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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50화 (50/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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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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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집과 아이와 여자, 그리고 여자와 또 여자 – 13

기습적인 소진의 발언으로 장내는 싸늘하게 굳어 버렸다.

차수연은 차민영을 노려보았다. 여러모로 상황을 의심 중이던 그녀는 차민영의 평상시 생활을 의심했다. 어린아이가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차민영이 문란하게 지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한 것이다.

차민영은 충격을 받아서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뭔가 표를 낸 것도 아닌데 딸인 소진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그녀가 지금까지 소진이를 키우면서 집에 남자를 데려온 적은 없어도, 소진이 친구라고 소개한 남자가 한 명도 없던 것은 아니지만, 소진이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소개받은 남자인 친구를 남.자.친.구 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차민영은 일단 부정했다.

“아니야. 소진아. 진은 그냥 성별이 남자인 친구야. 엄마 남자친구 아니야.”

차민영은 유진이 남사친임을 주장했다. 유진은 남친과 남사친이 뭐가 다른 것인가 잠시 고개를 갸웃했지만, 5살임에도 불구하고 소진이는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소진이는 엄마의 변명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아닌데? 오빠 몸에서 엄마 냄새났는데? 이모가 그건 부부나 애인 사이에서만 나는 거라고 했어.”

차민영이 소진이가 말하는 이모 고영은을 바라보았다. 눈에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한 거냐는 의지를 담아서. 하지만 고영은이 너 나한테 애 맡기고 뭐 하고 다닌 거냐는 눈빛 공격에 오히려 밀려 버렸다.

그 사이 유진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기 몸에 잠시 코를 가져갔다.

유진의 초월적인 감각에는 후각도 포함되어 있고, 유진은 자기 몸에서 차민영의 냄새 같은 것은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실 날 수가 없었다. 유진이 가장 최근에 가까이한 것은 차민영이 아니라 차수연이었고, 그것도 목욕 중이었으니까.

그래서 소진이에게 물었다.

“정말 내 몸에서 엄마 냄새가 나? 하지만 그런 냄새는 없는데?”

이번에는 소진이가 좀 당황했다.

“어, 그게. 그러니까.”

소진이는 고개를 살짝 들어 위를 올려다보며 말을 고민했다. 누가 봐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단어를 좀 몰라서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어휘력이 짧은 아이들이 자주 보이는 모습이기 때문에, 육아 경험이 있는 엄마인 차민영이나 고영은은 소진이의 냄새가 원래 그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유진은 소진이의 모습이 귀여워서 웃으면서 차분하게 기다렸다.

한참 고민하던 소진이는 손뼉을 치며 이야기했다.

“아. 맞다! 섹스! 민아 언니가 이거 섹스한 흔적이라고.”

“강소진!”

소진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차민영이 비명같이 딸의 이름을 부르며 딸의 입을 막았다.

차수연은 입을 떡 벌렸고, 유진조차 웃고 있던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고영은은 거론된 의붓딸의 이름에 한숨을 내쉬었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의붓엄마인 자신을 잘 따라주는 착한 딸이고, 이제는 어엿한 바른 생활 대학생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문제아 여고생 시절의 흔적이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것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에게 저런 말을 가르치다니! 오늘 집에 가면 단단히 잔소리를 퍼부어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소, 소진아! 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는 거니?”

차민영이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소진이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아.”

“뭘 어떻게 아는 거니?”

“그냥 알아.”

“응. 그러니까 어떻게?”

“그냥. 그냥 알아.”

차민영은 소진이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했다.

듣고 있던 유진은 뭔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쩐지 소진이가 지금 하는 말이 소진이랑 비슷한 나이 때에 자신이 연구원들에게 하던 말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초월 인지 능력.

배우지 않은 지식을 그냥 알게 되는 초월적인 능력으로, 유진이 연구소의 실험 등과 관계없이 스스로 발현한 능력이었다.

유진은 정확하게 몰랐지만, 이 능력이 발현됨으로써 연구소와 조직은 유진을 특별하게 관리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조차 그냥 명분으로만 생각하던 위버멘시 프로젝트를 정식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유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진이도 자신과 같은 초능력을 가진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전에 소진이가 던진 폭탄이 먼저 터졌다.

“엄마, 이 오빠랑 섹스 한거 맞잖아.”

“소진아!”

“그럼 이제 이 오빠가 소진이 새 아빠 되는 거야?”

“아니야!”

차민영은 기겁해서 소리쳤다.

워낙 큰 목소리였기 때문에 자기가 소리를 지른 본인이 우선 놀라고, 혹시 소진이도 놀라지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소진이는 태연했다.

“아니야? 하지만 민아 언니가 섹스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 거고, 사랑하는 남녀는 결혼해서 부부가 되는 거라고 했는걸? 아닌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소진이는 이미 이 처음 보는 오빠랑 엄마가 사랑하는 어른들이 하는 그것을 했다고 확신하고 다음 단계에 관해 묻고 있었다.

