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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38화 (38/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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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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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집과 아이와 여자, 그리고 여자와 또 여자 - 01

“손님, 필요하신 거 있으신 가요?”

차민영은 스튜어디스의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들으며 소름이 끼치는 느낌이었다.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친절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부드러웠지만, 표정은 그렇지 못해 눈은 삼각형으로 치켜뜬 채 당장 레이저라도 쏠 것 같은 강렬한 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차민영은 그런 스튜어디스를 무례하다고 탓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재수가 없을 수가.’

지금 그녀를 담당하고 있는 스튜어디스는 차민영의 대학 후배인 차수연이었다.

그리고 차수연은 그냥 관계상 후배만은 아니었다.

차수연은 죽은 남편이 자신과 정식으로 사귀게 된 이후에도 양다리 걸치고 있던 상대였고, 남편과 차민영의 신혼여행에도 동행한 반공식적 남편의 세컨드였으며, 차민영의 레즈비언 애인이자, 학생 때부터 남편이 차민영에게 강요한 온갖 변태적, 굴욕적, 퇴폐적 경험을 같이한 파트너이기도 했다.

차민영은 남편이 죽었을 무렵 즈음에는 사실 남편보다 차수연과 더 많이 섹스하던 상대였고, 차수연 또한 차민영의 남편 준화가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차민영과 차민영이 임신한 아이에게 집착할 정도로 반쯤 미쳐 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차수연을 차민영은 남편 사후 냉정하게 밀어냈다.

소문이라도 나면 얼굴 들고 다닐 수 없을 과거는 이제 지워버리고, 태어날 아이를 남들 보기에 평범한 환경에서 키우고 싶다는 이유였다.

차수연은 몹시도 서운하고 원통해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남자도 여자도 가까이하지 않고 태어날 아이만을 위해 살겠다는 차민영을 이해하고 그녀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5년 만의 첫 조우가 이런 꼴이었다.

자식을 위해 홀로 살겠다며 냉정하게 잘라낸 옛 연인에게 새파랗게 어린 남자와 함께 있는 꼴을 들킨 것이다.

차수연이 아니라 차민영 본인이었다면 손님이고 뭐고 뺨을 왕복으로 후려치고도 남을 일이었으니, 차민영이 차수연의 스튜어디스답지 않은 태도에 감히 뭐라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용건은 말해야 해서 시선을 외면한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접시 치워 주시고, 간식 추가로 부탁해요.”

차민영을 노려보던 차수연의 눈이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제공된 식사가 끝나자마자 추가로 간식을 요청하는 그녀에게 3인분이 넘는 양을 잔뜩 챙겨다 준 것이 고작 10분 전이었다.

그런데 접시는 텅 비어 있었다.

차수연은 잠시 차민영과 옆 자리의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차민영이 소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걸 먹은 것은 옆자리의 어린 남자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커다란 키와 날씬한 몸매, 그리고 곱상하지만, 개성 있게 잘생긴 얼굴을 보며 차수연은 이 어린 남자애가 틀림없이 연예인이나 모델일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간식을 3인분이나 제공한 것이었다. 식사 조절이 필수일 환경의 남자애가 눈앞에 보인 먹을거리를 보며 망설이라는 심술이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잠시 차수연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자신의 심술이 잘 먹힌 것 같으니, 아예 엿 먹여 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차수연은 싱긋 웃으며 접시를 챙겨갔고, 차민영은 끝까지 그녀의 눈빛을 외면했다.

다행히 다시 접시 가득 쿠키와 샌드위치를 쌓아서 가져온 것은 다른 스튜어디스였다.

접시를 받아 옆자리에서 영화에 열중 중인 유진에게 건네준 차민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뒷골목도 아닌 호텔 방에서 다시 한번 끔찍한 꼴을 당할 뻔한 상황에서 다시 한번 유진에게 구원받고 자신도 차민영은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애정을 담아 키스했다.

그걸로 두 사람이 드라마틱하게 사랑에 빠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유진은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몰랐고, 차민영은 너무 일찍 그리고 많이 감정을 소모 당하고 잃어버린 여자였다.

하지만 이후에 두 사람의 행동은 사랑에 빠진 연인과 비슷하기는 했다.

유진은 그녀가 다시 한번 위험에 처한 계기가 된, 유진이 떠난 후 다시 사다 놓은 엄청난 양의 빵과 과자 음료수 등을 그녀의 시중을 받으며 먹어 치웠다. 빵뿐만 햄과 통조림 등 다른 맛있는 것들도 많이 있어서 유진은 정말 행복하게 식욕을 채울 수 있었다.

그리고 식욕을 채운 다음은 성욕이었다.

차민영은 밤새도록 쉴 사이 유진에게 유린당했다.

아무리 핥고 빨고 삼켜도 사정하지 않은 자지에 지친 그녀가 입을 떼자, 유진은 그녀를 안아 들고는 선 채로 자지를 박아 댔다.

허공에 뜬 채로 유진의 목에 매달려 목이 쉴 정도로 신음과 비명을 지르며 여러 차례 오르가슴을 견뎌내야 했다.

