 왜 나를 방해한 거지?”
“미친놈아, 세상이 네놈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착각을 하고 사는 거야 자유지만, 내가 무슨 너를 필생의 숙적으로 생각해서 너를 방해하고 막 그런다고 믿었냐?”
“아닌가?”
“당연히 아니지. 애초에 날 건드린 건 너야. 건드리니까 치워 버리려고 한 거고. 넌 딱 그 정도야.”
상대를 가장 짜증 나게 하는 것은 뭘까? 특히 이런 놈에게는 그냥 넌 지나가는 길에 발에 차이는 돌멩이 같은 놈이라고 말하는 것일 거다.
아마 저놈은 자신이 대단한 사명을 가지고 마계화를 진행하고, 뭐 어쩌고 그런 생각에 빠져 사는 놈일 거다.
그리고 난 놈을 자극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렇게 말한 것도 아니다. 사실이 난 쟤가 그냥 혼자서 살고 있으면서 저런 망상을 하고 있다면 귀찮아서라도 그냥 내버려 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놈은 계속해서 날 자극하고, 뭔가 스스로 죽을 자리는 찾아간다고나 할까?
아주 짜증이 나는 놈이다. 그런 놈의 장단을 맞춰 줘야 할 이유는 없다.
“이놈!”
“너 원래 오타쿠였지? 그래서 이렇게 일을 등신같이 하고 있는 거고?”
내 말에 놈이 멈칫한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 그랬나 보다.
“거기에 혹시 히키코모리? 그럴 것 같은데?”
“아, 아니다. 난 대일본제국의.”
“대일본제국은 우라질 마계 주제에.”
놈은 진짜 오타쿠에 히키코모리였나보다. 히키코모리는 은둔형 외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에서 그런 경우가 많아서 대명사가 된 그런 용어로 알고 있다. 물론, 다른 나라라고 그런 사람이 없겠냐만 일본에 특히 많다고 들었다.
여러 가지 사회현상이 중첩되면서 그런 이들이 많아진 것이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이놈은 애초에 오타쿠, 이 부분은 아마 옛날 일본에 미친놈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미국? 미국이 별거야? 일단 사무라이 정신으로 선빵을 날리자!’라며 진주만을 습격했던 그 당시 일본에 대한 오타쿠가 아닐까 싶다.
당연히 그런 오타쿠에 히키코모리라면 지금까지 이놈이 벌인 어이없는 일들이 납득이 간다. 너무 등신 같았으니까.
물론 나중에는 좀 나아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얘는 이미 되돌리기에는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너무 많이 건넜다.
이제는 아예 되돌릴 수 없는 마계까지 끌어들였으니까.
“네놈의 뜻대로 세상이 네놈의 발아래 조아릴 것 같으냐!”
“미친놈아, 세상이 왜 내 발아래 조아리는데? 그리고 그걸 내가 왜 바라고?”
“뭐라? 그렇다면 왜?”
“말했잖아. 난 애초에 그런 것에 관심도 없고, 너를 작살내려고 하는 건 네가 계속 날 거슬리게 하니까 그런 거지. 잘 때 모기가 계속 앵앵거리면 결국 일어나서 불 키고 모기를 잡아야 되지 않겠냐? 넌 딱 그런 놈이야.”
“협상은 없다. 네놈은 파괴하겠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어, 파이팅! 응원해 줄게. 잘해 봐.”
내 말에 놈은 부들부들 떨면서 뭔가를 더 얘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냥! 퍽! 퍼버버벅!
호야가 더는 못 봐 주겠다는 듯이 미친 듯이 두들겨 패서 분신을 소멸시켰다.
“호야! 조금 더 냅두지 그랬어. 멘탈을 더 바사삭했어야 하는데.”
냐앙!
호야가 헛소리 그만하고 길이나 찾으라고 한다. 호야가 그러라면 그러는 것이 도리다.
“자, 이쪽으로 가 보실까요?”
난 호야를 안고서 다시 길을 나섰다.
* * *
인정한다. 놈은 모기가 아니다. 최소 바퀴벌레 정도는 되는 놈이 아닌가 싶다. 참고로 난 바퀴벌레를 더 싫어한다. 생긴 게 너무…… 싫다. 남자라고 벌레를 잘 잡고 그러지 않는다. 참고로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벌레를 더 무서워하신다. 아마 나도 그런 것 같다.
예전에는 내 방에 벌레가 나오면 난 시연이를 불렀다. 시연이는 맨손으로도 바퀴벌레를 때려잡는 용감한 소녀였다.
물론, 대가로 세종대왕님을 한 장 쥐여 줘야 하긴 했지만.
그럼 왜 모기가 아니라 바퀴라고 하냐고? 그야 내가 바퀴를 더 싫어하니까.
“아, 이 미친, 또라이 새끼는 도대체 뭔 미로를 염X.”
욕이 절로 나온다.
미로에 들어와서 벌써 3일이 지났다. 길을 찾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길은 겁나 찾기 힘들었다.
