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172화 (172/182)

제172화

제172화 멸망의 조건

게이트가 생겨나고, 드레이크 소동으로 인해서 난 멸망한 세계에서 분리된 드래곤 로드를 만났었다. 그에게 마법을 배웠고, 무엇보다 중요한 게이트라는 존재에 대한 단서를 얻었었다.

그냥 게이트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게이트는 멸망할 세상을 연결한다. 포인트는 멸망할 세상이라는 부분.

즉, 지구는 게이트 혹은 그 시스템이 보기에 멸망할 세상으로 판단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게이트가 곧 멸망이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했다. 게이트를 이용해서 오히려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애초에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이었다. 내 주변 사람들과 내 영지민들만 생각한다면 지구가 멸망을 하건, 안 하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정신 나간 세계수가 했던 것처럼 난 내 대성역 자체를 생존시킬 수 있으니까.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이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알 수 있다.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난 대성역과 함께 영지민들의 생존을 책임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행복일까?

결국은 나도 정신 나간 세계수처럼 변하지 않을까?

게이트는 게이트 안과 밖을 구분했다. 그중 가장 큰 부분은 동력으로 돌아가는 기계를 게이트가 허락하지 않았다는 부분. 즉, 그것 자체가 세계의 멸망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경험한 멸망한 세계는 둘이었다. 헤르티안과 엘프들이 살던 곳과 티거의 고향. 물론 두 곳은 모두 멸망을 피해 가지 못했다.

두 세계를 생각하면 기계류가 반드시 멸망으로 향하는 도구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는다. 지구보다 그쪽으로 더 발달한 세계도 멸망했지만, 반대로 아예 그런 것이 거의 없던 세계도 멸망했으니까.

지구는 그 두 세계와 비교하면 마법은 없었고, 기계문명은 그렇게까지 발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멸망의 조건은 뭘까?

냐아앙.

호야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내 옆에 와서는 머리를 기대 온다. 고양이를 키우면 이런 순간들이 있다. 세상 내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고,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그런 충만감이랄까?

고양이가 뭐라고 그런 생각이 드냐고? 모르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말로 설명이 안 된다. 고양이들 중에는 무척이나 인간 친화적이고 애교가 많은 애들도 있다. 그런 애들은 하루 종일 반려인과 붙어 있으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른바 ‘개냥이’라고 부르는 애들이다. 하지만 보통의 고양이들은 매우 독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애가 어느 순간 자신에게 와서 머리를 기대고 다리 위로 무심하게 올라와서는 그루밍을 시작한다면? 미치는 거다. 그래서 난 고양이를 사랑한다.

아무튼, 이렇게 호야가 갑자기 이런 식으로 기대올 때 난 그런 충만감을 느낀다.

“우리 호야 힘들었어요?”

냐우우웅.

호야는 말도 시키지 말라는 반응을 보인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호야는 호야니까 더욱 그렇다.

그렇게 잠깐 쉬는 호야 곁으로 악마의 아깽이 3인방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고개를 거의 바닥에 쓸 듯이 낮추고서 엉덩이를 세우고서는 양쪽으로 흔든다. 저 자세가 말하는 것은 하나다.

사냥 준비.

고양이들은 자기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저건 사냥하기 직전의 자세다. 물론 야생의 고양이가 아니니 그 사냥 대상은 보통 반려인이거나, 장난감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아깽이들이 달려든다. 그리고 호야는 모른 척하고 있다가 갑자기 녀석들을 앞발로 쳐 내기 시작한다.

미융, 미융, 미융.

하지만 아깽이들 사전에 포기란 없다. 놈들은 미친 듯한 활동량으로 호야를 공격한다. 물론 이빨은 물론이고, 발톱도 안 박힐 공격이다. 호야를 공격하는 건 나도 불가능하다.

난 한참을 멍하니 호야와 아깽이들의 사투를 지켜보았다. 가끔은 나에게 덤비는 녀석도 있었지만, 뭐 나라도 만만한 존재겠는가.

녀석들의 공격은 매번 차단당했다. 그렇게 아깽이들의 레이드를 지켜보다가 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인가?”

멸망의 조건은 인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건 애초에 알고 있던 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구의 멸망이라는 것은 예전에도 말했듯이 지구라는 행성이 폭파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종의 멸망을 의미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아니, 이건 처음부터 알고 있던 거겠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인간들이다. 자연의 자원들을 개발하고, 살기 좋은 곳을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자연을 파괴한다.

그런데 대성역이 생기고서 대성역은 어떤 것을 해 주었는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정화’였을 것이다. 일본의 그 무지막지한 방사능까지 정화를 시켜 주는 그 힘.

거기에 한 방에 지구를 날려 버릴 수 있는 핵의 무력화, 그 후에도 계속해서 대량 학살 무기나, 대량 파괴 무기들은 무력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게이트가 원하는 것은 이 세계의 멸망일까? 아니면 그 멸망을 막으려는 걸까?

* * *

“대량 학살 무기나, 대량 파괴 무기들이 무력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전쟁이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맞는 말일 거다. 그런다고 세상의 멸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총이 없으면 검을 들 것이고, 검이 없다면 몽둥이를, 몽둥이도 없다면 돌이라도 들고 전쟁을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심지어 지금은 헌터라는 특수 능력까지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전쟁은 계속해서 벌어질 것입니다.”

