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제170화 공존과 군림
마족 파라오는 계속해서 기자를 괴롭혔다. 처음과 다른 점이라면 놈은 그곳을 벗어날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것.
그리고 그런 대치와 지루한 국지전이 지속되자 이집트 정부는 결단을 내렸다.
[기자를 포기합니다.]
기자를 포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자 의외로 마왕 파라오도 인터뷰에 나섰다.
[이집트의 성의를 잘 보았다. 이집트가 기자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기자를 벗어날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마왕 이토처럼 딱히 기자를 마계로 바꿀 생각은 없다. 안타깝지만 피라미드는 이미 마계화된 상태다. 우리는 피라미드만으로 충분하다. 난 마왕이지만, 딱히 지구 정복에 관심이 없다. 이 부분을 최시우에게 꼭 전해 주기 바란다.]
잘 나가다가 갑자기 내가 언급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마왕 파라오의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저 말은 그러니까 이런 뜻이라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벗어날 생각 없으니까 제발 나 잡겠다고 여기까지 오지 마!’라는 의미.
애초에 난 굳이 기자까지 갈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 놈의 이야기는 상당히 허무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마계를 그냥 두실 생각이십니까?”
정기훈이 묻는다. 난 그의 질문에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마계 자체가 나쁠까요?”
“네?”
“마계라는 것이 보통 우리에게 악의 상징으로 보이긴 하지만, 멸망한 세계에도 존재했던 마계입니다. 천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간계로 분류될 수 있는 인간들이 주로 사는 세상과 마계, 그리고 천계. 아 참고로 그쪽 세계 도서관에도 천계에 대한 언급은 없던 것으로 봐서 아마 거기에도 천계는 없는 것 같지만요.”
“그런데요?”
“마계라는 것은 결국 중간계가 멸망할 때 같이 멸망을 했다는 점이 포인트죠. 기왕 전쟁을 하고, 전쟁을 준비한다면 같은 인간들끼리 싸우는 것보다는 저렇게 대놓고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애들이랑 전쟁을 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이토는…….”
“말씀드렸듯이 이토는 우리를 먼저 건드렸죠. 그리고 놈은 마계를 지구 곳곳에 퍼트릴 생각이었고 말이죠. 하지만 저 마왕 파라오는 그럴 생각 자체가 없어 보인다는 거죠. 기훈 씨가 분석한 대로 별생각이 없어 보이거든요.”
세계 정복이 목적인 놈이라면 그런 놈은 귀찮더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쟤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무엇보다 알아서 기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일단 저희는 지켜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인간은 힘을 가지면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고, 그것으로 이익을 얻고 싶어 하겠죠?”
“이번 유럽 연합이 이미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몰래, 레라 님과 헬레나 님에게 접촉을 하려고 했다는군요.”
보통 판타지 소설을 보면 마계의 침략이나 여타 다른 악한 것들과의 전쟁을 벌이는 내용을 보자면 말이다. 결국 이러저러해서 어렵게 승리를 따냈다. 거기에서 보통은 이야기가 끝난다.
하지만 그 자체가 배경인 소설들을 보자.
예를 들자면 500년 전 신마전쟁이 벌어진 후 세워진 제국이라는 식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이야기는 결국 제국이 횡포를 부려서 주변국을 탄압했다거나, 다른 왕국들이 힘을 합쳐서 제국을 쓰러트리고 전국시대가 열린다는 식의 이야기가 매우 흔하다.
그렇다면 그게 단지 작가의 상상력 때문에 만들어진 이야기일까?
아니라고 본다. 단지 작가의 상상력이라면 그 이야기들이 많을 리가 없을 테니까. 다들 그럴 만하다고 공감을 했기에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양산되는 것 아니겠는가.
즉, 게이트 사태와 마계 사태가 진정이 된다면 그 후에는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현재 세계의 최강국은 누가 뭐라고 해도 미국이다. 미국이 최강국인 이유는 간단하다. 걔들의 군사력이 가장 강력하니까.
문제는 원자력이 무력화되면서 그들의 힘이 많이 빠졌다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최강국은 미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 경험을 가진 군인들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며, 경제력으로도 세계 최강이니까.
그런데 이 헌터라는 것의 존재 때문에 과연 지금도 미국이 최강국인가 하는 의문이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캘리포니아에서 벌어진 드레이크 사태를 해결한 것은 나와 우리 기사단이었다.
그리고 이번 기자 피라미드 사태의 결정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도 우리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나를 미국과 동일선상, 혹은 그 위로 둘 수도 있다. 사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나와 우리 영지의 힘이 미국을 제압하려고 마음먹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세계관 최강자 호야 님이 계시니까.
냐아아아아.
물론, 현재는 육아에 매우 지친 아버지냥의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헌터판이 과격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보시는군요.”
“그렇죠. 거기에 헌터가 판타지 소설처럼 각성하는 사람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결국 각국은 국인들을 군주들의 영지에 넣고 헌터를 양성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기에서 함정은.”
“국가가 군주를 통솔할 수 있느냐이겠군요.”
“네, 실제로 우리만 해도 대한민국이 우리를 어떻게 하려는 생각은 못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을 생각했었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대군주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뭐가요?”
“앞으로 우리 영지는 어떤 스탠스를 보일 생각이신지.”
“일단 우리 스탠스는 군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림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보자면 왕이 나라를 거느려 다스린다는 뜻과 어떤 분야에서 절대적인 세력을 가지고 남을 압도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있다.
물론 내가 말하는 군림을 후자의 의미를 말한다.
“좋군요.”
