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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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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작은 사회, 하지만 복잡한 사회 – 3
소진이의 은근한 방해로 명확한 관계 설정을 못 하고 떠나며, 차수연은 소진이가 여우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귀엽고 앙큼하고 사랑스러운 여우짓이라서 차마 말을 못하고 떠났을 뿐이었다.
그에 비해 유진과 차민영은 그때 일을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일주일 후에 벌어진 일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제대로 된 타이밍을 잡지 못하던 유진과 차민영은 소진이 유치원 간 사이에 격렬한 섹스를 즐기게 되었다. 사실 좋은 시간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유진이 슬슬 성욕이 쌓이고 있었고, 차민영도 살짝 거기에 동조해 버렸다.
문제는 둘의 관계는 소진이 하교 전에 제때 끝냈고, 유진은 소진이 마중까지 나갈 수 있었지만, 완전 녹초가 된 차민영은 2층에서 널브러져 제대로 몸을 추스르지도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사실 상관없을 터였다. 2층은 평상시에는 소진이가 올라오는 곳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날 소진이는 평상시와 달리 엄마를 찾아 말리는 유진을 뿌리치고 기어이 2층까지 올라갔고, 차민영은 온갖 야릇한 냄새며 씻지도 못해 엉망인 자기 꼴을 소진이에게 정통을 들켰다.
물론 소진이는 아무것도 모른 척하기는 했는데, 그 이후에 엄마나 유진과 더 노골적으로 붙어있으려고 했다.
그 이후 몇 번 더 비슷한 예도 있었다.
딱히 섹스는 아니어도 나름 농밀한 분위기를 잡거나 가벼운 터치 등을 하다가 소진이를 마주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오늘 같은 경우만 해도 일부로 새벽부터 일어나 소진이 잠자는 사이에 일을 진행하려고 차민영이 나름 머리 써서 기획한 건데, 소진이가 생각도 못 한 시간에 일찍 일어나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유진은 소진이가 이 와중에 화장실 다녀오다가 식당에도 거실에도 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2층으로 반쯤 올라오다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이 다섯 살의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어딘지 무서운 아가씨는 분명 두 사람이 지금 뭔 짓 하고 있을지 예상하고는 두 사람을 위해 자리를 피해준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면서도 분명히 두 사람이 너무 자주 이러지는 못하도록 눈치를 주고 있었다.
이건 명백히 질투였다. 그게 누구를 향한 어떤 질투인지는 많이 애매하지만 말이다.
유진이 이 상황을 좀 조사해보다가 인터넷에서 엄마랑 아빠가 사이가 너무 좋으면, 아이가 엄마랑 아빠가 자기만 떼어놓고 서로 좋아한다고 질투한다고 하는 글을 보긴 했다. 하지만 이게 지금 소진이 경우에 맞는 것인지는 좀 애매했다.
어쨌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유진이 소진이를 계속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도 있었다.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족이니까.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고작 다섯 살이잖아. 안 보이는 곳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아. 아예 인지 범위 밖으로 나갔을 때야 어쩔 수 없어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계속 지켜봐 줘야지.”
진심이었다.
지금까지 삶과 앞으로의 삶을 고려하면, 자기 자신도 이런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미 변화해 버렸고, 그런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유진 처음으로 가진 가족인 차민영과 그런 차민영과 함께 가진, 그리고 자신의 보호가 있어야 하는 작고 연약한 가족인 소진이가 너무도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차민영은 그런 유진의 진심을 느끼고는 감동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유진에게 키스하며 말했다.
“사랑해, 유진. 진심이야.”
차민영은 스스로 말하고도 이 뜬금없는 사랑 고백에 스스로 놀랐다.
유진이 방긋 웃으며 그녀의 이 느닷없는 고백에 놀라지 않고 그녀의 키스를 받아주어서 민망함은 면했지만, 스스로도 참 놀라웠다.
