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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0화 (10/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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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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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비밀조직, 연구소, 초인 그리고 탈출 – 9

유진의 사격은 정확하게 요하임 박사의 오른쪽 어깨를 박살 냈다.

“으아악!”

박사는 비명과 함께 쓰러져서 상처 부위를 감싸고 몸부림쳤다.

탕!

다시 한 발이 발사되었다. 이번에 박살 난 것은 왼쪽 무릎이었다.

“아악!”

다시 한번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른쪽 어깨와 왼쪽 무릎. 둘 다 목숨에 지장이 있을 치명적인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두 곳에 총을 맞으면 관절이 박살이 나고, 관절이 나가면 당연하게 걷지도 기지도 못하게 된다.

고도로 훈련받은 정예 군인이나 스파이 혹은 진짜 감각차단이 가능하거나 재생능력이 있는 초인 아니면 보통 사람이라도 초인적인 인내심을 가진 독한 성격이라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닥터 요하임과는 그런 것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는 아주 뛰어난 능력과 실력을 갖춘, 세상 전체를 다 통틀어도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천재 과학자이기는 했지만, 육체적으로는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닥터 요하임은 완벽하게 무력화되었다. 상처가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치명상은 아니라서 당장 죽지도 못하는 채로.

그렇게 완벽한 기회에 완벽한 기습을 성공시킨 유진이었지만, 사실 유진의 상태도 그렇게까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유진은 들고 있던 엔리케의 시신을 떨어뜨렸다.

그 시신에서 열쇠를 찾아서 지금 갇혀 있는 철장의 문을 열어야 했지만, 팔이 더 버텨주지를 못했다.

쇠고리를 부수기 위해, 그리고 순간적으로 엔리케를 붙잡아 그의 목을 부수기 위해 유진은 쓸 수 있는 한계 이상의 근력을 뽑아서 썼고, 그로 인해 양팔과 손이 모두 박살이 난 상태였다. 근육은 다 찢어졌고, 어깨와 팔꿈치, 팔목의 인대들도 모두 끊어졌으며, 순간적으로 펌핑 된 근육에 눌린 일부 뼈도 부서지거나 금이 갔다.

유진의 피부와 근육이 약한 종류의 권총탄도 견뎌낼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고, 뼈는 거의 탄소강에 가까운 강도를 가졌다는 것을 생각할 때, 유진이 순간적으로 얼마나 엄청난 힘을 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찢어지고, 파열되고, 부서진 근육과 힘줄 그리고 뼈는 급격한 사용이 끝나자 곧바로 재생을 시작했다.

재생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부서지는 과정에서의 그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마 그 통증만으로 쇼크사하기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통에는 충분히 익숙한 유진은 그 상태에서도 권총은 떨어뜨리지 않고 닥터 요하임을 향해 계속 겨누고 있었다.

잠시 후 고통에 어느 정도 적응한 닥터 요하임이 약간 정신을 차림으로써 두 사람의 사이에 기묘한 대치가 시작되었다.

닥터 요하임은 근처에 권총이 떨어져 있었지만, 멀쩡한 왼손으로라도 그것을 주워들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유진이 여전히 권총으로 자신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총을 주워 드는 것보다 총알이 날아오는 것이 더 빠를 것으로 판단한 이유는 아니었다. 권총 따위로 유진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똑똑한 사람답게 그는 아주 빠르게 현재 상황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지금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했다.

“바렐라, 유진의 제어가 풀렸소. 도망가시오. 뒷일을 부탁하오.”

닥터 요하임은 아주 침착하게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을 바렐라에게 위기를 알리고 도주시켰다. 온다고 해도 유진을 상대로 도움이 될 확률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생존 가능성을 가차 없이 포기한 것이다.

“지옥에서 봅시다, 닥터. 전 부대 통신주파수를 비상 주파수 3번으로 교체하라.”

무전을 들은 바렐라는 빈말로라도 닥터 요하임을 걱정도 하지 않은 채로 손절매해 버렸다. 부하인 엔리케의 생사조차 묻지 않았다. 닥터 요하임은 그런 바렐라의 태도를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유진에게는 꽤 의외였다.

“도와달라고 하지 않나? 나를 속이기 위해 미리 준비한 비밀 신호는 아닌 것 같은데?”

“나를 뭐로 보는 거냐? 죽을 때 동료를 끌고 가는 쓰레기 따위인 줄 알았나?”

죽음을 앞에 두고도 시니컬한 모습을 보이는 닥터 요하임이었지만, 유진은 그런 그를 비웃었다.

“쓰레기 맞잖아. 쓰레기 과학자. 죽을 때 무게 좀 잡는다고 자신이 무슨 영웅이라도 된 줄 아나? 그러고 보니 궁금하군. 죽고 나면 요제프 맹겔레나 이시이 시로 따위랑 비교되고 싶나, 아니면 아예 세상이 너 따위가 살았었는지도 모르게 완전히 지워져 버리고 싶나?”

