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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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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작은 사회, 하지만 복잡한 사회 – 7
고영은의 식당의 점심 영업시간은 정확하게 12시부터 1시까지의 한 시간 동안이다.
보통 식당들이 11시 정도부터 2시까지 3시간을 점심시간으로 잡는 것에 비하면 매우 특이한데, 식당 손님들이 가지는 특징 때문이었다.
이 식당 손님의 메인은 고영은의 남편인 성지호의 회사 직원들과 회사에서 고용한 이곳 현장 일꾼 30-40명 정도이다.
원래는 그들만이 대상 고객이었는데, 소문이 나면서 근처 농공단지나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손님으로 밀고 들어왔고, 다시 더 소문이 나면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빌라 건설 현장의 일꾼들도 손님으로 추가되었다. 그리고 단지 내 주민이나 이웃 마을 사람들도 좀 있었다.
이들 중 건설 현장 일하는 사람들이나 공장 노동자들은 점심시간이 명확하게 12시부터 1시까지 이기까지 때문에 앞뒤로 시간 늘려봐야 좋을 일이 없었다.
시간 늘리면 오히려 그 핑계로 일에 늦게 복귀할 수 있어서 고용주들이 싫어할 일이었고, 궁극적으로는 고영은의 남편에게도 손해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단지 내 주민이나 이웃 마을 사람의 경우, 여유 있게 시간을 주면 식당을 밥 먹는 곳이 아니라 자기들 모임 장소나 쉬는 곳으로 쓰려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초기에 여유를 뒀더니 서너 사람 때문에 한두 시간씩 더 일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바람에 칼같이 시간을 정리해서 아예 영업시간 내에 식사가 어려운 손님은 받지 않는 정책을 썼다.
덕분에 손님들도 다음 손님들을 위해서 서둘러 식사하고 일어나는 분위기가 되었고, 그래서 영업하는 가게의 궁극의 목표인 높은 회전율도 달성했는데, 여기에도 문제가 사실 있었다.
회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반찬 소모도 빠르고, 뒷정리할 일도 많다는 것이었다.
계산하고, 반찬 떨어지는 것 보충하고, 나간 손님 자리 뒷정리하고, 새로 손님 받으려면 그야말로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손님이 직접 수저와 그릇 챙기고, 식사 후 정리까지 하고 가는 부페 형식이니까 망정이지 종업원이 주문을 받아서 직접 음식 내가고, 손님 간 후에 직접 상을 정리해야 하는 일반 식당이라면 세 사람으로는 영업할 엄두도 내지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유진이 활약하자 이야기 달라졌다.
“사장님, 여기 반찬 떨어졌어요.”
“네, 지금 갑니다, 손님.”
“사장님. 국이 없어요.”
“지금 갑니다.”
“사장님, 밥 더 없나요?”
“금방 채워 드릴게요.”
원래 여자 셋이 일할 때는 떨어진 반찬 채우려면 미리 준비한 반찬을 일정량 덜어서 손님들 이 반찬 떠가는 그릇으로 옮겨야 했다. 국같이 무거운 것은 두 사람이 붙어서 낑낑대고 옮겨야 했다.
하지만 유진은 반찬 떨어지는 것 확인하고 새로 보충하는 속도 자체가 완전 달랐다.
유진은 반찬이 떨어지면, 커다란 반찬 통 자체를 미리 준비했다가 통째로 갈아 버렸다. 무거운 국도 순식간에 새로 보충하고, 보온 밥통에 새로 지은 밥 보충하는 것도 솥을 통째로 들어 옮긴 후에 순식간에 채웠다.
조금씩 여러 번 나르거나, 여러 사람 붙어서 힘들게 날라야 했던 그녀들과는 교체 효율의 수준이 달랐다.
거기에 손이 빠른 유진 덕분에 반찬 떨어지는 것 봐 가면서 추가로 실시간 보충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서 인기 있는 반찬이 먼저 다 떨어지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덕분에 평판도 좋았다.
“사모님, 오늘 반찬 정말 맛이 있습니다.”
“사장님. 오늘 정말 최고였어요.”
“사장님. 이 정도면 손님 더 받으셔야 하는 것 아니에요?”
“오늘 반찬은 더 맛있네? 재료 바꿨어요? 혹시 반찬 판매할 수 있어요?”
손님들이 모두 평상시보다 훨씬 만족스러워했다.
반찬 리필이 빨랐던 덕에 손님 회전 속도도 조금이나마 더 빨라졌다.