맞는 말이다.

“그럼 우리는 뭘 하면 될까요?”

“지난번에 대군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우리가 한 번 크게 나설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겠죠.”

최근에 정기훈은 나를 대신해서 UN에서 연설을 했다.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와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여러 가지 밝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 후에 본론을 꺼냈었다.

‘적당히 해라, 아니면 우리가 박살 낸다’라는 나의 메시지를 아주 잘 전달했다고 본다. 특히나 분쟁 지역 외에서 헌터들이 힘을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분쟁 지역이라는 것은 영지와 영지 간의 분쟁을 나타내는 곳으로 이것은 시스템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하는 전투다. 우리도 그 과정을 통해서 일본을 병합했었다. 그러니 그런 전투는 내가 말릴 수 없고, 말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 같긴 합니다.”

“현재 포탈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몇 명입니까?”

“지금은 대군주님과 레라, 헬레나, 그리고 엘프 여왕입니다.”

모두 네 명.

포탈 마법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기사단은 대략 기사단 하나다. 대충 500여 명이라는 이야기.

그들은 자신이 가 본 곳이라면 어디든 포탈을 만들 수 있다. 문제는 가 본 곳이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나와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난 지구의 좌표를 가지고 가 보지 않은 곳이라고 해도 포탈을 연결할 수 있다.

덕분에 요즘 세 명은 열심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들은 이상하게 지구의 좌표를 인식하지 못한다. 써서 줘도 그것을 마법사 본인이 인식을 하지 못하면 사용할 수 없는 좌표가 된다.

아마도 그들이 이종족이라 그런 부분에서는 제약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딱히 상관은 없다. 세상에 몬스터가 등장해서 비행기를 공격하는 그런 상황은 아니니까.

덕분에 셋은 아주 세계 여행을 알차게 하는 중이다. 거기에 뭐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각지를 돌며 맛집도 들르고, 쇼핑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들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귀환은 가능하니까요.”

정기훈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들이 마음먹으면 바로 영지로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 비행기도 편도로만 타고 다닌다. 돌아올 때는 세 명 중의 하나가 포털 마법을 사용하니까.

“기사단들은 언제든 파견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중이구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선우 씨가 기자로 파견을 원했습니다.”

“선우가요? 저한테 그런 얘기 안 했는데?”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휴대용 포털을 가지고 갔으니 언제든 돌아오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뭐, 그놈이야 생존에는 문제가 없으니 알아서 하겠죠.”

생존만 두고 보자면 선우가 나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다. 난 위험 요소를 파괴하는 쪽을 선호하지만 선우는 자신을 숨기는 것에 매우 특화된 녀석이니까.

“그런데 거긴 왜 갔다고 합니까?”

“피라미드에 궁금한 부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겠죠.”

“자, 그래서 첫 번째 타자는 정해졌습니까?”

“아직입니다. 아직은 제 연설이 효과가 있나 봅니다.”

“그렇군요. 며칠 안 되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어디가 제일 불안합니까?”

“아무래도 중국입니다.”

“중국이요? 걔들은 이미 여러 개로 나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여러 개의 나라로 실질적으로 나누어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북경의 세력이 점차 힘을 키우면서 다시 한번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중입니다.”

“그건 무슨 정신병이랍니까?”

“그게 그놈들의 정체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원래가 내세울 것이라고는 넓은 땅과 인구밖에 없는 놈들이니까요.”

“요즘도 김치랑 한복을 지들 거라고 합니까?”

“못합니다. 그랬다가는 뒈진다고 제가 직접 경고를 했습니다.”

“기훈 씨 생각보다 과격하시네요.”

“독립투사의 후손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확실히 독립투사의 후손이라 그런지 이런 부분에서는 엄청 칼 같은 모습을 보인다.

“미국 쪽은 어떻습니까?”

“미국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습니다. 오히려 유럽 연합 쪽이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럽 연합은 왜요?”

“기자 지구에서 힘을 키워서 뭔가를 하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자 지구가 사냥터가 된 거군요?”

“네, 요즘은 미국에서도 파견을 보낸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헌터들이 모이는 추세라고 합니다.”

기자 지구는 일부러 사냥터로 내버려 둔 곳이다. 마왕 파라오는 기자를 원했고, 기자에 살던 사람들은 더 좋은 곳으로 이주를 할 수 있었다. 이집트의 지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들을 지원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자에서 새로운 몬스터들도 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에? 새로운 몬스터요?”

“네, 하지만 그 몬스터들도 딱히 기자를 벗어나지는 않고 상급 마족 파라오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고 있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제대로 사냥터로 만들 생각이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뭐, 거기를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별로 개입할 필요는 없겠네요.”

“네, 우리는 그저 사람을 파견해서 그들이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만 관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파견을 보냈다는 것을 마왕 파라오도 알고 있습니까?”

“네, 무슨 표식이 있는 징표를 주고서 그것을 가지면 마계 소속의 몬스터들이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했고, 실제로 공격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뭐 마왕 파라오가 실질적으로 나와 마찰을 일으킬 생각은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힘을 키운 헌터들이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경우라고 봅니다.”

확실히 그 부분은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오빠, 나와서 TV 좀 봐야 될 것 같아.”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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