“너 따위가 뭘 알아! 내가 남긴 위대한 업적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가 찾아낸 대규모 전염병 치료제와 백신으로 구원받은 인류가 수억이 넘고, 내가 남긴 유전학과 초인 연구는 새로운 시대에 신인류를 만들어내는 근본이다. 난 후세에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한 위대한 의학자로 기억될 거다!”

“미쳤냐? 넌 사회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행방불명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의사 중 하나에 불과하고, UE에서는 닥터 리페나, 닥터 리샤르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적당히 성과나 낸 많고 많은 연구원 중 하나에 불과하잖아. 무엇보다 UE가 네가 죽은 다음에도 네 연구 결과에 네 이름 따위를 붙여 놓을 조직일까?”

유진의 이야기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대범했던 닥터 요하임을 완전히 미치게 했다.

“으아아아!”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노를 참아내지 못한 닥터 요하임이 애초에 관심도 없었던 바닥의 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괴성과 함께 유진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유진은 침착하게 미리 조준하고 있던 위치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유진이 들고 있는 권총에 발사된 총알이 닥터 요하임의 눈썹 사이를 정확하게 뚫고 들어갔다.

닥터 요하임은 그 충격으로 고개를 뒤로 튕기며 즉사했다. 쓰러진 그의 얼굴은 고통과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고, 눈조차 감지 못했다.

유진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재생의 고통 속에서도 어느 정도는 만족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사실 처음 기회가 되었을 때 첫 사격으로 정확하게 죽일 수 있었다. 유진은 특별히 사격 훈련을 받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전에서 적지 않게 쏘아본 경험이 있었다. 고작 2~3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어깨와 무릎을 맞춘 것은 노리고 쏜 것이었다.

그렇게 죽이기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어설프게 살려둔 탓에 자신에 대한 정보가 노출되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닥터 요하임 같은 쓰레기가 아무것도 모른 채로 갑자기 죽는 행운을 누리게 해주느니, 정보 유출로 인한 위험성 증가가 차라리 훨씬 나았다.

닥터 요하임이 그가 받아야 할 마땅한 평가에 분노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은 유진이 생각하기에 그가 받아야 할 정말 최소한 대가에 불과했다. 사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가 닥터 리페나, 닥터 리샤르만 못하다는 것은 조금 부당한 평가이기는 했다.

하지만 유진에게는 셋다 똑같은 쓰레기들이었다. 그런 주제에 서로 간에 깎아 내지리 못해 안달이 난 사이이니, 그런 경쟁자만 못하다는 평가는 그들을 열받게 만들기 가장 좋은 평가이기도 했다.

그래도 완벽히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인체 실험으로 죽어가는 실험체들을 향해 인류의 생존과 위대한 발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작은 희생이라고 평가하는 인간이었다. 그 위대한 업적에 그들의 가족을 똑같이 희생시켜 주겠다는 말을 해주지 못한 것은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별다른 고통도 없이 총알 한방으로 죽여준 것은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너무 아쉬웠다. 할수만 있다면 수십 시간을 들여서 조금씩 조금씩 산채로 해체하면서 죽여줬을 텐데.

“아쉽군.”

하지만 일단은 죽일 기회가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운이었다. 다음 놈은 이렇게 쉽게라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애매했다.

연구소를 떠나기 전 마담 보른은 닥터 리샤르과 통화했다. 다른 사람 듣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통화했지만, 다른 감각들을 다 억제당하며 오히려 더 예민해지고 발전한 유진의 청력을 피하지 못했다.

닥터 장 폴 리샤르는 닥터 마리아 리페, 닥터 오스카 요하임과 함께 유진을 비롯한 초인 실험체들의 실험을 주도한 3인방 중의 한 명으로, 셋 중에서도 가장 추잡하고, 경멸스러운 존재였다.

닥터 마리아 리페는 유진에게 애증이 함께 하는 존재였다.

그녀는 사실 유진에게는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된 여자였다.

그녀는 아주 어린 시절의 유진이 보인 몇 가지 특이한 정신계 초능력의 조짐을 발견하고, 납치범에게서 인신매매로 유진을 구매했다. 그리고 그 후 오랫동안 유진에 대한 모든 교육과 실험, 특수 능력 육성을 담당했었다.

유진이 처음으로 특별한 감정을 느낀 여성이기도 했고, 첫 섹스 상대이기도 했으며,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그때까지 유진의 아이를 배고 싶어서 노력하던 여자이기도 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살려둘 생각은 없지만, 죽이기 위해 굳이 악착같이 추적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는 미묘하고도 애매한 마음이 드는 상대였다.

지금 죽은 닥터 오스카 요하임은 분노와 공포 그리고 증오의 상징이었다.

유진의 특별해진 몸에서 수많은 특별한 특징들을 구별해내고, 분류해낸 것이 그였다.

