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45화 (45/196)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재미있게 보셨나요?

재미있으셨다면 [추천]과 [즐겨찾기 등록] 부탁드립니다.

#004 집과 아이와 여자, 그리고 여자와 또 여자 – 08

차민영이 오랜만의 술자리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온갖 술을 섞어 먹다가 뻗어버린 탓에 죽을 것 같은 숙취로 고생하게 된 것에 비해 유진과 차수연은 상황이 좀 달랐다.

일단 현재 상태의 유진에게 알코올은 그냥 영양소였다.

유진의 육체가 극도의 기아 상태인 때문이었다.

‘바벨의 기억’ 때문에 입으로 하는 식사가 중단되었고, 그 와중에도 생체 조직 적출은 꾸준히 계속 진행되었으며, 주기적으로 여자들과의 섹스도 있었다. 수술 중에 위에 직접 고에너지 유동식을 투입하는 식으로 최소 에너지가 공급되고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최소였다.

탈출 이후에는 여러번의 전투의 와중에 지속적인 신체 손상과 재생을 반복하면서 그야말로 얼마 없는 에너지의 바닥까지 긁어서 사용했다.

유진은 잘 몰랐지만, ‘바벨의 기억’에 축적되어 있던 에너지까지 소모되고 있었다.

그런 탓에 유진의 육체는 몸에 들어온 알코올이라는 고에너지 물질을 정말 신나게 소화하고 축적했다. 알코올 자체가 혈류로 들어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전에 탄수화물과 지방 등으로 완전히 분해되어 몸에서 소모되고 축적되었다.

그런 탓에 유진에게는 숙취 따위 없었다.

차수연의 경우는 경력이 달랐다.

그녀는 원래 술과 춤, 그리고 섹스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강준화 사후 제대로 된 섹스 파트너를 구하지 못했다.

클럽 등에서 술과 춤을 즐기다가 원나잇 파트너를 구하는 시도를 좀 해봤지만 제대로 된 남자를 전혀 만나지 못했고, 그나마 서른 넘어가면서 클럽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밀리고 체력도 부족해지면서 춤추는 것도 시들 해졌다.

결국 술꾼이 된 그녀는 음주의 고수가 되었다.

철저하게 간 건강을 챙기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특별한 애용하는 숙취 해소제를 술자리 시작과 끝 사이에 여러 번 챙겨 먹는 식으로 철저하게 관리했다.

덕분에 그녀도 숙취는 거의 없었다.

차수연이 유진과 다른 점은 그래도 아예 숙취가 없지는 않았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유진보다 먼저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둘이 아침에 맞이하게 된 사건의 시작이었다.

“아우, 속이야.”

일어났을 때 숙취로 죽을 것 같았던 차민영과 달리 차수연은 좀 속이 쓰린 정도로 일어났다.

이런 일에 익숙한 그녀는 곧바로 언제나 챙겨 다니는 숙취해소제를 어제 방에 들어왔을 때 챙겨 들고 온 생수를 따서 먹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아침 볼일을 보고, 양치까지 한 다음 고민에 들어갔다.

적당히 샤워만 할 것인가, 아니면 욕조에 몸을 담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적당히 넘어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녀는 저녁 먹기 전에 씻었는데 굳이 아침에 다시 또 씻어야 하는 가를 고민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가능하면 하루 세 번 양치질처럼 샤워하는 스타일이었다. 플라이트 중에는 제대로 씻을 수 없기에, 쉬는 기간에 더 집착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차민영이야 서로 볼 거 못 볼 거 다 보 공유한 사이니 상관없지만, 그래도 남자인 유진에게 추레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보게 될 차민영과 강준화의 딸 소진이에게 가능하면 예쁜 모습 보여주고 싶었다.

그냥 납치 감금당해서 세뇌 조교 당하고 노예로 전락한 차민영과 달리 차수연은 한때 강준화를 정말로 사랑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걸 정말 사랑이라고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강준화가 그녀를 성노예로 취급했을 때도 거기에 따르는 것을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상처받고, 더럽혀졌으며, 거짓임이 확인하기는 했지만, 그 사랑의 감정은 아련하게 그녀의 마음에 아직 남아 있었다.

가끔, 아주 가끔은 강준화가 멀쩡한 보통 사람이라서 그와 평범하게 결혼해서, 평범하게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래서 강준화의 아이인 소진이에게 차수연은 아련하고 복잡한 감정이 있었다. 그 아이가 자기 딸이 될 수는 없겠지만, 가능하면 이쁘고 자주 보고 싶은 이모 정도는 되고 싶었다.

