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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찬란히 빛나서 더욱 어두운 도시에서 – 09
유진이 기대했던 대로 다리는 본능적으로 유진의 허리를 감은 채 경련하며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팔로는 유진의 등을 끌어안고 손톱으로 사정없이 긁어 대고 있었다. 유진의 피부가 특별하지 않았다면 피투성이가 되었겠지만, 유진에게는 그 정도는 애무나 다름없었다.
유진은 이제 몸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어디가 좋지?”
“보지! 보지가 좋아요! 보지가 좋아서 미치겠어요!”
“누구 보지?”
“민영이 보지요. 민영이 보지가 좋아요.”
유진은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평소 생각만 하던, 감히 할 수 없었던 말들을 마음껏 내뱉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고, 그런 자기 말에 대한 차민영의 태도와 대답도 너무 만족스러웠다.
유진은 더욱 고조되는 마음에 차민영의 클리토리스를 꼬집으며 그녀를 더 몰아붙였다.
“아니지 이제 네 것이 아니지. 이 보지가 누구 보지라고?”
“당신 거요. 당신 겁니다. 민영이 보지는 당신 겁니다. 이 보지는 진의 보지입 니다!”
“그래 이제 내 거다. 넌 이제 내 거야. 네 보지도, 네 입도, 네 가슴도 이제 모두 내 것이다. 내가 빨라면 빨고, 내가 벌리라면 벌리고, 내가 싸라면 싸는 거다.”
“네. 이제 민영이는 당신 겁니다. 민영이는 당신 보지 입니다!”
차민영은 유진이 따로 말하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대답만을 하고 있었고, 유진은 더욱더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허리에 힘을 주었다.
물론 유진도 이게 아무 의미 없는 문답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와의 섹스가 여성의 신체와 정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연구소의 연구 과제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신경 자극과 호르몬 분비 조절을 통해 여성을 극단적으로 만들고, 거의 세뇌에 가까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섹스 중에만 단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은 수많은 경험과 연구로 이미 확인된 바였다.
즉, 차민영은 지금 아무런 의지 없이 쾌락으로 뇌가 마비된 채, 마치 자백제라도 맞은 것 같은 상태가 된 것뿐이었다.
자백제 사용과 다른 것은 질문이 진실이 아닌 유진이 원하는 대답이 유도되는 것뿐이다.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은 이 밤이 지나가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그냥 배경 소음에 불과했다. 지금 차민영과 유진의 성기가 내는 음란한 마찰음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 이 자기 아이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강인한 어머니이자 어른스러운 여인이 자신의 밑에 깔려 자신의 것이 되겠다고 외치는 것을 듣는 만족감은 유진의 부족한 자존감을 채워주는 지금까지 누리지 못한 최고의 쾌락이었다.
그래서 유진은 평소보다 너무 짧게, 본격적인 삽입을 시작한 지 10여 분 만에 사정을 시작했다.
“싼다! 너의 안에 싼다!”
“싸세요. 민영이 보지 안에 싸세요.”
“크흑!”
“아아앙! 죽어요! 민영이 죽어욧!!!”
두 번째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상적인 사정량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정액이 차민영의 자궁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유진이 남자의 사정이 가져오는 순간의 격렬한 자극에 짧게 몸부림치는 동안, 차민영은 지속적인 자극으로 잔뜩 민감해져 있는 자궁을 가득 채우다 못해 넘치도록 퍼부어진 유진의 정액이 주는 지속해서 주는 자극에 미쳐갔다.
결국 유진이 짧게 사정의 쾌락에서 벗어나 현자 타임이 들어가는 순간까지 끊이지 않고 점점 높아져 가는 절정의 쾌락에 사지를 떨며 경련하던 차민영은 한계를 넘어선 쾌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다시 한번 혼절했다.
짧은 시간 벌써 3번째 혼절이었고, 유진도 뇌가 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허리를 멈추었다.
유진은 눈을 감고 한껏 일그러진 얼굴로 정말 드물게 느껴본 강렬한 쾌감에 잠시 몰입해 있었다.
짧지만 강렬하면서도 영원한 것만 같은 그 시간이 흘러간 후, 다시 눈을 뜬 유진의 눈은 여전히 강렬한 욕망으로 불타고 있었다.
평범한 남자들이 사정 후 가지게 되는 현자 타임 같은 것은 없었다. 단단하게 발기되어 있던 성기도 사정이 끝났음에도 전혀 힘이 빠지지 않았다.
오르가슴은 생체 호르몬 중 도파민 폭발로 느끼게 되는 것이고, 정상적으로 된 신경구조를 가진 인간이라면 그 직후 안전을 위해 신경 억제 전달 물질이 분비되면서 덤으로 성욕을 가라앉히지만, 유진의 생체와 신경구조에는 그런 안전장치 따위가 없었다.
