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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7화 (7/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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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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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비밀조직, 연구소, 초인 그리고 탈출 – 6

몸은 벌거벗은 알몸이고 그 와중에 자지는 한 번의 사정으로는 발기가 풀리지 않아 힘차게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었지만, 유진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렸다.

“이송 명령서? 유진은 내 거야! 누가 감히 내 허락도 없이 이송 명령을 내릴 수 있지?”

“위원회의 것입니다. 위원장 공식 인장에, 의장님 사인도 있었습니다.”

“에바!”

“몇 시간 전 집행부 최고 위원회가 소집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마담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마담을 배제한 것으로 보입니다. 연락이 안 되었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은 위원이 4명이나 되고 딱 5명으로 의결정족수 최소 숫자만 맞춰서 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회의 주요 안건은 예상대로 유진의 이송이었고, 제안자는 리페 백작 님이었습니다.”

“리페 백작?”

“네, 베른하르트 리페 백작 님이 맞습니다.”

“씨발, 마리아! 감히 이렇게 내 뒤통수를 친다고!”

분노에 찬 고성이 오가는 와중에 익숙한 이름을 들었지만, 유진은 시큰둥했다.

마리아 리페 박사는 유진을 어린 시절부터 보살펴온 가장 친근한 사람이었고, 첫 경험의 섹스 상대였으며, 첫사랑의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유진에게 온갖 잔인한 실험을 진행한 책임자였고, 결국 견디다 못한 유진과 친구들이 반란을 일으키게 했으며, 반란의 마무리에 살려주겠다고 약속하고는 모두를 죽게 만든 책임자이기도 했다.

유진은 더 이상 그녀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녀의 이야기에 관심 없었다.

유진의 지금 관심은 차라리 잔 루이즈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같은 사람이 아닌 원숭이로 여기는 인종차별주의자인 것은 유진에게 별로 타격이 되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UE는 애초에 자신과 실험체들을 같은 인간으로 여기는 사람은 애초에 없었다.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짓을 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애널 섹스가 언급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예전에는 몇 번 시도한 사람이 있지만, 마담 보른이나 에바와 같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여러 방식으로 섹스를 나눈 상대들도 애널 섹스는 피했다. 그건 정말 여자에게도 유진에게도 마약처럼 강렬하게 짜릿한 경험이었다.

항문이 찢어지고 대장벽이 손상되어 흐르는 여자의 피를 피부를 통해 흡수하고, 그 피와 자신의 페르몬과 분비물이 섞이며 만들어지는 물질로 대상이 되는 여자의 육체와 정신을 갈아 버리는 그 행위는 유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런 면에서 잔 루이즈가 자기 정액이 가진 효과를 원하면서도 섹스는 꺼린다는 점도 좋았다. 정액과 별도로 섹스도 환장하고 좋아하는 마담 보른 같은 여자들과는 달랐다. 물론 마담 보른을 뭉개는 것도 즐겁지만, 꺼리는 여자를 쾌락으로 중독시키고 싫어하면서도 원하는 그 반응을 보는 것은 더욱 즐거울 일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의논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오늘 그 자극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이모, 이거 괜찮은 거예요?”

“괜찮아. 감히 누구도 너를 문제 삼을 수는 없어. 넌 그냥 조직에서 가장 유명한 샘플을 한번 살펴보려고 방문한 것뿐이야. 실제로 아무 일도 없었잖아. 그리고 상황을 보니 마담 보른이 좀 공격받는 듯한데, 명색이 위원회 9인 위원 중 한 명이야. 그녀가 위원회에서 제명이라도 당하지 않는 이상 큰 문제는 생길 수가 없어.”

“그렇다고는 해도 실망스럽네요. 기껏 초대하고 이렇다니.”

“그렇다기보다 네가 초대받아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어. 형부가 여러 사정으로 조용히 계시기는 하지만, 조직 내에서는 그 누구도 감히 가볍게 보지 못하는 분이잖니. 너의 움직임이 마담 보른의 경쟁자들에게 그만큼 위협적으로 보인 걸 거야.”

“어쨌든 실험체의 정액을 테스트해 보지는 못하겠네요.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좀 기다려보렴. 내가 어떻게든 다시 기회를 만들게.”

