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5화
제165화 마계의 정수
애초에 게이트라는 것은 왜 생겼을까? 드래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세계의 멸망과 관련되어 있다고 했다.
세계의 멸망.
평범하게 반려동물 사료를 만들던 회사의 직장인으로 살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호야의 실종이라는 가슴이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호야를 찾아 미친 듯이 돌아다니다가 포기를 할 즈음 게이트가 찾아왔다. 거기에 게이트 안에서 호야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반려동물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호야는 내 가족이고, 온전히 내가 책임을 져야 할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스스로에게 화가 나고, 화가 났다.
뭐, 호야의 호기심 때문에 호야가 게이트로 사라졌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호야는 평범한 고양이로 게이트에 들어와서 세계관 최강자가 될 때까지 수십 년을 게이트 안에서 고생을 했을 것이다.
음, 물론 고생은 초반에만 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호야는 그 안에서 나 없이 수십 년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호야는 끝내 나를 기억했고, 나를 찾아왔다.
냐아앙?
호야가 뭘 꼬라보냐고 묻는다. 어쩌면 쟤는 그냥 나를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호야, 섬에 가자.”
냥!
좋단다. 호야는 재빨리 내 몸을 타고 올라와서 어깨에 자리 잡는다.
* * *
마왕성이 사라졌다. 그리고 일본 본섬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지금까지도 일본은 갈라파고스라 불리던 곳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 현상이 더욱 심각해졌다.
아예 종이 다르게 되었으니까.
인간이었다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었다. 거기에 세계에 마계화로 인해서 마계의 주민이 된 이들도 모두 일본으로 보내지는 조치가 취해졌다.
그것에 대해서 인권 문제가 대두되긴 했지만,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세계 정부들은 그것을 밀어붙이게 되었다.
사실 마계의 주민으로 변한 이들은 더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고, 오히려 그들끼리 모여 사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로 결국 그들은 차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질병이나 전염병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그들은 일본 본섬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그런 일본의 모습을 보고 천벌을 받은 거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워낙에 지금까지 일본에 당해 온 것이 많았으니 심정적으로 그러는 것도 이해는 간다.
물론, 일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규슈는 멀쩡했고, 홋카이도도 멀쩡하다.
문제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부가 사라진 것.
결국 규슈와 홋카이도는 각각 독립을 선언했고, 세계는 이것을 받아들였다. 사실상 양쪽이 모두 내 영지에 속한 곳들이었기에 난 그들의 독립을 지지했다.
예전에 성경에 그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 것으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라는 이야기.
나도 같은 생각이다. 게이트를 비롯한 영지의 일은 영지의 일로, 지구의 일은 지구의 일로 구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의 독립을 지지하기만 하고 딱히 뭘 하지는 않았다.
“마계의 정수라는 것을 찾는데 전 세계가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정기훈의 말에 난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난 그게 진짜 있기나 할까 싶기도 했다. 워낙에 이토 놈이 방구석 폐인인 놈이라 죽는 순간에 개소리를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사실 마계의 정수라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꼭 내가 찾아서 뭘 해야 되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든다.
“별다른 일 없으면 전 섬에 있겠습니다.”
“네, 대군주님.”
난 호야를 데리고 섬으로 향했다.
* * *
현재 섬은 조금 분리가 되어 있는 상태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은 헤르티안 왕성이 있던 곳과 그 주변이다.
섬에서 연결되어 있는 농장들은 점점 섬에서 멀어지면서 왕성 쪽으로 이동했다. 그 후에 확장은 그쪽으로 이루어졌고, 언젠가부터 섬은 맨 처음의 모습을 이어 가는 방향으로 보존되었다랄까?
게이트의 위치도 왕성 쪽으로 바뀌었다. 원래는 이동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되더라는 얘기.
그래서 아예 연결 게이트들을 모두 한곳에 모아 놨다. 그게 여러모로 편하니까.
덕분에 섬은 맨 처음 내가 맨몸으로 들어왔을 때와 비슷한 환경이 되어 있다. 대수림 입구는 물론 그대로 있다.
“호야, 우리 통나무집에서 좀 쉴까?”
냐앙.
좋다고 한다. 그래서 난 호야를 안고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제일 처음 만들었던 조금은 허술한 그 통나무집.
호야는 통나무집 안에 들어오자 자기 냄새를 여기저기에 묻히고 다니기 시작한다. 참고로 스프레이, 그러니까 쉬를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머리 쪽에 있는 고양이의 기관을 통해서 여기저기에 문지르면서 냄새를 묻히는 것이다.
“호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간식 줄까?”
호야는 열심히 냄새를 묻힌 후에는 그냥 발라당 누워서는 배를 까고 삐딱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뭔가를 원하는 눈빛이다. 그래서 장난감을 살살 흔들어 주니 잽싸게 장난감을 향해 몸을 날린다.
역시 고양이는 고양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호야가 난 기꺼웠다. 사람처럼 의사를 전달하고, 여러 가지 현자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역시 난 호야가 고양이일 때가 제일 좋다.
그렇게 한참 호야를 쳐다보는데 갑자기 관찰 알림이 떴다.
-관찰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호야(999레벨)]
반려인: 최시우.
