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30화 (30/196)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재미있게 보셨나요?

재미있으셨다면 [추천]과 [즐겨찾기 등록] 부탁드립니다.

#003 대의와 정의 그리고 국익 – 09

M18A1 클레이모어 산탄 지뢰.

크레모아라고 많이 불리는 이 물건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치를 떤 미군이 비슷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해서 베트남 전쟁에 첫 사용,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무기였다.

지뢰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광범위한 반경이 적을 살상하기 위한 설치용 수동 폭탄이다.

격발 시 전면으로 3mm 지름의 쇠구슬 700개를 마하 3의 속도로 발사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끔찍한데, 들어가 있는 폭발용 화약도 박격포탄에 버금가는 양이다.

전면부가 주 타격 목표지만 폭발에 의한 타격은 전방위에 영향을 미친다. 주목표인 전면부 20m 거리는 물론이고, 전면 외의 방향이라고 해도 5m 거리 이내에 있다면 거의 죽는다고 봐야 했다.

직접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살아있는 적에게만 모든 주의를 집중하고 있던 탓에, 유진은 대성당 옥상에 그런 흉악한 물건이 빼곡하게 설치되어 있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그 물건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서로 간의 위력을 상쇄시키지 않을 정확한 위치와 타이밍에 맞춰 순차적으로 폭발하는 것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버렸다.

유진은 폭발과 함께 쏟아지는 화염과 충격파, 그리고 쇠구슬들을 보며 오늘 중에서도 최고로 기겁했다.

진짜로 죽음의 위기가 느껴지는 가장 위험한 순간에 발동되는 초지각이 발동되며 유진의 시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유진은 필사적으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며,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고민해보려 했다. 하지만 절망적이었다.

뒤쪽과 오른쪽에서는 이미 모든 공간을 조밀하게 채우며 수천 개의 쇠구슬이 다가오고 있었고, 왼쪽에서는 이제야 확인한 클레이모어들이 서서히 폭발하는 것이 눈에 보였으며, 전면에도 아직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클레이모어들이 잔뜩 배치된 것이 보였다.

아무리 주변의 상황을 둘러보고 고민해도 별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다. 길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한순간에 불과한 초지각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유진은 아무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초지각이 끝나는 순간, 유진의 행동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염동력을 사용해서 주변에 장벽을 세우고, ‘바벨의 기억’과 ‘이름 없는 사슬’을 동원해 머리와 심장을 보호하고, 몸을 웅크려 피탄 면적을 줄이려 했다. 하지만 유진의 무릎이 원하는 높이의 반도 접히기 전에 쇠구슬이 먼저 도착했다.

마하 3의 속도로 음을 돌파해서 직격 하는 쇠구슬들 앞에서 유진이 사력을 다해 세운 염동력 장벽은 흔적도 없이 부서져 버렸고, 몸은 그 가공할 폭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쇠구슬들이 연달아서 유진의 몸을 난자했다. 그 쇠구슬 하나하나는 오늘 유진의 몸을 부수던 탄환들에 비해 아주 작고 약한 상처만을 남겼지만, 그 숫자가 폭력적으로 압도적이었다.

“!”

자기 손에 죽었던 자들처럼, 유진도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리샤르는 마지막으로 남은 종탑 위의 감시 카메라 영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각 대원의 헤드 캠을 포함해서 대성당 옥상에 사전에 설치되었던 카메라들은 클레이모어 폭발에 휘말려 모두 파괴되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대비해 미리 종탑에서 옥상을 내려다보는 형태로 설치되어 있던 카메라가 있었다.

이윽고 그 카메라가 보여주는 영상 속에서 폭발의 화염과 먼지가 가라앉아 한 가운데에 엉망이 된 몸으로 쓰러져 있는 유진의 모습이 확인되었다. 척 봐도 도저히 살아 있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좋았어!”

“잡았다!”

리샤르의 지휘부에 함께 하던 인원들이 그 모습에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리샤르는 서두르지 않고 냉정하게 대응했다.

“A팀! B팀! 드론 정찰 실행하라.”

여러 가지 이유로 사용하지 않고 있던 멀티콥터형 군용 정찰 드론 2기가 생드니 시청 방향과 맞은편의 상가 방향에서 각각 떠올라 생드니 대성당으로 향했다.

드론에 장착된 고화질 영상 카메라가 유진의 바로 옆까지 접근해서 찍은 영상이 모니터로 전송됐다.

검은 마스크로 둘러싸인 머리 부분과 명치 위쪽의 가슴 부위는 생각보다 너무 멀쩡해서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그 아래쪽 부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처참해서 또 그들을 놀라게 했다.

명치와 무릎 사이의 부분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복부는 완전히 사라져서 피와 살 근육은 물론 내장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채 오직 척추뼈만이 그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고, 허리 아래는 약간 근육과 생체 조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살짝 골반의 뼈가 보이고 있었다. 허벅지 부분도 비슷했다.

그건 아무리 초인이라도 생명체라면 살아 있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닥터!”

‘머스킷티어’ 보조 지휘관인 알파가 리샤르를 약간 독촉했다.

리샤르도 흥분한 얼굴이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조심했다.

“B팀 진입. A팀은 대기.”

각각 건물에 엄폐하고 있던 ‘머스킷티어’ 대원들이 일제히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아직 살아 있는 시민들은 중 일부는 그들의 옷에 붙어 있는 GIGN 마크를 보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면당했다. 시민 대부분은 애초에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오히려 몸을 움츠렸다. 조금만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도 그들이 자신들을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장은 무서우니 나중에 정부에 항의하겠다거나, 신문기자나 인터넷에 제보하겠다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생각 전부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머스킷티어’ 대원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정해진 대로 움직였다.

