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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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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집과 아이와 여자, 그리고 여자와 또 여자 – 11
어떤 사람이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겪을 수 있는 극한의 한도까지 자극을 경험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보통은 점점 더 자극에 무뎌져서 아예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되거나, 더 큰 자극을 얻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자극까지 추구하다가 망가져 버린다.
섹스는 이 부분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쉽고, 가장 강력한 즐거움인 섹스는 그만큼 쉽고 빠르게 자극에 무뎌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면에서 차수연은 너무 이른 시기부터 너무 깊고 어두우면서 강렬한 자극이 따르는 변태적인 섹스에 중독되었다.
아주 쉽고 빠르게 자극의 기준이 터무니없이 올라갔고, 첫 경험을 치르고 1~2년도 되지 않아 남자 친구를 위해 다른 여자를 유인해서 강간하는 것을 돕는 것을 별로 큰 자극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 사이에 이미 동성애 성향도 없는데 여자와의 섹스도 거리낌이 없었고, 남자 친구 보는 데서 다른 남자들에게 윤간당하는 것을 괴로운 경험이 아니라 자극적 경험이라고 여겼다. 꽁꽁 묶여 전동 자위기 같은 걸로 1~2시간 괴롭힘당하는 것 정도는 그냥 일상일 뿐이었다.
당연히 어느 순간부터는 어지간한 애무와 삽입 정도로는 제대로 자극을 느끼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녀가 뭔가 제대로 자극받으려면, 특별함이 필요했다.
차민영은 혹시나 해서 물어보려 했다.
“진, 뒤쪽으로…….”
“아니야!”
차수연은 그쪽으로 화제가 넘어가려 격렬하게 부정했다.
에널은 차수연에게 남은 가장 예민한 성감대였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에널 섹스에 대해 강렬한 트라우마와 혐오감이 있기 때문이다. 생전에 강준화는 그걸 일부로 조장했고, 그걸 이용해서 차수연을 지배하는 방법으로 쓰기도 했다.
차수연은 차민영처럼 강준화의 손에 수많은 남녀에게 팔려 가나 수도 없이 다리를 벌려야 했지만, 에널만은 그 누구에게도 허용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강준화와 차민영을 제외하면.
어쨌든 그 부분은 거론조차 하기 싫었던 차수연은 서둘러 상황을 설명했다.
“그냥 손으로 클리를 애무했을 뿐이야. 씨발. 그러고 보니 그 새끼 뭐 하는 새끼야? 사람 새끼는 맞아? 어떻게 손가락이 클리에 닿은 것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이 만들 수 있는 거지? 전동 자위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고 무슨 전기 고문이라도 당하는 느낌이었단 말이야!”
이번에는 차민영이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차수연의 말에서 대답을 찾았다. 차민영은 유진이 전기 자극을 가했다고 추정했다. 그리고 자신과의 섹스 때도 비슷한 짓을 했던 것 같은 정황도 기억해냈다.
사람이 맨손으로 전기 자극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차수연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차민영은 유진이 사람은 맞을지라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고 이제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었다.
매우 많은 의구심을 담아, 차민영은 자신 없이 대답했다.
“사람 새끼야 맞겠지, 아마도.”
차수연은 맥락 없이 계속 투덜거렸지만, 차민영은 점점 생각할 것이 많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그래서, 이제 생각은 있니?”
뭘 뜻하는지는 분명했다. 차수연은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생각 없으면?”
“니가 끝까지 싫다면, 그이가 강간 못 하게 말리기는 할 거야. 대신 내 몸이 좀 힘들 것 같지만. 그런데 너 오늘 아침에 망가질 만큼 좋았잖아? 겁먹고 싫어한다고 표를 팍팍 내려고 노력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그게 진짜 싫은 걸까? 내가 너를 아는데? 그이가 다시 너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도망갈 자신 있어?”
