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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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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집과 아이와 여자, 그리고 여자와 또 여자 – 10
차민영은 욕실 안으로 들어가 보게된 차수연의 모습에 기겁했다.
온 몸의 근육은 통제를 잃고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눈은 풀려 있고, 벌려진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흘러내리고, 그 입에 넣고 있는 유진의 손가락에는 거품으로 보이는 것이 잔뜩 묻어 있었다. 다리 사이에서는 소변과 음액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딜 봐도 그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그만해요, 유진!”
차민영이 차수연을 가지고 놀고 있던 유진을 급하게 제지했다.
어린아이가 메뚜기나 잠자리의 팔다리를 뜯으며 노는 것 같은 느낌의 순수 하지만 악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한 느낌으로 차수연을 가지고 놀고 있던 유진은, 화를 내는 차민영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일단 손을 뗐다.
허물어지듯 쓰러지는 차수연을 몸을 일단 붙잡은 것은 유진이었지만, 차민영이 얼른 다가가서 빼앗듯이 안아 당겼다.
유진은 순순히 물러섰다.
“선배, 선배, 어어엉, 선배!”
차수연은 차민영을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차민영은 그런 차수연의 등을 토닥거리면서 입만 벙긋거리면서 유진을 추궁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
유진도 똑같이 입만 벙긋거리면서 대답했다.
강간은 안 했어. -
차민영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차수연을 꼴을 보며 차라리 몇 대 맞으면서 강제로 강간을 당한 것이 상태가 더 무난할 것 같았다.
차수연은 지금 그 정도로 엉망이었다. 지금 차민영에게 안겨서 펑펑 울면서도 몸의 경련은 멈추지 않았고, 소변도 계속 찔끔거리고 있었다. 거기에 등 뒤의 유진에게 대한 명백한 두려움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가요. -
차민영은 고갯짓으로 유진에게 신호를 보냈다. 유진은 이번에는 곧바로 따르지 않았다.
유진은 잠시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발기한 자지가 꼿꼿하게 서서 존재감을 내세우고 있었다.
유진의 시선을 따라 움직였던 차민영의 시선도 그걸 발견했다. 차민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차민영은 결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안 돼요! 절대로 안 돼요! -
경험상 유진과의 섹스는 절대로 한 두 시간으로 안 끝난다. 오럴로 해결해 줘야 하는데, 지금 이런 상태의 차수연을 옆에 두고 오럴을 할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그런 건 사람이 할만한 짓이 아니었다.
유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강요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자지가 한껏 발기하고 사정을 못 한 것과 별개로 성욕 그 자체는 상당히 해소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유진은 자지로 향하는 혈류를 조절해서 발기된 자지에서 힘을 뺐다.
수그러드는 자지를 보며 차민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욕을 완전히 해결하고, 차수연에 관한 관심도 줄은 유진에게 지금 중요한 것이 떠올랐다. 이건 따로 목소리를 조심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육성으로 물었다.
“아침은 어떻게 할 거야?”
“집에 지금 라면 밖에 없어. 넉넉하게 끓일거야.”
“오! 라면. 그거 소문 들어봤지. 정말 맛있으려나? 기대되는걸.”
유진의 목소리에는 기대가 한가득하였다. 어느새 유진의 관심은 명백하게 차수연에게서 라면으로 넘어가 있었다.
“야 이 개새끼야!”
듣고 있던 차수연이 분노를 가득 담아 외쳤다.
그 분노가 유진이 자신에게 한 만행 때문인지, 자신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라면 따위에게 관심이 돌아간 유진의 태도 때문인지는 좀 모호했지만 말이다.
유진은 그런 그녀를 무시했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차수연은 차민영을 붙잡고 좀 더 눈물과 하소연 그리고 울화를 터트렸지만, 차민영도 오래 받아주지는 않았다.
“라면 물 올려놨어. 라면 불기 전에 너도 얼른 마저 씻고, 옷 입고 내려와.”
차민영은 차수연에게 냉정했고, 결국 차수연은 혼자 남아 잠시 발광하다가는 훌쩍거리면서 몸을 씻고, 옷을 입어야 했다.
다행히 차수연도 워낙 산전수전 다 겪고, 사회생활도 오래한 여자라서 금방 자신을 추스르기는 했다. 일단 겉으로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지금 차민영, 차수연 그리고 유진의 아침 식사에 대입해 꽤 그럴싸한 문장이 나왔다, 그들은 멀리서 보면 참으로 화기애애해 보였지만, 가까이서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어색하다 못해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차민영과 유진 그리고 차수연은 넓은 식탁을 두고 좁은 아일랜드 식탁에 나란히 앉아 식사 중이었다.
차민영과 차수연이 나란히 앉은 맡은 편에 유진이 앉아 있었는데, 아일랜드에서 확장되는 형태로 된 간이 식탁의 폭이 워낙 좁아서 서로의 무릎이 닿을 정도였다.
