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화
제176화 인해전술 (1)
시스템의 의지가 전해진 것은 이전에도 가끔 있던 일이다. 그렇기에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스템이 메시지로 의지를 전해 온 것이 아니다. 시스템은 그 자체로 나에게 의지를 전해 왔다.
게이트가 생기고 나서 세상은 급변했다. 지구에 없던 자원들이 생기고, 게이트 안에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을 얻었다.
그렇게 게이트는 우리 세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게이트가 터져서 난리가 나는 사태도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전체 인구의 2분의 1이 사망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 정도로도 충분히 세상은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이트 사태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죽어 나가지 않을까?
아니다.
전쟁과 테러.
우리 세상은 게이트가 생기기 전에도 1초당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하던 세상이다. 내가 속한 대한민국은 물론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자유롭긴 했다.
테러의 청정국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테러라는 것은 남의 나라 일이었고, 전쟁의 경우는 휴전 중이라 실질적으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라고 하지만 외부에서 대한민국을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사실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에 가까웠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외신들은 한바탕 난리를 치지만 한국인들은 대부분 ‘재들 또 저러네.’라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그것을 안전불감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인들이라고 모를까?
전쟁이 나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은 한국인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있을까? 지금 젊은이들의 할아버지 세대만 해도 한국은 폐허가 된 나라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지겨울 정도로 듣고 자랐고, 배웠고, 알고 있다.
단지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게 두지 않았을 뿐이다.
아무튼, 전쟁과 테러, 범죄들로 인해서 세상에는 수많은 사상자들이 매일같이 발생했다.
웃기는 것은 헌터들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테러는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테러를 저지르려던 이들이 지나가던 헌터들에게 제압되고, 잡힌 일들도 심심치 않게 뉴스에 나올 정도니까.
그리고 전쟁.
여전히 전쟁은 진행 중이다. 지금 북경에서 시작된 헌터 전쟁은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중국에서는 헌터를 찍어 내듯이 양산하고 있고, 그렇게 만들어진 헌터를 인구 대국답게 사방으로 보내는 중이다. 그중 산둥반도 쪽은 우리 기사단이 파견을 나간 상태라 그들을 상대하고 있다.
공존이라는 것은 마계와의 공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세계 전체가 공존을 선택해야 공존을 이룰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일단 마왕 파라오와의 대담은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지고 왔다. 마왕 파라오는 확장을 원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기훈의 말처럼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갈수록 자신의 임무랄까? 그런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마왕 파라오는 마수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가 만드는 마수는 상당히 여러 종이고, 그 마수들의 마정석들은 지구에 큰 도움을 준다.
게이트 안에 있는 몬스터들도 물론 도움이 되지만, 게이트의 몬스터들의 리젠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보고를 최근에 받았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결국 게이트 안의 몬스터들은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이라는 부분. 그렇다면 그때부터는 마왕 파라오의 능력은 빛을 발할 것이다.
헌터는 몬스터를 사냥해야 그 의미가 퇴색하지 않는다. 그런데 게이트의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은 기자 지구가 될 것이다.
어쩌면 마계를 조금 더 넓힐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수단을 이용해서 마수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서 내가 가진 포털의 마법을 이용해서 말이다.
마왕 파라오의 능력은 파괴를 하기 위해서 매우 적합하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파괴가 아닌 공존. 그리고 그것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그도 내 힘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는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가 잘 통해서 다행입니다, 대군주님.”
“마왕 파라오가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면 진작 만날 걸 그랬네요.”
“하하하, 그랬다가는 아마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전 아무 생각이 없었거든요.”
마왕 파라오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신뢰가 갔다.
“기자 지구를 벗어날 생각은 없으시다구요?”
“네, 마계화라는 것이 이토의 때와는 달라서 일정 부분 제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현재 제가 힘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기자 지구 정도가 최선이라고 봅니다. 욕심을 내면 더 확장을 조금 할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럴 이유를 못 느끼겠군요.”
맞는 말이다. 더 확장해서 그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더 얻을 것은 없어 보인다.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저와 반목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대군주님의 뜻을 존중합니다.”
정기훈의 분석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정기훈이 틀렸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마왕 파라오에게 뭔가 큰 변화가 생겼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저 피라미드…….”
내가 말을 하다 말고 선우를 째려봤다. 선우와 주연이가 고개를 푹 숙인다. 둘 다 어쩜 저렇게 취향이 같은지. 그래서 커플인가 보다.
“이동할 수 있도록 공중에 살짝 띄워드리겠습니다.”
“하하, 배려에 감사합니다. 우리 선우가 좀 철이 없어서 무리한 부탁을 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아닙니다. 선우 씨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덕분에 활을 쓰는 미라를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미친놈. 그런 것을 돕고 있었단 말인가. 내가 다시 선우를 째려보자 선우는 살짝 고개를 돌린다. 하긴 뭐 그 정도로 내가 선우를 내칠 일은 없다. 그래도 말도 없이 사고를 친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한 징계를 해 두는 편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다시 선우처럼 마음대로 활약할 사람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우리의 가출한 놈 찾기 프로젝트는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마법진을 이용해서 피라미드는 그대로 경기도의 한 곳으로 이동시켰다.
