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제167화 협상
미라 부대는 강력했다. 파라오라고 불리는 상급 마족들의 활약이 매우 인상 깊었다. 그들은 ‘그어어어’거리는 미라를 훌륭한 군대로 만들 만큼 능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저것들은 원래 인간인 건가, 아니면 처음부터 마족인 건가?”
문득 그게 궁금했다. 마왕 파라오는 원래 게이트 주인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 상급 마족 파라오들도 게이트 주인이었을 가능성이나, 마왕 파라오 게이트의 헌터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집트라는 곳이 원래 군사력이 강한 나라였나?
솔직히 이집트라고 하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외에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아마 저들도 한국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 나라의 이미지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겠는가. 요즘이야 K팝이니 K드라마니 하는 것들이 인기를 끌어서 문화 강국이라고 알고 있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겠지만, 사실 웬만해서 한국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북한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워낙에 북한이 임팩트가 강했으니까. 핵으로 미국이랑 맞짱을 뜨는 미친놈들이지 않은가. 물론, 그 핵을 진짜 사용했다가는 지들이 어떻게 될지 잘 알았을 테니 끝내 사용하지 않은 것일 테지만.
아무튼, 이미지라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난 이집트에 대해서 엄청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집트를 공부할 생각은 당연히 없다.
그냥 저 사태가 참 개판이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티거, 이거 누가 나한테 보여 주라고 한 거야?”
[아닙니다. 정보를 주인님께 제공할 뿐입니다.]
티거가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가? 이 부분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긴 하겠지만, 딱히 중요한 부분은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야, 마계의 정수라는 것을 제거하면 우리 세상에 평화가 올까?”
세계의 평화.
그게 가능할 수 있나? 솔직히 난 불가능하다고 본다. 세계는 한 번도 평화로웠던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우리 동네가 평화롭다고 세계가 평화로운 것은 아닐 테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테러가 벌어지는 것이 세상이지 않은가.
특히나 인간이라는 종족은 유일하게 욕심 때문에 같은 종족을 공격하고 죽일 수 있는 종족이지 않을까?
그런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이상 사실 세계 평화는 공허한 이야기일 것이다.
냐앙.
호야도 앞발로 입을 가리고 비웃는다. 그럴만하다. 호야는 똑똑한 고양이니까.
“그래서, 너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냥!
당연하단다.
“하긴 내가 세계의 수호자도 아니고, 세계 평화는 개뿔.”
난 그대로 통나무집 내부에 있는 침대에 발라당 누워 버렸다. 우리 호야는 그런 내 옆으로 와서는 내 옆구리에 꾹꾹이를 하기 시작한다.
“평화가 별거냐? 이게 평화지.”
골골골골.
호야의 골골송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긴다.
* * *
기자는 미라의 세상이 되었다. 쓰러진 헌터들을 미라로 부활시켜서 부대를 늘려 가고 있는 상급 마족 파라오들의 활약은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고 있었다.
심지어 헌터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스킬까지 사용하는 미라들이다.
원래 미라들보다 레벨은 낮을지 몰라도 전투력은 오히려 상회하고 있었다.
그냥 미라들은 강력한 방어력과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물리 기반의 능력들이다. 하지만 죽어서 미라가 된 헌터 미라들은 달랐다. 마법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스킬들을 쏟아 내니까.
그런 상황에서 이집트 헌터들과 유럽 연합의 헌터들은 쉽사리 전투를 시작할 수 없었다.
“최시우 대군주에게 요청을 보냈습니까?”
현재 연합 헌터의 수장을 맡고 있는 미하엘의 말에 참모 역할을 맡고 있는 헌터가 말한다.
“요청은 보냈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캘리포니아 드레이크 사태도 관여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거기는 최시우 대군주의 영토가 되었죠.”
“즉, 우리는 그에게 줄 것을 제시하기 힘들다? 인류애 같은 것에 호소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까?”
“호소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인류를 위해서 많은 것을 해 왔던 사람입니다. 그가 거부를 한다고 해도 그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건…… 그렇겠죠.”
미하엘도 잘 알고 있었다. 최시우는 이미 인류를 위해서 많은 것을 해 주었다. 최근에 벌어진 마계화만 해도 그게 제공해 준 세계수의 새싹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을지 상상도 하기 어려우니까.
“최시우 대군주의 직접적인 참전이 아니라고 해도 그의 기사단은 최대한 지원받아야 합니다.”
미하엘의 말에 참모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시점에서 최강의 전투부대는 최시우 대군주의 기사단들이니까.
“특히 물의 기사단과 바람의 기사단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그들은 신성력 관련된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언데드인 미라를 상대하기에 최적인 이들입니다. 물론 다른 기사단도 전투력 자체가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요.”
“문제는 그들을 어떻게 끌어들이냐는 거겠군요.”
“네, 최근에 일본의 마왕성 전투로 인해서 그들의 피로도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하엘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미국의 지원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미국에서는 자국 최고 레벨의 헌터들을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아마 지금쯤 이동을 시작했을 겁니다.”
“인원은요?”
“3만여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에서 오는 3만의 헌터들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러시아는 참전할 의사가 없다고 합니까?”
