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학개론-181화 (181/182)

제181화

제181화 새로운 세계수

결과적으로 우리는 별로 한 게 없다. 그런데 북경 헌터들과 멸망의 세계수는 서로 공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멸망의 세계수가 엄청난 놈으로 보이지만, 역시 세상 무서운 게 인해전술인가 보다. 다구리에 장사 없다는 옛말이 사실로 판명 나는 순간이다. 옛말은 아닌가?

북경 헌터들의 숫자가 100단위로 떨어질 때 멸망의 세계수는 뒷산에 보통 있을 법한 좀 큰 나무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막타 치러 가자!”

막타를 치는 거다. 하지만 막타를 칠 때 뭘 해야겠는가? 경험치를 나눠 먹을 가능성을 제거하는 게 좋다. 그래야 온전히 경험치를 내가 먹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북경 헌터단을 전멸시켰다. 가볍게 화염의 장막으로. 그리고 우리 호야가 99일 동안 잠들었던 것이 빡친 것인지 후다닥 달려가서 멸망의 세계수를 패기 시작한다.

신기한 것은 저렇게까지 줄어들 동안 별다른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멸망의 세계수가 호야한테 맞을 때마다 세계를 울릴 것 같은 엄청난 비명을 지른다는 거다.

“쟤 왜 저래?”

“대군주님과 호야 님이 지니신 세계수의 정수 때문이겠죠.”

“아, 그게 있었지.”

그래서 나도 혹시 몰라서 멸망의 세계수 옆에 가서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내 힘과 민첩은 겨우 1. 이거 대미지가 들어가기나 할까 싶은 상황이다. 하지만 나를 대신해서 우리 호야가 열심히 쥐어패니 멸망의 세계수는 점점 작아지더니 묘목 크기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야가 열심히 더 두들겨 패니까 색이 빠진다. 완전히 녹색으로 물들더니 결국 나중에는 씨앗으로 변했다.

“이게 뭔…….”

난 씨앗을 관찰로 살펴보았다.

-정화된 세계수의 씨앗.

간단한 정보였다. 하지만 이게 간단하지 않은 이유는 이것 자체가 그 엄청난 세계수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우리 지구에는 이미 세계수가 존재한다. 시베리아에 있는 엘프 지구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런데 다시 내 손에 세계수가 들어온 것이다. 신기한 일이다.

“놀랍네요.”

“왜?”

“세계수의 씨앗을 다시 손에 넣으실 줄 몰랐거든요.”

“정확히는 지금 세계수가 자란 과정과는 좀 다르긴 하지만 뭐 세계수의 씨앗이면 결국 이걸로 다시 세계수를 키울 수 있다는 거잖아?”

“맞아요. 그래서 놀랍다는 거죠. 하지만 한 세계에 세계수는 단 하나만 존재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엘프 여왕의 말에 난 뭔가가 떠올랐다. 정신 나간 세계수, 세계수, 멸망의 세계수. 얘들은 결국은 다 세계수였다는 얘기 아닌가? 엘프 여왕의 말대로라면 지금 멸망한 게이트 속 세계수는 하나였어야 한다. 그런데 이 게이트에 또 세계수가 있던 것이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하나를 초과하면 세계수에 이상이 생기는군?”

“맞아요. 세계수는 말 그대로 세계를 자양분 삼아서 성장하고, 성장하면서 그 자양분을 몇 배로 그 세계에 돌려주는 존재죠. 그런 세계수가 둘이 된다면 온전한 세계수로 성장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어? 내가 세계수의 가지를 마계화된 곳들에 심었는데?”

“그건 세계수의 분신이지 세계수는 아니니까요.”

“그럼 얘도 분신인 거 아냐?”

“아뇨, 그것은 분명한 세계수 그 자체예요.”

“흐으음. 그럼 이건 이것대로 처리하기가 애매한 건가?”

“하지만 대군주님은 두 세계를 가지고 계시죠.”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하네. 난 지구의 지배자가 아냐.”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인식할걸요.”

엘프 여왕의 말에 난 잠시 할 말이 없었다. 실질적으로 현재 세계 정부들은 내 눈치를 본다. 그것은 그녀의 이야기처럼 세계가 나를 지배자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물론, 그런 귀찮은 것을 내가 원할 리가 없다. 진짜 귀찮은 일이니까.

“아, 몰라. 귀찮아.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은 뭔데?”

“영지에 세계수의 씨앗을 심으면 혹시 모르죠. 멸망한 세계가 복원될지도.”

“음?”

“멸망한 세계로 부르는 게이트 안의 영지 말이에요. 현재 그 영지는 게이트의 도움으로 멸망했지만 존재하고 있는 거죠. 거기에 세계수를 심으면 세계수가 남은 자양분을 흡수해서 다시 세계를 복원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에요.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요.”

멸망한 세계를 복원한다라.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그 전에 처리할 것은 처리해야지. 호야, 가자.”

냐앙!

호야는 재빨리 내 어깨에 올라왔다. 그리고 우리는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 * *

-엘프 여왕의 페널티가 해제됩니다.

-대군주 최시우 님의 페널티가 해제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놀랍게도 페널티를 먹은 상태에서 렙업을 했던 것들이 그대로 적용이 되었다. 덕분에 갑자기 내 레벨이 천 단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능력치를 올린 것도 그대로 유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99일 동안 올린 레벨의 총합의 2배에 달하는 능력치를 사용한 격이다.

개이득이다.

“아오, 레벨 더 올리고 나올걸.”

물론 이렇게 될 줄 몰랐으니까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

“죽을래? 아니면 게이트를 포기할래?”