아침에 여유 있게 준비할 수 있었던 탓에 손이 많이 가는 소시지전이나 호박전 같은 것들도 넉넉하게 준비할 수 있었고, 부족해지는 낌새가 보이자 얼른 추가로 더 요리해서 떨어지기 전에 빠르게 보충하면서 늦게 온 손님들도 좋아하는 반찬 떨어져서 못 먹는 일이 없어서 좋아했다.
저녁 영업을 안 하고, 오늘 만든 반찬들은 오래 둬도 괜찮은 몇몇 가지를 빼면 사람들에게 싸게 파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것을 탐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나마 오늘은 남는 반찬이 별로 없어서 팔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을 정도로 성화였다.
평소보다 더 맛있어서 과식했다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뭘로 봐도 성공적인 영업이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도 명백했다.
슬슬 마지막 손님들이 식사하는 마무리 시간.
순천댁이 이 와중에 굳이 자신이 하지 않아도 되는 설거지까지 미리 하는 유진을 질린 눈으로 보며 고영은에게 말했다.
“사장님 두 배 가지고 될까요? 제가 어디 식당 사장이면 세 배 네 배를 주어서라도 꼬셔 가겠어요. 설마 유진 총각 짧게 일하고 그만두지는 않겠죠? 오늘 같은 일이 익숙해지면 예전으로는 못 돌아가요, 사장님.”
화순댁도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보면 자신들 일 편해지니 다시 힘들어지기 싫다는 이기적인 의견일 수도 있지만 고영은은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일을 더 편하게 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원하는 일이고, 이 두 사람에게 주는 급여는 두 사람의 노동 대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영은의 식당이 잘 되면서 그만큼 손해 보게 된 마을의 다른 식당들의 반발과 마을 주민들의 민원 대응 비용도 포함된 거라서 지금보다 두 배를 줘도 아까울 일이 아니었다.
단지 체면을 알고 양심이 있는 사람들이라 받을 만큼만 받고, 받은 만큼 일할 뿐이었다. 사실 최근에 손님이 많이 늘면서 고영은이 오히려 미안해하던 참이고, 그래서 유진을 뽑은 것이니 그녀들이 이런 말 한다고 기분 나쁠 일이 아니었다.
단지, 이 둘이 자신보다 2배나 더 받는 유진을 질투하는 대신 그보다 더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할 정도로 유진의 능력이 압도적이었고, 고영은도 거기에 많이 놀라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유진 씨랑 따로 이야기해 둘게요. 아마 큰일 없으면 최소한 6개월은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 이게 우덜이 하기에는 많이 주제넘은 말이라는 것은 아는데, 저런 재주 좋고 능력 있는 총각에게 사소한 걸로 서운하게 하면 오히려 나중에 손해나오. 그러니까 우덜하고 비교하지 말고 팍팍 쓰시는 것이 좋갔소.”
“네, 네. 그럴게요.”
고영은은 대답하며 웃었다.
그녀는 유진에게 보수도 높게 주고, 여러 가지 특별 대우해줄 수밖에 없는 것이 많아서 아주머니들이 그거 가지고 질투하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오히려 아주머니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더 잘해주라고 하는 판이니 참 기분도 좋고, 안심되었다.
애초에 유진을 쓰기로 하고 높은 보수를 약속한 것은 단순히 노동의 대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이유도 있는 건데, 유진이 단지 일하는 것만으로도 돈값 이상을 하고 있으니 그녀도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졌다.
“유진 총각. 1시까지 근무라며.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 남은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영업이 완전히 끝나고, 다 같이 둘러앉아서 남겨둔 반찬들로 함께 식사한 아주머니들은 유진의 엄청난 식사량에 놀라면서 더욱더 유진을 맘에 들어 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난 후에 유진이 집에 가지 않고 같이 설거지 같은 마무리까지 하려고 하자 저 말을 하면서 보내려 했다.
“첫날이잖아요. 저도 처음 하는 일에 즐거워서 하는 거니까 너무 걱정 안 해 주셔도 돼요.”
“그래도 그러는 게 아니여. 총각 혼자 계속 그러고 있으면 우리가 놀고먹는 사람이 되잖어. 우리 일 너무 많이 뺏지 말고 어여 들어가봐. 반찬 챙긴 것도 상하기 전에 냉장고에 넣고 정리도 해야 할 거 아니여. 그러니 어여 들어가.”