차민영이 강준화의 납치와 강간, 조교에 결국 굴복해 버린 것은 고통도 고통이지만 외로움이 가장 큰 문제였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일가친척도 하나 없었으며, 가까운 지인이라고는 차수연과 강준화 등이 고작이었다. 그녀는 납치된 지 꽤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그녀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공포와 다시 홀로 되는 두려움에 결국 굴복했다.
그에 비해 차수연이 강준화의 손에 떨어진 것은 훨씬 더 개인적인 이유였다. 차수연은 어지간한 남자들은 그 앞에서 기가 죽을 정도의 외모와 성격과 백그라운드를 가진 여자였고, 그에 비해 자신을 압도하고 지배하는 강한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성향이었다.
차민영은 죽은 전남편보다 유진이 훨씬 차수연의 이상향에 가깝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오늘 아침의 일도 겉으로만 싫다고 할 뿐 사실은 오히려 굉장히 멋진 경험이라고 여기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차민영의 생각이 맞았다.
차수연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볼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까지만 진행되었다.
어느새 차가 마트에 도착했고, 두 사람은 쇼핑을 시작했다.
둘은 일단 대형 카트 하나씩 끌고 물건 쓸어 담기를 시작했다.
라면이나 쌀 같이 부피가 큰 것은 뺐다.
“그런 건 나중에 배달시키는 것이 훨씬 나아.”
“아. 난 너무 자주 집을 비우다 보니 배달이 좀 익숙지 않아서.”
주력으로 구매한 물품들은 고기와 야채, 과일 등의 신선식품들과 술안주용인 다량의 견과류와 초밥 등의 완성 식품들, 그리고 대량의 빵이었다.
“이거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사는 것 아냐?”
“진이 많이 좋아해.”
“응? 소진이가?”
“아니 유진이. 그러고 보니 둘 다 진이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진이 주문한 사탕과 초콜릿, 아이스크림 구매하면서 덤으로 냉동식품도 한가득 구매했다.
쇼핑 카트 두 대 위로 산더미처럼 쌓인 양이 상상 초월이라서 다른 손님들이 놀라서 바라볼 정도의 양이었고, 계산도 오래 걸렸으며 금액도 엄청났다.
차수연이 왜 차민영이 고작 마트에서 장 보려고 굳이 픽업트럭 몰고 나왔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짐칸에 미리 칸막이가 되어 있어서 박스 포장 따위로 시간 안 버리고 그대로 실을 수 있었던 두 사람은 빠르게 쇼핑을 마치고 귀갓길에 올랐다.
사실 차수연은 기왕 마트 온 김에 당장 자기 필요한 물건들도 좀 고르고 싶었는데, 유진을 집에 혼자 둔 것이 불안한 차민영이 재촉해서 속옷과 잠옷 정도만 간신히 살 수 있었다.
그것도 유진에게 갈아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기억한 차민영이 유진이 갈아입을 속옷과 체육복 등을 고르는 사이 간신히 기회를 낸 것이었다.
“뭐가 그렇게 급해. 옷을 이렇게 대충 고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무래도 불안해. 빨리 가는 것이 좋겠어.”
제일 크고 비싼 걸로 대충 집어 들은 차민영에게 차수연이 투덜거렸지만, 차민영은 불길한 예감에 매우 초조했다. 오는 중에는 괜찮았는데, 마트에 머무는 동안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굉장히 불안한 예감이 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예감을 꽤 믿는 편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침묵을 견디지 못한 차수연이 다시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새끼는 취향이 좀 어때? 그 새끼도 변태야?”
차민영은 피식 웃었다.
싫다고 싫다고 말하면서도 어느새 유진에게 관심을 표하는 차수연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유도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쉽게 넘어오는 것은 그녀가 아마 차민영을 어느 정도는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를 증오하면서도, 서로가 상대가 자기에게 나쁘기만 한 일은 하지 않을 거라는 웃기는 믿음이 그들 사이에는 있었다.
어쨌든 차수연이 유진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차민영이 원하는 바였음으로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다.