유진의 몸에서 뽑아낸 생체조직으로 병을 치료하거나, 새로운 초인이나 실험체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도 그였다.

무엇보다 3년 전 유진과 친구들이 일으킨 반란의 실패 이후 유진의 실험체 친구들 전부를 병든 가축처럼 도축해 실험재료로 만든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죽었으니 상관없어진 존재였다.

그의 범죄를 역사에 남기고, 그가 남긴 연구 성과는 모두 불살라 버리고 싶지만, 그건 그냥 가능하면 하겠다는 생각 정도지 그걸 위해 뭔가 하겠다는 목표는 아니었다.

그런 둘에 비해 장 폴 리샤르는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었다.

마리아가 눈에 띄면 살려두지는 말자는 생각 정도를 하게 되는 상대이고, 리샤르는 죽여서 통쾌한 상대라면, 장 폴 리샤르는 그를 죽이기 위해 기꺼이 유진 자신의 인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한 상대였다.

그리고 그의 꼬리를 잡을만한 연결고리가 지금 유진의 바로 옆에 있었다.

“레퀴프 트루아라.”

유진은 통증을 견뎌내고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무전으로 들었던 이름을 되뇌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사실 유진이 잘 아는 것이 거의 없기는 했다.

평생을 비밀 연구소에 갇혀서 가축처럼 살아온 유진은 지식과 상식이 아주 부족했다. 그나마 주변에 있는 다수의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지식에 자연스럽게 동조하는 유진의 고유 초능력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유진의 마음속 심연에서 세상의 비밀을 속삭여주는 그것이 없었더라면, 유진은 아예 탈출을 꿈꿀 정도의 지식과 상식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닥터 요하임이 죽기 전 바렐라와 무선 교신을 통해 나누던 이야기들에는 꽤 많은 정보가 있었다.

그 정보들과 닥터 리샤프를 사주했던 마담 보른의 통화에 대한 기억을 합쳐, 유진은 이 레퀴프 트루아가 닥터 리샤프의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어도, 최소한 그의 사주를 받아 움직인 부대는 확실하다고 추정했다.

만만한 부대는 아닐 것이다. 닥터 요하임과 함께 오늘 이송을 담당했던 바렐라와 그의 팀원들은 3년 전 반란 당시에 유진과 실험체들을 진압했던 조직의 최정예 부대 중 하나였다. 그런 그들이 싸우기보다 도주하는 것을 선택할 정도의 부대라면 만만한 부대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3년 전 그때의 반란이 실패한 것은, 유진이 결국 탈출하지 못했던 것은 그리고 탈출을 포기했던 것은 친구들이 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를 버려두고 혼자 갈 수 없었던, 그러기에는 혼자서 만나게 될 바깥세상이 너무 두려웠던 것이 유진이 탈출하지 못한 이유였다.

유진은 이제 더 이상 돌봐야 할 혹은 함께해야 할 사람이 없었다.

아직 모든 능력이 다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상대가 누구라도 해도 두렵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라고 해봐야 죽는 것이 고작일 뿐일 테고, 죽음은 지금의 유진에게는 별다른 공포가 아니니까.

유진은 자신과 비교적 체구가 비슷한 엔리케의 시체에서 옷을 벗겨내어 입었다. 알몸으로 싸우기는 싫으니까.

주변을 둘러보며 낯익은 혹은 마음에 드는 무기들이나 장비들도 챙겼다. 싸우는 데 무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까.

닥터 요하임의 품을 뒤져 지갑도 찾아냈다. 세상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유진에게 정말 다행스럽고도 귀중한 지식이었다.

챙길만한 것을 다 챙기고 장갑차 뒷문을 열었다.

주변에서 어렴풋이 총소리와 비명, 뭔가 터지는 폭탄 소리 같은 것이 간간이 들려왔다.

유진은 그런 소리 따위는 일단 무시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그의 머리에 씌워진 헬멧 ‘바벨의 기억’을 벗겨내지는 못해서 직접 눈으로는 볼 수 없었지만, 초능력에 대한 억제가 대부분 사라진 덕분에 흔히 천리안으로 불리는 초시각으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3년 만에 보는 밤하늘에는 여전히 푸른 달과 아름다운 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고개를 내려 주변을 살폈다.

울창하게 우거니 푸른 숲이 그를 반겼다.

숲을 직접 자기 눈으로 보는 것은 실험체가 된 이후로는 처음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런데도 익숙하고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왜냐면 숲이야말로 그가 싸우고 살아가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으니까.

“그럼 사냥이라는 것을 시작해볼까?”

유진이 숲속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의 몸은 어느새 노련한 늑대처럼 숲의 어둠 속에 스며 들어가며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후퇴하는 바렐라의 팀원들과 그들을 쫓는 레퀴프 트루아의 사이에서 유진의 기념할 만한 첫 사냥이 시작되었다.

#001 비밀조직, 연구소, 초인 그리고 탈출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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