“가능할까요?”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당장 확인은 안 되지만, 조직의 그 누구도 감히 드 엘제크를 무시할 수는 없지. 나만 믿으렴.”

잔 루이즈와의 섹스를 기대하던 유진은 두 사람의 대화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지를 향하고 있는 감각을 차단하고 혈류를 제한했다. 오늘의 섹스 일정이 끝난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꼴사납게 자지만 세우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몸에 가해진 제한으로 초능력이나 육체 능력에 제한이 많았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청각을 다시 마담 보른 쪽으로 옮겼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도는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닥터 리샤르. 나야. 지금 유진의 이송이 준비되고 있어. 목적지는 마드리드 연구소일 것으로 추정돼. 닥터 요하임이 직접 유진을 이송하기 위해 방문했어. 이거 당신이 원하던 기회가 될 수 있겠지? 단지 주의할 것은 이 이송을 처음 계획한 것은 리페라는 거야. 리페가 요청한 회의에서 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하임 박사가 유진을 차지한 것이니 그 사이에 무슨 음모와 문제가 있을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어. 그 점은 당신이 알아서 해야 해.”

놀랍게도 이 상황에서 마담 보른은 유진 자신을 빼돌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입에서 언급된 닥터 리샤르의 이름이었다. 닥터 리샤르는 원래 마리아 리페 박사의 담당이었던 유진에게 허락되지 않은 실험을 몰래 해서, 유진을 최초로 초인으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 성과는 놀라웠지만, 닥터 리샤르의 그 실험 성공은 성과로 인정받지 못했다.

유진 자신은 초인은 아니어도 원래부터 초능력을 가진 사이커로 마리아 리페에 의해 세심하게 관리받고 있었고, 닥터 리샤르가 유진 자신에게 한 실험은 닥터 리페가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던 것을 가로챈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닥터 리페가 유진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연구를 사보타주하기 위한 악의로 진행된 실험이었다.

실험의 성공은 놀라웠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행운으로 결과를 얻은 닥터 리샤르 본인 외에 그 누구도 그 성과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유진은 마리아 리페의 담당으로 다시 넘어가서 그녀가 조직 내에서 대성공하는 바탕이 되었다.

닥터 리샤르는 어쨌든 기적 같은 실험의 첫 성공의 성과로 처벌은 면했지만, 그 후 마리아 리페 박사의 성공은 자신의 성과를 훔친 것이라고 주장했고, 유진에 대한 기득권을 꾸준히 주장했다.

그건 몹시 추하고 찌질한 행위였지만, 그 덕분에 마리아 리페 박사 반대파의 지원을 받아 유진에 관한 연구 결과를 공유받아 초인 실험도 꾸준히 진행할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유진에 대한 실험이 그의 성과가 아닌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후 얻은 성과는 형편없었고, 명백하게 닥터 리페나 또 다른 경쟁자인 닥터 요하임에 비해 초라한 결과만 내고 결국은 주류에서 완전히 밀려 버렸다.

무엇보다 유진이 가장 증오하는 인물 중 하나였고, 반란 당시에는 연구소에서 쫓겨난 지 오래였던 탓에 죽일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쉬웠던 인물이었다.

증오스러운 인물이기에 그 이름이 오히려 더 반가웠다.

“마리아, 접니다. 요하임 박사가 예정대로 도착했는데, 마담이 닥터 리샤르와 연락했습니다. 추가 변수를 주의하십시오.”

놀랍게도 에바는 마리아 리페와 통화하고 있었다. 마담 보른의 심복 중의 심복인 그녀가 마리아 리페와 내통하고 있다는 점은 유진에게도 정말 놀랄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대화 속에서 유추할 수 있는 그녀의 마음 또한 그랬다.

“유진과의 관계에 대한 약속은 지켜줄 거라고 믿겠습니다.”

