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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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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집과 아이와 여자, 그리고 여자와 또 여자 – 06
유진이 차수연을 어떻게 해보기로 했다고 해서, 당장 그녀와의 밀고 당기기를 시작하는 그런 일은 당연히 없었다.
그들은 장기 여행 후 집에 도착한 사람들, 혹은 숙소에 막 도착한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우선적인 루틴을 수행해야 했다.
방을 정하고 짐을 푸는 시간을 우선 가져야 했다는 뜻이다.
차민영은 모두를 데리고 우선 2층으로 향했다.
“넌 오늘 일단 여기 써.”
차수연은 차민영이 지정한 방에 당황했다.
“여기 메인 침실 아냐? 선배는 어쩌려고?”
“난 잠은 1층에 있는 소진이 방에서 같이 자. 여기는 그냥 거의 창고 수준이야.”
차민영은 메인 침실에 딸린 드레스룸에 자신의 짐을 대충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사이 유진은 함께 따라 들어와서 보게 된 이 방에 호기심을 느끼며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다.
방은 정말 비실용적인 정도로 컸다. 부부가 아니라 4인 일가족이 모두 같이 자도 자리가 남을 것 같은 거대한 침대가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고, 자질구레한 소파와 카우치 등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횅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가장 특이한 점은 방에 벽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외벽은 거대한 통창으로 되어 있었다. 반쯤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지만, 남은 부분만으로도 넓은 베란다와 그 너머의 풍경이 훤하게 보이고 있었다.
나머지 부분들은 다 문이었다.
그들이 들어온 출입문을 빼고도 2개의 드레스룸과 파우더룸, 화장실 출입문 등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열어보지 않아도 문이 어디로 연결되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문들이 모두 투명 유리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진은 그냥 신기하다고만 느끼는 정도였지만, 차수연은 질색했다. 누군가의 취향과 목적이 아주 적나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여기 준화씨 죽은 다음에 이사 온 거 아니었어?”
“그 사람이 생전에 설계한 거야.”
죽은 옛 연인이자 남편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그녀들은 거리낌이 없었다. 살아 있을 때나 연인이고 남편이고 주인이었지, 죽고 나서 슬퍼한 사람 별로 없었다.
“다른 방 없어?”
“맨바닥에서 잘 수 있어? 이 집에 침대라고는 이거랑 소진이 방밖에 없는데, 소진이 방에 손님 못 재워.”
방이 누추해서 손님 재우기 미안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감히 내 딸 방에 다른 사람 자게 해줄 것 같냐는 말에 차수연은 그 방 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차수연은 납득했다.
차수연은 침대가 아니면 숙면에 들지 못하는 체질이었다. 장거리 비행 마치고 피곤한 상황인데다가, 신경 쓸 것도 많은 오늘 같은 상황에서 맨바닥은 사양이었다.
“할 수 없지.”
제일 좋은 방 내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들었지만, 차민영도 딱히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사실 집의 가장 메인인 2층을 두고 1층을 생활의 중심으로 하는 것에는 차민영 그녀도 이 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옷 갈아입고 아래로 내려와. 술 한잔하자. 편한 옷 없으면 내 거 대충 골라 입고. 당신은 구경 그만하고 따라와요.”
‘응?’
차민영이 유진을 데리고 나가는 사이, 차수연은 잠시 그녀가 유진을 대하는 태도와 말투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별생각 없이 넘겼다.
빨리 머리를 풀고 옷도 갈아입고 싶어서였다.
스튜어디스 복장과 헤어스타일은 보기에 이쁘고 보기만큼 나쁘지는 않아도 절대로 편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차수연은 기내에서의 만남 이후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어느새 잊어버리고 긴장이 풀려 있었다.
차민영이 유진을 데리고 간 곳은 방금 나온 메인 침실에 붙은 작은 복도를 공유하는 반대쪽의 방이었다.
거리상으로는 2층에서 메인 침실 정반대의 위치였다.
차민영의 집 2층은 1층의 홀이 2층 높이까지 열려 있는 복층의 오픈 구조에, 1층에서 3층까지 쭉 이어지는 계단 쪽에 엘리베이터와 메인 침실의 출입문이 있고, 1층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복도의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그 끝에 서브 침실의 출입문이 있는 구조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브 침실은 굉장히 구석지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서브 침실은 거대한 메인 침실에 비해 1/4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크기였다. 메인 침실에 있던 대형 침대보다 오히려 작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이 방도 메인 침실과 마찬가지로 벽보다는 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은 것은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다 유리문이었던 메인 침실과 달리 서브 침실의 문들은 다 금속제 문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오늘만 일단 여기 써요. 다른 방들은 너무 오래 버려두어서 쓰려면 청소가 필요해요. 지하나 3층 아니면 아까 본 메인 침실 중에서 당신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기로 해요. 사실 오늘 밤도 여기 말고 메인 침실을 쓰는 것이 최선이에요.”
