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169화 (169/182)

제169화

제169화 내일이 없는 놈

엄청난 숫자의 상급 마족 파라오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우리 영지에서 가지고 간 성수가 충분했다는 것.

기자 피라미드의 미라들의 특징은 파라오라는 존재들이 그들을 조종한다는 점이다.

미라 그 자체도 강력하긴 했지만, 두뇌가 없는 미라는 성가신 존재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미라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상급 마족 파라오들이다.

관찰로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의 정체성이 상급 마족이기도 하고, 파라오이기도 하다는 것을.

물론 원래 파라오처럼 이집트의 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직책이 아닐까 싶다.

우리 대성역의 성수 폭탄으로 상급 마족 파라오들의 전투력을 다운시킨 상태로 헌터 부대들은 집요하게 상급 마족 파라오들을 노렸다.

그렇게 몇몇 상급 마족 파라오들이 쓰러지자, 미라들의 행동이 굼뜨기 시작한다. 마치 더듬이가 잘린 곤충의 모습이랄까?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결국 헌터 연합의 승리를 불러왔다.

“와아아아아아!”

아직 본대와 본대가 맞붙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기사단들이 합류를 한 시점에서 첫 번째 전투를 승리로 장식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헬레나와 레라는 그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왔다. 그녀들은 특별하다. 일단 인간이 아니라는 부분부터 그렇다. 그럼에도 인간의 편에서 인간을 도와서 전투를 치른다.

엄밀히 말하면 내 명령을 듣는 것이지만 저들의 입장에서는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티거가 보여 주는 화면에 두 여인이 화사하게 웃는 모습이 포착된다. 그리고 인터넷은 아주 난리가 났다.

그녀들의 힘도 힘이지만, 외모가 더욱 크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물론 저기에 엘프 여왕이 나선다면 더 대단할지도 모른다.

“이참에 엔터 회사라도 차려야 되나? 큭.”

난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웃었다. 어찌 되었건 기자 전투는 앞으로 무조건 당하기만 하는 전투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울러 굳이 내가 거기에 참전을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무척이나 기꺼웠다.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해도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면 안 된다. 물론, 내가 그럴 능력이 있냐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의문이긴 하지만, 최소한 다른 이들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무엇보다 내 곁에는 무적의 호야 님이 계시니까.

냐아아앙.

그 호야가 지금은 매우 지쳐 보인다. 아깽이들을 캣초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럼 왜 캣초딩이라고 부를까? 단지 어려서? 물론 그런 이유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활동량이다.

성인 남자를 기준으로 20대에 가장 왕성한 활동량을 보일 것 같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막강한 활동량을 가진 것은 초딩들이다. 걔들이랑 어울리면 20대 초반의 왕성한 체력을 가지고 있어도 지쳐 쓰러진다.

초딩들은 지치지 않는다. 물론 지칠 때도 있지만 잠깐 쉬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그런다.

왜 초딩들이 세상을 구하는 만화나 애니가 많겠는가. 걔들만큼 미친 듯이 돌아다닐 애들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무튼, 현재 우리 집에는 캣초딩이 세 마리나 있다. 사실 호야의 나이는 사람으로 치면 이미 100세를 넘어선 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양이의 특성상 강아지들과 다르게 늙어도 딱히 티가 나지 않는다. 볼이 살짝 홀쭉해지는 것 외에는 고양이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병으로 인한 경우가 아니라면 모습이 변하지 않는다.

물론, 호야는 그런 노화 정도는 이미 충분히 다 씹어 먹을 능력치를 가지고 있어서 노화와 상관이 없겠지만 정신적 피로는 아마 호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호야도 아깽이 시절에는 미친 듯한 활동량을 보였다. 아마 자기도 저랬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할 것이다.

지금 호야는 육아에 지친 아버지의 모습이다. 딸들의 미친 듯한 활동량에 질려 버린 아버지의 모습.

호야의 어깨가 유독 처진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또 귀엽다. 그래서 난 멍하니 호야가 아깽이들을 돌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냥!

호야는 하다 하다 질렸는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낸다. 잠깐이라도 쉴 테니까 애들이랑 좀 놀아 주라는 거다.

그런 호야의 눈빛에 난 다시 낚싯대를 꺼내 들었다.

드워프들에게 부탁해서 미스릴로 만든 개튼튼한 낚싯대다. 우리 캣초딩들을 데리고 호야가 뭘 하는지 한 번씩 대수림을 다녀오는데 그럴 때마다 애들 레벨이 쑥쑥 오른다. 저거 그냥 낚싯대로는 절대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준비한 거다.

“자, 덤벼라!”

난 낚싯대를 마법으로 띄워 올린 후에 그것으로 미친 듯이 아깽이들과 놀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후우. 인생…….”

난 뻗었다. 마왕과 싸울 때도 이렇게 지치진 않았다. 근데 캣초딩들과의 전투는 지치게 만든다. 그리고 내 옆에 호야가 발라당 누워 있다.

우린 졌다.

캣초딩들은 너무 막강한 상대였으니까. 그래도 지금은 캣초딩들이 잠이 들어서 잠깐 짬을 내서 이렇게 쉴 수 있는 거다.

냐앙.

호야가 잠꼬대를 한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고양이도 잠꼬대를 한다. 잠꼬대로 뭘 먹는 소리를 내기도 하고 별별 신기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지금 호야의 소리는 뭔가 신음 소리 같다.

