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화
제182화 최후의 임무 그리고 평화
내 섬에 심은 세계수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그러고 나서 신기한 일들이 벌어졌다. 대수림의 영역이 온전하게 섬의 일부로 편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 있던 결계들이 해제되면서 말이다. 하지만 대수림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은 결계가 사라졌다고 해서 섬으로 침입을 시도하지는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세계수가 자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섬은 이제 더는 섬이 아니게 되었다.
대수림을 관통하는 새로운 육지가 바다에서 솟아올라 왔고, 그것은 멸망한 세계로의 연결이었다.
그 후에 멸망한 세계에서는 새로운 생명들이 잉태되기 시작했다.
엘프, 드워프, 바람의 일족, 물의 일족 등등이.
하지만 여전히 그 안에 인간이라는 카테고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별 의미가 없는 것이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서 넘어와서 우리 영지로 터전을 옮겼기에 멸망한 세계의 인간 자리를 지구의 인간들이 대체하게 된 상황이다.
그에 난 아프리카를 비롯해서 상대적으로 현재 낙후된 지역에 살고 있던 이들을 대대적으로 영지민으로 받아들였다.
[대군주 최시우의 영지민을 모집합니다.]
이 광고 효과는 엄청났다. 정말 다양한 인종이 모였고, 그들에게 영구적으로 영지에서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 * *
게이트가 지구에 연결된 지 5년이 흘렀다. 간헐적으로 게이트에서는 몬스터가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그 몬스터를 막는 것은 전투 헌터의 임무였다. 하지만 지구를 위협할 정도의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 대성역의 영역에서는 그런 일 자체가 벌어지지 않았다.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타이틀을 대한민국이 차지하게 되었다.
사실 그전에도 북한을 제외하면 가장 안전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이다. 범죄 발생과 범죄 사망률로 보면 우리나라가 정말 안전할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기에 했던 생각이고, 해외로 눈을 돌려 보면 정말 미미한 수치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미국의 범죄 발생률과 범죄 사망률만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제는 범죄만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게이트 부근에서 생성되는 몬스터도 상대를 해야 하는 세상이다.
우리 대성역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일.
그렇다고 우리와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았다. 우리 대성역 소속의 기사단들은 전 세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여기저기 파견 근무를 많이 하게 되었으니까.
“시우 씨.”
또 크게 변한 것 중의 하나는 내가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상은 당연히 고연주 씨다. 세계수를 섬에 심은 시점에서 2년이 더 흘러서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고, 1년이 더 흘러서 결혼을 했으며, 1년 뒤에 아이를 낳게 되었다.
이란성 쌍둥이로 남녀 쌍둥이가 태어났다. 여자아이인 지아는 연주 씨를 닮았고, 사내아이인 지우는 나를 닮았다고들 한다.
연주 씨는 두 아이를 동시에 안아 들고서 나를 찾아왔다. 워낙에 레벨도 높은 와이프라 둘을 안고 있어도 전혀 힘든 기색이 없다.
“아니, 여기는 무슨 일로 왔어요?”
“어머님이 저녁은 들어와서 드시래요.”
“아, 알았어요.”
“그리고 애들이 시우 씨 보고 싶다고 해서요.”
연주 씨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 어깨에 앉아 있던 호야가 한숨을 쉰다.
세계수의 수호자들 육아가 끝나고 겨우 평화를 찾았던 호야에게 다시 불행이 찾아온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지아와 지우는 보통 아이들과는 달랐다.
부모의 유전자 덕분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몰라도 레벨이 태어나면서부터 100레벨이었다. 능력치도 말이 안 되게 높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어린이집도 못 가지 싶다. 다른 아이들이 다칠까 우려되어서 말이다.
그런 아이들이 마음 놓고 놀 수 있는 대상은 호야였다. 호야는 내 아이들이라 그런지 보통 다른 아이들에게는 매우 차가운 편인데 우리 아이들에게는 정말 보모처럼 잘 돌본다.
냐앙?
이게 최선이냐고 묻는다.
“싫으면 내가 보고.”
하지만 호야는 고개를 저으며 아이들을 공중에 띄운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향한다.
“호야, 미안.”
고연주의 말에 호야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이들과 밖으로 나간다.
“요즘은 어때요?”
“뭐, 저야 딱히 파견을 나가는 것도 아니고 괜찮아요.”
고연주는 잠정적으로 시호 수호대에서 빠져 있는 상황이다. 아니, 시호 수호대 자체가 현재 활동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활동을 해야 할 정도로 무슨 일들이 생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대군주의 직책을 가지고 영주성에서 집무를 보고, 정기훈은 여전히 재상의 위치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처리하고 있다.
어쩌면 이대로 세상은 안정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새로운 임무가 생성됩니다.
갑작스럽게 시스템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최근에 시스템이 내게 메시지를 보내는 일은 없었는데 말이다.
-임무: 구원.
멸망한 세계의 세계수가 충분히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멸망한 세계의 의지는 아직 꺾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일 후 최후의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합니다.
최후의 몬스터 웨이브로부터 세계수를 지켜내세요.
*특전: 다른 게이트에 소속된 헌터들과 게이트 주인도 제약 없이 참전할 수 있습니다.
*보상: 멸망한 세계의 완전한 복구.
*실패 시: 멸망한 세계의 의지가 지구로 향합니다.
“미친.”
“시우 씨?”
연주 씨가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본다.
“연주 씨도 방금 메시지 떴어요?”
