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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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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대의와 정의 그리고 국익 – 12
자신들의 병력이 새롭게 나타난 군인들에게 학살당하는 동안, 책임을 져야 하는 자들은 대책에는 손을 놓은 채 자기들끼리 책임을 놓고 언쟁만 벌이고 있었다.
리샤르가 직접 현장까지 나가서 작전을 지휘해야만 했던 이유가 그거였다.
그들은 실무진이라고 불지지만, 실제로는 실무에는 거리가 먼 정치적으로 활동하는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니콜라 어떻게 된 거요! 정부는 당신이 막아주기로 한 거잖소!”
“이럴 리가 없소! 생드니에 GIGN이 출동하면서 내게 연락도 없을 수는 없소!”
“하지만 저기 GIGN이 있잖아! GIGN이 우리 애들을 학살하고 있잖아!”
“저건 GIGN 일 수가 없다니까!”
“GIGN 이라고 이름표를 붙이고 있는 저 병력이 GIGN 아니면 뭔데!”
자중지란을 일으킨 프랑스 계파 인원들의 헛소리를 듣고 있던 마리아 리페가 더 이상의 개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당신들이 동원한 ‘머스킷티어’처럼 GIGN으로 위장한 미국 특수부대겠죠.”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로 쏠렸다.
“앤 헤이즈를 이용해서 함정을 파자고 주장하셨던 사람들이, 그녀라도 당연히 자기 부대를 주변에 배치해 뒀을 것이라는 점을 몰랐다는 것이 우습지도 않군요. 앤 헤이즈에 대해서 기본적인 조사만 했어도 그녀가 세상에서 제일 피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첩보작전에 특수부대를 이용한 타격부대를 가장 자주 동원하는 첩보계의 거물이라는 것 정도는 알 텐데 말입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마지막 ‘머스킷티어’가 사망했다. GIGN으로 위장한 블루팀은 전혀 인명 피해 없이 그들을 전멸시켰다.
자신들이 가진 비장의 한 수인 ‘머스킷티어’가 완전히 전멸된 것을 확인한 프랑스 계파 인물 중 하나가 마리아를 원망했다.
”왜, 왜 미리 말해주지 않은 거요! 당신이 말만 해줬다면!“
”내가? 내가 왜? 원래 이 작전은 앤 헤이즈를 발견하고, 그녀와 유진의 접촉 가능성을 예측한 내가 조심스럽게 꼬리를 붙이려고 했던 작전이었어. 그걸 당신들이 생드니가 프랑스 지역이라는 이유로 나를 배제하고 맘대로 유진을 포획하려고 멋대로 계획을 짰다가 멋대로 망한 거잖아? 그 와중에 혹시 내가 권한이라도 가질까 봐 꺼려져서 이번 작전에 대해서 나를 속이기까지 했지. 당신들이 개판쳐놓고 왜 자꾸 나에게 지랄이야?“
지금까지의 점잖던 모습을 때려치운 마리아 리페가 독설을 더 퍼부었다.
”그리고 저런 괴물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누구 책임이냐고? 그게 다 너희 책임이잖아, 이 병신들아! 3년 전 그날 이후 원래 있던 실험체는 다 도살해서 나눠 가지고, 그 와중에 제대로 기밀 유지도 못 해서 외부에 다 소문내고, 남들이 성과라도 낼까봐 무서워서 유진에 관한 연구 자체는 또 금지한 것이 너희들이잖아, 이 개새끼들아. 그것도 모자라서 이번 이송 작전에서 탈취를 위해 내부 사보타주에 테러까지 해 놓고 인제 와서 누구 책임이냐고! 누구 책임이냐고!“
마리아 리페가 목에 핏대까지 세우고 고함을 퍼붓자, 프랑스 측 인물들도 발끈했다. 그들은 마리아 리페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젊은 여자가 무례하게 소리를 지르는 것에 분개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의 입에 열리기 전에 먼저 나온 말소리가 있었다.
”전원 정숙하시오.“
이 자리에 직접 참석하지 않은, 하지만 카메라와 모니터로 그들을 모두를 지켜보고 있던 UE의 최고 집행위 의장의 한마디에 혼란스럽던 회의실이 단 한 번에 침묵했다.
UE는 비밀 결사 조직이다. 그 수장인 의장은 UE의 지배자는 아니었지만, 실무진 따위의 생사는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지위였다. 특히나 그 실무진이 자신의 계파 사람인데다가, 잘못까지 저질렀다면 더욱 그랬다.
장내는 조용히 시킨 의장은 우선 마리아 리페에게 경고를 보냈다.