난 심플하게 말했다. 하지만 상대에게는 심플한 얘기가 아니었나 보다.

“너무한 것 아니오?”

“아닌데? 나를 죽여 보겠다고 함정까지 파 놓고 지는 멀쩡하게 살 줄 알았어? 이거 중국인 아니랄까 봐, 양심 좀 보소.”

“이익.”

서걱!

난 검을 뽑아서 게이트 주인의 왼쪽 팔을 잘라 버렸다.

“이, 이게 무슨. 대군주나 되는 사람이.”

“그런 대군주를 암살하려고 한 놈이 말이 많네? 다른 쪽도 잘라 줘? 팔 하나 남았고, 다리도 두 개 남았으니까 개당 1분씩 시간을 주지.”

게이트 앞에서 게이트 주인을 해하는 행위. 사실 이건 매우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다. 게이트의 분노를 살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런데 여기에 꼼수가 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 정도?

그리고 지금 내 느낌으로는 내가 이놈을 죽인다고 해도 저 게이트가 나한테 덤빌 것 같지는 않다.

“오른팔까지 20초 남았네.”

난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습관적인 행동이었지만, 그게 상대에게는 엄청 위협이 되었나 보다.

“포, 포기하겠소.”

“빨리 해.”

“나는 게이트 주인의 자격을 포기한다.”

-게이트 CF28304가 새로운 주인을 찾지 않습니다.

-게이트 CF28304가 소멸됩니다.

놀랍게도 게이트는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소멸을 선택했다. 그러자 게이트 주인의 곁에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온다.

“이런!”

“미친!”

저들이 저러는 이유? 간단하다. 능력을 잃었으니까.

게이트 CF28304가 소멸된다는 것은 그 안에 속해 있던 헌터들의 능력도 소멸된다는 것이다. 즉, 여기 있는 헌터들은 모두 능력을 잃었고, 파견 나가 있던 헌터들도 능력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시는 내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마. 다시 중국이 뭘 하려고 했다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면 북경 한복판에 메테오를 떨어트려 줄 테니까.”

“알겠소.”

뭐 시험 삼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도 지구에 메테오를 한 번 소환해서 피해 범위를 탐구해 보고 싶은 생각은 있으니까. 난 최소한 내가 한 말은 지키는 편이다. 그러니까 해 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난 호야와 엘프 여왕을 데리고 기사단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 *

“10일 지났다고?”

내 말에 선우가 답한다.

“어, 그래서 얼마나 걱정했는데.”

10일이라는 것은 시간비가 1:10이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뭐 나쁘지는 않았다. 얻은 것도 많았고, 결정적으로 북경의 등신들을 모두 처리한 것이니까.

“메이린.”

“네, 대군주님.”

“이제 북경 게이트는 사라졌어.”

“확인했어요.”

“다시는 중국이 하나로 뭉치는 일은 없으면 좋겠는데?”

“그…… 그렇게 할게요.”

메이린은 야망이 있는 여자다. 그녀가 마음먹고 내가 지원을 하면 그녀는 중국을 장악할 수 있다. 그럴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으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게 그럴 의지가 없다는 거다.

중국은 그냥 여러 나라로 나누는 것이 최선이다. 여러 대체 역사 소설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난 중국이 너무 좋아, 그래서 중국이 많았으면 좋겠어!’라는 대사나 생각들.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그래서 메이린이 중국 전체를 먹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메이린의 영역이 조금 더 커지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한 두 배 정도는?”

나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내 말을 거부할 수 없는 메이린이 중국에서 가장 큰 세력을 차지한다면 상대적으로 난 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북경 사태는 해결이 되었다. 물론, 능력을 잃은 북경 헌터들은 자신들의 죗값을 치르게 되었다. 그들에게 이를 가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자기들 업보다.

* * *

지구 시간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엘프 여왕이 말한 것처럼 세계인들은 나를 지구의 지배자라고 공공연하게 떠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북경의 백만대군의 헌터 집단을 무력화시킨 사람. 하지만 난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원래 남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널린 거니까.

딱히 내가 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는 이상 저러다가 말 것이다. 지금 나를 가장 고민하게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것이다.

냥, 냥, 냥, 냥, 냥, 냥.

이 캣초딩들이다. 이 캣초딩들은 호야에게 달라붙어서 하루 종일 호야를 괴롭힌다. 심지어 수컷인 호야의 젖을 빨려고 하는 애도 있다. 물론, 호야는 기겁을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얘들은 호야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한다.

난 섬에서 지쳐 있는 호야를 보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서 섬의 중앙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세계수를 심었다.

냐아아앙!

호야가 나에게 비겁하다고 쌍욕을 박는다. 이제는 쌍욕도 잘 느껴진다. 하지만 난 못 들은 척했다.

그냥 세계수의 씨앗을 심고서 세계수가 싹을 틔우도록 마나를 불어 넣었다. 그래야 세계수가 더 빨리 자랄 테니까.

놀랍게도 세계수는 일반적인 나무랑은 다르다. 내 마나를 쏙쏙 빨아먹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성장하기 시작한다.

냐아앙?

냥?

냥!!!

그러더니 캣초딩 셋이 미친 듯이 세계수를 향해 달려온다. 그러고는 세계수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야, 다쳐!”

그런데 그때다.

-세계수의 수호자가 지정됩니다.

-인이, 설이, 숲이 세계수의 수호자로 지정됩니다.

세 마리의 캣초딩에 엄청난 빛이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 세 마리의 캣초딩들은 진화…… 를 하지 않았다. 그냥 여전히 캣초딩이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고 녀석들은 상태창을 가진 세계수의 수호자가 되었다.

냐앙.

호야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뭔가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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