“남자는 다 변태지, 변태 아닌 남자 본 적있어?”
“없지, 씨발. 지금 이 시대에 아닌 놈이 있을 리가.”
“다행히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오럴을 꽤 선호하는 것과 절대로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점을 빼면 크게 이상한 부분은 없었어. 체위에서는 여성 상위는 아주 질겁을 하고 싫어하는 듯하고, 정상위도 측위, 좌위 같은 것도 별로 없어. 굴곡위하고 후배위가 거의 전부야.”
전문가다운 설명에 차수연이 순간 질색을 했다.
“어우, 마초 냄새가 진동하네. 미국 애라더니, 그래서 그런 걸까?”
“글세? 그보다는 과거 경험 문제가 아닐까 싶어. 내가 서브미시브쪽 태도를 보이면 굉장히 좋아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보이는 것이, 오히려 여자들에게 시달리는 경험이 많았던 것이 아닐까 싶어. 외모가 그럴법 하잖아.”
“성격적으로는 전혀 아닌 것 같던데?”
“성격적으로 굉장히 강하고 위압적이기는 한데, 의외로 가부장적인 느낌은 거의 없어. 그리고 너도 잘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의외로 내 말 꽤 잘 들어 주는 편이야. 오늘 같은 경우도 내가 말리니까 사정도 안 한 상태로 일을 끝내기도 했고, 집에 남아서 청소하는 것도 납득했지.”
“그건 말을 잘 듣는 편이라기보다는 어린애처럼 꼬시는 것에 쉽게 넘어간 것으로 보였는데?”
“응,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꽤 순진한 편이야.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정말 쉽게 양보하는 느낌? 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에서는 설득 안 되는 것 같더라. 그 부분에서는 독선적일뿐만 아니라 폭력 행사도 서슴지 않는 느낌이야.”
“그건 좀 위험한데.”
“위험하지. 내가 널 괜히 끌어들인 것 같니? 혼자 감당하기 너무 어렵고 위험해서야. 그날 비행기에서 널 보고, 네가 먼저 날 도발까지 해줘서 참 다행이야. 네가 아니면 영은 언니까지 고민해봐야 했을 텐데. 그건 정말 싫었거든.”
유진이 들었으면 기겁할 정도로 유진에 대해서 깊게 파악한 차민영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차수연은, 이야기 중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기겁했다.
“잠깐, 누구? 영은 언니? 설마 그 영은 언니가 고영은 그 걸레 년은 아니겠지?”
“누가 누굴 보고 걸레래? 영은 언니도 어디 가서 당당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나 나보다는 훨씬 낫지.”
“씨발! 그년은 남자랑 3:1도 즐기는 년이잖아!”
“넌 그룹 섹스 안 해본 것처럼 말한다?”
“난 항문까지 동시 삽입은 안 해봤어! 그런데 그년은 오히려 항문 섹스를 더 즐기는 걸레잖아!”
차수연이 격렬하게 반발했다. 차민영으로서는 어이없을 뿐이었다.
“에널 섹스가 좀 평범하지 않은 섹스라고는 해도, 너나 내가 경험한 것 중에서는 그건 그나마 평범한 편이 아닐까? 보통의 평범한 부부들도 요즘은 많이 즐기는 편이라고 하던데?”
“씨발 그런 건 포로노가 만든 환상이라니까! 일반적인 섹스에 비해서 성병이나 HIV 전염 확률도 높다고 의사들이 경고하는 그걸 도대체 왜 하려고 하냐고!”
“좋아하는 남자들이 아주 많고, 나나 넌 아니지만, 여자 중에서 거기로 느낄 수만 있다면 끝내준다고 하는 여자도 있으니까?”
“씨발! 내 좆 같은 섹스 라이프에도 그걸 즐기는 여자는 딱하나, 그 망할 고씨 걸레 년밖에 없었다고!”