웃긴 것은 덕분에 그 지역 경제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피라미드 안에는 선우와 주연이 신혼집을 차려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게 맞는데 여기에 마법을 조금 사용해서 피라미드로 들어가면 기자 피라미드 한 곳을 연결시켜서 그곳으로 이동되게 해 두었다. 거기에서 미라들과 전투도 하고, 나름 관광도 하다가 나오면 다시 처음 입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이것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1톤에 가까운 미스릴이 사용되었다. 미스릴 통짜로 마법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나름 사냥터를 확보한 것이기도 하니까.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 * *
“중국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담이 영지로 돌아와서 그에게 상황을 물었다.
“일단 우리 기사단을 상대하는 중국 헌터들의 수준은 확연히 우리보다는 낮습니다. 하지만 그 수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여전히 위협적입니다.”
“그래요? 그들의 경험은요?”
“그 부분이 말도 안 되게 약합니다. 400레벨의 헌터라고 보기에는 너무 기초적인 전투 능력만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니, 능력 자체는 대단한 것들이 많지만, 운용 능력이랄까? 그런 부분이 확연히 떨어집니다.”
그 옛날 중국은 6․25 전쟁 때 기어코 북한을 도와서 우리를 엿 먹인 놈들이다. 당시 놈들을 상대했던 군인들은 놈들의 말도 안 되는 인해전술에 질렸었다고 했다.
당시에 그들은 그 많은 수의 군인들에게 보급한 무기도 없었다. 그래서 앞에 누가 죽으면 죽은 사람의 무기를 뒤에 있던 이가 들어서 다시 전진하고, 전진하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들었다.
술에 취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마약을 먹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맨정신으로 총알이 빗발치는 곳으로 변변한 무기도 없이 전진한다는 것은 사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중국은 그것을 항미원조라고 부른다. 자신들이 마치 한국을 도왔다는 식의 미친 개소리를 지껄인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중국 출신 아이돌들에게 그것을 주입시켜서 SNS에 그따위 글들을 싸지르게 하고, 결국 한국인들의 눈총이 무섭고, 중국이 돈을 많이 준다고 하니 그들은 그런 짓을 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중국으로 먹튀를 한다.
골 때리는 것은 그렇게 해 놓고 중국은 또 그런 애들을 헌신짝 버리듯이 이용하고 버린다는 것이다.
진짜 내 상식으로는 중국이라는 나라는 일본보다 더 이해가 안 가는 나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중국이 헌터로도 인해전술을 펼치고 있다.
“계속 죽어 나갈 텐데도 덤빈다?”
“네, 마치 뭔가에 취한 인간들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뭔가에 취한 인간들 같은 모습을 보인다라. 아무래도 이번에도 술이나, 마약 혹은 그에 준하는 스킬을 쓰는 인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 봅시다.”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까?”
“직접 봐야 알겠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시키겠습니다.”
아담이 나간 후에 정기훈에게 중국으로 원정을 다녀오겠다는 이야기를 전달했다.
그리고 이번 원정에서 선우를 거기에 떨구고 오겠다고 했다. 선우는 돌아오자마자 주연이와 결혼을 했으니 신혼의 꿀맛에 빠져 있는 시기다. 그래서 찐친인 나는 그런 꼴을 못 보겠어서 선우를 원정대에 남겨 둘 생각이다.
어설프게 친하면 그런 짓 못 한다. 난 선우와 진짜 친하니까 할 수 있다. 피라미드 건을 아직 징계로 받지 않았으니, 그것으로 갈음할 생각이다.
물론, 선우의 의견은 듣지 않을 생각이고.
그렇게 우리는 중국으로 향했다.
* * *
예전에 말했듯이 백만대군이라는 말은 어마무시한 말이다. 심지어 저 앞에 있는 십만대군만 해도 기가 빨리는 느낌이 든다.
헌터들 십만 명이 한 번에 스킬을 사용한다. 십만 명이 창칼만 들어도 무시무시할 텐데 말이다.
웃긴 것은 그들의 스킬이 1만밖에 안 되는 우리 기사단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장치들이 있다. 그중에 자동으로 고위 실드를 펼쳐 주는 갑옷과 방어구들도 즐비하다.
기사단 단위로 움직일 때는 이동식 마법진도 사용한다. 덕분에 십만 대군의 헌터들이 사용하는 스킬들은 모두 무력화되었다.
내가 쟤들이라면 저렇게 멍청하게 한 방에 십만 명이 스킬을 사용하지는 않을 거다. 오히려 조를 나눠서 계속해서 지속적인 공격을 가할 것이다. 그게 훨씬 효과적일 테니까.
십만 대군은 스킬을 사용하고 거의 1분 정도는 무방비한 상황이 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 기사단의 돌격이 시작된다.
기사단의 돌격은 무자비하다. 그냥 말을 타고 돌격을 해도 무자비할 텐데 우리 기사단이 타고 있는 탈것들은 그냥 말도 아니다. 그러니 십만 대군의 헌터들의 진형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중국 헌터들은 그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 무서운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