세 사람이 그 좁은 식탁에 나란히 붙어 앉아 식사하는 광경은 누가 봐도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특히나 차민영의 유진과 차수연의 요청에 커다란 냄비에 담긴 라면을 손수 떠서 나눠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한 냄비에 담긴 음식을 나눠 먹는 한국 식구의 전형적인 오붓한 모습 그 자체였다.
서로의 앞에 놓인 반찬을 집기 위해 팔과 젓가락이 교차하는 모습까지 더욱 그랬다.
문제는 대화였다.
“한 그릇 더.”
“선배. 국물 위주로 부탁해요.”
“순무 같은 모양인데 이것도 김치 에요? 아삭한 것이 맛있는데 더 없어요?”
“선배. 왼쪽에 있는 개새끼에게 먹을 때 후루룩 소리 좀 내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오! 이것도 맛있다. 이건 뭐예요? 어묵? 물고기 살 갈아서 만드는 거예요? 그런 것 치고는 밀가루 맛인데요?”
“선배. 왼쪽 개새끼에게 반찬 좀 적당히 처먹으라고 좀 전해주세요.”
“어? 라면 많이 끓인 거 아니었어요?”
“선배. 왼쪽 개새끼에게 뱃속에 거지라도 들었는지 좀 물어봐 주세요.”
유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음식에만 관심을 가지고 폭풍 흡입을 시전했고, 차수연은 면발 두어 젓가락 겨우 먹은 후 국물만 조금씩 먹으며 계속 유진에게 시비만 걸고 있었다.
여기서 차수연이 우스운 것이 아예 말도 섞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바로 옆에 있는 유진에게 하는 말을 꼭 차민영에게 전해달라는 형식으로 말했다는 것인데, 어차피 의도가 너무 분명한지라 차민영은 그냥 그래그래 라고 대답할 뿐 실제로 전하지는 않았다.
차수연도 실제로 전하라는 의미가 있던 것은 아닌지라 차민영이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그런 식으로만 말을 했다.
유진은 훨씬 여유있게 그녀를 대했다.
유진은 차수연이 뭐라고 하던지 전혀 대꾸하지 않고 음식에 관한 이야기만 하면서 차민영에게만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간간이 자신을 노려보는 차수연과 시선을 마주쳐서 그녀를 아예 무시하지 않고 있다는 표시를 보냈다.
열심히 유진을 욕하던 차수연은 유진과 눈이 마주치면 깜짝 놀라며 움찔했다. 명백하게 겁먹은 모습이었다. 유진은 그런 차수연의 반응을 명백히 즐겼다. 그럴 때마다 씩 웃었지만, 차수연이 너무 오래 겁먹지는 않도록 곧바로 다시 음식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수연은 분한 듯 다시 유진을 공격했다.
“하아. 이건 정말 애들도 아니고.”
총체적 난국에 차민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차민영은 특히나 차수연에게 한 소리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이 일에 자신의 책임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일단은 조심했다.
무엇보다 차수연이 투덜대고 있긴 하지만 유진에게 겁먹고 있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유진과 함께 있는 곳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정도의 상식이 있었다.
그래서 식사가 끝나갈 무렵 용건을 꺼냈다.
“냉장고랑 팬트리가 텅 비어서 장 봐와야 할 것 같아. 너희 둘은 어떻게 할래. 괜찮으면 남아서 저기 정리 좀 해주지 않을래?”
차민영이 가리킨 것은 엉망이 된 식탁이었다.
통나무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거대한 8인용 원목 식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술병과 접시, 음식물 쓰레기는 확실히 정리가 필요했고, 그건 집주인인 차민영보다 저 난장판을 만들어낸 주축인 유진과 차수연 두 사람이 치우는 것이 맞았다.
그 순간 쇼핑에 따라가 보고 싶었던 유진이 조금 실망한 것과 달리 차수연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며 정통으로 겁을 집어먹었다.
“선배! 집에 나랑 쟤만 두고 나가겠다고요!”
차수연은 차민영이 없는 집에 유진과 단둘이 있을 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소리를 질렀다.
유진은 원래 별생각이 없었는데, 차수연이 보이는 그런 태도에 오히려 뭔가 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차수연에게는 몹시 다행스럽게도 차민영이 생각한 바가 있었다.
“진이 먹는 양 생각하면 혼자서는 힘들어. 수연이 너도 같이 가자. 진, 당신은 집청소 좀 부탁해요. 청소와 설거지는 할 줄 알죠?”
차수연이 반색했다.
원래 그녀의 성격이라면 다른 사람의 쇼핑에, 그것도 의류나 백 같은 백화점 쇼핑도 아닌 식품매장에 먹을 것 사러 가는 쇼핑에 따라갈 리가 없지만, 지금 유진과 단둘이 집에 남느니 일꾼 노릇을 백번 천번이라도 할 수 있을 마음이었다.