알게 된 지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그리고 처음부터 좋게 시작된 사이도 아닌데, 어느덧 이런 마음이 들어 있는 자신이 놀라웠다.
하지만 어느새 소진이가 유진을 정말 친오빠처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고, 유진이 차민영과 소진이를 소중한 가족으로 여기고 아끼고 있는 것처럼, 차민영의 마음도 변하고 있었다.
차민영은 진짜 사랑은 시간을 따지지 않는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세 가족은 아침 식사를 위해 식탁에 둘러 앉았다.
약간 놀랍게 아침 식사를 준비한 것은 유진이었다.
유진이 상을 차리는 순간부터 소진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엄마를 계속 바라보았다.
식사가 시작된 후에도 밥 한 숟가락 먹고, 반찬 한 점 먹은 다음에 다시 엄마 한 번 빤히 바라보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반찬 얹어 달라는 뜻인가 해서 열심히 소진이 밥공기에 위에 나물 반찬 올려주던 차민영은, 소진이가 그녀가 올린 나물 반찬을 유진에게 주고는 유진이 대신 준 고기반찬을 맛있게 냠냠하는, 그러고 다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모습에 조금씩 어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소진아, 엄마에게 할 말 있어?”
“으으음. 그러니까, 아니야. 아무것도.”
차민영이 물어보니까 소진이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얼버무렸다.
하지만 그러면서 엄마와 유진의 얼굴을 번갈아 보는 모습이 차민영을 굉장히 신경 쓰이게 했다.
“그러니까 뭐가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아니야, 아무것도.”
차민영이 조금씩 소진이를 떠봤지만, 소진이는 계속 얼버무렸다.
찔리는 부분이 많은 차민영은 이제 슬슬 속이 거북할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끝까지 계속하면 소진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무서워서 계속 추궁하기도 어려웠다.
소진이가 열심히 자신이 건네주는 나물 반찬의 반 이상을 유진에게 다시 건네주고 고기반찬, 소시지 반찬 같은 것을 열심히 받아먹으며 편식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추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신 그녀는 어려운 소진이 대신 아주 조금 만만해진 유진을 노려봤다.
하지만 유진의 눈치 없음은 거의 철면피 수준이었다.
유진은 자신이 주는 반찬을 아기 새처럼 넙죽넙죽 받아먹는 소진의 모습을 즐거워하며, 이제는 아예 밥그릇이 아닌 소진이 입에 직접 먹여줄 정도였다. 그 와중에 차민영에게 고기반찬이 입맛에 안 맞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배후의 조정자이며, 형식적으로는 집안 최고의 권력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집안 권력의 최저층인 차민영은 그 모습에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고기반찬 씹으며 짜증을 풀 뿐이었다.
이 와중에 유진이 한 밥과 반찬이 자신이 하던 것보다 맛있는 데다가, 소화까지 잘되는 느낌이라서 더 짜증이 났다.
그래도 차민영은 이 아침이 너무 행복했다.
유진이 없던 평상시에는 아침 안 먹으려는 소진이에게 뭐라도 한 숟가락 먹이려고 악전고투를 벌이느라고 아침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르는 전쟁을 벌이던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유진과 함께 아침을 먹기 시작한 이후에는 상황이 변했다.
워낙 맛있게 많이 먹어 대는 유진 때문인지 소진이도 투정 없이 양껏 먹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녀도 느긋하게 아침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조금 짜증 나는 부분이지만 유진이 그녀보다 훨씬 더 요리를 잘해서 그녀가 하는 것보다 훨씬 맛도 좋았다.
원래 밥은 어지간히 요리 잘하는 사람도 자신이 해 먹는 것보다 남이 해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지금 유진이 그 귀찮던 아침상을 차려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맛까지 훨씬 좋고, 그걸 밥투정하던 딸이 너무 많이 먹는 것이 아닐까 싶어질 정도로 맛있게 먹고까지 있으니,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약간 불편 한 거라면 점점 더 딸의 눈치를 보게 되며 엄한 엄마로서의 자신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뿐이었다.