“네, 러시아는 내부 사정 자체가 복잡해서 우리가 어디와 협상을 해야 할지도 현재는 애매한 상황입니다.”
러시아는 내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 그렇기에 그들의 지원은 바라기 어려울 것 같았다.
“중국은요?”
“뭐, 그들이야 늘…….”
더 이상 설명은 불필요했다. 그냥 중국이 중국했다는 이야기로 끝나는 부분이니까.
“결국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최시우 대군주의 세력뿐이라는 거군요?”
“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시우 대군주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사절단을 꾸려 주세요.”
“네.”
미하엘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한 사람의 결단에 유럽의 평화가 달렸다는 이 상황이.
* * *
기자 지구는 현재 미라의 세상이 되었고, 미라들은 카이로로 진격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현재 사절단이 대군주님을 찾아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저쪽에서 먼저 정중하게 요청을 해 왔습니다.”
미리 요청을 하고 파견을 했다. 즉, 내가 그 요청을 거부하면 사절단은 그냥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
“뭐, 사절단이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달고 오는데 만나는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도 그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들이 최대한 요청할 부분은 아마 물의 기사단과 바람의 기사단의 파견일 것으로 보입니다.”
물의 기사단은 최근 물의 정령술을 발전시키면서 물의 정화 능력이 신성력과 비슷한 힘을 발휘하면서 언데드를 상대할 때에 매우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마왕성에서 여러 전투를 치르면서 장착하게 된 무기라고 보면 된다.
바람의 기사단은 성녀 헬레나의 영향으로 신성력 자체를 사용할 수 있는 기사단으로 탈바꿈되었다. 원래 신녀의 신분이었던 헬레나는 마왕성을 공략한 후에 성녀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시스템이 주는 칭호이기에 말로만 성녀가 아니라 실제로 헬레나는 대성역의 신성력을 자신의 몸에 저장했다가 발산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단점이라면 대성역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내가 해결을 해 주었다.
그녀에게 휴대용 포털을 만들어 주어서 해결한 것이다. 일회용이지만, 그것을 사용한 후에 대성역에서 충전을 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에 사실상 무한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점은 그녀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정도.
“상대가 언데드라 그런 것이겠죠?”
“네.”
“그래서 개발하고 있는 무기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우리는 미라 사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그냥 구경만 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연구소에 그들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해 달라고 했고, 세계수 공략 때 사용했던 마나 폭탄을 개량해서 신성력 폭탄을 개발하고 있었다.
대성역에서 만들어지는 성수를 잔뜩 담고 있는 폭탄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 폭탄은 두 종류로 개발되고 있는데 하나는 화약을 사용하는 것이고, 하나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실제 지구에서는 아직 화약은 충분히 유용한 도구이기에 화약을 사용하는 버전을 만든 것이고, 내부에서 싸우게 된다면 화약이 먹통이 될 것이기에 그것을 대비해서 마법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폭탄들의 효용은 대성역의 성수를 넓게 퍼트리는 것이고, 그것으로 언데드를 잡을 수는 없지만, 언데드를 약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개발은 끝낸 상태입니다. 몇몇 언데드들을 상대로 실험도 끝냈습니다.”
“효과는 어떻습니까?”
“상당히 괜찮습니다. 우리가 만족할 만한 상태입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사절단이 도착하면 바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네.”
난 호야와 놀면서 사절단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어서 사절단이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 *
“안녕하세요, 유럽 연합의 대표로 사절단을 맡고 있는 크리스티나입니다.”
“전 이집트 대표로 사절단에 참가한 야스민입니다.”
공교롭게도 사절단을 대표하는 두 사람이 모두 여성이다. 그것도 한 명은 유럽의 미녀이고, 한 명은 이집트의 미녀.
나에게 무슨 미인계라도 사용하려는 걸까? 미녀라면 엘프들만 봐도 충분히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내 우려와는 달리 두 미녀는 딱히 그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실질적으로 헌터 레벨도 둘 다 500레벨에 달하는 고레벨 헌터였다.
그러니 오해를 하기도 애매했다.
“반갑습니다. 최시우입니다.”
“일단 이집트의 상황이…….”
“알고 있습니다. 거의 실시간으로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크리스티나는 원래 똑부러지는 성격인지 매끄럽게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저희는 최우선적으로 최시우 대군주님의 참전을 원합니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하는 야스민. 그런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난 똑바로 대답했다.
“불가합니다.”
“하지만.”
“더 이야기를 하신다면 전 여기에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에 야스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저를 대군주라고 불렀습니다.”
“네.”
“대군주가 함부로 원정을 나간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 아니겠습니까? 전 우리 영지가 최우선이고, 당연히 우리 영지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여야합니다. 하지만 이집트는 제 영지가 아니죠.”
원론적인 이야기. 하지만 원론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반박하기도 힘들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부분은 우리가 무례했습니다. 대신 기사단 파견을 요청합니다.”
두 사람은 원래 목적대로 기사단 파견을 요청했다. 그래서 난 레라와 헬레나를 불러오게 했다.
이제부터 협상은 저들이 알아서 할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