유진이 계속 일하려 하자 오히려 더 강하게 강권해서 결국 유진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두 사람이 천사 같이 착한 사람이라서 자신들의 일 덜어주는 유진을 돌려보낸 것이 아니었다.
농사 일 하면서 사람 여럿 부려본 그녀들은, 오히려 유진처럼 의욕이 넘치는 초짜일수록 잘 다독여서 한계를 정해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의욕 넘치는 착한 사람이라고 함부로 부려 먹으면 나중에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기에 십상이고, 결국 오히려 손해 보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것이었다.
어중간한 나이의 그녀들이 마을의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인, 그래서 고영은도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유진을 보낸 세 사람은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평소라면 영업 끝나면, 늦은 점심 먹은 다음에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남은 반찬 정리하고 잔반 처리까지 하면 맥이 다 빠져서 내일 메뉴 정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오늘은 그 모든 일 다 하고도 여유 있게 2층의 카페로 올라갈 여유가 있었다.
평상시라면 여기까지 올라와서 청소하고 쓰는 것이 귀찮아서 1층에서 대충 헤어졌을 텐데 말이다.
2층 카페는 아직 본격적인 상시 영업을 하는 곳은 아니지만, 외부에서 집 보려는 손님이 오거나, 행사나 모임 같은 것이 있을 때 운용하는 곳으로, 집기는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단지 운영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 일종의 자율 카페로 단지 내 사람들이 잘 이용하고 있었다.
지금도 한쪽에는 단지 내 주민 몇몇이 집에서 가져오거나,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수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고영은은 살짝 그쪽 주민들과 눈인사만 한 다음에 멀찍이 떨어진 곳에 아주머니들과 자리를 잡았다.
아주머니들이 달달한 캔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아우, 앞으로도 오늘만 같으면 세상 부러운 것이 없겠네.”
“우리는 그렇다 치고 사장님은 좀 어때요?”
“저요? 저도 만족스럽죠. 저도 신경 쓸 일 줄고 몸도 덜 움직였잖아요.”
“그려. 그랬지. 어때요? 유진 총각은 앞으로 계속 오늘 같을 것 같아요?”
“앞으로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유진씨 오늘 보여준 것만으로도 매우 놀라웠지만, 그래도 처음이라 서툴거나 좀 헤매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내일부터는 그런 것도 더 줄겠죠.”
“허어. 말만 들어도 행복하네. 그려.”
“아 그래도 주말에는 도움받기 어려울 거예요. 개인생활도 있고, 학원도 나가야 하거든요. 특히 학원은 국내 체류 조건이기도 하고, 우리 식당에서 일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주말에는 손님도 일거리도 평일 반도 안 되는데 그 정도야 우리가 감당해야지. 그 정도 못 할 거면 돈 받고 일하며 안되지.”
이 식당은 어쨌든 현재의 본질은 함바집이기 때문에 정해진 휴일 없이 365일 영업한다.
주말이나 휴일에도 공사가 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업해야 한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오히려 밥 사서 먹을 곳이 더 마땅치 않기 때문에 더 필수다.
대신 비가 오거나 날씨가 안 좋거나 하는 이유로 공사가 쉴 때는 영업하지 않는다. 손님의 7할이 공사장 관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랬다.
비가 와도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비하고 상관없이 일하는 공장 사람들은 조금 불평했지만, 애초에 이 가게가 돈 벌자고 하는 가게가 아니라서 그런 불만은 안 통했다.
오히려 장사하는 고영은은 책임감이 있어서 하고 싶어 했는데, 고영은 남편 성지호가 결사반대했다. 애초부터 아내가 힘든 식당 일하는 것 자체에 불만이 있던 그는 아내가 365일 쉬지도 못하고 식당에 매달리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물주 겸 오너가 그러니 영업 방침이 그렇게 결정되었고, 최고 중요 고객들인 성지호의 부하 직원들과 인부들은 사장님이 자신들 생각해서 돈도 안 되는 함바집 열어 준 것을 아는 처지에 감히 불평불만 하는 경우가 없었다.
어쨌든 세 사람은 그렇게 망중한을 즐기며 여유 있게 내일 메뉴를 고민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고영은과 두 아주머니가 놀랄 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집에 갔던 유진이 다시 돌아와 조금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저, 은영씨. 미안한데 혹시 식당이나 여기 카페 좀 잠시 빌릴 수 있을까요? 식당 주방도 좀 쓸게요.”
“?”
아침의 영업준비 1차전.
점심의 영업 지원 2차전에 이은 3차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