차민영은 사실 이방을 유진에게 내주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차수연에게 내주는 것은 더 최악이라서 어쩔 수 없이 이 방을 유진에게 주었다.
차민영이 이야기하는 동안 유진은 옷장들의 문을 하나씩 열어 본다거나, 창문의 전동 블라인드를 살펴본다거나, 사방의 벽면이나 천장을 확인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이한 방이네. 사람 생활하는 방이라기보다는 감금실 같은 느낌이야.”
유진이 사람 사는 곳에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탈출 이후 이곳저곳 몰래 도둑질이나 잠자리를 위해 숨어들면서 꽤 많은 집을 보았다. 그중에 보았던 어떤 집의 어떤 드레스룸도 이런 이상한 모양은 아니었다.
차민영은 약간 당황했다. 유진의 말이 맞았다. 이 방은 그녀의 남편이 여러 가지 불결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방이었다. 그걸 대놓고 건축 설계자에게 말할 수는 없으니 원하는 바를 돌려 말했는데, 그래서 이런 이상한 모양이 되었다.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좀 특이한 취향이나 설계 정도로 보는 법인데, 유진이 그걸 명확하게 눈치챌 줄은 몰랐다.
그래도 그런걸 설명할 수는 없어서 말을 돌렸다.
“방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방으로 갈래요?”
대답은 정말 뜻밖이었다.
“아니 그래서 더 마음에 들어.”
정말 슬픈 일이지만, 평생 감금실이나 감옥 스타일의 방 아니면 아예 폐쇄 금고 등에서 살아온 유진은 감시하는 장치만 없다면, 아예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더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창문도 작고, 외부와 노출도 적으며, 튼튼한 금속제 문으로 구성된 이 작은 방이, 넓디넓은 데다가 사방으로 노출된 메인 침실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차민영은 유진의 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방을 청소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일단 안도했다.
그 사이 유진은 아직 열어 보지 않은 마지막 슬라이딩 도어를 열려고 하다가 당황했다. 문이 잠겨 있었다. 억지로 열려면 부숴서 열수야 있겠지만, 그 전에 차민영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차민영이 얼른 대답했다.
“안방 욕실 및 화장실 복도와 연결된 문이야. 쓸 일 없어서 잠가 뒀어.”
“흐음.”
유진은 문 뒤쪽으로 감각을 전개해서 갈고리 방식의 걸쇠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유진의 염동력은 스스로가 느끼는 스트레스와 필요성 그중에서도 특히 생존 위기 정도에 따라서 발현되는 정도의 차이가 무척 크지만, 지금 같은 평시에도 이런 걸쇠 정도는 간단했다.
그렇게 걸쇠를 열고 문을 다시 열려는 유진에게 차민영이 말했다.
“지금 반대쪽에서 수연이 씻으려고 하고 있을 테니까 나중에 열어 줄게. 아니면 같이 씻을래?”
물소리가 들리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유진은 문에서 손을 뗐다.
메인 침실에서 구경하려고 하다가 못한 화장실과 욕실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시간을 두고 천천히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지금 이걸 열면 귀찮은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에 손을 뗐다.
그 순간 차민영은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당신 마지막으로 씻은 것이 언제예요?”
유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정말로 마지막으로 직접 씻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차민영은 그 정도까지 막장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섹스할 때도, 그냥 같이 나란히 누워 잠을 잘 때도 불쾌한 악취 같은 건 전혀 없이 언제나 기분 좋은 살구 냄새 같은 것이 났었고, 머리카락이나 피부에도 번질거리는 기름기 하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자신이 처음 만난 이래 한 번도 유진이 씻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은 확실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계속해서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
그녀는 최소한 하루에 샤워 두 번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여자임과 동시에 위생에 민감한 아이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씻었으리라 생각하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어쨌든 최근 이틀간은 확실히 씻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차민영은 유진의 손목을 잡고 1층으로 향했다.
목표는 1층 욕실이었다.
“갈아입을 옷이 없는 건 점 불편하겠지만, 우선 씻어요.”
