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171화 (171/182)

제171화

제171화 아직은……

시연이, 호야, 고연주의 공격을 받으면서 난 억울했다.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런단 말인가? 그래서 난 물었다.

“왜 이러는 건데?”

“그걸 모르니까 처맞아야지.”

시연이의 외침. 뭔가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나름 지력을 많이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참 세상은 어렵다.

* * *

나중에 알게 되었다. 고연주가 나에게 마음이 있어서 그것을 계속 표현했고, 하기 싫은 전투도 꾸역꾸역하고 있었다고. 그런데 도통 나는 그것을 영 몰라주니 화가 나지 않았겠냐는 이야기.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고.”

시연이의 말에 난 살짝 입장을 바꿔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입장이 안 바뀌는데?”

“그냥 죽어라!”

2차 공격이 시작되었고, 호야에게 뒤통수를 강력하게 얻어맞은 후에 기억이 끊어졌다.

내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아깽이 세 마리의 까끌까끌한 혀 공격 때문이다.

푸휴휴휴, 냐앙.

호야가 한숨을 쉬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다.

“야, 그러는 넌 뭐 여친 있냐?”

그러자 호야가 나를 째려본다.

“아, 미안.”

여친을 만들 수 없는 몸으로 만든 건 나였다. 그런데 호야가 갑자기 나를 비웃는다.

“뭐지? 뭔데 막 기분이 나쁘지?”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것 같아서 난 누님과 결혼할 수의사 형님을 찾아갔다. 그랬더니 그 형님이 말씀하신다.

“얘가 중성화를 했었다구요? 희한하네요. 수술 자국은 있는 것 같긴 한데, 호야는 정상인데요?”

뭐지? 내가 돌팔이한테 당했던 건가!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분명 호야는 중성화를 성공적으로 했던 애다. 그렇다면 의심할 수 있는 것은 하나.

리커버리급의 회복마법으로 호야의 상태를 원래대로 돌려놨었다는 것. 누가 그런 마법을 사용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수십 년을 이 아수라장에서 대빵으로 살아온 호야니까 뭐 가능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와! 우리 호야 새끼 낳을 수 있는 거야? 아빠는 완전 기쁘다.”

냐아앙.

그게 네가 기뻐할 일이냐? 등신아? 라고 호야가 나를 보며 말한다.

“와 방금 완전 알아들었어.”

고연주.

예쁘고, 몸매도 좋고, 성격 좋고, 착하고 등등의 수많은 장점이 있는 여인이다. 그러니까 웬만한 남자라면 무조건 좋아할 것 같은 그런 여자.

하지만 뭐랄까?

선우의 말처럼 난 사이코패스인 걸까?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잘 모르겠다. 고연주가 마음에 안 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결혼을 하면 이 여자랑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막 사람들이 말하는 첫눈에 반한다거나, 그런 것은 확실히 없다.

난 그래 본 적이 없던 것도 같다.

그래서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고연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뭔가 첫눈에 파바박 그런 게 없어서 고민이라는 거냐?”

“아무래도 결혼할 사람이면 그렇지 않을까요?”

“나도 안 그랬는데?”

“네?”

“나도 네 엄마한테 그런 거 없었다고. 그런데 잘 살잖아?”

“그건 그렇죠…….”

“근데 뭐가 문제야?”

“문제는 지금부터 아버지한테 생길 것 같습니다.”

순간 아버지의 표정이 일그러지신다. 그리고 눈빛으로 당신의 뒤를 가리키신다.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스킬을 사용해서 미친 듯이 달려 나가기 시작하신다.

아버지에게 속도 관련 스킬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난 어머니를 말렸다.

“어머니, 부부싸움에서 무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부부 아니다.”

“뭐 그러시다면야.”

난 어머니의 추상같은 분노에 한걸음 물러섰다. 설마 죽이시기야 하시려고.

* * *

이번에는 누님을 찾아갔다. 선우를 찾아갈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나보다 더 등신이라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었다.

누님은 웨딩드레스를 고르고 계셨다. 그리고 그 옆에서 수의사 형님이 매우 지친 모습을 하고 계신다.

“누님, 행복해요?”

“당연하지!”

정말 누님은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조용히 수의사 형님한테 물었다.

“형님, 행복하세요?”

형님은 내 귀에 작게 말씀하신다.

“그래야겠지…….”

뭐지? 결혼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돌고 돌아 고연주를 마주했다. 고연주는 지난번 나를 공격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는지 나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연주 씨.”

“네.”

“정말 저를 좋아하세요?”

“그런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저도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고연주 씨의 입장을 이해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말에 고연주는 엄청 화난 표정으로 일어서더니 나가 버렸다.

퍽! 냐앙!

호야의 말처럼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뭔지를 잘 모르겠다.

* * *

내가 고연주에 대한 고민을 하는 동안에 세상은 빠르게 망가지고 있었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성역의 주인들이 나라를 선포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사람은 힘이 있으면 그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고들 한다.

그리고 지금 최강국들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핵폭탄들은 무력화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점차적으로 대량 학살 무기들이 무력화되고 있다는 보고를 정기훈에게 받았다.

