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화
제164화 마왕성 (2)
마왕성 미로를 통과하는 문을 열었을 때 우리 앞에는 거대한 회랑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 기사단들이 있는데 기사단들은 열심히 마계의 사무라이들과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문제는.
“우리는 저기로 갈 수 없는 것 같은데?”
선우의 말처럼 우리는 그 전투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우리 기사단들이 밀리지 않고 적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
얘기했듯이 우리 기사단은 지구 최강의 무력 집단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웬만해서 우리 기사단을 막을 수 있는 집단은 없다는 얘기다. 우리 기사단의 평균 레벨을 보나, 장비를 보나, 구성을 보나.
미군 출신 기사들이 많아지면서 더 강화되었다. 기본적으로 한국 출신의 기사들은 군필인 경우가 많다.
모병이 아닌 징집제도를 가진 한국의 특성상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미군보다 전투에 더 강하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내가 보기엔 미군이 더 낫다.
당연한 거라 생각한다. 그들은 직업군인들이었으니까. 물론, 미군과 우리나라 부사관 사이의 전투력을 본다면 결코 밀리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병 출신의 한국 기사들이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군인이라면 미국이 좀 우세할지 몰라도 한국이 어떤 민족인가?
명실공히 게임의 민족이 아니던가. 이 게이트 사태 역시 게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레벨링과 스킬들의 조합 등등이 나오니 한국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양쪽이 어울리면서 인간 기사단은 더 강력하게 진화했다는 것이 모두의 생각이다.
오크는 지능이 올라가면서 좀 더 지능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바람의 일족과 물의 일족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힘을 키웠고, 엘프들은 뭐 원래 잘 싸우는 애들이었다.
거기에 원래는 세계수에 정신이 오염되어서 조금 수동적인 전투를 했었는데, 이제는 거기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자유로운 전투 스타일을 찾았다.
반대로 마계 사무라이들은 매우 비슷한 스타일의 전투를 구사한다. 마치 시간이 역행한 것 같은 모습도 그렇고, 그들의 기술과 장비도 그렇다.
일본인 마계였던 건지, 아니면 마계랑 참 궁합이 잘 맞는 곳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계 사무라이들의 숫자가 월등하게 많다는 것.
“저거 불안한데.”
선우의 말에 엘프 여왕이 말한다.
“걱정 마세요. 저들은 자신들의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어요.”
엘프 여왕이 말하며 가리킨 곳을 보니 그곳에는 쉬고 있는 기사단원들이 보인다. 그러니까 돌아가면서 숨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포션이라는 물건이 있으니 그것으로 회복을 하고 돌아가서 다시 싸운다. 거기에 렙 업을 하면서 점점 강력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제 문제는 우리들이다.
우리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마계 사무라이 무장들.
대충 봐도 중간 보스로 보이는 놈들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격을 나눠서 전투를 벌이게 하려는 수작인 것 같았다.
“가자!”
난 시호 수호대를 이끌고 전투를 시작했다.
* * *
꼬박 일주일.
우리가 미친 듯이 전투를 한 시간이다. 사실 특이하게 힘들거나 그런 부분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아마 이루지 않았을까 싶다.
레벨도 많이 올랐고, 싸우면서 스킬들도 많이 올랐지만, 정신적으로는 상당히 피곤했다.
그리고 그때 드디어 이토가 등장했다.
“어리석은 자들.”
뭔가 있어 보이려는 것인지 히키코모리 오타쿠 놈이 쓸데없이 폼을 잡는다.
참고로 저건 본체다.
마왕으로 변한 이토의 모습은 소설이나 만화에 나올 법한 마왕의 모습 그대로다. 웃긴 것은 그 와중에 얼굴은 이토의 얼굴인데 그 딱 봐도 오타쿠구나 싶은 얼굴을 하고 있다.
“여드름은 종족을 바꿔도 못 없애나 봐? 엄청 강력한걸?”
여드름이 풍성하다. 여드름이 많은 사람을 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쟤가 그렇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여드름이 많은 사람은 상당히 놀림을 받는 경우가 많다. 흔히 서양인들이나 동남아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 중에 한국은 하얗고 맑은 피부에 집착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마치 그것이 한국인들이 백인이 되려고 그런다는 식으로 개소리를 하는데, 원래 종족 자체가 한국인은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북유럽 몇몇 종족을 제외하면 웬만한 백인이라 부르는 종족들보다 하얀 피부.
그렇다고 한국인이 서양인이 되고 싶어 한다? 이건 진짜 개소리다. 그냥 한국인들은 하얗고 맑은 피부를 선호하는 것이다. 이건 삼국시대 벽화에도 나와 있다고 한다.
아무튼, 그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고, 여드름이 잔뜩 피어 있는 이토의 본체는 상당히 뭐랄까?
“역겨워.”
시연이의 말 그대로다. 심지어 마왕이다. 역겹지 않으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어리석도다.”
“개소리 그만하고 덤비던가.”
“네놈! 감히 내 말을 끊다니!”
“그럼 등신 같은 네놈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할 이유가 있냐? 그리고 감히? 야, 막말로 따져 볼까? 너 영지 얼마나 되냐? 기사단 무력은? 자원은? 뭐 하나 나보다 나은 게 있어? 어디서 감히라고 감히 떠들고 있어! 등신이.”
내 말에 이토는 부들부들 떨고 있다. 난 저놈을 잘 안다. 저놈은 이렇게 막다른 길에 몰리지 않았다면 절대로 앞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마치 흑막이 된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세상을 주무른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을 놈이다. 사실 저놈이 마왕이 되었다고 해서 나보다 강할까?