차수연은 욕조를 골랐다.

흔하게 보는 플라스틱 비슷한 화장실 욕조가 아니라 벽돌을 쌓아서 욕탕처럼 만들어 놓은 커다란 욕조와 그 욕조에 정면으로 보이는 큰 창 너머의 숲 풍경은 그녀의 복잡한 감정을 달래기에도 좋아보였다.

그녀는 욕조 가득 따뜻한 물을 받고 거기에 몸을 담갔다.

“으어, 좋다.”

아직은 젊은 아가씨라고 주장하는 사람 입에서 나오기에는 조금 많이 노티 나는 소리를 내며 그녀는 그렇게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복잡한 마음과 욕조가 그녀가 오늘 오전에 겪게 될 사건의 결정타가 되었다.

유진이 깨어난 것은 차수연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슬슬 졸음까지 느낄 무렵이었다.

유진 같이 특별한 육체와 정신을 가진 존재가 무방비로 잠들어서, 평범한 여자인 차민영이나 차수연보다 더 늦게 일어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일단 정신이 육체에 대한 주도권을 잃은 점이 컸다.

유진의 육체와 그 육체에서 유진의 정신보다 훨씬 더 높은 주도권을 가진 신비로운 힘을 가진 각종 이식된 신체(身體), 아티팩트, 오파츠들은 오랜만에 투입된 고에너지를 활용해 각자 필요한 에너지들을 확보하기 위해 최대 성능을 발휘했고, 그 와중에 밀려난 유진의 정신은 주도권을 잃고 밀려난 김에 그냥 파업해 버렸다.

결국 신체, 아티팩트, 오파츠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확보하고, 남은 에너지가 육체도 회복시키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에야 정신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할 일을 시작했다.

거기에 유진은 차수연보다 훨씬 더 늦게 잠들었다.

차민영이 쓰러지자 유진의 도움을 받아 그녀를 방에 눕히고 옷을 벗긴 후 곧바로 물 한 병 챙겨서 자러 올라간 차수연과 달리, 유진은 두 여자가 자러 간 후에도 혼자 남아 술과 간식을 더 즐긴 다음, 부엌 정리까지 하고서야 자러 올라왔다.

부엌 정리는 아주 어렸을 무렵, 연구소에서 금지된 음식을 몰래 조리해 먹고 증거를 인멸하던 것이 습관이 된 것이었다.

사실 더 오래 잤어야 했다. 유진의 진짜 정신에게 육체에 대한 통제권이 돌아왔다고 해도, 굳이 일어날 이유는 없었다. 정신은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였다.

더 잘 수 있었던 유진이 눈을 뜬 것은 요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원래 유진은 음식처럼 물도 신체 내부에서 엄청나게 소모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보다 소변도 거의 안 보는 편이다. 육체 내의 온갖 것들이 풀 가동하면서 엄청난 에너지가 생성된 만큼, 배출해야 되는 이물질도 많이 발생했다. 그 배출 물질들은 육체의 시스템에 따라 전부 방광으로 향했고, 그 수준은 유진도 참아내기 귀찮은 정도의 양이었다.

요의를 느낀 유진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바로 방에 딸린 욕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기서 문제가 이중으로 발생했다.

하나는 유진의 방에 딸린 욕실은 차수연이 잠을 잔 메인 침실에 딸린 욕실과 같은 욕실이기 때문에, 그곳에는 알몸의 차수연이 욕조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참이었다. 그리고 유진은 연구실에서의 생활 때문에 잘 때는 옷을 다 벗고 자는 습관이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욕실에 들어가는 그 순간 그도 알몸이었다.

그렇게 알몸의 차수연과 알몸의 유진은 욕실에서 마주쳐 버렸다.

차수연은 벽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갑자기 열리더니 거기서 알몸의 유진이 성기를 덜렁거리고 들어오는 꼴을 보면서 순간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멍하니 숲을 바라보며 생각을 비우고 있기도 했고, 지금 그녀가 겪는 상황에 대해 뭔가를 생각하고 판단하기에는 너무 당황했다.

그래도 아마 유진이 알몸의 여자를 마주친 보통의 남자가 하는 반응, 예를 들어 알몸의 여자를 보고 놀란다거나, 혹은 성욕을 드러낸다거나, 혹은 빤히 쳐다본다거나 하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면 차수연도 그에 대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놀라서 비명을 지르거나, 아니면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거나.