“아무래도 기존의 군대로 그들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정기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맘먹고 하고자 한다면 난 대한민국 군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난 절대로 그런 짓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일단 그래서 얻을 것이 없지 않은가.

정복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정복자가 된 후에 얻을 뭔가가 있거나, 정복 자체가 목적일 것이다. 그런데 난 그런 목적이 없다. 딱히 얻고 싶은 것도 없고 정복이 하고 싶지도 않다.

덕분인지 내가 거주하는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 어디가 문제입니까?”

“어디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대부분이 난리가 난 상태입니다. 성역의 주인들은 자신들이 하늘의 선택을 받은 이들이라 주장하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헌터 자격을 부여하고, 원치 않으면 그 헌터 자격을 회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선택받은 인간들이라고 할 수는 있겠네요.”

“네, 아무래도 다들 헌터가 되고 싶어 합니다. 무엇보다 헌터가 돈을 잘 법니다.”

헌터는 게이트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죽이고, 그들에게서 여러 가지를 얻는다. 보통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마정석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마정석으로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친환경 에너지라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들이 멈춘 자리를 그것들이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고, 더는 화력 발전소를 돌리려고 하는 나라가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

보통 소설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여기까지는 비슷한데 몇몇 다른 점은 게이트 주인에 의해서 헌터가 결정된다는 것과 몬스터들이 세상에서 난리를 치는 일이 별로 없다는 정도다.

몬스터가 없으니 안정적이지 않겠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난 오히려 그래서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소설에 나오는 헌터라는 존재들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각성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다. 그들은 세상에 등장한 몬스터를 사냥한다.

그런데 게이트라는 안정적인 사냥터가 있으니 그들은 그곳에서 힘을 키운다. 정작 힘을 키웠으니 그 힘을 쓰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균형이 맞지 않는군요.”

내 말에 정기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선우가 의견을 더한다.

“몬스터를 풀어 버리는 건 어때?”

미친놈인가.

선우는 가끔 진짜 좀 미친 것 같다. 그런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닌지 다들 선우를 째려보았다. 그러자 선우도 눈치라는 것이 있는지 조용히 입을 닫는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온다.

“아예 대군주께서 강력하게 못을 박는 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담 샌들러다. 그는 조금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자고 말하고 있다.

“강력하게 못을 박는다는 말씀은?”

“게이트 주인들이 지구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제한하는 거죠. 그들이 지금처럼 나라를 선포한다거나 하는 것을요.”

“아담 씨의 말은 확실히 효과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면 우리 시호 영지는 악의 제국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겁니다.”

정기훈의 의견이다. 현재 제국이라는 이름을 걸 수 있는 영지는 아마 우리 영지가 유일할 것이다. 그만한 자원과 군사력을 가진 영지니까.

실제로 많은 이들은 우리가 제국을 선포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알 거다. 그런 귀찮은 일을 내가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제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은 다들 아시죠?”

내 말에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은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난 말했다.

“게이트가 우리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 지구에 생겨났다고 여전히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게이트가 지구에 생겨난 것은 지구라는 세상이 멸망을 향해 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라는 점을요.”

악한 게이트를 정리하는 것도 지구를 존속시키기 위한 일 중의 하나다. 난 요즘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마계는 ‘악’인가?

그렇다면 지구의 기자 피라미드를 없애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자 피라미드를 딱히 없애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토는 분명한 ‘악’이었다. 그래서 놈은 처리했다. 놈이 남긴 마계의 정수라는 것은 ‘악’인가?

사람을 죽였으니 ‘악’이지 않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전쟁은? 세계에서 가장 전쟁을 활발히 하던 곳은 미국 아닌가? 그럼 미국은 ‘악’인가? 물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던 것은 분명한 ‘악’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미국도 모든 전쟁을 평화를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미국이 전쟁을 여러 곳에서 수행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미국은 그것을 세련되게 했고, 러시아는 미련하게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본질로 보자면 둘 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선택한 것일 테니까.

그럼 그들은 ‘악’이니까 멸망시키는 것이 옳을까?

내 직업은 ‘진리를 이해하는 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마법이나 스킬에만 국한되는 부분은 아니다.

내가 기자 피라미드 사태에 직접 참전을 하지 않은 이유도 그런 부분이다. 선우가 말했던 것처럼 세상에 몬스터를 풀어 두자는 말.

사실 이미 세상에는 몬스터가 있지 않은가? 기자에 가면 많다. 미라들 천지다.

단지 마왕 파라오는 거기에서 더 진격할 생각이 없다고 천명했고, 그것을 지키리라 본다. 아니면 내가 찾아가게 될 테니까.

그리고 우리는 아직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결국 게이트로 인해서 지구가 멸망을 향해 걸어가게 되는가, 아닌가의 문제.

“다시 한번 세상을 꼼꼼하게 살펴봐 주세요. 뭔가가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내 말에 회의장에 있던 이들은 내가 한 말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 다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사실 나도 살짝 잊고 있긴 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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