이해가 간다.

우리는 그렇게 평화로운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아무래도 애들한테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 슬립 마법이라도 연구를 해 봐야 할 것 같다.

* * *

마왕 파라오.

마계의 정수를 간직한 그는 현재 사태가 상당히 즐거웠다.

그는 이집트의 특별할 것 없는 게이트의 주인이었다. 다만 다른 점은 자신의 게이트가 연결된 곳이 다른 게이트가 연결된 곳과 다르다는 정도?

물론, 게이트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부터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마왕 파라오인 살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 더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토를 만났다. 그는 마계와 연결된 게이트를 가진 이들 중에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진 이였다.

하지만 운이 없었다. 하필 그 위에 최강의 군주라고 할 수 있는 대군주 최시우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살라는 더욱 숨어들었다. 더욱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갔다. 이토는 자신에게 합류를 종용했지만, 살라는 참고, 참았다.

결국 살라는 이토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토가 쓰러지기 전 그는 살라를 찾아와서 마계의 정수라는 것을 맡겼다. 그러면서 그가 남긴 말.

“세상을 뒤집어 주면 좋겠군.”

이토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살라는 애초에 정의감이라는 것도 없었고, 세상이 어떻게 되건 별로 신경도 쓰기 싫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도 않았다.

결국 최시우가 나서게 되면 자신은 끝일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준비하고, 준비했다. 그러다가 피라미드와 연결이 되었다.

이집트 출신의 살라에게 피라미드는 매우 매력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피라미드를 점령했을 때 시스템은 그에게 ‘마왕 파라오’라는 직책을 허용했다.

마왕 파라오의 능력으로 미라를 만들었고, 상급 마족 파라오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정확히는 원래 헌터였던 이들을 상급 마족 파라오로 변신을 시킨 것이다.

그 후에는 기자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자신의 마계를 구성했다.

마계 자체를 확장시키지는 않았다. 기자 피라미드만 해도 충분히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으니까. 사실 지구를 마계로 바꾼다?

웃기는 짓이다. 이토가 실패한 것은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준비하고 준비해서 기자 한 곳만 먹고 말 생각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유럽 연합이 참전을 했고, 어쩌다 보니 전투의 스케일이 커졌다.

“큭큭큭큭.”

하지만 살라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어쩌다 태어나서 사는 세상 한바탕 세상을 뒤집고 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사실 이런 그의 생각은 오히려 최시우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애초에 분명한 목적이 없는 적이니까.

* * *

“그래서 전투는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정기훈의 보고를 받고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놈은 뭘 원한답니까?”

“저희 연구팀의 분석으로는.”

“네.”

“없습니다.”

“네?”

“놈은 딱히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세상을 뒤집어 버리고 죽어도 그만인 놈이랄까요?”

“내일이 없는 놈이라는 얘기네요?”

“맞습니다. 저희의 분석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골치가 아프겠군요.”

“네. 내일이 없이 언제 죽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놈을 상대하는 것은 사실 제일 짜증 나는 일이죠.”

맞는 말이다. 놈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예를 들어서 세계 정복이라든가 그런 것 말이다. 이토는 그런 놈이었다. 세계를 마계로 바꾸고 싶어 했던 놈이니까.

그래서 이토는 실패했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그래서 마왕 파라오는 오히려 위협이 된다.

“그래도 웬만하면 전 참전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대군주의 발걸음은 무거워야 한다고 봅니다.”

“이토 때는 움직였습니다만?”

“그거야 우리와 영지가 겹치는 부분들이 있으니 철저하게 짓밟을 필요가 있었죠.”

맞는 말이다. 이토가 일본인이라서 공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난 별 상관없었다.

일본을 싫어하냐고?

솔직히 싫어한다. 그렇다고 싫으니까 죽여 버린다? 그건 사이코패스나 할 짓이지 않은가.

난 그냥 싫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토를 공격한 이유? 간단하다. 이토가 우리 영지에 피해를 입히니까.

난 대군주다.

대군주로서 내 영지를 지켜야 하는 분명한 의무가 있다. 당연히 우리 영지에 피해를 주니 이토는 정벌해야 할 대상이었다. 물론 그게 일본인이라서 더 편했던 것은 맞는 말이지만.

“뭐 우리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놈이 고꾸라질 때까지.”

“네, 하지만 놈은 언데드인 미라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게 계속될지는 모릅니다. 아무리 언데드라도 최소한 시체는 있어야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나도 같은 생각이다.

“성수나 계속해서 공급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놈이 우리 영지에 위협이 될 상황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놈의 목적이 우리가 아니니까요.”

우리를 노리지 않으니 딱히 우리가 위협을 느낄 이유도 없다. 그래서 난 그냥 지원을 해 주는 선에서 그냥 끝내기로 했다.

언제까지 놈들이 난리를 칠지 모르겠지만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니까.

“파견 나간 기사단들은요?”

“UN에서 우리 이종족 영지민들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이종족들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이고, 그들의 시민권은 각국의 정상에게 공을 돌렸습니다.”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다행이군요.”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우리 영지민이다. 그가 반대를 할 리가 없고, 국회의원들도 반대를 하지 않는다. 굳이 나와 싸울 생각은 없을 테니까.

두 기사단을 파견하면서 내민 조건이 바로 저거다. 세계적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 이번 전투로 인해서 우리 이종족들은 자연스럽게 지구의 일원이 된 것이다.

그것으로 일단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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