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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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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비밀조직, 연구소, 초인 그리고 탈출 – 8
바렐라의 팀과 습격자들 사이에서의 전투는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게임 같은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특히나 습격자들의 구성이 그런 느낌이 강했다.
습격자 중 일부는 비교적 원거리에서 저격 포지션을 계속 유지했다. 바렐라의 팀원들은 적이 달려들어 온다고 같이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엄폐물을 찾아 거리를 유지하며 싸우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그 저격수들에게 노출되어 희생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수십 명이 총을 들고 사방에서 싸우는 와중에는 운이 없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호세가 당했다! 마크! 바렛 저격수 좀 어떻게 해봐!”
바렐라의 팀원 중 호세라는 이름의 팀원이 양측 합쳐 첫 사망자였다.
엄폐 중이던 그의 머리에 그가 엄폐물로 사용 중이던 나무를 꿰뚫은 탄환이 틀어박혔다. 위치와 거리상으로 보아서 노린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맞은 것이 분명했지만, 기갑 차량의 장갑판이나 콘크리트 벽도 꿰뚫는다는 50구경 탄환은 나무를 꿰뚫은 것도 모자라 방탄 헬멧까지 가볍게 관통해서 호세의 머리를 부숴버렸다.
곧바로 역 저격이 행해졌다.
마크의 7.65미리 탄환은 상대의 탄환처럼 엄폐물을 넘어, 방탄 장비까지 꿰뚫을 정도의 위력은 없었지만, 현재까지 나온 그 어떤 방탄 장비도 또 어떤 슈퍼 솔져도 눈으로 총탄을 막을 방법은 없었으니 상관없었다.
“잡았다!”
마크의 저격이, 바렛 사수의 조준경을 깨고 들어가 상대의 눈알을 관통해 뇌까지 박혀 버렸다.
저격전은 포격전과 비슷해서, 총을 발사하는 것으로 위치를 파악당해 역저격이 위협이 있었다. 그래서 자주포가 그런 것처럼 공격을 가했으면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상대방의 보복이 있기 전에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았다. 상대는 자신의 중장갑을 믿고 그런 원칙을 우습게 여겼다가, 보호되지 않는 유일한 부분이 눈에 총알을 맞는 초정밀 저격으로 죽었다.
상대방이 억울할 일이기는 했다. 헤드샷은 사실 실전에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사격이었다. 저격총이 아무리 좋아도 타겟의 몸이 아닌 머리를 노리는 저격수는 없다. 사실 마크의 동료인 호세의 죽음이 그랬던 것처럼, 이것도 운에 가까웠다. 온몸을 중장갑으로 두르고 있는 적을 대상으로 노릴 수 있는 부분이 머리 정도밖에 없는 상황에 어느 정도는 행운에 기대하며 쏜 것이었다.
수백 미터 이상 수 Km 단위에서 벌어지는 저격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의 저격 거리는 200~300미터에 불과했다. 그 정도면 초정밀 사격이 가능한 총기와 세계 최고 수준의 스나이퍼 조준이 합쳐지면, 그런 묘기도 가능한 거리이기는 했다.
저격수가 죽자 옆에 있던 관측수가 그의 바렛을 들고 이동했다. 마크와 그의 파트너 우고도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이 정도 짧은 거리에서의 교전 중에는 사실 관측수의 가치가 많이 떨어지지만, 지금처럼 저격 중의 아군을 보호하거나, 저격수 사후 그의 총기와 포지션을 이어 받는 등의 효과를 노릴 수 있었다.
이제 양쪽 저격수들은 서로 자리를 옮겨가며 서로 상대 저격수를 노리는 싸움에 돌입했다. 어설프게 아군을 지원하다가 역저격을 당할 위협이 있으므로, 서로 간에 저격이 자제되었다.
그래서 싸움은 위험한 저격수들을 빼고 일반적인 소총으로 무장한 이른바 돌격병들의 싸움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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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자들의 모습은 꽤 이질적이면서도, 누구에게나 익숙한 그런 모습이었다.
그들은 어지간한 소총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어마 무시한 중장갑을 걸치고, 손에는 일반적인 소총이 아니라 드럼 탄창을 낀 FN 미니미 같은 경기관총을 들고 총탄을 퍼부어 대고 있었다.
람보를 연상시키는 그 모습은 아예 말도 안 되는 영화적 과장은 아니었지만, 꽤 어이 없는 광경이기는 했다. 경기관총의 압도적 반동을 몸으로 감당하면서 사격을 하는 것은 특수부대에서 뼈를 묻었다는 소리를 듣는 초일류 베테랑들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훈련이라면 몰라도 실전에서 쓸 일은 없는 기술이었다.
