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11화 (11/196)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재미있게 보셨나요?

재미있으셨다면 추천과 즐겨찾기 등록 부탁드립니다.

#002 찬란히 빛나서 더욱 어두운 도시에서 - 01

파리. 빛의 도시.

이 도시는 근대 이래 아주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였으며,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진 도시였다.

물론 21세기에 이르러 그 빛이 약간 바래기는 했다.

이제 세계의 중심은 누가 뭐라고 해도 미국이며, 정치와 경제를 넘어 문화, 예술조차도 NY와 LA에 많은 지분을 빼앗기고 최고가 아닌 최고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는 여전히 유럽의 중심지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최고의 관광도시 중 하나이며, 세계 패션의 중심지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여전히 미술 분야에서는 그 어떤 도시도 비교조차 불허하는 최고의 명성을 지키고 있다.

파리는 여전히 화가 혹은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의 도시로 여겨지며, 특히나 패션과 예술에 관심 있는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도시에 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이 도시의 그림자를 잊어버리곤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중의 하나이며, 자유와 평등, 박애를 국시로 삼는 위대한 프랑스의 수도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자부하는 빛의 도시 파리는, 프랑스에서 가장 범죄율이 높고 서유럽에서 가장 위험하게 여겨지는 도시이기도 하다는 것을.

“도도,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릴게요.”

차민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지금 한국어로 말하고 있고, 눈앞의 흑인들이 그런 자기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다는 것은 그녀의 머릿속에 없었다.

생전 처음 방문한 외국 관광지에서, 말도 안 통하는 남자들에게 잡혀서 인적 없는 보행 터널에 끌려온 여자에게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더 말하지도 못했다.

“tais-toi!”

어린 남자 하나가 그녀의 뺨을 후려치며 소리를 질렀다.

“꺅!”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넘어졌다.

본능적으로 후려쳐진 왼쪽 뺨에 손을 가져가다가 흠짓 놀라며 입을 다물고는 양팔을 들어 얼굴 앞을 막았다.

남자가 뭐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비명을 지르는 그녀의 모습에 다시 손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 겁을 먹고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그리고 힘을 다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비명을 마음에 안 들어 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주변의 다른 남자들은 그런 그녀를 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몸을 훑는 그들의 눈길에서 그들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는 굳이 말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이럴 수는 없어. 대낮에 파리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차민영은 믿을 수가 없었다.

유럽 도시들의 치안이 좀 안 좋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밤도 아닌 훤한 대낮이었고, 자신이 있던 곳은 빈민가도 아닌 유명한 관광지 성당 앞이었다.

민영은 어떻게 그런 곳에서 납치를 당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주변에 사람이 자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녀가 몰랐던 것은 그녀가 납치된 성당은 분명 역사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그 성당이 있는 지역 자체는 최근 좋지 못한 프랑스 경제 상황과 맞물려 우범가로 변해 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자신과 같은 관광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이 지역의 불법 이민자들이었다.

평생 처음 하는 파리 관광에 들떠서 자신의 비싼 옷과 비싼 백, 비싼 카메라가 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 그녀에게 나쁜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었다.

비싼 물건 잔뜩 몸에 걸친 아름다운 동양 여자가 혼자 우범가에 서 있었다.

이건 그냥 범죄자들에게 자기 스스로를 팔아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바보짓이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몰랐던 최악은 오늘이 파리 경찰의 파업일이라는 것이었다.

한국인인 차민영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프랑스는 경찰도 파업을 한다.

그리고 당연히 경찰 파업일의 치안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차민영을 납치한 자들은 자기들 따름에서 나름 여러가지 고려해서 리스크를 감당하고 할 만하다는 생각에 그녀를 납치한 것이다.

차민영의 백을 뒤지던 한 남자가 말했다.

“시발 이 년. 이거 백만 비싸지, 지갑에 현금이 없는데? 카드만 있어. 이러면 손해 아냐?”

그 옆에서 빼앗은 그녀의 카메라를 돌려 보던 남자가 대답했다.

“현금은 없어도 백 그거 좇 나게 비싼 거다. 현금이나 마찬가지야. 이 카메라도 5000유로는 넘을 것 같은데?”