그러다가 그녀가 허리의 통증을 호소하자, 다음에는 바닥에 엎어 놓고 마구 짓이겨 버렸고, 그녀가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일 때마다 엎어 치고 뒤를 치고 들고 내리며 온갖 자세로 쉴 새 없이 박아 댔다.

나중에는 보지가 아파서 견딜 수 없어 하자 다시 입과 목을 짓밟았고, 턱이 저려서 입을 벌릴 수 없을 지경이 될 때까지 이용하다가 그녀가 울먹이면서 거부하자 다시 발목을 잡고 다리를 찢어서는 보지에 박아 댔다.

그렇게 차민영은 목이 쉬어 더 이상 신음이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온몸에 아프다 못해 멍이 들고 근육통이 올 때까지 유린당하다가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차민영이 그렇지만 싫지는 않았다. 힘들었지만 죽어도 좋을 만큼 즐거웠다.

그 날 이후 테러의 여파로 관광따위 불가능해진 도시에서 차민영은 마치 갓 사귀기 시작한 연인이나 오랫동안 헤어졌단 다시 만난 부부처럼 생활했다. 먹고 씻고 섹스하는 나날을 반복한 것이다.

그런 생활을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트게 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친밀감과 유대감을 쌓았다.

그래서였다. 유진이 그녀와 함께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단호하게 거부하지 못한 것은.

물론 그렇다고 쉽게 동의하지도 않았다.

유진과 유희를 즐긴 것과는 별도로 차민영은 상대가 무섭고 두려우며 괴이한 정체불명의 존재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하루 만에 뼈와 가죽만 남은 몰골이 되었다가 순식간에 다시 멀쩡해지는, 수십 명이 배불리 먹고도 남을만한 양의 음식을 혼자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사람을 평범하게 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존재와 파리에서 짧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까지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딸인 소진이와 만나게 한다는 것에 불안감이 들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차민영의 걱정은 유진의 한 마디에 꺾이고 말았다.

“당신이 거절한다면 나도 다른 대안을 찾아야겠지. 하지만 당신 나랑 헤어지고 나서 살아서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이건 유진이 그녀를 헤치겠다는 협박 같은 것이 아니었다.

파리가 엉망이 되고 유진과 함께 보낸 3일 동안, 차민영은 매일 한 번씩 죽을 뻔했다.

식료품 사러 외출했다가 불법 이민자 난민에게 강도를 당할 뻔하기도 했고, 목욕 중에 감전당할 뻔하거나, 꼭꼭 씹어서 잘 먹던 복숭아의 씨를 엉뚱하게 잘못 삼켜서 기도가 막혀서 죽을 뻔하기도 했다. 마치 죽음의 신이 왜 죽지 않냐고 계속해서 그녀의 목숨을 노리기라도 하는 듯한 불운의 연속이었다.

결국 차민영은 굴복했다. 대신 조건이 붙기는 했는데, 유진이 그 조건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게 동의했기 때문에 둘은 지금 함께 한국으로 동행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진을 자신의 애인이라고 여기면서 질투와 집착 내보이는 차수연의 모습은 차민영에게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차민영은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전에 확인을 위해, 영화 ‘본 슈프리머시’에 열중 중인 유진을 팔뚝으로 툭툭 쳤다.

유진이 영화감상에 방해받자 뚱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

“혹시 섹스 상대가 더 필요하지 않아? 솔직히 말해서 난 너를 파리에서처럼 계속 상대해줄 자신이 없어.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시간도 부족할 것 같고, 무엇보다 소진이 눈치를 봐야 해. 우리 이 부분은 약속했지? 소진이 앞에서는 조심하겠다고.”

차민영이 유진에게 받아낸 약속이 이것이었다. 딸인 소진이의 안전을 절대로 보장하고, 딸 앞에서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를 딸 앞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것.

“그래서?”

차민영이 차수연을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쟤는 어때? 나를 대신할 섹스 파트너도 괜찮지 않겠어? 젊고 나와 달리 아이가 딸린 것도 아니야. 섹스 외에도 당신에게 더 쓸만하지 않을까?”

유진을 완전히 남에게 떠맡길 생각은 아니었다. 파리에서 반복되는 죽음의 위기는 원래부터 운명이나 무속에 어느 정도 빠져 있는 그녀에게 나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가능하면 유진에 대한 부담을 좀 줄이고 싶기는 했다.

매우 몹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유진에게 옛 후배이자 지인을 팔아먹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 옛날 아무것도 모르는 차민영을 속여서 훗날 남편이 된 강준화의 먹잇감으로 만든 것이 차수연이었다. 그 이후 서로 단순히 증오만은 할 수 없는 복잡한 사이가 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여전히 차수연을 이런 일에 끌어들인다고 죄책감 따위 느끼지 않을 사이이기도 했다.

차민영은 유진이 자신의 제안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

차수연은 정말 미녀였고, 대부분 남자가 성적 판타지를 갖는다는 스튜어디스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유진의 반응은 그런 그녀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귀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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