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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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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대의와 정의 그리고 국익 – 13
유진을 둘러싼 세력들과 그 세력을 움직이는 자들이 각자의 생각대로 활동하던 그 시간, 정작 텔레포트로 이동한 유진의 상태는 몹시 나빴다.
“으으윽!”
유진은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유진이 사용한 텔레포트는 그냥 하나의 공간에서 뿅 하고 사라져 다른 공간으로 뿅 하고 나타나는 그런 편리한 능력이 아니었다. 그건 매우 위험하고 원래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살아보자고 쓸만한 능력도 아니었다. 자칫하면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영혼이 오염되고 소멸할 수도 있는 그런 능력이었다.
원래 써서는 안 되는 능력이었다.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지만, 필멸의 존재 따위가 감히 불멸이 흘린 작은 한 조각의 흔적을 가지고 사기를 쳐서 자격이 없는 곳에 발을 디딘 대가는 정말로 끔찍했다.
유진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세포와 영혼의 가장 미세한 조직들이 그들을 소멸시키려는 위대하고 절대적인 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격렬하게 투쟁하고 있었고, 소멸과 유지 그리고 재생의 사이클 속에서 유진의 육체와 영혼이 동시에 불타올라 녹아내리고 있었다.
‘바벨의 기억’이 영혼과 기억의 단위에서 자기 몸을 고정해준다는 것을 믿고 시도한 도박은 생각대로 그의 목숨은 건져 주었지만, 유진은 그 대가를 정말 그의 처참한 생애에서조차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끔찍한 고통으로 치르고 있었다.
유진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이 능력을 사용한 것은 협박이자 위력 시범이었다.
죽은 척하고 있는 동안 유진은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앤 헤이즈와의 대화로 너무도 쉽게 이루어진 자신의 탈출이 외부의 힘과 내부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협잡 덕분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정찰 드론을 보는 순간, 정찰 드론만이나 아니라 도시 사방에 깔린 수많은 감시 카메라들과 우주에서 떠다니고 있을 위성까지 떠올릴 수 있었다. 리샤르만이 아니라 수많은 존재가 지금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거기에 이 ‘머스킷티어’들과의 전투도 유진에게 꽤 쇼크였다.
아무리 자신이 생각 없이 적의 함정에 뛰어든 상황이라고는 해도 고작 서른도 안 되는 인원들에게 이 정도로까지 농락당했다는 것은 꽤 놀라웠다.
물론 한번 경험해봤으니 앞으로 비슷한 일은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유진 자신이 UE나 CIA 그리고 세상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히 자각했다.
생각해보니 슈퍼 솔져들로 구성된 전투 부대가 문제가 아니었다.
정부 소속으로 위장한 상태에서도 민간인을 거침없이 사살한 놈들이다. 나중에라도 그걸 문제 되지 않게 처리할 자신이 없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쯤에서 유진은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 볼 수밖에 없었다.
굳이 사람을 동원해서 공격할 필요가 있을까?
세상에는 핵 말고도 광범위한 범위와 위력을 가진 폭탄은 얼마든지 있었고, 민간인 피해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걸 사용할 방법도 수도 없이 많았다.
그래서 유진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들이 함부로 폭탄 같은 극단적인 수단을 쓸 수 없게, 그리고 자신을 공격하면 자신도 그들에게 충분히 복수할 수 있는 위협적인 방법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협박할 방법을.
텔레포트는 여러모로 그것을 위해 가장 완벽한 기술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유진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걸 쓴 것이다.
그리고 극단적인 상황에 큰 고민 없이 내린 그 결정을 후회하고 있었고.
고통스러운 재생의 시간이 끝나고, 부족한 생각으로 사용한 텔레포트에 대한 후회가 약해지자, 그제야 유진은 뒤늦은 작은 만족감을 느꼈다.
‘잡았다. 잡았어. 쥰과 라엘라에게 한 약속을 지켰어.’
유진은 먼 예전에 죽은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작게 웃을 수 있었다.