“아우, 씨발! 그 좆 같은 카메라 하나가 그렇게 비싼 거라고?”

“그래 아주 좆같이 비싼 물건 같아. 그 백은 이거보다도 더 좇 같이 비싼 것 같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자, 차민영의 뺨을 후려쳐 쓰러뜨린 다음 입술을 핥으며 그녀를 훑어보고 있던 가장 어린 남자가 말을 이었다.

“백하고 카메라가 비싸 봐야 장물애비한테 넘기면 얼마나 받겠어. 내가 보기에 우리가 이번에 건진 것 중에 제일 비싼 것은 이 년 자체야.”

남자들의 시선이 차민영을 향해서 모였다.

차민영은 서른하고도 몇 살이 더 붙은 애엄마였지만, 한국에서도 끽해야 20대 후반으로 여겨지는 동안이었다.

유럽 기준으로는 더 어리게 보였고, 서아프리카에서 프랑스에 온 지 얼마 안 된 그들의 눈에는 기껏해야 20대 초반 어쩌면 10대일지도 모른다고 여겨졌다.

거기에 낯선 동양인임에도 그들의 눈에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외모와 모델만큼은 아니어도 백인이나 흑인에게서는 보기 드물게 날씬한 몸매, 무엇보다 잡티 하나 없이 흰 피부는 그들이 극장이나 TV 혹은 잡지에서나 간신히 볼 수 있는 수준의 미모였다.

흐트러진 옷차림과 자세 덕에 보이는 다리 사이의 레이스 속옷을 노려보며 한 놈이 중얼거렸다.

“어쩌려구?”

“장물애비인 나심 영감이면 사우디나 예맨, 카타르에 연줄이 있을 거야. 그 동네 부자들이 동양 여자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더라고. 흐흐흐. 모르긴 우리 전부가 제대로 된 여권을 만들고, 각자 집도 렌탈 하고, 차도 구입해도 남을 정도로 비싸게 팔 수 있을걸?”

이들 다섯명이 꽤 큰 위험을 무릎 쓰고 차민영을 납치한 건 당연히 돈을 노린 것이었다.

민영의 백과 카메라 그리고 차민영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현금이라면 인당 900유로 정도는 드는 최저 수준의 위조 여권 가격 정도는 충분히 나올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프랑스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그들은 위조 신분증 가격은 고사하고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벅찬 상황이었고, 딱히 조직이랄 것도 없이 흔해 빠진 밀입국자들에 불과한 그들은 우후죽순 생겨나는 백인우월주의 조직들과 테러 위험 핑계로 불법 입국자들에게 강경하게 나오는 경찰 탓에 생계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그들 모두 고향에서는 총도 쏴보고 사람도 죽여본 경험이 있었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는 나름 정상적으로 살아보려고 날품팔이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쯤 갱 취급을 받고 있었다.

주머니가 비어 가는 상황에서 딱히 범죄를 꺼릴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 돈만이 아니라 그 이상을 원하고 있었다.

“그냥 넘기자고?”

“흐흐흐. 그럴리가 있나. 팔기 전에 길은 들여야 하지 않겠어?”

“오호라.”

“그리고 당연히 내가 제일 먼저다.”

처음 그녀의 납치를 주장하고, 여기까지 끌고 온 이래 돈이 되는 그녀의 물건들을 친구들이 뒤지는 동안 오직 그녀만 노려보고 있던 사내가 자신의 바지춤을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차민영의 팔뚝만 한 크기로 발기한 성기가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좋아. 씨발. 인정하지. 그리고 다음은 나다.”

지금껏 구경만 하던 남자 하나가 차민영을 향해 다가갔다.

정통 불어도 알아듣기 어려운 차민영은 서아프리카 발음과 사투리까지 섞여 있는 그들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성기를 드러낸 남자와 그의 동료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싫다라는 말조차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어느새 다가온 남자 하나가 주머니칼의 날을 꺼내 들어 그녀의 얼굴 앞에서 까닥거리고 있었다. 얼굴에는 비열한 미소를 띤 채 손가락 하나를 펴서 자신의 입가를 가리고 있었다.