하지만 유진은 차수연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살짝 숙여 아침 인사를 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변기로 향해 걸어가 버렸다.

이 욕실은 메인 침실과 서브 침실을 연결하는 복도형식의 공간을 가운데로 창가 쪽으로는 욕조와 변기 부스가, 반대쪽에는 부부용 더블 세면대와 샤워 부스가 있는 형태이다. 문제는 샤워 부스도 욕조 부스도 모두 벽이 있고 문이 달린 독립공간 형태를 하고 있지만 문제는 벽도 문도 모두 유리였고, 욕조에 있는 사람이 바라보는 방향은 변기의 오른쪽 부분이라는 점이었다.

유진이 커다란 성기를 한 손으로 잡고 변기를 부술 것 같은 세기와 양으로 소변을 보는 모습이 차수연의 눈앞에 정면으로 펼쳐졌다.

“우와.”

차수연은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머릿속에서는 대물이라거나 BBC라거나 변강쇠 같은 단어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쩐지.’

차수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섹스와 남자에 거부감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은 근 5년간 제대로 된 연인이나 남자 친구는 고사하고 괜찮은 원나잇 상대도 제대로 못 만났다. 그런데 다시는 남자 따위 사귀지 않고 소진이 키우는 것에만 전념하겠다면서, 연락까지 끊었던 차민영은 저런 최고의 남자와 사귀고 있다.

비행 중의 시간까지 포함해서 하루 정도에 불과했지만, 유진과 차민영과의 관계가 섹스 파트너이기는 해도 애틋한 연인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수많은 경험으로 남자 성기의 크기가 성적 만족감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크고 힘 좋고 거기에 젊고, 미남이기까지 하다면 애인으로서는 몰라도 섹스 파트너로서는 최고였다.

굉장히 아니꼬운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뭘 어쩌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부스에서 나온 유진이 세면대에서 손을 씻더니 샤워 부스와 욕조를 잠시 번갈아 보다가 그녀에게 다가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뭐 하는 거야?”

이번에는 진짜로 당황해서 소리치는 그녀에게 유진이 퉁명하게 대답했다.

“이 커다란 욕조 혼자 쓰는 건 욕심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자리 넓은 데 같이 좀 쓰지.”

유진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고는 당황한 차수연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녀를 마주 보는 방향으로 욕조에 몸을 담갔다.

차수연이 너무 황당해서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유진은 몸을 씻는 일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과 별개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좋아했다.

연구소에서의 어린 시절, 연구원들이 아이들을 씻기기 위해 따뜻한 물이 담긴 커다란 욕탕에 남녀 구별하지 않고 몰아넣으면, 아이들은 거기서 신나게 물장구를 치고 놀곤 했다. 연구소에서 가진 몇 안 되는 즐거운 기억이었고, 이후에도 유진이 씻는 것과 별개로 물을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또 유진은 차수연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가나, 차민영이 그녀를 유혹해보라고 한 일 등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녀가 알몸으로 있는 욕조에 같이 몸을 담그는 일에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유진은 혼욕과 누드에 지나칠 정도로 익숙하고, 무감각했다.

거의 평생을 보낸 연구소에서, 기숙 학교나 명문대 출신이 많은 연구원은 학교 다닐 때 기숙사의 남녀 공용시설들을 많이 쓴 탓인지 남녀를 구분해서 관리해야 한다는 개념이 별로 없었다. 특히나 굳이 실험체들의 인권 같은 것에 무심해서, 그들끼리 느끼는 수치심이나 성적 호기심 같은 것은 더 관심이 없었다.

또 유진은 초인의 오리지널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온갖 실험을 당하면서, 타인 앞에서 알몸을 하는 것도 익숙했고,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다른 여성과 섹스하거나, 다른 사람의 손길에 몸이 씻겨지는 것도 익숙했다.

그런 이유로 유진은 여성이 그냥 벌거벗었다는 것만으로, 따로 성욕을 느끼거나 하는 정도가 매우 약했고, 목욕이나 샤워 중에는 특히나 그랬다.

그래서 눈앞에 놓인 벌거벗은 차수연의 알몸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 유진과 달리 차수연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차민영의 알몸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유진과 달리, 차수연은 마치 스틸 와이어로 엮은 것처럼 멋지게 얽혀있는 유진의 근육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하게 노출하고 있는 커다란 성기가 주는 시각적 자극을 외면하지 못하고, 힐끔거리며 훔쳐보게 되었다.