“누가 들으면 영은 언니가 항문 섹스가 전문인 창녀라도 되는 줄 알겠네. 니 생각이야 어쨌든 남들 눈에는 언니보다 우리가 훨씬 더 걸레야. 그러니까 앞으로는 말조심해라. 결혼해서 이제 다시 남들에게는 고 여사님이라고 불리니까.”
“결혼? 결혼? 그 걸레 짓 하다가 이혼당한 년이 재혼했어?
이번에는 차민영도 좀 화를 냈다.
”그 걸레 소리 좀 작작 하라니까! 걸레는 너랑 내가 걸레지 언니가 무슨 걸레야! 언니가 그 꼴 겪은 게 누구 때문인지 잊었어!“
”아니, 하지만.“
”네가 언니랑 사이가 나쁜 것은 알지만, 지금은 너보다 나에게 훨씬 더 고맙고 소중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닥치고 입을 조심해! 아예 박살을 내버리기 전에!“
차수연은 이번에는 조금 많이 충격받았다. 차수연도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고맙고 소중한 사람? 설마 선배 그동안 그년이랑 연락하고 지낸 거야! 우리랑은 연락 다 끊었으면서! 나한테는 소진이 태어나고 성별이랑 이름 문자로 보내준 것이 마지막이었으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년이 뭐라고!“
그래도 차수연의 입에서 걸레라는 말은 떨어져서 차민영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내가 혼자서 무슨 재주로 소진이를 길렀겠니? 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서 가능했던거지.“
”그게 고영은이라고?“
”응. 우리 중 그래도 영은 언니는 아이들도 키워본 사람이고, 가사도 능숙한 현모양처 출신의 가정주부였으니까.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내가 그나마 믿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지. 소진이 막 낳았을 무렵부터 한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나랑 소진이 돌봐줬어.“
차수연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기분이었지만,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는 못했다. 가사, 양육, 신뢰 같은 것이 들어가면 그녀는 사실 차민영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는 처지이기는 했다.
”한 동안이라고 하면 지금은 일단 아니라는 거군.“
어제 본 차민영의 집에는, 차민영과 소진이 외의 다른 사람이 기거하는 흔적이 전혀 없었다. 차수연은 일단 지금은 차민영과 고영은의 연결이 느슨해졌다고 여겼다. 사실 둘이 어떤 관계이든 차수연이 신경 쓸 필요는 없는 부분이었지만, 차수연은 고영은과 매우 사이가 나빴고, 그래서 고영은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이어진 차민영의 이야기는 더 큰 충격이었다.
”언니가 결혼해서 옆집에 살게 되면서, 같이 사는 건 끝냈지.“
”결혼? 맞아, 결혼. 결혼했다고 했지. 그런데 옆집? 옆집?“
차수연은 차민영의 옆집을 떠올렸다.
차민영의 집도 가정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큰 무슨 재벌 회장님 사택 같은 느낌의 집이었지만, 옆집도 그에 만만치 않은 집이었다. 아무리 여기가 경기도 외곽이라고 해도 평범한 사람이 사는 집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영은 객관적으로는 꽤 준수한 외모에 가사에도 능한 좋은 아내감이라고는 하지만, 수많은 남자와 온갖 변태적으로 바람을 피우다가 남편에게 들통나서 이혼당한 것이 신문 사회면에까지 나온 과거가 있는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제대로 된 상대와 재혼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어진 대답은 앞의 대답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었다.
“북성건설 성지호 사장님 기억나니? 내 소개로 만났지.”
“선배! 씨발. 진짜 미쳤구나! 야. 너 돌았냐, 정말!”
놀란 차수연의 입에서 막말이 튀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북성건설 성지호 사장은 차수연도 잘 아는 사이였다. 강준화의 부부교환 섹스나 난교 섹스 모임의 멤버 중 하나로 차수연은 물론이고 차민영도 그와 여러 번 섹스를 한 적이 있었다. 차민영과 차수연이 동시에 그와 섹스하는 동안, 강준화가 그의 아내와 섹스하는 일이 그들의 주 일상이었다.