만국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보디랭귀지 침묵이었다.

“아아아.”

차민영은 짧게 울먹거리며 이빨을 부딪쳤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사내가 자기 어깨를 잡고 몸을 뒤집어 바닥에 엎드린 자세를 취하게 한 후 몸을 누르는 동안에도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 손길의 의도를 따랐다.

칼날은 그녀의 목을 스치며 계속해서 그녀의 주변을 머물고 있었다.

거친 손 하나가 불쑥 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걸 느낀 순간 본능적으로 다리를 웅크렸지만, 그 즉시 응징당했다.

짝 소리와 함께 커다란 손 하나가 그녀의 허벅지를 후려쳤다.

“악!”

““tais-toi! Prostituée!”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비명에 거친 욕설이 그녀를 윽박질렀다.

차민영은 자기 손으로 자기의 입을 틀어막았다.

눈에서는 그녀 자신도 주체하지 못하고 흘리는 눈물에 시야가 흐려질 정도였다.

부들부들 떨면서 반항하지 못하는 그녀의 태도에 다시 한번 들어온 손이 그녀의 팬티를 잡아 찢듯이 벗겨냈다.

그래봐야 허벅지 중간 정도에 걸려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지만, 찢어진 치마가 허리 위로 올라가고 속옷이 허벅지 중간까지 끌어내려지며 그녀의 은밀한 부위가 노출되었다.

너무도 치욕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차민영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공포도 공포지만, 이런 일에 익숙한 몸이 어느새 훈련받은 대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일을 당했을 경우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도록 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주 눈꼽 만큼이지만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강간이 죽음보다 더 치욕적일 일이겠지만, 그녀는 목숨이 더 소중했다.

살아서 딸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이런 일도 견뎌낼 수 있었다.

‘소진이, 소진이를 두고 죽을 수는 없어.’

차민영은 치욕과 수치 속에서도 참고 견뎠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일이 자신을 얼마나 참혹하고 고통스럽게 만들지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참아내려 했다.

무슨 짓을 당하더라도 그녀는 살아남는 것에만 집중하려 했다.

그녀에게는 올해 다섯살의 딸이 있었고 남편도 형제 자매도, 부모님도, 시부모님도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혈통적인 시어머니는 있지만, 그녀는 남편조차 양육하지 않은 남이었다.

차민영이 죽으면 그녀의 딸은 세상에 고아로 버려지게 될 것이었다.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나이인 스무 살에 부모님을 잃고 혼자가 된 것만으로도 지옥 같은 고통을 겪었던 그녀는 올해 다섯 살인 딸을 고아로 만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치욕스럽고 고통스럽더라도 참아내고 견뎌내려고 다짐하던 그녀도, 자신을 강간하기 위해 자지를 들이밀던 사내의 손이 성기가 아닌 항문을 만지작거리는 순간에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어어어!”

입을 다문 것으로도 모자라 스스로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명과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더 이상 참지 못한 공포가 그녀의 괄약근을 풀어 버렸고, 소변이 졸졸거리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그런 그녀를 보며 낄낄거리고 웃었다.

그들은 오히려 공포와 절망 속에서 자신들에게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복종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더욱 만족감을 느끼고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탓에 누군가 소리 없이 자신들의 바로 옆까지 다가올 동안 아무도 그걸 인식하지 못했다.

가장 처음 여기에 자신들 외의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친구들이 모두 동양 여자를 즐기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카메라를 살펴보고 있던 남자였다.

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카메라로 찍어 보려고 열심히 조작법을 익히던 그는 자신의 카메라 파인더에 생소한 누군가가 보인다는 것에 놀라 카메라에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단검 하나가 그를 향해 튀어 나왔다.

Glauca b1.

사실 전투 용도로보다는 여러 가지 상황에 다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용도의 이 단검은, 그런데도 프랑스의 특수부대 GIGN이 사용하는 초고가의 나이프답게, 날의 손상도 없이 막아서는 갈비뼈를 무참하게 부숴버리며 그의 심장을 후벼 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