그에 비해 부끄러움으로 한껏 가리고는 있지만 그래도 숨길 수 없이 매력을 발하는 그녀의 작지 않은 아름다운 가슴과 날씬하게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 사이의 사타구니는 유진에게 완전히 외면받고 있었다.

물속에서 교차하고 있는 두 사람의 다리 피부가 가끔 은근슬쩍 부딪칠 때마다 오는 촉감에도 그녀만 깜박깜박 놀랄 뿐, 유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였다.

유진은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로 그저 온탕을 즐기는 것에만 집중하는 느낌이었다.

차수연은 자존심이 상했다.

차수연이 유진과 섹스를 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유진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것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그녀가 중요한 것은 아름다운 자신의 알몸이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있고, 상대가 손만 뻗으면 그런 자신을 짓밟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눈앞의 남자를 설혹 싫어하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더라도, 그 남자가 자신을 돌덩이나 조각상같이 무관심하게 대하면 거기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여자다.

하물며 차수연은 유진과 섹스를 하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어도, 어제의 경험으로 유진이 꽤 매력적이며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되는 중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차민영이 이런 남자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점에서 질투를 느끼는 중이었다.

그런 남자가 알몸의 자신과 피부를 맞대고 있는 상황에서 개처럼 무시하고 있으니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면 여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말았다.

왼발로는 유진의 오른쪽 다리 바깥 허벅지를 쓰다듬고, 오른발로는 무려 유진의 자지를 툭툭 건드린 것이었다.

아무 생각 없던 유진도 이런 노골적인 접촉에는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유진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빤히 바라보자, 차수연은 그런 유진의 반응에 만족을 느끼며 고개를 치켜들고 유진을 내리깔아 보았다.

차수연이 그렇게 도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차민영을 믿은 것이었다.

차수연은 어쨌든 유진이 차민영의 섹스 파트너이고, 무척 어린 나이를 볼 때 차민영의 눈치를 보는 사이일 거로 생각했다. 아니라고 해도 한 집 지붕 아래에 자기 파트너가 있는데, 다른 여자에게 함부로 덤벼들지는 못할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덤벼들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걸 이용해 차민영과 유진 둘 사이를 엉망으로 만들어 주는 것도 괜찮다는 음습한 질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애초에 차민영이 그녀를 유진에게 상납하기 위해서 반강제로 끌고 왔다는 것과 차민영이 유진과 자신의 관계가 별로 로맨틱한 관계가 아니라고 했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 유진이 파리에서 피를 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던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라고 경고했던 것을 빤히 잊고 있었다.

유진은 처음에는 갸웃했지만, 곧 차수연이 자신을 도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음껏 욕심이 만족 될 정도로 즐긴 술과 식사, 그리고 어쩐지 모르게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 집에서의 휴식으로 유진의 마음은 꽤 풀어진 상태였었다.

하지만 차수연의 도발을 깨닫는 순간, 유진의 기억 속에서 떠오른 것은 자신을 능욕하고, 유린하고, 마음대로 지배하던 그 숱한 알몸의 여자들이었다.

유진의 마음속에서 검고 불길한 욕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성욕도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폭력적이고 잔인한 욕망이었다.

“이건, 당신이 시작한 거다.”

유진은 차갑고 나지막하게 한 마디를 내뱉고는 차수연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의 두 발목을 움켜잡아 좌우로 벌렸다.

원래는 불문곡직하고 벌어진 구멍에 자지를 처박아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놀라서 동그랗게 눈이 커진 차수연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어젯밤 차민영의 경고가 생각났다.

‘절대로 강간은 안 돼요. 강간으로 고소당하면 아주 지저분해질 테니까. 당신도 시끄러워지는 것은 싫죠?’

직접적인 섹스는 안된다고 깨닫는 순간,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꼭 한번 써먹어 보자고 생각하던 아이디어였다.

유진은 벌려진 차수연의 보지를 향해 허리를 내리는 대신 발을 가져갔다.

“뭐 하는 짓이야!”

그리고 누가 봐도 이상한 미친 짓을 하는 유진에게 차수연이 다급히 소리를 질렀지만, 유진은 무시하고 오른 오른발 엄지발가락으로 그녀의 사타구니 클리토리스를 정확하게 눌렀다. 그리고 가지고는 있지만, 거의 써본 적은 없는 초능력의 하나 생체 전류를 미세하게 조절해서 발산하기 시작했다.

차수연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온몸을 경련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