요하임 박사가 탈출 실패 후에 벌어진 대학살의 실행자였다면, 리샤르는 유진이 첫 실험에 성공한 직후, 재현이라는 명목으로 유진의 친구들을 상대로 계속 실험을 반복해 그들을 모두 죽여버린 인간이었다. 그리고 마리아 리페는 그 과정에서 유진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그 모든 일을 묵인했다.
물론 그 모든 죄악은 실무진보다는 UE라는 조직과 그 수뇌부의 책임이 가장 크기는 하다. 아이히만이 자신은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고 그의 죄가 히틀러 책임이 되지 않은 것처럼, 실무진은 실무진대로 죽어 마땅한 그리고 직접 피해자에게는 최종 책임자보다 더 증오스러운 상대일 뿐이었다.
유진은 생각을 좀 정리했다.
가장 우선으로 생각했던 3명의 목표 마리아 리페, 오스카 요하임, 장 폴 리샤르 중 2명을 벌써 제거했다. 평생은 몰라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한 목표였는데 몇 일 걸리지 않았다.
결국 남은 것은 마리아 리페뿐인데, 유진은 마리아에 대해서는 고민이 꽤 많았다. 그녀에 대해 가진 증오와 원망만큼이나 끈적하게 남아 있는 추억과 애정에 대한 기억은 유진에게 약간이지만 갈등 요소였다.
거기에 마리아 리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어느 정도 아는 유진은, 그녀를 제거하는 것은 요하임이나 리샤르의 경우와는 달리 UE의 최고 수뇌부와의 싸움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건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키워 최종적인 결과로 삼을 목표였지, 지금 당장 노릴 목표일 수는 없었다.
그다음 순위 목표로 생각했던 앤 헤이즈는 애매한 타겟이 되었다. 그녀를 무고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후에 생길 부담까지 생각하면 당장 처리할 대상으로 삼기 애매했다.
그 외 다른 인물들은 대부분 3년 전의 탈출 시도 당시 죽였거나, 굳이 추적까지 해가면서 찾아 죽이기는 애매한 존재들이었다.
유진은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 간단하게 자신이 우선적인 목표에 관한 결과를 내었고, 앞으로의 목표가 애매해졌다는 것을 인지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물론 최종 목표는 UE라는 조직과 그 조직에 속하거나 협조해서 이득을 얻은 모든 자들을 말살하는 것이다. 하지만 UE는 어떤 면에서는 유럽 그 자체이며, 어쩌면 세계 그 자체일 수도 있었다. 지금 당장은 그들로부터 자신을 숨기고, 그들을 파악하고, 자신의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원래 그러기 위한 계획도 있었다. 생각했던 목적지는 미국이었다.
UE의 영향력이 약할 것이 분명하며,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과학 기술의 본거지이며, 광대한 영토와 폭넓은 자유가 보장되는 미국이라면 숨어서 힘을 기르기에 알맞은 곳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앤 헤이즈를 만나고, 미국인으로 보이는 특수부대가 프랑스에서 거리낌 없이 전투를 벌이는 모습까지 보고, 하늘 위에 떠 있을 위성에 대한 것까지 고려하자 미국은 안 될 것 같았다.
앞으로 일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필요했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민할 여지와 여유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자신이 성공적으로 잘해나가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의 꼴은 잘했다고 보기는 어렵기는 했다.
텔레포트 후유증으로 인한 문제가 종결되고, 간신히 움직일 수는 있게 되었지만, 그것조차 육체의 힘이 아닌 ‘바벨의 기억’에 담긴 특별한 능력을 활용하여 염력과 비슷한 의지력으로 몸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뼈만 간신히 남기고 박살이 났던 부분들은 최소한의 재생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 반대로 멀쩡했던 부분들도 텔레포트 반동으로 엉망이 되었다. 지금 유진의 몰골은 뼈에 가죽 정도만 간신히 붙어 있는 붕대 잃은 미라와 거의 다를 바 없는 몰골로, 몸을 지탱하고 움직이기 위한 최소한의 근육도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
덤으로 알몸이기도 했다.
유진은 우선 몸을 가릴 옷을 훔치기 위해 주변의 적당한 인가부터 확인했다.