유진은 어쩐지 창피한 마음에 반항하지 않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유진을 가차 없이 1층 욕실에 처박은 차민영은 다시 2층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그녀도 씻기 위해서였다. 갈아입을 옷도 차수연에게 양보한 메인 침실의 드레스룸에 있고, 2층 메인 욕실은 두 명 이상이 동시에 씻어도 될 정도로 큰 욕실이었다. 차수연과 서로 내외할 사이도 아니니 같이 씻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마침 갈아입을 속옷만 챙긴 채로 알몸으로 욕실로 향하고 있던 차수연과 마주쳤다.
“깜짝이야! 선배 노크 몰라!”
화들짝 놀라 손으로 가슴과 사타구니 사이를 가리는 차수연의 모습에,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본 차민영은 조금 놀랐다.
차수연의 몸매는 차민영이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약간 살집이 늘었지만, 여전히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예전보다 약간 살이 더 붙은 그 모습이 오히려 더 그녀를 육감적으로 보이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음모는 고사하고 겨드랑이도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고, 손에 들고 있는 속옷은 섹시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늬 없는 면 재질의 물건들이었다.
최근에는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에게도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고 처절하게 외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차라리 스포츠형을 입지.”
차민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이 죽고 남자는 물론 가까이하는 여자도 없이 지난 5년을 수녀처럼 살아온 차민영이었지만, 그래도 속옷은 언제나 화사하고 섹시한 것들 위주로 입었다. 특별한 경우에 특별한 속옷이 필요할 때도 스타일이 살아 있는 스포츠 브라와 팬티가 그녀가 양보할 수 있는 최후의 선이었다.
섹시하거나 아름다운 속옷이 남에게 보여 지지 않더라도 그것부터 패션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가꾸는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우선 유진이 따라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한 차수연은, 그런 차민영의 태도에 코웃음을 쳤다.
“남이사.”
차민영과 달리 차수연은 섹시한 속옷 같은 건 승부를 걸 때나 남들에게 보여줘야 할 때나 어쩔 수 없이 입는 거고, 가장 중요한 건 몸매 보정이나 건강에 미치는 영향, 편안함 같은 기능이라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스포츠형을 주로 입지만, 집안에서는 그냥 아줌마를 넘어 할머니 같다는 평을 듣는 면재질의 큼지막한 속옷을 선호했다.
성노예 시절에도 강준화가 섹시하고 시각적인 자극이 있는 속옷을 강요하는 것을 제일 불편해서 아예 안 입는 것을 선택했었다.
그런 속옷 스타일과는 별개로 차수연은 도도하고 유혹적인 모델 워킹으로 차민영을 지나쳐 샤워부스로 향했다.
도발의 의도가 명백한 그런 차수연의 모습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 차민영은 자신도 옷을 모두 벗어 빨래 바구니에 던지고는 갈아입을 속옷을 챙겼다.
차수연과 달리 그녀가 고른 것은 망사 재질에 레이스가 달린 흰색의 아주 섹시하고 화사하면서도 우아함이 느껴지는 그런 속옷이었다.
샤워부스를 먼저 차지하고 별도 욕조의 샤워기를 쓰기 위해 향하는 차민영의 손에 들린 속옷을 보던 차수연이 다시 한번 코웃음을 쳤지만, 따로 더 도발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차민영이 저런 속옷을 고른 것이 남자와의 잠자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런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괜히 도발했다가 진짜 섹스라도 하면서 자기를 끌어들이는 분위기를 만들면 불리하니 입 다무는 것이 현명했다.
그리고.
“앗 차가! 선배 조심 좀 해.”
“지랄 좀 하지 마, 이년아. 여기 보일러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는데. 차가운 물은 개뿔.”
“하지만 실제로 차가웠단 말이야!”
“니가 무슨 완두콩 공주님이야! 끽해여 3-4도 떨어졌을 텐데 차갑기는 무슨!”
“어! 바디 샴프 좋은 거 쓰네. 선배 나 이거 등에 좀 발라 줘.“
“어. 잘 됐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등을 못 밀었는데 너도 이걸로 좀 박박 밀어봐.”
두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에로틱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실제로는 사이 나쁜 자매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그렇게 샤워를 진행했다.
서로의 마음 한곳에 상대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 혹은 경멸 혹은 질투가 있는 것과 별개로, 두 사람은 서로 너무 익숙하고 편한 상대였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보조해가며 여자의 목욕을 즐겼다.
순식간에 물만 좀 뿌리고 비누칠 대충 하는 것만으로도 뽀송뽀송하게 변신까지 마친 유진은 1층 식탁에 앉아 그런 그녀들을 30분 이상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대망의 술판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