힘: 999, 민첩: 999, 지능: 999, 정신: 999, 체력: 999, 후각: 999.
스킬: 귀여움(패시브) MAX, 도약(액티브) 9레벨, 할퀴기(액티브) 10레벨, 냥냥펀치(액티브) MAX, 고양이의 왕(패시브) MAX, 강타(액티브) 1레벨…….
호야의 레벨이 보였다. 그리고 능력치……. 거기에 스킬은 아예 뒤에 다 설명하기도 힘들다. 수많은 스킬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 호야의 상태창을 보며 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우리 호야 먹고 싶은 거 뭐라고?”
개기면 골로 간다.
* * *
며칠 동안 난 섬에서 호야와 아무 생각 없이 휴식을 취했다. 그 사이에 아무도 날 찾아오지 않았다.
웬만한 일이라면 정기훈이 알아서 처리를 할 거라는 믿음도 있었고, 겨우 몇 개월 만에 인생이 싹 바뀌어 버린 내 삶에 지친 것도 있었다.
가끔 티거가 찾아와서 지구의 TV 프로그램들을 녹화한 것을 보여 주기도 했다. 여기에서 밖으로 인터넷만 된다면 참 좋을 텐데 아쉽다. 그건 티거의 기술로도 해결이 안 되는 것 같다.
지구는 평온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은근 마계의 주민들 때문에 여러 가지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것 같다.
과격주의자들은 아예 일본 본섬에 있는 마계 주민들을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이 언제 다시 공격성을 보일지 모른다는 것이 이유.
실제로 마계 주민들의 정신 오염으로 인해 그들의 공격을 받고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이들은 그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을 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보기엔 좀 웃기는 일이긴 하다. 한국인이 살인을 저질렀다. 그러니까 모든 한국인들을 살인자처럼 대하고 죽여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실제로 일본 본섬에 있는 마계 주민들은 거기에서 벗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
이상한 소리이지 않은가.
티거가 가지고 온 다른 뉴스들도 살펴보았다. 그중에 신소재의 개발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쓰레기 처리방식에 대한 것들도 있다.
웃기는 것은 새로운 종교가 생겼는데 그게 지구교란다. 지구교는 지구를 살리자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어서 지구가 게이트를 불러왔고,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매우 정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부분이 문제다.
말은 뭐라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뭐든 한다는 주장.
즉, 자연보호를 위해서 자연을 해치는 인간들을 살상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고, 자연을 파괴하는 주범인 화력발전소들을 파괴해야 한다는 주장.
참고로 원자력 발전소도 지금은 가동이 안 된다.
그리고 공장들도 그들의 테러 범위에 들어간다.
“그러면 그냥 인간을 멸종시키는 게 제일 낫지 않나?”
냐앙.
호야가 발라당 누워 있다가 뭔 개소리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티거가 다시 정보를 수집하러 돌아간 후에 난 호야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눈을 마주하고 호야에게 물었다.
“호야, 넌 앞으로 뭘 하고 싶어?”
호야는 빤히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내 말에 1도 관심이 없다는 듯이 자기 앞발을 그루밍하기 시작한다.
“뭘 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없구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고양이 호야는 생존에 성공했고, 반려인인 나도 찾았고, 성공적으로 나를 보호했다. 호야가 보기에 이제는 웬만해서 내가 어디 가서 객사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도 이해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즉, 현시점에서 호야는 할 일이 없다는 말씀. 그리고 나 역시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빈둥거리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건 내 꿈과 같은 일이다.
티거를 시켜서 읽고 싶었던 판타지, 무협 소설을 잔뜩 가지고 오게 해서 누워서 책을 본다. 원래 활자 중독인 나는 책을 보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호야의 배를 살살 문지른다. 호야는 뭔가 짜증을 내는 것 같으면서도 잘 받아 준다. 그리고는 내 팔을 핥는다. 까끌까끌한 느낌이 들지만 괜찮다.
다시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때다. 정기훈이 찾아왔다.
“마계의 정수를 찾았습니다.”
“그걸 그렇게 막 쉽게 찾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네?”
“아니, 이토 놈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뒈지면서 처웃었던 일인데 그게 그렇게 쉽게 찾아지나 싶어서요.”
“그게…….”
“네.”
“쉽게 찾은 것은 맞지만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쉬울지, 아닐지 잘 모르겠습니다.”
언뜻 이해가 안 갔다.
“무슨 얘기죠?”
“마계의 근원이 발견된 곳은 이집트입니다.”
“이집트요? 설마 마계의 정수가 피라미드 안에 있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죠?”
“맞습니다.”
“하아. 그래서 어떤 피라미드입니까?”
“기자의 피라미드 내부라고 합니다.”
“그거 확실한 겁니까?”
“네, 확실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확신하죠?”
“일단 관찰 스킬을 가진 군주가 확인했고, 그곳에서 언데드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관찰 스킬을 가진 군주가 확인을 했다면 확실할 것이다. 거기에 그곳에서 언데드가 만들어지고 있단다.
피라미드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중 하나.
“혹시 미라요?”
“네, 미라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미라가 가장 많습니다. 그것들이 주변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그래서 내가 거기를 가야 되나? 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