아닐 거라고 본다. 마왕으로 변하면서 얻은 것은 있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나 역시 무려 드래곤에게 마법을 전수받은 사람이다.
꿀릴 것이 없다. 능력치로 보면 쟤랑 나랑 레벨이 비슷해도 내가 월등할 거로 판단되고. 그러니 내가 굳이 저런 등신의 비위를 맞춰 줘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네놈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벌써 후회하고 있다니까?”
“큭큭큭, 나를 죽이면 끝이라고 생각하나? 나를 죽이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이 썩어 빠진 지구가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시작 말이다.”
“야, 궁금해서 그런데 하나 물어보자. 지구가 너한테 뭘 잘못했냐?”
진짜 궁금하다. 지구가 인간에게 잘못하는 것? 그건 뭐 굳이 따지자면 자연재해 정도일까? 그것 외에 지구가 인간에게 뭘 잘못할까? 사실 자연재해도 대부분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일어난다고도 하지 않는가? 물론 개발이 전혀 없던 옛날에도 빙하기도 있고, 대홍수도 있고 그랬으니 그게 꼭 맞는 말은 아니겠지만.
“그건…….”
대답을 못 한다. 저런 종자들은 저게 문제다. 지가 뭔 대단한 사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개소리를 하지만, 실제로 그런 건 없다. 자기 망상에 빠져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민폐 덩어리일 뿐이다.
그런 주제에 누구를 뭐라고 한단 말인가.
“됐다. 애초에 너한테 뭐 대단한 뭔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안 했어. 그런데 하나 더 묻자. 그래서 널 죽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
“그걸 말해줄 것 같으냐. 큭큭큭.”
“말하고 싶어서 환장한 얼굴인데? 그게 네가 퇴장하기 전에 우리한테 엿 먹일 제일 즐거운 방법 아냐?”
내 말에 이토가 움찔한다. 저시키 저거 지능이 모자란 놈 같다.
“그렇게 원한다면 얘기해 주지. 네놈이 연결된 세상은 멸망한 세상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건 좀 흥미가 생기는 얘기다.
“그런데?”
“나 마왕 이토와 연결된 곳은 멸망한 세계의 마계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부분이다. 멸망한 세상에 마왕이 등장했었다는 기록도 보았으니까. 그럼 그 마왕은 어디로 갔을까? 결국 세상이 멸망하면 걔들도 망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가정을 하면 어렵지 않게 일본의 마계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토가 연결된 곳은 멸망한 세계의 마계였던 것이다.
드래곤이 나에게 경고했던 악한 게이트라는 것이 저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큭큭큭. 이제 잘못 건드렸다는 것을 깨달았느냐?”
“뭔 개소리야? 그럼 너 같은 놈을 내버려 두냐?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냐? 마왕이 되더니 지능이 퇴보한 거냐?”
“웃어둬라. 난 이미 마계의 정수를 만들었고, 그것은 지구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결국 지구는 마계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크크크. 난 위대한 마계의 초석이 될 것이다. 하하하하.”
“내가 그 마계의 정수라는 것을 찾아서 정화시키면?”
“뭣?”
“그럼 지금까지 네가 한 짓은 등신짓이 되는 거 아냐? 아, 걱정하지 마. 넌 어차피 그건 못 볼 테니까.”
똥은 냄새를 남기고 사라진다. 마왕은 마계의 정수라는 것을 남기고 그렇게 산화하나 보다. 문제는 그게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것이지만, 난 그것을 찾는 게 왜 그런지 몰라도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된다. 그리고 마왕은 내가 손을 쓰기 전에.
냥! 파바바바바박! 파바바바바박!
호야한테 뒈지게 처맞기 시작한다. 호야가 짜증이 많이 난 것 같다. 그동안 여기에 갇혀서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받은 듯.
“가자.”
우리는 호야를 도와서 마왕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마왕 이토는 사실 커다란 샌드백에 가까웠다. 아마도 놈은 마계의 정수라는 것을 만들면서 대부분의 힘을 잃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려 마왕이나 되는 놈이 이렇게 처맞고 있을 리가 없다.
난 마왕의 죽빵을 날렸다. 뒈져가면서도 히죽히죽 웃는 게 영 마음에 안 들었다. 이놈은 끝내 그렇게 웃으면서 죽었다. 그리고 마왕 이토가 죽자 마왕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우리와 기사단을 막고 있던 결계가 사라졌다.
“일단 빠져나갑시다.”
내 말에 기사단들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왕성이 무너지는 것 자체로 우리에게 대미지를 주지는 못했다.
* * *
마왕성이 무너지면서 마계의 모습이 제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구와 화성을 합친 것 같은 모습이랄까?
쉽게 얘기해서 겁나 삭막한 분위기의 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마계의 주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계 사무라이들이 저들이 변한 것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아마 마계 사무라이들은 이토의 휘하에 있던 헌터들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저들은 이제 인간과 다른 그 무엇인가로 세상을 살아가게 될 거라는 점이다. 이 모든 게 이토라는 또라이 하나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점에서 저들은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뭔가를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마왕성이 사라지면서 마계와 연결되어 있던 게이트도 사라졌으니 저들을 마계에 보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미 이곳은 게이트가 터져서 마계화가 되어 버렸으니까.
내가 굳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세계수의 새싹을 심어서 이곳의 환경을 개선해 주는 정도다.
그리고 마계의 정수.
“제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엘프 여왕이 내가 말한다. 그것을 찾을 수 있다고.
그럼 난?
“찾아줘.”
찾아달라고 하면 된다. 이제 세상이 조금 더 괜찮아졌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는 남아 있을 거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