습격자들은 명백하게 그 정도로 실력있는 베테랑이 아님이 분명한데도, 자신들이 입고 있는 중장갑의 무게와 평범한 인간을 가볍게 웃도는 압도적인 근력으로 그걸 가능케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총알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바렐라의 팀원들에게 몹시 위협적인 상황이었다.
바렐라의 팀원들은 최적의 포지션에 몸을 엄폐하며 반격을 가했지만, 그들이 주무장으로 사용 중인 소총의 화력은 적의 방어력을 제대로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도 최고 등급 방탄복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자신들처럼 최고 등급 방탄복으로 무장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 개발된 6.8mm탄환을 사용하는 신형 소총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습격자들의 중장갑은 소총이 아니라 대물 저격총은 있어야 할 정도로 막강했다.
자신감 넘치던 처음의 마음과 달리 교전 비율에서 바렐라의 팀이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그래 봐야 저격으로 죽은 인원까지 다 합쳐도 사망자는 바렐라의 팀에서 5명이 죽고, 상대방이 3명이 죽은 것이 다였지만, 부상자의 발생이 바렐라 팀쪽에 압도적으로 높았다.
물론 베테랑인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엄폐하고 있는 방위를 갈아 버릴 것처럼 쏟아지는 총탄을 피해 몸을 숙이며, 바렐라가 무전으로 외쳤다.
“율리히,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너무 밀리고 있어!”
“거의 다 왔습니다.”
팀의 서브 리더인 율리히가 일부 인원을 데리고 좌우로 돌아 적의 측면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바렐라의 팀이 적의 화력에 압도당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것이었다.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총기의 특성으로 같은 숫자로도 화력이 부족한 판에, 인원까지 많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전술적으로 그런 위험을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습격한 강화병들은 중장갑 때문에 아무래도 시야가 좁았고,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경기관총의 시끄럽기 그지없는 소음 때문에 주변의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물론 틈틈이 주변을 둘러보며 시야를 확보했고, 총기 소음은 걸러내고 주변의 소리는 증폭해주는 전술 헤드폰을 사용 중이기는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2년 이상 철저하게 훈련받았고, 실전 경험도 두어 번 있었지만, 아직 전투 흥분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는 베테랑은 아니라는 점이 가장 컸다.
가장 외곽 쪽에 배치되어, 정면만이 아니라 측면까지 경계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코드 네임 제타는 설마 자신이 지금 지나온 후방으로부터 적이 접근할 것이라는 생각도 못 했다.
마치 표범이나 늑대처럼 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이 그런 제타의 등 뒤로 접근하는 데 성공한 율리히가 그런 제타의 바로 뒤에서 자신의 총을 겨눴다.
펌프 작동식 샷건의 명품, 베넬리 M4 샷건이었다.
쾅!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12게이지 샷건 탄이 아니라 거대한 샷건 구경 자체가 하나의 탄환으로 되어 있는 슬러그 탄이 제타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텅스텐 탄심을 넣어 관통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날탄형 고관통 탄심은 근거리에서도 소총탄 따위는 가볍게 막아내는 중장갑 헬멧을 가볍게 뚫고 들어가 머리를 통째로 날려 버렸다.
율리히를 시작으로 좌우로 흩어져 이동했던 6명의 인원이 5명의 적을 정확하게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샷건을 사용하는 인원은 율리히를 포함해서 세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른 인물도 모두 무난하게 적을 처리했다. 철갑 관통용 탄심을 가진 50구경 BMG탄을 사용하는 권총인 데져트 이글이나 매그넘 리볼버를 이용한 덕이었다.
이런 총기들은 특이한 취향을 가진 일반인들이 멋을 부리기 위해서나 사용하는 총이지, 실제로 실전을 벌이는 군인이나, 경찰, 특수부대 등은 거의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무기이지만, 바렐라의 팀원들은 모두 주무장이나 부무장으로 하나씩 갖추고 있었다.
그들이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라 슈퍼 솔져나 초인 실험체들을 주로 사용하는 특수부대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유진 같은 괴물은 대전차철갑탄을 박아 넣어도 한두 발로는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을 3년 전 반란 당시에 직접 겪어본 당사자들이었다. 당연히 이번에 유진을 수송하는 작전을 진행하면서 모두 이런 오버 파워의 무장을 하나둘씩 필수적으로 갖추었다. 그것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몇을 제압하고, 근거리에서 시체를 확인한 덕분에 그들은 추가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율리히는 자신이 죽인 상대방의 시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미친놈들이 불법 작전을 펼치는 비밀 부대 주제에 자신들이 누군지를 표시하는 부대 마크를 달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도 율리히도 잘 아는 부대의 것이었다.