”언행에 주의하시오, 리페 박사. 언사가 너무 과격하고 품위가 없었소.“
”오호? 이 상황에서 내가 잘못 했다는 건가요?“
”물론이오.“
의장과 마리아의 대화가 여기까지 진행되었을 때, 그녀에게 폭언을 내뱉고 폭언을 들은 프랑스 계파의 인원들에 화색이 돌았다. 자신들 계파의 최고 수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오늘날 프랑스 계파가 폭주에 가까운 월권을 행사한 자신감의 대상인 의장이 자신들 편을 들어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의장의 이야기가 그들의 얼굴에서 핏기를 가시게 했다.
”리페 박사가 거기에 같이 앉아 있다고 그들과 동격인 것은 아니지 않소.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잊지 말고, 그에 걸맞는 언행과 품위를 잊지 마시오. 당신이 실무진들과 대거리를 하는 일은 당신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체면을 손상하는 문제요.“
마리아는 피식 웃었고, 회의실은 실무진들은 그제야 마리아가 누군지 새삼 깨달았다.
그녀의 부친은 의장과 동격인 최고 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이었고, 마리아는 차후 그 자리를 물려받을 예정인 인물이었다. 평생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최고 위원회는 고사하고 그 하부 조직인 실행 위원회의 위원이 될 가능성도 없는 그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단지 하는 일 때문에 그들과 같이 있을 뿐.
자신들이 무슨 실수를 벌였는지 깨닫고 사색이 되어가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선고가 내려졌다.
”이번 작전의 실패를 선언한다. 기존 팀과 기존 작전은 모두 폐지하고, 추후 처리 방식은 새로운 작전팀이 구성된 후 새롭게 진행한다. 작전팀과 실행팀을 제외한 옵저버 들은 모두 퇴장하라.“
의장의 차가운 이야기 속에 회의실에 남게 될 실무진, 그중에서도 특히 이번 일에 무리수를 많이 둔 프랑스 계파의 미래가 뻔히 보였다.
마리아는 사색이 된 그들에게 차가운 비웃음 한번 보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다. 그 외 다른 인원들도 그녀처럼 프랑스 계파 인물들에게 비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쟁자의 불행은 그들의 행복이니 모두 기뻐했다. 특히나 최근 프랑스 계파가 다른 계파들에 적의를 많이 샀기에 더욱 그랬다.
옥사나 유센코는 회의실 문을 나선 후, 다른 인원들과는 확연하게 떨어진 곳을 고고하게 홀로 걷고 있는 마리아 리페에게 급히 다가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감히 엿듣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말을 걸었다.
”일이 당신의 목표대로 만족스럽게 진행된 겁니까, 리페 박사?“
”물론입니다, 유센코 박사. 특히나 당신의 협조에 감사하는바 입니다.“
”다행이군요. 이런 더러운 일에 끼어드는 대가로 한 약속은 확실히 지켜줄 거라고 믿습니다.“
옥사나 유센코가 유진에게 ‘바벨의 기억’의 봉인을 풀 ‘더 키’를 건넨 것은 마리아 리페의 회유를 받아서였다.
이 복잡하고 지저분하며 더럽기 짝이 없는 일에 마리아 리페도 확실히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처지에서 옥사나 유센코는 병신 같은 프랑스 계파의 인원들뿐만 아니라 눈앞의 마리아 리페에게도 꽤 불만이 많았다.
마리아 리페는 그런 옥사나 유센코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 일에 불만이라도 있으신가 보군요?“
”당연한 것 아닌가? 당신에게 협조한 입장에서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사실 이 모든 일은 당신이 건네주고, 내가 사용한 그것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지.“
숨기지 않고 혐오를 드러내는 옥사나 유센코에게 마리아 리페가 정색했다.
”대신 그 아이는 영원히 가축처럼 살아가다가 도축이나 당했겠죠. 우리는 그 아이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을 갖춘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몰랐을 테고, 그 아이의 그 뛰어남을 후세로 이어 인류가 새롭게 태어나 위대하게 도약할 기회도 놓쳤을 테고요. 희생된 사람들 중에 죄없는 안타까운 인물들도 여럿 있지만, 대의를 위해서 그 정도는 감당해야죠.“
약간의 광기와 신념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옥사나 유센코는 할 말을 잃었다.
비록 이 조직에 머물며 연구소장이라는 실무직이 도달할 수 있는 거의 한계까지의 최고위직까지 오른 그녀이지만, 인체 실험을 무슨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마음까지는 없었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와 일본제국의 인체 실험 성과과 후대에 미친 영향에서 볼 수 있듯이, 인체 실험 따위로 얻는 자료의 가장 큰 이점이라고 해봐야, 동물실험을 포함한 윤리적 규범에 따라서의 실험보다 성과를 조금 빨리 확인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 반대로 인체 실험이라는 특징상 대규모 실험군을 형성하기 힘들어 잘못되거나 왜곡된 정보와 결과를 도출시킬 위험성이 더 크다.