마담 보른이 닥터 리샤르를 이용해서 자신을 중간에 빼돌리려는 것이 분명한 것처럼, 마리아 리페도 뭔가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에바는 자신에 대한 사적인 감정으로 그런 마리아 리페에게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에바를 마담 보른 같은 UE 수뇌부처럼 혐오스러운 늙은 마녀 수준으로 혐오하지는 않아도, 그녀도 그저 자신을 강간하는 욕망 가득한 여자 중의 하나이자, 이 역겨운 조직의 일원이라고 여기고 있던 유진에게는 정말 뜻밖의 모습이었다.

반란 당시 동료 중 하나였던, 로자처럼 실험체들과 함께하는 과정에서 동정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는 경우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에바가 그런 사람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워낙 철저한 엘리트의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유진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누가 무슨 생각이고, 누가 어떤 마음인지는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반란 이후 3년간이나 갇혀 지낸 이 연구소를 드디어 벗어난다는 것과 그 과정이 그냥 평범한 이송이 아니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었다.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처럼 지내기는 했어도, 마담 보른과 이 연구소는 유진의 육체 조각과 부산물들을 탐내기만 했을 뿐, 그 과정에서 진짜로 유진이 위험해지는 것은 피했다. 또한 유진은 나름 주기적인 섹스를 통해 고통을 견딜 여유를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닥터 요하임은 유진을 상대로 하는 가장 위험한 실험 들을 주장하는 인물이었고, 반란 처리 과정에서 실험체들을 굳이 살려서 관리하는 것보다 다 죽여서 새로운 실험체를 만드는 재료로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하고, 실제로 실행에 옮긴 급진과격파였다.

그의 마드리드 연구소에 보내는 시간이 이곳보다 더 나쁠 것은 분명했다.

이송 중간에 마담 보른의 뜻에 따라 닥터 리샤르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더 최악이었다.

닥터 요하임은 차라리 능력이라도 있지만, 닥터 리샤르는 능력도 없이 자존심만 내세우며 행운에 기대는 인간이었다.

그의 말도 안 되는 실험에 고통스럽게 죽어 나간 실험체들의 엄청난 숫자가, 3년 전 유진과 동료들이 반란을 일으킨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또 다른 변수인 마리아 리페도 별로 반갑지 않다.

그녀가 젖먹이 아기인 유진을 지목해 인신매매로 사들였고, 그래서 오늘날 유진을 이렇게 만든 원흉이었으니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혼란. 혼란이 기회가 되어 줄까? 탈출의 기회가.’

쉽지 않은 이야기다.

유진 같은 위험한 실험체를 이송하는 과정은 실험체의 탈출 따위를 허용할 만큼 간단하지 않다. 유진의 지금 육체로도 평범한 사람들보다야 훨씬 우월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유진을 연구해서 만들어져 조직의 무력 근간이 된 슈퍼 솔져들과 비교하면 명백하게 열세였다.

청각이나, 초지각 등 여전히 특별한 몇몇 능력들은 초월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중화기로 무장한 슈퍼 솔져 들이나, 그런 슈퍼 솔져도 사냥한다는 전직 특수 부대 출신의 인간 병기 용병들을 상대로는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건 최고의 상태에서 다수의 동료와 함께했던 반란의 과정에서도 쉽지 않음이 증명되었던 일이었다.

‘그래도 기대할 수밖에 없나?’

어렵고 힘들더라도 탈출의 기회를 노리지 않을 수 없고,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거라도 꿈꾸지 않으면 살아갈 의미가 없으니까.

“마담, 닥터 요하임을 더 이상 막아서기 어렵다고 합니다.”

자기들끼리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한 사이, 기다리다 못한 연구소장 유센코 박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마담 보른을 재촉했다. 유센코 박사는 마담 보른이 닥터 요하임의 명령서를 무력화해주길 바라는 표를 내었지만, 마담 보른은 그렇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녀를 배제한 위원회 소집과 의결은 문제의 소지가 있었으나, 마담 보른이 그걸 항의했다가는 유진과의 오늘 일정이 언급되며 비웃음을 사게 될 테고, 마담 보른은 그런 체면 손상을 감당할 수 없었다. 반대파도 그걸 알기에 일을 이렇게 처리한 것이었다.

“흥, 닥터 요하임이 아주 기고만장했나 보군. 나중에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지만, 지금은 굳이 마주칠 필요 없겠지.”