“씨발.”
율리히가 욕설과 함께 전체 통신으로 상황을 알렸다.
“이 새끼들, 레퀴프 트루아다. 전원 주의하라.”
“율리히. 발루아가 기습에 실패했다. 기습에 성공했던 인원 중에서도 래프와 얀은 반격에 당했다. 기습조는 즉각 개별적으로 최적의 루트를 찾아 후퇴해라. 교전 중인 인원들도 장갑차 방향으로 서서히 물러나라. 차량 이송은 포기하고 개별적으로 흩어져 퇴각한다.”
율리히의 통신이 끝나자마자 바렐라는 자신감 넘치던 기존의 태도를 버리고 즉각적인 후퇴를 결정했다.
상대의 정체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초인 실험체 반란 이후 지난 3년간 수도 없이 많은 슈퍼 솔져 부대들이 만들어졌지만, 레퀴프 트루아는 대충 필요에 따라 비밀스럽게 동원되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그저 그런 실험적 부대가 아니었다.
레퀴프 트루아, 영어로 번역하면 팀 트로이.
이 부대는 UE 내에서도 3개 정도밖에 안 되는 정식 편제 슈퍼 솔져 부대였다. 영국 계파의 룰스 오브 스트론세이, 러시아 계파의 몰니야 임페라토라 프랑스 계파의 레퀴프 트루아가 그 3대 부대였다.
이들은 그냥 육체 개조로 만들어진 어설픈 초인능력에 기대는 실험체 부대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본격적으로 슈퍼 솔져 실험의 가장 성공적인 결과만을 모아서 정성을 다해서 만든 후, 바렐라나 율리히 같은 전 세계 최고의 베테랑 특수전 교관들이 자신들이 가진 모든 노하우를 다 동원해서 최정예로 훈련 시킨 부대였다.
비슷한 부대로 바렐라가 속한 계파에서도 팀 아스그라드 라는 비슷한 부대가 있고, 이 부대는 바렐라가 직접 관여해서 그야말로 완벽하게 훈련 시키기도 했었다. 팀 아스그라드의 작전 수행 능력이나 전투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서, 별다른 대책 없이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숫자로 붙으면 바렐라와 그의 팀원 같은 베테랑들도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레퀴프 트루아 혹은 팀 트로이는 그런 팀 아스그라드 보다 명백하게 윗줄이라고 평가되는 부대였다. 상대를 미리 알고 있었으면 또 모를까, 이런 식으로 기습당한 상태에서 정면 교전을 펼쳐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후퇴한다. 닥터. 닥터도 듣고 있었겠지? 어떻게 할 거요? 차량은 버리고 도보로 이동해야 할 것 같은데, 유진은 두고 가겠소?”
“안돼. 최후의 상황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내줄 수는 없어. 끌고 간다.”
“안전은? 우리가 없어도 괜찮을까?”
“봉인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요. 사슬도 추가로 사용하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제어는 가능할 거요.”
“알겠소. 곧 합류할 테니, 미리 준비하시오. 전원 통신 차단. 침묵을 유지하고, 3차 집결 장소에서 보자.”
이런 작전에서는 설마 이용할 확률이 절대로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해도, 사고가 발생할 경우를 예비해, 경로상의 중간마다 후퇴 후 재집결을 위한 집결 장소들을 정해두는 법이었다.
바렐라의 팀원들은 뭉쳐서 움직이면 위험한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혹은 두세 명이 짝을 지어서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레퀴프 트로이의 전투 병력은 바렐라의 팀원들보다 압도적인 무장과 육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전면 교전 시에나 의미가 있는 법이었다.
그들은 개별로 이런 베테랑들을 상대할 정도의 기량은 없었고, 가벼운 무장을 갖춘 특수부대를 숲에서 추격할 수 있을 정도의 기동력도 없었다.
교전을 포기하고 후퇴를 결정하자, 바렐라의 팀원들은 비교적 쉽게 전투 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 점이 바렐라 팀장과 닥터 요하임 굳이 유진을 버리지 않기로 한 이유이기도 했다.
