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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8화 (8/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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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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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비밀조직, 연구소, 초인 그리고 탈출 – 7

유진의 이송이 시작되었다.

닥터 요하임은 이송을 위해 가져온 장갑 수송 차량의 짐칸에 굵은 쇠창살이 달린 철장을 설치하고, 그 철장 안의 두꺼운 금속 바닥에 유진을 제어하는 유물의 하나인 ‘이름 없는 사슬’을 고정했다.

쇠로 된 철장 바닥에 고정된 사슬, 두꺼운 쇠창살이 달린 철장, 그리고 그 철장을 총기로 겨누고 감시하는 경비병력, 그 경비병력이 타고 있는 장갑 수송 차량, 그리고 그 장갑 수송 차량을 사방에서 에워싼 6대의 SUV들과 그 SUV들에 4명씩 탑승한 전투원들까지 있었다.

닥터 요하임은 정말 철저하게 이송 과정을 준비했다.

그도 바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진 유진에 대한 이송이 무난하게 진행되지 않으리라는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하다못해 장갑 수송 차량조차 보안 업체들이 은행 현금 수송이나 귀중품 수송 등에 사용되는 장갑 트럭 정도가 아니라, 군용 장갑차를 개량한 모델을 가져왔다. 핀란드 파트리아의 AMV를 독자적으로 개조한 물건으로, 대전차 미사일 같은 것은 못 막지만, 어지간한 지뢰나 대물 저격총 따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물건이었다.

민간 도로에서 굴리기에는 너무 눈에 띄는 물건이지만, 닥터 요하임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도 일부러 노렸다. 비밀 유지가 중요한 조직의 입장에서 별로 좋은 평가 받지 못하겠지만, 대신 그만큼 습격 같은 위험한 일을 당할 확률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해가 있었다.

“닥터, 바젤의 독일쪽 국경 검문소에 검문이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독일군이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독일군? 그게 무슨 소리야? 경찰도 아니고 군이 왜 검문 작업을 직접 해?”

“테러 경보가 떴다고 합니다. 그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전에 협의가 되었던 대로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바젤 쪽은 막힌 건가? 다른 쪽은?”

“바젤 주뿐 아니라 베른 주, 아르가우 주 쪽까지 전부 검문이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취리히를 확인하고 있기는 한데, 그쪽이라고 빠졌을 것 같지 않습니다.”

“스위스 북부가 다 막힌 건가? 프랑스 쪽은?”

“그쪽은 문제없다고 합니다.”

닥터 요하임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은 현재 독일의 5번 고속도로를 통해 스위스 바젤로 이동하고 있었다. 바젤과 베른을 거친 다음 이탈리아의 밀라노를 통과해 제노바까지 가는 것이 1차 목표였다. 그 후 제노바 항구에서 미리 준비한 화물선을 이용해 스페인의 발렌시아 항구로 이동하는 것이 2차 목표, 발렌시아에서 최종 목적지인 마드리드까지 이동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프랑스를 거쳐 마드리드로 육로를 따라 쭉 이동하는 것이 훨씬 더 짧고 편한 길이지만, 경쟁자인 리페 가문이나 보른 가문이 프랑스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서 프랑스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북부를 가르는 피레네산맥은 과거부터 매우 험난한 지형으로 유명한 곳이었으며, 현대에도 인적이 드문 오지이기 때문에,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져 이상하지 않은 위험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이건 너무 노골적이었다.

”동쪽으로 이동한다.“

”닥터?“

”일단, 콘스탄츠 쪽으로 이동하고, 거기도 막혔으면 아예 리히텐슈타인으로 통과한다. 거기까지 막지는 못하겠지. 그쪽으로 협조 요청해.“

”리히텐슈타인은 리페 가문의 영향권입니다만?“

”거기서 문제가 생기면 리페 가문이 책임을 져야 하겠지. 거기에 리히텐슈타인과 오스트리아 쪽은 합스부르크의 전통이 남아 있어. 리페 가문이 제법 목소리를 낸다고 해봐야 그쪽의 괴물들을 깨울 위험은 감당하지 못할 거다. 콘스탄츠 쪽이 열려 있으면 문제 되지 않을 거고.“

결국 이송행렬은 5번 고속도로를 벗어나, 프라이부르크를 통과해 31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그건 명백한 실수였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스위스 바젤, 프랑스의 뮐루즈가 겹쳐 있는 3국 국경 지역은 서유럽에서도 가장 번화한 지역 중 하나지만, 프라이부르크 동쪽 지역은 스위스 인접 지역답게 산악지형이었고, 독일 땅이라는 선입견에 어울리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걱정하던 피레네산맥 정도의 험지는 아니어도, 조용히 전투를 벌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닥터 요하임과 그의 부대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정찰을 위해 앞서 나가던 선발 팀으로부터 긴급 무선이 들어왔다.