심지어 호야도 길을 못 찾는다. 동물은 인간보다 공간인지 능력이 뛰어나고, 청각과 후각이 월등히 발달한 존재들이다. 내가 아는 사람과 같이 사는 고양이는 선천적으로 귀가 안 들린다. 하얀 털에 블루아이의 경우는 선천성 난청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터키시앙고라라는 품종의 고양이 중에 블루아이나, 오드아이인 경우 귀가 안 들리는 게 대부분이다.
거기에 그 아이는 나이가 아주 많아서 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길을 잘 찾아다닌다. 어디에 부딪히지도 않는다. 그것은 신기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그게 수염 때문이라고 한다.
고양이의 수염은 강아지의 수염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갑자기 이런 얘기를 왜 하냐고?
“호야, 네 수염은 고장 난 거 아닐까?”
우리 호야가 영 수염을 제대로 못 쓰는 것 같아서 그렇다. 이렇게 길을 못 찾아도 되나 싶게 못 찾는다.
냥!
아니란다.
“호야, 아빠는 우리 호야한테 실망했어. 우리 호야가 여기를 빠져나가게 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냐아아아앙!
호야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겁나게 길게 울면서 나를 째려본다. 그게 또 나름 귀여워서 계속 호야를 놀리게 된다.
시간이 걸릴 뿐이지 사실 딱히 곤란한 것은 없다. 단지 이 안에서는 공간이 뒤틀려 있어서 그런지 포털을 사용할 수도 없고, 돌멩이 통신도 안 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그리고 다른 시호 수호 대원들?
걱정이 되긴 한다. 하지만 그 개개인으로 볼 때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각각 아공간 주머니에 넉넉한 식량을 가지고 있고, 생존력도 당연히 강력한 존재들이니까.
고연주가 걱정되지 않냐고?
당연히 걱정은 되지만 고연주는 방어력으로는 우리 중에 거의 탑이다. 괜한 걱정이다. 멘탈로 강하다. 야생의 연예계에서 생존한 여자다.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시연이? 시연이는 좀 걱정이 된다. 지 성질에 못 이겨서 사고를 칠까 봐?
보통 소설을 보면 주인공은 이런 상황에서 슬기롭게 길을 찾아서 다른 동료들과 합류를 하고, 다른 동료들을 위험에서 구해 주는 그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틀이 더 지나서 알게 되었다.
“난 주인공이 아니었나 봐.”
“뭐래? 뭐 잘못 처먹었냐?”
선우가 주인공인 것 같다. 얘가 나를 찾아왔다. 뭔가 내 힘으로 이 미로를 뚫지 못하고 선우의 도움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그런 스토리? 얘가 주인공인가 보다. 뭔가 이름도 주인공스럽긴 하다. 김선우. 내가 읽었던 어떤 소설의 주인공 이름 같다. 막 소환으로 촌촌거리는 애를 소환해서 싸우고 그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뭘 봐?”
“아냐, 네가 주인공이 될 상인가 싶어서.”
“진짜 뭐 잘못 먹었냐?”
“아니라니까. 그런데 다들 네가 찾은 거냐?”
선우만이 아니다. 시호 수호 대원들 전원이 선우를 따라오고 있었다.
“당연하지. 내가 원래 레인저 아니냐. 길 찾는 건 내 전문이지.”
“전문인 것 치고는 시간이 좀 걸린 것 같다만?”
“다른 사람들은 진작 찾았거든? 네가 미친 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너 찾는다 오래 걸렸다. 너 찾느라.”
그런 거였나? 내가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우리는 진작 만나서 해피한 중간 결말을 볼 수 있었던 건가?
난 물끄러미 호야를 쳐다보았다. 호야가 내 시선을 피한다. 그러면서 냅다 달려가서는 시연이의 품에 안긴다.
“저저저, 배은망덕한 고양이 같으니라고.”
“헛소리 그만하고 가자. 출구로.”
“출구도 찾았어?”
“첫날 찾았다니까. 너 때문에 이렇게 오래 걸린 거라고.”
그랬구나. 난 미로에 진짜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구나.
“오빠, 호야 왜 이렇게 지쳤어? 여기 무슨 몬스터라도 나타났어? 우리는 못 봤는데.”
“몬스터는 무슨. 아, 이토 분신은 만났었다.”
“뭐? 그래서?”
“호야한테 맞아서 사라졌어.”
“아.”
시연이는 호야를 꼭 안고 호야에게 뽀뽀를 한다. 호야는 세상 모른다는 표정으로 해맑게 시연이의 품에서 골골거린다. 애초에 호야를 따라다니지 않고, 내가 길을 찾았으면 좀 일찍 선우를 만났으려나? 물론 모르는 일이다. 호야나 나나 길을 둘 다 못 찾은 거니까.
“빨리 따라와.”
“네, 주인공님.”
“뭐라니!”
선우는 혀를 차면서 길을 안내했다. 매우 쾌적하고, 가까운 곳에 출구가 있었다. 심지어 여기를 나와 호야는 지나간 적도 있다. 그런데 출구를 못 찾았던 것이다.
‘진리를 이해하는 자’라는 직업이 미로에는 적용이 안 되나 보다.
“시우야, 네가 열어라.”
선우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출구의 문을 밀었다.
그 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