유진은 그녀가 너무 좋아하는 모습에 오히려 뚱한 기분이 들었다. 차수연이 남지 않아서가 아니라 차민영을 따라가는 사람이 차수연이라는 부분에서 불만이 있었다.
“내가 먹을 거고, 힘쓸 일이 필요하면 내가 같이 가는 것이 낫지 않나?”
“안 돼요. 누군가는 남아서 저거 치워야 해요. 다 같이 장보고 장 본 거 정리하고 청소까지 하면 그 전에 소진이 도착할지도 몰라요. 난 내 딸에게 이런 지저분하고 엉망진창인 꼴 절대로 보여줄 수 없어요.”
“난 분리수거 하는 법도 잘 모르는데? 아무리봐도 내가 같이 가고 저 여자가 청소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놀랍게도 유진은 분리수거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
연구소에서는 그런 것 안 하지만, 연구소 외부에 집이 있는 연구원들이 그에 관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은 분리수거에 대해서는 세계에서 제일 까다로운 나라 중 하나였고, 그래서 독일 외 특히 러시아나 미국에서 온 연구원들은 그런 부분에서 불만이 많았다.
그래도 차마 청소할 줄 모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건 차마 너무 수준 낮은 이야기였으니까.
차수연은 유진이 자신을 저 여자라고 부른 것에 좀 화가 났지만,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솔직히 그녀는 지금 당장 차민영과 단둘이 되는 것도 좀 껄끄럽다는 생각에 혼자 남아서 청소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차민영은 단호했다.
“저거 지 원룸도 혼자 제대로 관리 못해서 주기적으로 사람 쓰는 년이에요. 맡겼다가 일이 두 배로 늘어나는 꼴을 보는 수가 있어요.”
차수연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
솔직히 하려면 자기도 잘한다고 주장하고 싶었지만, 까다로운 차민영의 기준에 맞출 자신이 없었다.
나중에 유진 앞에서 그럼 그렇지 소리 듣게 될 일은 사양이었다.
“나 분리수거 하는 법 모른다니까.”
유진은 혼자 남기도 싫고, 장 보는 것도 구경해보고 싶은 마음에 다시 반항했지만, 아주 간단하게 진압당했다.
차민영이 냉장고에 붙어 있던 안내장을 떼서 손에 쥐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자. 분리수거규칙 설명서. 한글은 알죠? 혹시 모르면 영문판 찾아 줘요?”
유진은 차마 한글 모른다고 하지 못하고 항복했다.
약간은 시무룩해 보이는 그 표정에 차민영이 딸인 소진이 달래던 필살기를 사용했다.
“청소 열심히 하고 있으면 내가 맛있는 거 많이 사 올게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빵은 일단 기본이고, 사탕! 초콜렛! 그리고 아이스크림! 대용량으로!”
너무 반색하고 대답하는 유진의 모습에 차민영은 떨떠름했다.
한국 엄마답게 딸이 설탕 들어간 음식에 중독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는 집에 초콜릿도 사탕도 아이스크림도 사두지 않았다. 사실 그녀가 먹을 용도인 초콜릿은 있는데 소진이 손에 닿지 않게 엄중하게 감춰두었다.
다행히 딸인 소진이도 다섯 살 아이답지 않게 별로 그런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유진의 태도는 그런 소진이보다 더 철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차마 유진에게 잔소리는 할 수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알았어요. 당신 먹는 양 고려해서 정말 잔뜩 사 올게요.”
유진은 그걸로 끝났다.
쇼핑 못 따라가고 혼자 남아서 청소해야 한다는 것에 뚱한 얼굴을 하고 있던 이 냉혹 무비 한 살인 기계 초인은 단 거 사다 주겠다는 말에 혹해서 신나는 얼굴로 청소를 시작했다.
“다녀와.”
손까지 흔들며 배웅하는 유진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선 차민영과 차수연은 타고 나온 픽업 트럭이 주택 단지를 빠져나와 큰길에 접어들 때까지는 침묵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지 내 좁고 경사지며 커브도 많은 길에 신경이 곤두서서 운전하는 차민영에게 차마 말을 걸지 못하던 차수연이 차가 제대로 된 4차선 도로에 들어서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그 새끼 그거 뭐야! 완전히 미친놈이잖아요! 싸이코패스도 저 정도는 아니겠다! 씨발! 선배는 어쩌자고 저런 미친 새끼랑 엮이고 나서 나까지 엮으려고 한 거야!”
차수연의 말에 담긴 유진에 대한 표현들은 그녀 스스로는 욕이라고 한 거겠지만, 차민영은 참 순화된 표현이라는 생각에 차마 뭐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이야기를 돌렸다. 사실 지금 더 궁금한 것이 있기도 했다.
“그보다, 진이 너한테 뭘 어떻게 했길래 그런 꼴이 된 거야? 너 그렇게 쉽게 느끼는 체질 아니잖아?”
차수연이 그 질문에 몸서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