정기훈은 내 이야기를 바로 알아들었다. 내가 원하는 군림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막말로 우리가 개판을 치겠다고 마음먹으면 세상은 그대로 뒤집어질 것이다.
그게 행복할까?
내가 그런 것을 원한 적이 있을까?
그렇다고 내가 세계 평화를 강제할 수는 없다. 최소한 군림을 하면서 노릴 수 있는 것은 이런 메시지다.
‘적당히 해라. 아니면 우리가 나선다!’라는 메시지.
실제로 우리가 나서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가급적이면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한다.
“한두 번은 충돌이 생길 것입니다.”
“한 번.”
“네?”
“그런 일이 생겼을 때 딱 한 번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도록 하죠. 그럼 두 번은 안 생기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정기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해도 아마 이것이 최선일 것이다.
“일단은 지켜보도록 하죠.”
“네, 그런데 대군주님.”
“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 많이 달라지신 것 아십니까?”
“글쎄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내가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면 결국은 변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물론입니다. 그래서 더 존경스럽습니다. 솔직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게이트 주인이 되고, 영주가 되었다가 대성역의 주인이 되고, 대군주가 되기까지. 보통 사람이라면 아마 스트레스 때문에 미쳐 버렸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전 재벌가에서 태어나서 재벌가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을 기훈 씨가 더 미치지 않은 게 용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하하, 그것도 그러네요.”
심지어 정기훈의 가문은 엄격하기로 유명한 곳이니까.
“그럼 전 이만.”
“네.”
정기훈은 미소를 지으면서 돌아선다. 아마 안경만 쓰고 있다면 애니에 자주 등장하는 안경 캐릭터가 딱이지 않을까 싶다.
* * *
섬에서 난 여전히 호야와 놀고 있었다. 물론, 아깽이들도 같이. 그나마 이제 아깽이들이 사냥놀이가 아니라 직접 사냥을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인지 호야가 고블린 로드를 불러와서는 사냥감을 잡아와서 섬 곳곳에 풀어놓게 했다.
랙돌의 이름은 인(형)이, 터앙의 이름은 설이, 노르웨이 숲 고양이의 이름은 숲이로 지었다. 이름이 개판이라고? 어쩔! 내 마음이다.
이제 아깽이 삼총사는 사냥을 하는데 각각 레벨이 20을 찍고 있다. 아깽이 주제에 말이다. 호야가 그간 어떻게 애들을 교육시킨 것인지 궁금해지는 점이다.
물론 엄청 좋은 것들만 먹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마 일반인이라면 쟤들한테 걸리면 사망이라고 본다.
세 마리의 숙련 도우미는 고블린 로드. 이런 일에 로드가 직접 오냐고 묻고 싶은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호야와 내가 깊을 관심을 보이는 일이다. 고블린 로드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뒈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
눈치에 능력치를 몰빵한 것 같은 놈이라 그런지 놈은 능숙하게 사냥감을 몰아주고, 아깽이 삼총사는 그것을 사냥하며 시간을 보낸다.
드디어 어느 정도 호야와 나는 육아에서 해방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쉬려고 하는데 손님이 찾아왔다.
“웬일이냐?”
손님은 시연이와 고연주였다. 현실 남매인 우리는 딱히 막 그렇게 애틋하고 그런 관계는 당연히 아니다. 서로 필요에 의해서 협력을 마다하지 않는 존재라는 의미.
즉, 쟤가 나를 찾아서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뭐가 필요했다면 몰라도.
“그게 며칠 만에 보는 동생한테 할 말이냐?”
“몇 년 만에 봐도 그럴 것 같은데?”
“그건 인정.”
“그래서 뭐?”
“그게…….”
“뭐야?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길래 태도가 그래?”
“아니거든!”
난 수상해서 시연이를 노려보았다. 요즘 시연이는 대장장이 일에 푹 빠져 있다. 드워프들이 의욕적으로 가르치니 배울 맛이 날 것이다. 원래 그런 거 만드는 걸 좋아하는 애이기도 하고.
참고로 시연이의 부하 고딩들 중에 전교 1등 녀석만 나에게 마법을 배우고 나머지는 다 시연이를 따라서 망치를 잡았다.
나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 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난 시연이를 보다가 시연이 옆에 있는 고연주를 쳐다보았다.
“연주 씨?”
“네, 네?”
“시연이는 뭔가 잘못한 게 있어서 온 것 같고…… 연주 씨는 왜?”
내 말에 고연주가 매우 당황한다. 이게 그렇게 당황할 질문인가?
“저, 전.”
“네, 연주 씨는?”
“전 제 성격에 맞지 않아도 탱커 역할을 맡았고, 어떻게든 시우 씨 옆에 있으려고 노력했어요.”
“알죠. 그리고 적성에 맞는 것 같던데요?”
실제로 고연주는 우리 영지 최고의 탱커다.
“아니, 그러니까 그런 얘기가 아니라요.”
“네. 말씀하세요.”
“그러니까 전 시우 씨의 옆에…….”
“옆에요?”
내가 옆을 보니 호야가 한숨을 쉬고 있다.
“아, 호야가 보고 싶어서 오신 거구나?”
그럴 수 있다 호야는 막강 귀여움을 가진 아이니까.
퍽! 파바바바박! 냥!
호야가 갑자기 날 두들겨 패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연이가 나에게 돌진한다. 거기에 고연주는 방패를 언제 꺼낸 것인지 방패 치기로 나를 후려 패려고 한다.
“아. 왜!”
“뒈져! 그냥 뒈져 버려!”
시연이의 말에 호야가 응답하듯 대답한다.
냐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