레퀴프 트루아의 중장갑, 중무장에 따른 기동력과 지구력 부족은 워낙 유명해서, 빠르게 이런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괜찮을까요, 닥터?”
닥터 요하임을 경호하고, 최소 한도라도 유진을 감시하기 위해 남았던 바렐라의 부하, 엔리케가 몹시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엔리케는 3년 전의 반란 진압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동료들로부터 그때의 일에 대해서 나름 여러 가지를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실험체 중 최상위 계층들이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였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진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모든 초인 실험체들과 거기서 파생된 슈퍼 솔져나 온갖 초능력자들의 오리진.
맨손으로도 레벨 5 방탄복의 티타늄 방탄복을 뚫어 버리고, 살아 있는 사람을 산채로 찢어 죽였으며, 가벼운 잽 스타일의 펀치만으로도 사람 머리를 날려 버리고, 집중 사격을 당해 온몸에 총알에 박힌 상태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달려들었다는 괴물.
팀원들이 전차 포탄에나 쓰인다는 텅스텐 탄심이 들어간 샷건 슬러지 탄이나, 바렛 같은 대물 저격총에나 쓰이는 50구경 BMG 텅스텐 철갑탄을 사용할 수 있는 데져트 이글이나, 매그넘 리볼버 같은 물건들을 들고 다니게 만들고, 개발을 결정한 미군에서도 아직 완벽히 도입되지 않았다는 6.8mm 신형 탄두를 쓰는 소총으로 팀의 주무기를 싹 바꾸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일반 소총탄이나 권총탄으로는 전혀 상대할 수 없었다는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우리 안에 갇혀 있어도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긴장되는 판이었는데, 그런 괴물을 우리 밖으로 꺼내야 할 판이니 겁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닥터 요하임이 그런 엔리케를 달랬다.
“괜찮을 거야. 팀장에게도 말했듯이 봉인은 완벽하다. 저놈 머리에 씌워져 있는 저 헬멧은 그냥 시야만 가리려고 있는 것이 아니야. 저 헬멧에 새겨져 있는 저 수 많은 문자가 다 하나하나 아주 특별한 부적이나 다를 바 없는 것들이다. 놈이 가진 특별함을 봉인해주는 아주 특별한 주문이지.”
닥터 요하임은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았다.
‘바벨의 기억’의 기적적인 용도를 연구해서 찾아낸 장본인이자, 그 놀라운 용도로 유진을 봉인한 후 잠깐 직접 관리도 해본 경험자로서 닥터 요하임은 그 부분은 자신이 있었다.
‘바벨의 기억’이 봉인 효과가 지속되는 동안, 유진의 능력은 그저 보통 사람보다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재생력이나 초감각 정도는 남아 있을지 몰라도, 그가 발휘했던 놀라운 전투력의 기본이 된 괴력이나 순발력 그외 각종 초능력은 완전히 무력화된다.
닥터 요하임 같은 육체적으로 특별하지 않은 과학자라면 몰라도, 엔리케처럼 인간 수준에서는 최고로 단련된 최고 수준의 인간 병기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엔리케의 입에서 나온 것은 닥터 요하임이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닥터, 이 헬멧에 문자 같은 것은 없는데요?”
“!!!”
닥터 요하임의 뇌에서 엔리케의 대답이 가지는 의미가 이해되는 것이 순간적으로 부정되었다.
“안돼, 물러나!”
약간 뒤늦게 비명을 지르며 경고했지만, 늦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깃덩어리처럼 늘어져 아무런 반응도 없던 유진의 손이 움직였다. 순식간에 자기 팔에 감긴 쇠사슬을 철제 우리 바닥에 고정하고 있던 고리를 부숴 버렸다.
피와 살로 된 사람의 손이 강철로 된 두꺼운 고리를 잡아 뜯어 버리는 그 장면은 너무도 황당하기 이를 데 없어서, 엔리케는 바로 눈앞에 보면서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유를 찾은 손이 번개처럼 창살 사이로 뻗어 나와 자기 목을 움켜쥐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어?”
놀라서 피하거나 도망칠 생각도 못 한 채 말한 그 한마디가 엔리케의 유언이 되었다.
우드득.
엔리케의 목을 움켜잡은 유진의 손을 뒤집었고, 엔리케의 목은 숙련된 시골 농부가 닭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듯 한순간에 비틀어져 부서져 버렸다.
엔리케는 즉사했다.
그리고 닥터 요하임이 놀라고 있는 사이에, 유진은 자신이 죽인 엔리케의 몸을 잡아당긴 다음 그의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닥터 요하임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