마담 보른은 굳이 구차해 보인다는 것을 알면서 한마디하고 몸을 일으켰다. 잔 루이즈와 마담 앙주에게 최소한의 체면을 차리기 위함이었다.

마담 보른, 에바, 잔 루이즈, 마담 앙주는 모두 서둘러 방을 나섰다.

이 연구소의 소장으로, 현재 유진의 담당자이자 책임자인 닥터 유센코 박사만이 남았다. 그녀들이 떠난 뒤처리를 하고, 곧 이곳에 도착할 닥터 요하임을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유진은 닥터 유센코에게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연구소장이고, 책임자라고는 하지만 그녀는 유진과 거의 접점이 없었다. 그녀는 유진의 신체 적출 수술에 참여한 적도 없고, 섹스에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사실 후자는 유진에게도 꽤 뜻밖이었다.

연구소장으로 그녀는 하고자 하면 얼마든지 유진과 섹스할 기회가 있었고, 그 섹스가 주는 효과를 알면서도 한 번도 섹스를 시도한 적이 없었다. 그 고고한 척하던 마리아 리페 조차 주기적으로 유진과 섹스를 했던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그래서 그런 그녀가 갑자기 자기 손에 뭔가를 쥐여 주고 말을 건넨 순간 유진은 정말 놀랐다.

“‘더 키’다. 쓰는 법은 너도 알지? 살고 싶다면 이번이 유일한 기회다. 마드리드에 도착하면 절대로 살아서 거기서 다시 나올 일은 없을 거야. 살아난다면 두 번 다시 보지 말자.”

‘더 키’는 유진의 초인적 능력과 사이킥 파워를 억제하고 있는 유물인 ‘바벨의 기억’을 유진에게 고정하는 일에 사용되어 소모된 고대 유물이었다. 당연히 반대로 ‘바벨의 기억’의 고정을 풀어 억제된 유진의 능력을 회복하는 일에도 사용할 수 있었다.

유진은 묻고 싶었다.

조직 내에서도 별 볼일이 없는 취급을 받는 그녀가 어떻게 이런 귀한 물건을 손에 넣은 것인지, 그리고 그 귀한 물건을 왜 하필 관심도 보이지 않던 자신에게 주는 것인지. 이 갑작스럽고 놀라운 사태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물을 기회가 없었다.

“기억해라. 7B Avenue Eudoxie Nonge, 97490 Saint-Denis, 프랑스. 그리고 ‘더 키’는 지금 당장 숨겨. 닥터 요하임이 거의 도착했다.”

닥터 유센코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유진에게서 떨어져 거리를 벌렸다. 조금 멀리서 딱딱한 군홧발 소리와 함께 다수가 다가오는 소리도 들렸다. 닥터 유센코의 언급대로 닥터 요하임이 곧 도착할 듯했다.

유진은 오른손에 쥐어진 작지 않은 열쇠 크기의 유물 ‘더 키’를 감싸 쥐었다. 알몸에 사지가 쇠사슬에 묶여 쇠고리로 바닥에 고정된 유진에게 물건을 숨길만 한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유진은 그 금속 덩어리를 자기 손목 안쪽으로 찔러 넣었다.

고통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곳이 동맥이 지나가는 급소라는 점도 중요하지 않았다. 고통도 위험도 지금의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건 3년 만에 드디어 가지게 된 진정한 희망이었다. 정말로 위험할지라도 망설이지 않았을 텐데, 사실 위험하지도 않았다.

‘더 키’는 그렇게 유진의 손목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 팔뼈 사이에 자리 잡았다. 상처 또한 금방 아물었다.

“예상했지만, 그래도 참으로 추잡한 꼬락서니군.”

곧 도착한 닥터 요하임이 알몸으로 바닥에 고정되어있는 유진을 보고 비난을 내뱉었지만, 유진은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그의 말에 ‘더 키’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니까.

유진은 웃을 수 있었다.

유진을 억압하는 족쇄인 ‘바벨의 봉인’이 그런 유진의 얼굴을 가려주어서, 누구도 그런 유진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유진은 진짜로 환하게 웃었다.

난생 이렇게 기쁜 적이 있었는지 싶은 정도로 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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