”전방에 장애물!“

”씨발, 경로를 어떻게 예측한 거야!“

물론 아무 생각도 없이 산길을 탄 것은 아니었다. 험지이기는 해도 도로망 자체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일부러 최적의 경로를 피해서 예측을 어렵게 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예측 당한 것이었다.

”돌파 가능한가?“

”무리다. 도로 좌우까지 숲 쪽 영역까지 통나무와 바위가 널브러져 있다.“

”차 돌려. 뒤쪽으로 다시 돌아간다.“

늦었다고 생각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후퇴를 시도했다. 하지만 불규칙한 이동까지 예측해서 최적의 함정에 몰아넣은 적이 그런 것을 용납할 리가 없었다.

후방 쪽 SUV의 무전에서 비명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피격! 피격! 엔진이 날아갔다! 주의해라. 적이 대물 저격총을 사용한다! 차량 버리고 하차한다.“

적이 이미 지나온 후방에 매복해 있었다는 소리였다.

”닥터! 도로 위는 위험합니다. 하차해야 합니다!“

적이 도로 주변의 숲속에 매복하고 있다면, 도로 위에 있는 차량은 그저 표적이 될 뿐이었다.

유진이 감금된 장갑차는 어지간한 대물 저격총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있지만, 다른 팀원들이 쓰고 있는 SUV는 아무리 방탄 개조가 되어 있다고 해도 일반소총 정도가 한계였다. 장갑차도 대물 저격총 이상이 동원되면 장담할 수 없었다.

”나는 여기서 기다리지. 전투는 팀장이 맡아주시오.“

”괜찮겠습니까? 타겟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유진이 있지. 습격한 놈들이 누군지 몰라도 유진을 아예 말살할 생각은 없을 거요. 탈취를 시도할텐데, 팀장의 팀이 남아 있는 동안 장갑차를 직접 공격하지는 못하겠지. 팀장의 팀이 다 당하면 어차피 죽는 것은 마찬가지잖소. 밖에 나가서 짐이 될 생각은 없소.“

닥터 요하임은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침착했다. 전투팀의 팀장 호세 바렐라는 그런 닥터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둘은 꽤 위험하게 여길 수 있는 지금 상황에도 별로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위기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피하려고 노력하기는 했지만, 기습당하는 것은 사실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고, 둘은 이런 상황에 충분히 대비했다.

이송팀의 멤버들은 예전에 유진과 실험체들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던 백전연마의 베테랑들이었다. 공격해온 상대가 누군지는 몰라도 수백 명이 동원된 것이 아니라면 충분히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엔리케, 남아서 닥터를 경호하고, 실험체를 감시해라.“

”전 팀원. 하차 전투. 차량을 벗어나서 숲으로 들어간다. 개별 난전으로 적을 상대하라. 감히 우리를 공격한 병신들에게, 우리가 어떤 악마인지 가르쳐 준다.“

”예, 캡틴!“

바렐라 팀장은 팀원 중 한 명만을 남겨 두고는 남은 팀원들 전원을 데리고 하차했다. SUV를 이용해서 따로 이동 중이던 다른 팀원들도 모두 차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 엄폐를 시작했다.

기습당하기는 했지만, 아직 죽은 사람은 없었다.

차에서 하차해서 숲으로 들어가는 과정이 약간 위험하기는 했는데, 도로 가운데에 차를 세워두고 내린 것이 아니라 도로 밖의 나무 주변에 주차해서 엄폐 후 하차한 것이라서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했다.

물론 그 와중에 저격으로 여길만한 공격이 계속 쏟아졌고, 그래서 죽지는 않았어도 부상한 인원은 꽤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적의 정체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했다.

팀원 중 원래 저격수 출신인 마크가 말했다.

“지금 저격하는 새끼들, 저격 자체는 정밀한데, 저격수가 아니다. 저격수가 한발로 끝낼 각오 없이 대충 보이면 쏜다고? 이거야 무슨 컴퓨터 게임도 아니고.”

그의 파트너인 우고가 덧붙였다.

원래 마크의 관측수 출신이었던 그는 습관적으로 관측경을 가지고 다니는데, 그것으로 조심스럽게 매복한 적들을 살피고 있었다.

“이 새끼들 엄폐도 엉망이다. 몸은 제법 잘 숨기고 있는데, 관측경과 조준경 반사광이 간간이 노출되는 놈들이 있다.”