오늘날 세계에서 인체 실험이 터부시되고 동물실험이나 대규모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이 더 많이 활용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성과 안전성의, 비용 절감의 문제에 더 가깝다.
옥사나가 UE에서의 인체 실험을 그나마 긍정적으로 여기는 부분은 오직 하나, UE의 인체 실험은 아티팩트와 고대 유물 혹은 정체불명의 초과학 산물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때문이었다.
유진의 경우에서 보듯이 그것들은 인간과 동물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인간에게서도 전혀 다른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사람을 직접 활용해서 반응의 차이를 구별하고, 그중에서 운이 좋은 경우를 만나기를 기대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다른 연구 방법이 없었다.
유진이라는 첫 초인이 탄생하기 전에도 몇몇 치명적인 전염병의 치료제나 백신이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전례가 있고, 유진의 탄생으로 더 많은 것들이 만들어지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옥사나 유센코가 UE의 인체 실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마음은, 그 과정에서 죽어간 사람들 보다 그 연구의 결과로 생명을 구한 사람들의 숫자가 비교도 할 수 없이 많다는 점 하나뿐이었다.
의학자로서 그녀는 인체 실험을 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로 인해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자신의 손을 더럽힐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도 절대로 정상적인 사람의 사고 방식은 아니지만, 그것이 그녀가 이 조직에 몸담고 있는 이유였다.
그래서 그녀는 마리아 리페가 말하는 새로운 인류로의 발전 따위에 절대로 호응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인류? 위대한 도약? 누가 당신에게 그런 걸 결정할 권한을 주었죠? 아니 애초에 유진조차 본인을 그런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명백하던 데요? 자식을 낳을 수도 없는 존재가 무슨 새로운 인류가 됩니까? 임신 능력은 고사하고 클론 복제도 안 된다는 것을 당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잖아요? 대의는 무슨.“
숨길 수 없는 혐오감을 드러내는 옥사나 유센코에게 마리아는 굳이 더 대꾸하지 않았다.
새로운 인류로의 진화에 따라갈 자신이 없거나, 도태될 것이 분명한 자들의 이런 반응에 이제 일일이 신경 써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울컥하는 부분이 있어서 한 마디만 해주었다.
”내가 왜 굳이 그 아이를 밖으로 내보냈는지도 생각해보지 않았군요, 당신. 과연 앞으로 영원히 유진에게 생식능력이 없을 것으로 생각해요? 우리가 유진의 진화에 대해서 정말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확인된 오늘 일을 보고도? “
옥사나 유센코가 뭐라도 대답하려 했지만, 마리아 리페는 몸을 돌려 그녀와의 대화를 끝냈다.
”걱정은 하지 마요. 약속은 지켜질 테니까.“
얼굴도 보지 않고 뱉은 그 말이 작별 인사 대신이었다.
말없이 노려보는 옥사나 유센코를 등 뒤에 두고 걸으며 마리아는 혐오감에 몸부림쳤다.
UE는 그들의 선조들이 발견한 과거의 숨겨진 역사와 세계의 비밀에 대한 진실을 보존하고, 남겨진 유물을 통해 인류가 가야 할 새로운 미래를 탐색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그런 면에서 유진의 탄생은 니체가 선언하고 그들의 선조들이 감복했던 ‘위버멘쉬’. 인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인류를 극복한 새로운 인류의 시발점이 될 수 있었다. 현재 그녀가 생각하는 문제는 오직 하나. 유진이 어떤 식으로든 후세를 남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하나로 끝난다면 그건 새로운 인류일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고 스스로 삶을 이어가길 원하게 된다면 어떨까?’
마리아 리페는 유진의 생식능력이 정지된 것은 가축과 같은 삶에서 후세를 이을 필요성과 안전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그래서 유진의 탈출을 계획했다. 바깥세상에서 제대로 된 삶을 누리며 안전을 느끼고 후세를 원하게 되면 지금은 정지된 생식능력이 자연스럽게 복원되리라고 추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새로운 인류의 시작이 될 아이는 내 배에서 태어날 것이다.’
마리아 리페는 자기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15살의 유진과 첫 섹스로 그 아이의 정액을 자궁에 받아들였던 그날 이후, 그녀 삶의 목표가 이것이었다. 유진의 자식을 임신해서 새로운 인류를 시작할 아이를 출산하는 것.
‘성공한다면 는는 새로운 인류의 시조로서 아담과 이브처럼 유진과 함께 불멸의 존재로 기억되리라.’
그것이 그녀의 야망이자 꿈이고, 대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