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25화 (25/196)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재미있게 보셨나요?

재미있으셨다면 [추천]과 [즐겨찾기 등록] 부탁드립니다.

#003 대의와 정의 그리고 국익 – 04

앤은 태연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 내 몸에는 네 몸에서 뽑아내고 갈취한 많은 것들이 투입되어 있어. 그것들이 죽어가던 나를 살렸지. 잃어버린 눈은 복구해주지 않았지만, 시력을 대신할 것도 만들어주었고. 너에 대한 내 호의가 느껴지지 않니? 그건 3년 전의 실수에 대해 미안함만이 아니야. 난 정말로 너에게 고마워하고 있어. 네가 아니었으면 난 죽었을 거야. 그리고 미국에는 나처럼 그 혜택을 본 높은 분들이 꽤 많고, 그게 우리가 너를 원하는 이유의 일부인 것도 사실이야.”

앤 헤이즈가 숙청당한 후, 그녀를 따르던 파벌 일부가 이 일에 의문을 가지고 비밀리에 사건을 조사했다. 그들은 배신자인 에니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2년여에 걸쳐 그녀를 추격해서 결국 생포하는 것에 성공했다.

증거가 나옴에 따라 이 사건을 일부가 비밀리에 추격하던 일에서 공식적인 일이 되었다.

추격자들은 백악관과 의회를 움직였고, 에니에게 협조하거나 묵인한 혹은 그렇지 않아도 앤 헤이즈를 숙청하는데 이 일을 이용한 CIA의 고위층과 파벌들이 역으로 숙청되었다. 하지만 뒤늦게 비밀 감옥에서 풀려난 앤 헤이즈의 건강이 문제가 되었다.

이미 늙고 병들어 있던 그녀는 인세의 지옥이라는 CIA의 사설 감옥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기는 했지만, 그건 죽지 않았다기보다 죽지 못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구출된 그녀는 죽음에 임박한 상태였다.

백악관의 주인을 포함해 미국의 리더들은 이 일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앤 헤이즈는 당시 백악관 주인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꺼리는 강경 과격파이기는 하지만 평생을 미국의 국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애국자이기도 했다. 그녀가 희생한 것들 중에는 그녀의 남편과 아이를 포함한 가족도 있을 정도였다.

그녀가 자신의 범죄에 대한 처벌도 아닌 누명으로 이대로 죽으면 그렇지 않아도 불만이 쌓이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는 CIA를 포함한 미국 내 군과 첩보계의 강경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뻔했다.

현대의학으로는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일각에서 특별한 방법이 추천되었다.

에니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CIA는 그녀가 빼돌렸던 상당수의 자료와 물건들을 회수할 수 있었다. 그중에는 유진과 여러 실험체의 생체 조직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에니가 빼돌린 많은 것들이 이미 팔려나간 상황이었지만, 가장 귀중한 그래서 가장 비싸고 중요한 것들은 오히려 팔리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 자료와 부산물들을 바탕으로 앤 헤이즈에게 이식 혹은 개조 수술이라고 불릴 수술이 행해졌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죽은 거나 다름없던 앤의 몸이 건강을 되찾았고, 시력은 회복하지 못했지만, 시력을 대신할 초능력이라고 불릴 능력을 각성했다.

그 놀라운 성과는 미국 최고위층의 극소수에 비밀리에 알려졌고, 남은 것들을 이용해 몇 명이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미국은 UE에서 빼돌린 자료만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 슈퍼 솔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UE가 필사적으로 숨긴 유진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깨달았다.

앤이 이제 CIA도 아닌 국무부와 의회를 등에 업고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이유였다.

앤은 오늘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된, 유진이 거절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 제안을 던졌다.

“미국으로 와 유진. 네가 미국에 속하는 순간 이 세계의 그 누구도 너를 건드릴 수 없어. 누구에게도 쫓길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거야. UE? 원한다면 네가 그들을 산산조각 내도록 나와 미국이 전력을 다해 너를 도울게. 물론 우리도 너에게 당연히 원하는 것이 있지. 하지만 UE처럼 미친 짓을 할 생각은 없어. 가끔 얼마간의 피만 제공해 주는 것으로 만족할게. 그 정도면 헌혈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어때 정말 좋은 제의 아니니?”

앤은 이 정도면 유진 입장에서는 거의 악마의 유혹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유진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좆이나 까 드시지. 내가 사탕으로 유혹하며 납치범을 따라가는 3살짜리로 보이냐, 나쁜 년아?”

앤의 표정이 굳었다.

사실 유진이 세상에 대해서 조금 더 아는 정상인이라면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맞았다.

이 제의는 앤이 진심으로 유진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유진에게 유리하게 작성한 제안이었다.

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은 유진의 지금 정신 연령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자신의 나이보다도 훨씬 어리고 미성숙하였으며, 염세적인데 허세까지 섞여 있는 그야말로 막나가는 사춘기 청소년 수준이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박살난 두 사람의 사이의 대화가 다시 이어지기 전에 상황이 급변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있던 앤의 경호원 중 하나가 급히 그녀에게 달려왔다.

“마담, 습격입니다.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습격?”

“파리 광역권을 관장하는 프랑스 국가 헌병대가 대테러 경보를 발령했고, 외각 관찰조가 지금 이곳으로 이동 중인 GIGN의 장갑차를 발견했습니다.”

“진짜 GIGN 이에요?”

“저희 측 동료 판단으로는 아닌 것 같답니다.”

앤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이렇게 대놓고 며칠이나 이곳에 드나들고 있는데, 프랑스 내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유진이 너무 터무니없이 수상한 모습으로 나타난 점도 있었다.