유진은 오르가슴이 끝나자마자 그 여운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허리를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욕망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 차민영의 모습에 허리를 멈춰야만 했다.
입을 반쯤 벌리고 얼굴 근육이 완전히 풀어진 상태로 기절해 있는 차민영의 눈의 눈동자가 동공이 완전히 이완된 상태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유진은 여러 가지 이유 탓에 인체에 대한 의학적 반응에 대해서 잘 알 수밖에 없었고, 이건 분명히 뇌 손상의 증상이었다.
몸은 여전히 계속해서 자극을 원하고 다시 한번 정액을 사정해서 오르가슴을 얻기를 원하고 있었지만, 유진은 이성을 회복하고 몸을 멈추었다.
정신을 차리자 차민영의 온 몸이 마치 간질환자라도 된 것처럼 근육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당황하지는 않았다.
매우 드물지만 처음 겪는 일은 아니고, 왜 이러는지도 알고 있었다.
유진의 정액이 가진 강렬한 중독성 및 신경과 감각 교란 능력이 정상적인 호르몬 및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교란해서, 오버히트 되는 뇌에 냉각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았고, 결국 뇌가 감당해낼 수 있는 한계를 넘는 쾌락이라는 자극을 받고 손상을 받은 것이다.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유진의 정액은 그 자체로 육체의 손상을 회복시키는 효과도 있었고, 뇌가 입은 손상과 피해는 곧바로 복구될 것이다. 오히려 손상 이전 상태보다 훨씬 더 좋아진다. 손상된 뇌 부분이 간뇌 부분이라서 기억에도 거의 문제가 생기지도 않는다.
그래도 차민영이 다친 것은 맞다. 아무리 욕망이 솟구쳐도, 다친 사람을 상대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유진은 여전히 자신은 자기 허리를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꺼내었다. 성기는 단단해지다 못해 힘줄까지 두드러져 자신은 아직도 더 많은 것을 원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정신을 차린 유진은 육체의 그런 반항 정도는 가볍게 진압할 수 있었다.
성기로 향하던 혈류의 공급이 차단되고, 발기되었던 성기는 곧 힘을 잃고 수축하기 싫어했다.
배를 열어서 장기를 떼어가고, 온 몸의 근육을 채취 당하고, 뼈가 잘려 나가는 꼴을 마취도 없이 견디며 살아야했다. 통증이나 쾌락 따위에 져서 자기 몸을 조절할 수 없으면 지금껏 살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것 치고는 지나치게 좋기는 했네.’
유진은 차민영의 곁에 누워 여전히 간간이 경련을 일으키는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자기 몸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것들이 그녀의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고작 섹스 한번.
평생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여자와 수없이 많이 해온, 식사나 운동이나 다를 바 없는 행위였는데 그런데도 고작 이 섹스 한 번으로 유진은 차민영에 미묘하게 감정이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정상적이지 않은 감정 상태였지만, 유진조차 그것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차민영은 위험해 보이는 유진을 회유하기 위해 섹스를 선택했다. 여자와 섹스를 한 남자는 상대가 되는 여자에게 원초적인 소유욕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그녀가 그렇게 믿는 것은, 그녀가 접한 모든 남자가 그랬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녀가 진심으로 그럴 목적으로 유혹한 남자는 모두 그랬다. 그러고 그건 분명히 비정상적인 일이지만 그녀는 그걸 몰랐다.
지금 유진도 자신의 마음에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몰랐다. 그 감정은 유진도 스스로 자극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은밀하고 미세하며 자연스럽게 그의 정신을 파고들어 와 있었다.
유진은 자신이 차민영을 걱정하며 그녀를 자연스럽게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이질적인 일인지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다.
유진은 차민영을 끌어안고 그 온기에 마음의 안정을 느꼈다.
그녀의 경련이 서서히 멈추고, 근육이 풀어지며 일그러져 있던 얼굴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제대로 감지도 못하고 있던 눈을 감고는 고르고 안정적으로 숨을 쉬는 그 과정을 천천히 바라보며 자신도 치유 받는 감정도 느꼈다.
오르가슴으로 도파민이 폭발하는 과정에도 분비되지 않던 신경 안정 물질이나 호르몬들이 유진이 원한 것도 아닌데 서서히 분비되기 시작했다.
유진도 천천히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의식이 아주 깊고 깊은 어둠속 절대적인 어떤 곳으로 가라앉았고, 주변을 위기를 감지하는 최소한의 본능마저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래서 어느새 잠든 그의 머리에서, 지금껏 요지부동으로 자리 잡고 있던 ‘바벨의 기억’이 서서히 자기 머리와 얼굴로 흡수되어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