듣고 있는 다른 어른들은 민아가 뭔가 그래도 소진이에게 비교적 정상적으로 성교육을 해줬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듣고 있는 엄마로서는 가슴이 철렁하면서 뭐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그런 질문이었다.

차민영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망설이는 사이 소진이의 말에 흥미를 느낀 차수연이 물었다.

“소진아. 소진이는 이 오빠가 아빠가 되면 좋을 것 같아?”

혹시나 해서 물어본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장내에 다시 한번 폭탄을 터트렸다.

“응. 소진이 이 오빠 좋아. 진짜 아빠 같아. 엄마가 사진으로 보여준 가짜 아빠랑 달라.”

“가짜 아빠?”

“응. 엄마가 엄마 결혼사진 보여주면서 아빠라고 했는데, 아빠 아니었어. 그 아빠 가짜였어.”

차수연은 이건 또 소리인가 어리둥절했다.

그러고 보니 집안에서 차민영과 강준화의 결혼사진 등 강준화의 사진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차민영이 처음 임신했을 때 강준화가 자기 자식이 생겼는데, 그것도 정식으로 결혼한 사랑하는 아내에게 생긴 첫아이였는데, 임신 사실을 알았는데 미친놈처럼 화를 내던 일을 기억해 냈다.

임신중절 수술 일정을 예약해서 차민영 혼자 산부인과로 보내 놓고, 본인은 다른 여자 데리고 그 여자 남편이랑 함께 섹스하러 가다가 사고가 나서 죽었다는 것도.

그래서 차수연은 이어지는 차민영의 말에도 어딘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소진아. 엄마가 늘 이야기했잖니. 아빠가 비록 소진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서, 그래서 소진이가 아빠를 본적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아빠야. 꼭 얼굴 보고 아빠라고 불러본 적이 있어야 아빠인 것이 아니야. 아빠는 소진이 얼굴도 못 보고 하늘나라로 간 것도 슬플 텐데, 소진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 얼마나 슬프겠니.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단다. 소진이 그렇게 말하면 아빠는 물론이고 엄마도 너무 슬퍼.”

차민영은 이제 소진이 옆자리가 아니라 소진이 앞에 다리를 굽히고 앉아 소진이와 눈높이를 마주하고 거의 애원하듯 말하고 있었다.

소진이는 그런 엄마에게 사과했다.

“미안, 엄마. 가짜 아빠라고 안 부를게.”

“그래. 앞으로는 꼭 아빠라고 부르는 거다. 약속.”

“응. 약속.”

둘은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렇게 무마되나 싶었던 화제는 소진이의 질문에 다시 불이 붙어 버렸다.

“그래서 엄마, 오빠랑 왜 결혼 안 해?”

순진한 말투로 태연하게 소진이는 계속해서 엄마의 심장을 공격하고 있었다.

차민영은 일단 유진과 자신이 섹스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했다.

소진이가 섹스에 대해서 뭘 얼마나 알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까지 부정하고 어디까지 긍정해야 할지부터가 애매했다. 무엇보다 소진이가 이렇게 확신을 두고 말하는 경우, 거짓말로 대답하면 귀신같이 눈치채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소진이가 엄마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 버리면 굉장히 문제가 커질 수 있었다. 죽은 남편에 관한 이야기가 대표적이었다. 그래서 차민영은 소진이에게 정말 죽은 남편 일처럼 죽어서도 묻어야 할 비밀 정도가 아니면 거짓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둘이 섹스는 했지만,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다섯 살 딸이 섹스라는 단어와 그 의미를 아는 눈치만으로도 미칠 것 같은데, 그런 딸에게 벌써 섹스는 사랑 없이도 할 수 있는 거라고 인식시킬 수는 없었다.

죽어도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차민영은 꼭 결혼할 사이가 아니어도 서로 사랑할 수 있고 함께 잘 수도 있으며 한 집에 살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면서, 한편으로는 결혼할 것도 아닌데 함부로 남자와 사랑한다거나 섹스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몹시 자기 모순적이다 못해 내로남불과 궤변으로 점철된 설명과 설득을 진행해야 했다.

객관적으로는 헛소리지만, 엄마의 애정 어린 설득이 꽤 오래 진행되었고, 옆에 듣고 있던 사람들이 다 질려버릴 정도가 되었을 무렵이 되자 소진이는 일단은 납득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구나.”

고개까지 끄덕이는 그 모습에 차민영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차수연이 보기에 저거는 그냥 소진이가 엄마가 불쌍해서 넘어가 주는 것이 분명했다. 소진이가 고작 다섯 살짜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황당할 정도였지만, 옆에서 보기에 너무 분명해서 모를 수가 없었다.

눈치는 쥐뿔도 없는 유진도 눈치챘을 정도였다. 그저 딸에게 눈멀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엄마만 모를 뿐.