어쨌든 이곳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너도 들었지? 여기서 대화를 계속하기는 어렵겠어, 자리를 옮기자, 유진.”

유진의 폭언에도 앤 헤이즈는 여전히 부드럽고 다정하게 유진에게 말을 건넸다. 그녀가 유진에게 느끼는 호의는 진짜였고, 유진의 반항적인 모습조차 가엾게 여기고 있었다.

물론 유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꺼져.”

앤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진이 정말 말썽꾸러기 아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명백하게 거부감을 표하고 있는데, 뭔가 더 강요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차라리 고생 좀 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앤은 잠시 고민하다가 원래 유진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물건 중 하나를 꺼냈다.

“일단 이건 인사 대신으로 주겠어. 내 제안은 심사숙고해봐. 그게 그리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네.”

말을 마친 앤은 지갑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떠나는 그녀와 그녀를 경호하는 자들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유진은 그녀가 두고 간 지갑을 들고 열어 보았다. 고액권인 달러와 유로가 잔뜩 보이고, 신용카드도 하나 있었다.

그리고 여권이 있었다.

“씨발.”

여권의 사진은 지금 유진의 얼굴과는 약간 다르지만, 누가 봐도 유진인 얼굴이 박혀 있었다.

3년간 자기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자기 얼굴을 보지 못했고, 3년 동안 꽤 자라서 얼굴이 제법 바뀌었음에도 사진은 거의 정확했다. 진짜 자기 얼굴을 찍은 것은 당연히 아니고, 과거 자료를 바탕으로 위조로 만들어 낸 것일 텐데, 너무 정확했다.

이런 기술을 미국만 가진 것은 아닐 테니, 유진의 얼굴은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씨발.”

다시 한번 욕설과 한숨을 내쉬었지만, 지갑은 버리지 않고 챙겼다. 주머니가 아니라 종아리에 메고 있는 나이프 벨트 안쪽으로 잘 정리해서 묶어 두었다.

지금부터 싸워야 하는데 총알이라도 맞으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종아리는 그래도 총 맞을 확률이 가장 적은 부위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광장의 사람들이 서둘러 사방으로 흩어졌고, 검은색 몸체에 GIGN 마크가 선명한 군용 장갑차 하나와 2대의 병력 수송 차량이 들어섰다. 그리고 거기서 내린 검은색 병력의 무장 병력이 광장 사방으로 흩어지고, 일부는 유진을 향해 다가왔다.

소총과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전신을 방탄 장비로 둘러싼 4명의 인원이 포메이션까지 갖추고 유진을 향해 다가왔다.

“손들어. 테러 용의자로 당신을 체포하겠다.”

유진은 명백하게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다. 얼굴에 검은색 금속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이 평범해 보일 턱이 있나. 그들의 행동은 꽤 자연스럽고, 정당해 보였다.

유진은 그런 그들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앤의 일행이 뭐라고 했던 이들은 프랑스 경찰의 GIGN 정식 복장을 갖추고 있었다. UE와는 상관없는 프랑스 공무원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지?’

가능한 국가 공권력과의 싸움을 피하자는 생각은 이미 박살 났다. 앤은 분명히 말했다. 레퀴프 트루아는 UE의 사설 조직이지만, 프랑스 정부의 영향력도 미치는 조직이라고.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했다. UE와 프랑스 정부를 따로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의미였다.

원래대로라면 가능한 눈에 띄는 싸움은 피하는 것이 맞지만, 애초에 유진이 파리로 온 것은 앤이 기다리는 이곳 주소를 방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 폴 리샤르를 쫓기 위해서였다.

레퀴프 트루아를 두드리면 혹시 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프랑스 정부와 UE의 구별이 없다면 꼭 그 상대가 레퀴프 트루아 일 필요는 없었다. 사실 이 눈앞에 있는 자들이 진짜 GIGN 인지도 미지수였다. UE가 보낸 위장 부대일 가능성이 더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유진은 배알이 완전히 꼴린 상태였다.

아무라도 그냥 쳐 죽이고 싶은 상태라는 것이었다.

“안 들이나, 손을 들고 바닥에 엎드려라. 거부하면 발포할 수 있다.”

긴장된 상태로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고 소리를 지르는 자들을 보며, 유진은 아주 잠시 이 새끼들이 상대가 프랑스어 알아듣는다고 어떻게 확신하고 프랑스어로만 소리치는지 궁금했다.

경찰이 자국 내에서 경찰 업무 진행하면서 자국어를 쓰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유진은 그것조차 비위가 거슬릴 정도로 배알이 꼴려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마지막 경고다, 손들고 바닥에….”

세 번째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유진이 먼저 움직였다.

충분히 거리를 벌리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유진은 한 발자국 내딛는 것만으로도 그들 중 선두에 선 자의 코앞까지 순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유진의 팔이 회초리처럼 휘둘러지면서 상대방의 턱을 후려쳐 버렸다.

퍽! 우드득!

사람의 몸과 사람의 몸이 부딪치는 소리치고는 너무 섬뜩한 소리와 함께 유진에게 경고를 내뱉던 대원의 머리가 구십도 이상으로 돌아갔고, 목에서는 섬뜩하게 뼈 부러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즉사였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유진을 포위하고 있던 죽은 자의 동료들조차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인지하지는 못하는 사이, 유진은 죽은 자의 멱살을 잡아 자신의 앞을 가린 다음, 그가 들고 있던 기관단총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주변의 셋을 향해 한 탄창을 그대로 다 갈겨 버렸다.

난장판의 시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