“그건 무슨 병신 같은 소리야. 한 마디로 이 새끼들 괜찮은 것 같으면서 개판이라는 건가?”

그들의 말을 팀의 2순위 전술 지휘관 율리히가 받았고, 이내 다른 팀원들도 하나둘 끼어들며 대화가 진행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격은 잘하는데, 전투는 개판이라는 거지.”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같은데?“

“어, 이 새끼들 요즘 유행한다는 그 신세대 슈퍼 솔저 병신 새끼들이다.”

“씨발.”

슈퍼 솔저.

강화인간 또는 개조인간 군인.

각자가 동원할 수 있는 첨단 기술, 예를 들자면 유전자 변형이나 기계 신체 시술 혹은 약물을 이용한 육체 강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체를 개조하여 기존의 평범한 인간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강력하고 다재다능한 군인을 만들어내겠다는 반쯤 아니 완전히 미쳐버린 생각에서 시작된 계획으로, 세계 멸망의 위기에서 미친 듯이 군비 경쟁을 벌이던 냉전 시대의 산물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세뇌와 최면으로 특별한 요원들을 만든 CIA 이야기가 유명했고, 소련에서는 완전 기계 몸체에 개나 사람을 연결한 사이보그를 만들었다는 음모론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어쨌든 냉전 당시에는 유전자 변형과 약물, 특수 수술 등이 주류였고, 인체를 기계로 대체하는 목표도 있었으나, 냉전이 끝난 지금 각종 부작용과 종교적, 도덕적 반발에 밀려 그러한 방법들은 대부분 사장되었다. 현대에는 엑소 스켈레톤 같이 외골격을 사용하는 방법이 주류로 부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식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이고, 이들이 사는 세계에는 지금 그들이 이송하고 있는 유진의 존재 이후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유진과 유진에게서 유래한 초인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유전자 개조 약물이나, 신체 조직 이식 등을 통해서 슈퍼 솔져가 양산되기 시작된 상황이었다.

바렐라가 왁자지껄 떠드는 부하들의 대화를 진압했다.

“제군들. 적이 조직 내에서 동원된 다른 계파의 놈들일 것이라는 점은 미리 모두 알고 있지 않았나. 차라리 잘 되었다. 끽해봐야 최근 2~3년 이내에 급조된 부대 중 하나겠지. 전쟁터에서 굴러먹은 베테랑보다 차라리 이런 놈들이 더 쉽다. 우리 쪽에서 주도적으로 놈들을 진압한다. 교전 개시.”

“라져 댓.”

장난스럽게 대답한 마크가 자신의 총기를 거치하고, 상대 저격수를 노렸다. 정확하게는 저격수라기보다 근거리 교전에서 조금 더 치명적이고 세밀한 공격수 역할을 맡는 지정사수 포지션의 적이었다.

마크도 이번 작전에는 따로 본인의 저격총을 가지고 오지 못해서, 저격수가 아닌 지정사수 임무였다.

그런 면에서 현재 그가 사용 중인 SIG SG556은 일반적인 돌격소총이면서도, 저격 소총에 준하는 정밀도를 가지고, 저격을 위해 양각대까지 기본으로 딸린 지정사수소총에 가장 알맞은 물건이었다.

Km 단위도 아니고 몇백m 정도의 거리에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서 과분했다.

탕!

“명중.”

살펴보고 있던 우고가 그 탄환의 명중을 확인했다. 하지만 가슴에 철갑탄이 명중한 것이 분명히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쓰러지지 않았다. 잠시 움찔하던 상대가 오히려 마크와 우고쪽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안 죽었다, 피해.”

우고의 경고에 엎드려 쏴 자세였던 마크가 재빨리 옆으로 굴렀고, 우고도 반대쪽으로 몸을 던졌다.

둘이 있던 장소로 연달아 총탄이 스쳐 지나갔다.

바위 뒤에 숨어 안전을 확보한 우고가 무전으로 소리를 질렀다.

“씨발, 전원 주의해라. 고작 200m 거리에서 7.56mm 철갑탄이 명중했는데도 흠도 안 났다. 이 새끼들 걸치고 있는 거 일반적인 최고 등급 방탄복이 아니다. 저 새끼들 초인급 중장갑을 걸치고 있다.”

별로 좋지 못한 소리였다.

그리고 그 저격을 신호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엄폐물을 이용해서 원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던 전투의 양상이 바뀌었다. 습격자들이 어느 정도 몸이 노출되는 것을 각오하고 거리를 줄이기 시작했다.

“적이 몰려온다!”

“쏴!”

상대를 향해 돌격하며 비처럼 총탄을 퍼붓는, 구시대적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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