그리고 그걸로 끝도 아니었다.

“그럼 오늘부터는 엄마랑 오빠랑 같이 자고 소진이는 혼자 자는 거야? 소진이 아직 혼자 자기 무서운데.”

“아니야!”

결혼한 것은 아니어도 사랑하는 남녀가 한집에 살면 같이 자는 것 아니냐는 소진이의 질문에, 차민영은 다시 한번 소진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진을 빼야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소진이는 유진과 엄마의 관계에 대해 핵폭격급은 아니어도 융단폭격이나 크루즈 미사일 정밀 타격 급은 되는 폭탄 질문들을 계속 던져서 엄마인 차민영이 설명하다가 기진맥진하게 만들고, 옆에서 듣고 있던 차수연마저 질리게 했다.

오직 첫 질문이래 소진이에게 많이 관심이 생긴 유진만이 흥미진진한 태도로 그걸 감상했을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늦은 저녁 식사 시간에는 다들 별다른 대화도 없이 먹는 것에만 집중했다.

유진은 차민영이 저녁으로 만든 큼지막한 스테이크 – 그 스테이크는 차민영의 것과 차수연의 것, 그리고 소진의 것을 다 합친 것보다 2배 크기였다. – 하나를 다 먹고, 후식으로 족히 어지간한 대식가 10인분은 넘을 양의 어마어마한 빵도 가뿐하게 먹어 치웠다.

몇 번 본 차민영은 또 보면서도 또 질리는 기분이었고, 어제의 경험으로 유진이 대식가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벗어난 양을 먹어 치우는 그 모습에 차수연은 질색했지만, 소진이는 그런 유진이는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거기에 저녁 식사 끝나고 다 같이 둘러앉아 TV까지 보는 동안 유진은 오늘 차수연에게 부탁해서 받은 초콜릿과 사탕, 아이스크림도 퍼먹었고, 소진이는 평상시라면 엄마가 허락해주지 않아서 못 먹었을 그 간식들을 즐겁게 얻어먹었다.

차민영은 맥이 빠져서 그런 소진이를 말리지도 못했다.

“자기 전에 한 번 더 이빨 닦을 거야.”

이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차수연은 차민영과 나누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소진이는 엄마랑 조금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유진에게도 계속 말을 걸며 자신의 옆에 있기를 바랐다.

차수연은 기다리기로 했다.

다섯 살 아이는 일찌감치 자야 할 테니, 소진이가 먼저 잠들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실패했다.

“엄마. 나 졸려.”

차수연이 기다리던 시간, 소진이가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주장했다.

“엄마랑 같이 잘래. 오빠. 오빠도 같이 자. 가족이니까 집에서의 첫날은 다 같이 자야 해!”

소진이는 엄마인 차민영은 물론이고 유진의 손까지 함께 잡고 졸랐다.

맥이 다 빠져 있던 차민영은 유진도 함께 자자는 소진의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여기서 안 된다고 하면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냥 포기했다. 소진이도 함께 있는데 유진이 자신을 덮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잠깐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소진이에게 많은 관심과 호의를 느끼고 있던 유진은 소진이가 말한 가족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가슴을 간지럽히는 느낌에 거절하지 못하고 동의했다.

당황한 것은 차수연뿐이었다.

“소진아? 이모는?”

대화 시간을 가지기 어려운 것은 둘째치고, 소진이가 자신만 차별하는 느낌에 차수연이 서운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소진이가 오늘의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어? 이모도 오빠랑 같이 자는 사이야?”

여기서 소진이 말한 잠이 진짜 잠인지 아니면 섹스의 은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차민영과 차수연 모두 움찔했다.

차민영은 차수연이 유진과 함께 자는 사이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그렇게 되었을 때 소진이를 속일 수 있을 것인가? 속이지 못하면 어떻게 변명해야 하는가에 아득함을 느꼈다.

그에 비해 차수연이 느낀 것은 조금 달랐다.

‘어?’

차수연은 여자의 본능으로 소진이가 자신과 유진을 견제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유진과 뭘 어떻게 할지 아직 확실하게 결정한 것은 없었지만, 그건 무척 생소한 기분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다섯 살 어린 조카가 자기 남편 유혹하는 첩년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보고 있다는 것에 몹시 황당함을 느낀 그녀는, 자신의 느낌이 진짜인지 착각인지 헷갈려서 잠시 눈을 부빌 정도였다.

다시 본 소진이의 모습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지만, 어쩐지 차수연의 눈에는 어쩐지 매우 몹시 어색했다.

그리고 그렇게 유진과 소진, 소진과 차수연, 차수연과 유진 그리고 고영은과의 첫 만남이 끝났다.

#004 집과 아이와 여자, 그리고 여자와 또 여자 - END

#005 작은 사회, 하지만 복잡한 사회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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