옥상으로의 진입을 명령받은 B팀은 건물 내부가 아닌 측면으로 향했다. 유진은 보지 못했지만, 그쪽에 전멸당한 옥상 팀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설치해 둔 줄사다리가 있었다.

드론이 아닌 ‘머스킷티어’ B팀의 맨눈으로도 유진의 육체는 완전히 박살 나서 시체가 된 것이 틀림없음이 확인되었다. B팀의 팀원 중 하나가 유진의 비교적 멀쩡한 가슴 위에 손을 올려서 심장이 멈춰있는 것도 확인했다.

“심장 박동 없음. 사망 확인 완료.”

리샤르도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리샤르는 몸을 움직여 육중한 철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미리 대비하고 있던 A팀이 그럴 맡았고, 알파 등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랬다. 유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지만, 리샤르는 ‘머스킷티어’가 타고 온 3대의 차량 중 장갑차량 중 하나에 탑승해 있었다.

유진이 그걸 알지 못한 것은 장갑차 자체는 전투가 벌어진 생드니 광장 중앙에 서 있었지만, 그 안의 공간은 물리적으로 현실 공간과 격리된 멀직히 떨어진 다른 공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샤르의 가문이 보유한 아티팩트의 힘이었고, 그걸 믿고 리샤르는 이 위험한 장소에 발을 디밀 수 있었다.

“A팀은 여기서 대기. 아군 시체와 장비들 수습하고 철수 준비하라. 알파는 나를 따르도록.”

리샤르는 서둘러 생드니 대성당 옥상으로 향했다.

리샤르는 드디어 유진의 몸이 자기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흥분을 참지 못했다. 시체라는 것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리샤르는 자신이 유진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 그건 사이가 나쁜 마리아 리페 박사와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유진을 괴롭히던 과정에서 생긴 우연의 일치였다.

그 증거로 리샤르는 자신의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진이 초인이 되던 실험 당시 뭘 어떻게 했는지 정확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애초에 성공하려고 한 실험이 아니어서 미리 데이터를 조작해두고 맘대로 실험을 한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기억을 되살려 이후에도 실험을 재현해 보려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도 비록 악의에 의한 것일지라도 유진의 탄생에 이바지한 몫은 있어서 나름 높은 대우를 받기는 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성과가 마리아 리페에 비해 부족했던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자기 창조물인 유진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십수 년의 시간을 보내다가 드디어 시체로나마 유진을 손에 넣었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얼마 전 죽은 닥터 요아힘처럼 냉정한 성격도 아닌, 허세가 심하고 다혈질인 성격이라서 더욱 그랬다.

옥상에 올라와 유진의 시체가 보이자 당장 달려들 듯한 흥분한 그의 모습에, 직속 부하 알파가 그를 좀 달래보려는 생각으로 말을 걸었다.

“그래도 다행히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의 피해로 잡았습니다.”

“‘바벨의 기억’ 덕분이지. 저거 확인 안 되었으면 전투 시작 안 했어. 저 검은 투구에 가득한 수많은 문자는 재생 능력을 제외한 유진의 거의 모든 초능력을 거의 다 억제하고 있다는 상징과 같은 거지. 탈출에 성공하고, 염동력도 쓴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봉인의 억제를 벗어난 듯하지만, 아직은 정상이 아니었던 거야.”

리샤르가 평소보다 길게 수다를 늘었다. 지금 그가 얼마나 기분이 들뜨고 흥분해 있는지를 알려주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알파와 그 외 ‘머스킷티어’ 대원들은 그의 대답에서 싸늘한 불길함을 느꼈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유진이 머리에 쓰고 있는 투구 ‘바벨의 기억’으로 향했다.

그 투구는 수많은 문자는 고사하고 그 폭발 속에서도 흠집 하나 없이 완전무결한 표면 상태를 하고 있었다.

“닥터!”

리샤르의 뒤를 따르던 알파가 급하게 리샤르의 앞을 가로막으려 움직였고, 다른 대원들도 아직 놓고 있지 않던 총구를 유진의 시체로 향했지만, 늦었다.

시체라고 믿고 있던 유진의 팔이 갑자기 움직이더니, 그 팔에서 은색 사슬이 점프하는 독사처럼 튀어나와 리샤르의 목에 감겼다.

그리고.

“커헉!”

갑작스럽게 목이 조여진 리샤르의 당황한 신음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이 유진의 시체, 아니 시체처럼 보이던 몸 위로 끌려갔다.

‘머스킷티어’ 대원들은 그런 리샤르가 위험한 탓에 유진을 향해 겨눈 총구의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었다. 세뇌가 병행된 철저한 훈련으로 그들은 필요하다면 살아 있는 동료를 향해서도 방아쇠를 당길 수 있지만, 반대로 리샤르가 위험해지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이름 없는 사슬’을 이용해 리샤르를 잡아챈 유진은 왼팔로 그의 목을 감싸 안은채 바닥을 한 번 구르고는 그 탄력으로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유진의 몸은 골격 표본에 가까운 시체로 보였고, 심장도 뛰지 않았지만 유진은 살아 있었고, 근육이 없는데도 몸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폐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도 말도 할 수 있었다.

유진은 너무 당황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리샤르를 자신을 포위한 ‘머스킷티어’의 총구에 대한 방패로 내세운 뒤,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체크메이트. 드디어 내 손에 잡혔구나, 이 개새끼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