무엇보다 성지호 사장은 강준화가 교통사고로 죽을 때 동승하고 있던 여성의 남편이자, 경찰이 교통사고를 사주한 배후 인물로 의심하고 수사했던 인물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을 아는 차민영이나 차수연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차수연이 화를 내는 포인트는 그 부분이었다.
“너 설마 그 새끼랑 붙어먹은 거야! 나한테는 소진이는 평범하게 키우겠다고 연락 끊고는 그딴 년놈 들이랑 붙어먹은 거냐고!”
흥분한 차수연과 달리 차민영은 차갑게 대답했다.
“키우고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의지한 거지. 너나 다른 애들이야 준화씨가 죽은 걸로 과거를 끊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 그만이었지만, 나랑 성 사장님은 오히려 준화씨랑 명인씨가 죽는 바람에 지켜야 하는 것이 생겼으니까.”
명인은 죽은 성 사장 아내의 이름이었다. 그녀가 강준화와 함께 죽은 일은, 그녀와 강준화의 관계를 알고 있고 또 묵인한 성 사장 개인의 사정과 상관없이 성 사장의 사회적 평판은 물론, 성 사장의 아이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차수연은 할말이 많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차민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차민영은 핸드폰 화면에 뜬 발신자인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우리 딸”을 보고는 손을 들어 올려, 차수연의 입을 막았다.
“소진이가 웬일이지? 넌 잠깐 닥치고 있어.”
차민영의 표정이 너무 살벌했기 때문에, 차수연은 일단 입을 다물었다.
차민영은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제법 특이한 성격을 가진 그녀의 딸 소진이는 엄마랑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했다. 이번 파리 여행하는 동안에도 문자로 주로 대화했을 뿐, 통화는 목소리만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테러로 난리가 난 상황에서도 그랬을 정도였고, 어제 집에 도착했다는 것도 문자로 알려주고 문자로 대답 들었을 정도였다.
그런 딸이 조금 있으면 얼굴 보고 이야기할 시간에 전화를 걸었으니 놀랍고 불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보세요. 딸. 엄마야. 어쩐 일이니?”
옆에서 듣고 있던 차수연이 기겁할 정도로 최대한 가다듬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차민영은 이어진 딸 소진이의 말에 기겁하고 말았다.
“엄마. 나 지금 집에 도착했는데, 우리 집 청소하고 있는 잘생기고 이상한 오빠가 있어. 이 오빠가 자기가 엄마 친구라는 하는데 정말이야? 이모가 엄마 친구치고는 너무 어려 보인데.”
차민영은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소진이는 저녁 먹을 시간에나 도착할 예정이었다.
바로 어제 소진이와 한 문자에서도 그랬고, 오늘 아침에 소진이와 함께 여행을 갔던 고영은 여사와의 통화에서도 그렇게 들었다.
그래서 아직 소진이에게 유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만 할 뿐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기습이라니!
“친구 맞아. 엄마 지금 마트 왔다가 집에 가는 길이거든. 자세한 이야기는 집에 가서 이야기해줄게. 그러니까 일단 엄마 갈 때까지는 이모랑 같이 있어. 알았지?”
“그래? 그럼 이따 봐. 운전 조심하고.”
차민영이 놀라고 당황해서 목소리까지 떨면서 자신이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횡설수설한 것에 비해, 소진이는 아주 쿨 하게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차민영은 너무 쉽게 끊어진 전화기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신 차리고 앞을 보고는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기 시작했다.
좁은길도, 오르막 경사도, 급커브도 지금 그녀에게는 위험도 아니었다.
차수연은 광기 어린 차민영의 모습에 위험하다는 말 한마디 못 한 채 찌그러져서 차량 옆면 손잡이에 매달려야 했다.
그렇게 차민영은 평소라면 30분은 걸릴 거리를 반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돌파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