“고기랑 소시지만 먹지 말고 나물이랑 김치도 먹어! 편식하면 몸에 안 좋아! 유진 너도 너무 고기만 먹이지 마! 소진이는 너랑 다르 단 말이야!”
물론 그녀의 잔소리에 움찔한 유진과 소진이가 고기와 소시지 반찬의 비중을 줄이고 나물과 김치 등의 섭취 비중을 늘리는 모습을 보면, 그녀의 불안은 그냥 불안일 뿐이라는 것이 분명했지만.
“엄마 오늘 늦을 거야, 저녁은 둘이서 먹어. 그렇다고 과자나 초콜릿 아니면 햄버거나 치킨 같은 거 먹자고 유진에게 조르면 안 돼! 유진, 너도 소진이가 조른다고 다 들어주지 말고 제대로 된 음식으로 먹어! 약속이야! 이따 내가 뭐 먹었는지 확인해 볼 거야!”
식사가 끝나고, 차민영은 서둘러 집을 나서야 했다.
강남에서 10시부터 있을 미팅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했다.
유진이 없을 때는 본인 혼자 설거지에 뒷정리, 소진이 등교까지 시켜야 하는 상황에 이런 이른 미팅은 도저히 허락할 수 없는 미친 짓이었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유진에게 믿고 맡기고 보통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출발할 수 있었다.
이런 것도 그녀가 찾은 행복 중 하나였다.
어쨌든 차민영이 그렇게 잔소리 한참 늘어놓고 출발하자 유진과 소진은 방긋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약속하고 보낸 엄마의 자동차 엔진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역적모의를 시작했다.
“엄마가 과자나 초콜릿, 햄버거나 치킨 안 된다고 했으니 오늘 저녁에는 피자랑 스파게티 같이 먹을까?”
“짜장면에 탕수육도.”
“그리고 아이스크림은 이야기 없었으니 유치원 갔다 오면 간식으로 아이스크림 파르페 먹자.”
“디저트 하면 케이크. 과자 아니니까 그것도.”
“좋아. 거기에 젤리도 준비해 주지.”
말은 없었지만, 사탕을 뺀 것이 둘의 양심 마지노선이었다.
“어, 근데 오빠. 엄마가 뭐 먹고 있는지 사진 찍어서 보내라고 하면 어떻게 해?”
“그럼 채소 잔뜩 넣은 볶음밥도 하나 만들자. 짜장면이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을 거야?”
“채소?”
“내가 맛있게 해줄게, 걱정하지 마라. 보이기는 채소 위주지만 맛은 고기 위주로 해주마.”
“우웅. 그럼 찬성.”
무슨 만찬은 아니어도 족히 아이들 파티는 될 법한 종류와 가짓수의 음식들이 그렇게 메뉴로 정해졌다.
차민영은 소진이가 입이 짧다고 생각하며 걱정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건 그녀가 해주는 음식이 맛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진이 입맛에 잘 맞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이었다.
소진이는 어리지만, 자신만의 입맛이 있는 미식가이자 대식가였다.
사실 아기 때 엄마인 차민영이 아닌 이제는 옆집 사는 이모 고영은이 해주는 음식 맛에 길든 탓이 컸다. 고영은은 성적 취향이야 어떻게 되었던 요리사 뺨치는 훌륭한 요리 실력을 갖춘, 차수연이나 차민영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가사 만능의 실력자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진이가 이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여러 음식 많이 준비해서 자신이 다 먹지 못해도 음식 남을 일 없이 유진이 다 먹어 주기 때문이었다. 온갖 좋아하는 것 다 준비해서 조금씩 맛만 보는 욕심을 부려도, 음식 남기는 나쁜 아이가 되지 않을 수 있으니 욕심을 부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차민영이 알면 몹시 서운하겠지만, 유진과 소진이는 엄마 없이도 둘이 죽이 착착 맞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