그래도 여전히 별로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단 당장은 돌아갈 곳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진은 약간은 들든 마음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떠나는 유진의 모습을 앤 헤이즈가 화면을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앤이 원래부터 유진의 이동을 노리고 설치한 카메라는 아니었다. 이 지역을 광범위하게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카메라 중에서, 누군가가 은닉하게 좋은 곳을 구별해서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카메라 중 하나에 유진의 모습이 잡힌 것이었다.
그래서 앤은 유진이 텔레포트 직후 무척이나 괴로워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 그의 몸이 재생하는 과정도 지켜볼 수 있었다.
유진의 모습이 영상에서 사라지자 현재 장소에서 유일하게 앤을 보좌하고 있던, 그래서 앤과 함께 유진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던 미리엄이 물었다.
“쫓을까요?”
앤은 고개를 저었다.
“그만둬. 저 아이가 카메라에는 아직 이상할 정도로 취약한 것 같기는 한데, 사람이 미행하는 것까지 눈치채지 못하지는 않을 거야.”
“챈틀리와 공조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앤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경고했을 텐데, 마리. 다른 조직과 인물들이 유진에 관한 정보를 스스로 취득하는 것까지 방해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앤의 경고에 미리엄이 입을 다물었다.
감시자일 것이 뻔한 미리엄이 앤의 보좌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그 임명을 받아들이며 앤이 한 유일한 경고였다. 미리엄을 보낸 사람들도 동의했다. 반역 위험이 직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상 그녀의 명령에 따르라고.
하지만 미리엄은 국가정찰국이 극비의 정찰 위성을 3대나 동원한 감시가 실패한 것을 아는 처지에서 이걸 공동 작전 진행 중인 같은 팀에게까지 숨기는 것이 옳은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아주 조심히 이견을 제시했다.
“기껏 만들어서 전달한 여권이 파괴된 것을 보셨잖아요. 추후 재접촉을 위해서라도 거처 확인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앤은 미리엄을 더 이상 탓하지는 않았다. 아직 순수하고 정의로운 그녀의 성격이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래 이쪽 물을 먹으면, 부서 간 협조고 자시고 모든 비밀과 정보는 자신만 쥐고자 하는 것이 꼭 이기적인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그녀 본인도 얼마 전 당했던 것처럼 죽은 스파이의 반 이상은 적이 아니라 아군이라고 믿었던 자들이 일으킨 문제로 죽는다.
앤은 이미 자신의 위대한 조국과 그 조국을 움직이는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 그리고 군인 대부분과 정보조직들에 대한 믿음도 잃은 상태였다.
하다못해 자신에 대한 경호까지 원래 자기가 속해 있던 CIA가 아니라 미군 특수작전 사령부 SOCOM에 요청해서 TF팀을 파견받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걸 이제 막 이 세계에 발을 들인 미리엄을 상대로 이야기해줄 생각은 없었다. 이건 스스로 깨닫기 전에 너무 일찍 알면 오히려 더 일찍 스스로 죽음을 불러오기에 좋은 이야기였다.
앤은 미리엄을 위해서라도 그냥 자신이 괴팍한 사람으로 남을 대답을 했다.
“그런 건 자네가 내 지위가 되면 고민하고, 지금은 내 명령을 따르도록.”
미리엄은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침묵했다.
앤은 미리엄이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이번 작전을 함께 진행 중인 국가정찰국이나 원래 본인이 속해 있던 CIA에 정보를 공유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다시 경고해서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앤의 계획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앤은 미리엄이 본인의 정의롭고 올바른 마음이 국익이라는 이름의 필요악에 더럽혀지고 유린당하는 경험을 겪고 난 후에야 그녀를 진지하게 대할 생각이었다.
앤은 그보다는 자신이 유진에게 건넨 여권이 완전히 파괴된 지금 여권이라는 존재에 대해 인지한 유진이 차후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만약 여권에 대한 갈증이 생긴다면 어디서 그것을 획득하려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셀림에게 연락해 봐야 겠군.’
앤은 파리 어딘가에 숨어있을 자신의 옛 동료를 떠올리며, 전화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