“네. 이게 무슨…….”
“우리가 안일했나 보군요. 아무래도 시호 수호대랑 전 기사단원들을 준비시켜야 될 것 같습니다.”
“네, 기훈 씨 부를게요.”
“부탁해요.”
* * *
30일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최대한 지구의 헌터들을 불러 모았다. 이번 임무를 실패하면 지구가 망하게 생긴 일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삐딱선을 타는 인물들은 늘 생기기 마련이다. 원래 또라이 보존의 법칙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 또라이들은 아예 배제를 시켜 버렸다. 또라이가 헌터라면 게이트 주인에게 권한을 삭제하게 했고, 게이트 주인이 또라이라면 게이트 소유권을 잃게 만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고 묻는다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 또라이들은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난 그런 인간들이 설치는 꼴이 보기 싫어서 모두 배제시켜 버린 것이다. 내가 강경하게 대처를 하자 그런 이들은 결국 자취를 감추었다.
“준비됐습니다.”
정기훈의 말에 난 세계수 근방에 모인 병력을 확인했다.
우리 영지의 병력으로 볼 수 있는 이들은 기사단 총 10만이고, 다른 곳에서 지원 나온 헌터와 게이트 주인들의 숫자는 100만에 달한다.
이것으로 가능할까 싶지만, 이것으로 안 되면 결국 안 되는 거다. 전투에 크게 도움이 안 될 이들까지 방어전을 치를 필요는 없을 테니까.
“다들 지구를 지켜 봅시다.”
내 말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와아아아아!”
그리고 최후의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었다.
* * *
최후의 몬스터 웨이브는 20일간 지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고, 마지막에 남은 것은 우리 기사단 5만과 지원 온 헌터와 게이트 주인 40만이었다.
너무 많은 희생이 따랐지만, 결국 우리는 세계수를 지켜 냈고, 멸망한 세계는 온전히 부활을 하게 되었다. 아울러 지구의 멸망도 막게 되었다.
그러자 지구에 다시 한번 대격변이 시작되었다.
[게이트 실종!]
세계에 퍼져 있던 게이트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걱정이 되었던 것은 헌터의 능력을 잃은 것이 아닐까 했던 부분이다.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게이트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확히는 내 게이트는 살아남았다.
최초로 내 방에 생성되었던 게이트가.
-두 세계의 멸망을 막았습니다.
멸망한 세계가 완전히 복구됩니다. 하지만 생명체의 복구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더는 멸망의 의지가 세상에 간섭하지 못합니다.
지구의 멸망은 취소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게이트는 다른 세상으로 이전되게 됩니다.
단, 대군주 최시우의 게이트는 여전히 존재하며, 그것은 대를 이어 유지될 것입니다.
*지구에 던전이 생성됩니다.
*지구에 헌터로 각성을 하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지구의 오염 물질들이 일제히 사라집니다.
보상은 이것이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게이트라는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지워졌다는 것.
대신에 헌터들은 능력을 유지하고, 헌터들이 활동할 수 있는 던전이라는 것이 세상 곳곳에 생성되었다. 그곳에서 몬스터를 사냥하고, 보상을 받으며, 레벨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게임이 된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마계화 되었던 기자 지구는 여전히 마계로 유지된다. 단, 마왕 파라오는 더는 마계를 늘릴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고 들었다.
양쪽 세상을 오갈 수 있는 게이트는 이제 오직 내 방에 있던 게이트만 남아 있게 되었다.
덕분에 이제는 내 방이 아니라 건물이 지어지고, 사람들의 편의 시설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호야.”
냐앙.
“이걸로 된 거겠지?”
냐앙.
모르겠단다. 하긴 호야가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니까.
“근데 너 진짜 호야 맞지?”
퍽! 퍼버벅!
괜한 소리를 했다가 얻어맞았다. 그러고는 미안한지 내 다리에 올라와서는 꾹꾹이를 한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가 어쩌다가 게이트 주인이 되었고, 호야를 다시 만났고, 대군주가 되었으며, 결혼해서 이제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호야는 내 옆에서 하루 종일 나와 함께 한다.
나쁘냐고?
그럴 리가. 난 지금 이 모든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이런저런 일들로 지구의 인구는 예전의 반으로 줄어들었지만, 그게 꼭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우리 게이트를 통해서 헌터가 될 수도 있고, 자체적으로 각성을 해서 헌터가 될 수도 있다.
언젠가는 이것이 사람들 사이에 갈등의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게이트가 사라지면서 한 가지 좋은 점은 지구에 오염 물질로 규정되어 있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이제는 정말 미세 먼지 같은 것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화석연료는 이제 사용하지 않는다. 마정석으로 대체되는 친환경 에너지가 그 위치를 대신하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인구는 또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에서도, 영지 쪽에서도.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했던 것인지 머리가 복잡하지만 결국 난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고, 이제는 남은 삶을 평화롭게 지냈으면 한다.
우리 호야와 함께.
“호야, 놀러 갈까?”
냐아앙!
우리가 놀러 가는 곳은 세계수가 있는 곳. 거기에는 호야를 어미로 생각하는 세계수의 수호자들이 살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냥 다 고양이들이지만, 나름 호야는 녀석들과 여전히 즐겁게 살아간다.
그리고 난 그런 호야와 아이들을 보는 것이 즐겁다. 우리 가족도, 친구들도 지인들도 이제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평화를 즐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차원학개론을 사랑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