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62화 (62/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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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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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미궁과 그림자, 그리고 심연 – 1

“엄마, 오늘도 늦어?”

“미안. 소진아.”

“괜찮아. 엄마. 지니 오빠랑 잘 놀고 있을게.”

“응. 고마워. 하지만 간식은 금지야.”

“엄마?”

“진. 오늘은 절대로 단 거 종류로 뭐 만들어 주면 안 돼!”

“오늘 저녁은 잡곡밥에 미역국, 생선, 그리고 나물무침이야.”

“그거 좋네.”

“소진이는 싫어! 오빠앙!”

“쉿, 이따가 엄마 몰래 아이스크림 파르페 만들어 줄게.”

“오빠, 최고.”

“두 사람 지금 무슨 이야기하고 있는 거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차민영은 동거남과 딸의 수상한 모습에 눈을 가늘게 뜨고 둘을 노려보았지만, 둘 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연기하고 있었다.

그래봐야 빤히 속이 들여다보였지만, 차민영은 모르는 척했다.

뭔가 그녀 몰래 그녀가 허락해 주지 않을 뭔가를 먹으려는 속셈이 너무 분명하긴 하지만, 일단 저녁은 몸에 좋은 가정식으로 먹을 것이 분명하니 간식 정도는 봐줄 생각이었다.

소진이가 그런 엄마 속도 모르고 간식을 숨기기 위해 말을 돌렸다.

“근데, 엄마 너무 많이 늦는 거 아니야?”

“미안. 엄마도 이럴 줄은 몰랐는데, 어쩌다가 보니까 이러네.”

투정을 부린 것은 딸이었지만, 차민영은 유진의 눈치를 봤다.

차민영은 최근 서울 출퇴근을 하면서 계속 너무 일찍 출근하고 너무 늦게 퇴근하고 있었다. 주말조차 오후에 한 번씩 서울에 나가봐야 했다.

원래는 재택근무 형식으로 원격으로 업무를 처리할 계획이었는데, 유진에게 소진이 맡기고 한 번 두 번 서울로 출근하다 보니,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의 효율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출퇴근이 기본이 되었다.

유진에게 소진이 육아를 떠맡기게 된 부분은 유진도 소진이도 다 서로 좋아하니까 약간 미안한 정도였는데, 대신 여러모로 시간이 없는 탓에 최근 유진과의 섹스가 꽤 소홀해진 부분에서 아주 많이 눈치가 보였다.

같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 보니 타이밍을 잡기도 어려웠고, 타이밍을 잡아도 소진이가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 오럴섹스만 몇 번 했을 뿐, 정식 섹스는 벌써 보름을 넘은 상황이었다.

차민영 본인은 오럴 섹스만으로도 충분하다 못해서 넘칠 정도로 즐거워서 괜찮았지만, 유진이 불만이 없을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오빠랑 소진이 먹을 밥값 벌어오느라고 힘들게 일하는 거잖아. 우리가 이해해야 하지 않겠니?”

“그런가?”

유진이 소진이를 안아 들며 달랬다.

소진이에게 눈을 찡긋 거리는 것이 말 잘 돌렸다고 칭찬해 주는 것이 분명했지만, 차민영은 다시 모른 척했다.

일단 연인이나 아내의 섹스리스나 엄마의 불성실이 문제가 불거지는 것보다는 먹는 것으로라도 불만을 삭이면 그녀로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그리고 둘의 마중을 받고 나와, 서둘러 자동차의 시동을 걸면서 생각했다.

‘세상에. 지금 기껏 한다는 걱정이 식단이나 섹스리스, 소진이와 놀이 시간 같은 거라니 이래도 되는 걸까?’

고주희와 만난 그날, 밤늦게 들어온 차민영은 유진에게 솔직하게 모두 말했다.

소진이 출생의 비밀, 대한민국 최고 재벌 그룹 중의 하나인 성화그룹에 마크 되는 자기 처지, 그리고 그들이 유진에 대해서 보이게 된 관심까지.

쉽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신이 남편도 아닌 하룻밤의 섹스 상대, 그것도 말이 좋아서 원나잇이지 접대부로나 다름없는 꼴을 당해서 소진이를 임신했다고 밝히는 것은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하지만 아예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 과연 이해해 줄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너무도 다행스럽게 유진은 소진이의 출생의 비밀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소진이의 친부가 누구이던, 차민영의 과거가 어쨌든 지금 자신들이 가족인데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유진의 말은 오랫동안 그녀의 가슴속에서 쌓여 오던 불안과 공포를 희석해 줄 정도였다.

성화그룹 이야기도 그랬다.

성화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유진의 반응이 조금 특이하기는 했다. 하지만 유진은 전혀 한국을 좌지우지 하는 거대 기업의 이름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비웃음 섞인 것 같은 차가운 미소를 띤 유진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지 우리가 아니라고 말해줬을 때는, 마치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요즘 차민영은 5년 만에 진정으로 더 이상 과거를 두려워하지도 고민하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오늘도 길 많이 막히려나? 좀 더 일찍 나와야 하나? 아니면 아예 한 시간쯤 늦출까?’

오히려 지금 그녀는 그 일보다 출근길이 더 고민될 정도였다.

차민영의 생각과 달리 유진도 아무 고민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소진이나 차민영의 과거 따위는 고민이 될 수 없었다. 그녀가 과거에 성노예였던지, 창녀였던지, 소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따위는 유진에게 고민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애초에 유진 본인부터 과거를 따져보면 사생아로 태어나, 인신매매로 팔렸고, 인체 실험체 겸 남창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성화 그룹은 좀 많이 아주 많이 달랐다.

유진은 차민영이 성화의 이름을 꺼냈을 때 솔직히 많이 놀랐다. 소진이가 그 핏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혐오와 두려움을 느꼈을 정도였다. 소진이나 차민영이 혐오스럽다거나 두려운 것은 아니고, 자신과 차민영의 만남 그리고 이어진 소진이와의 만남에서 초자연적이며 초월적인 무엇인가의 개입을 느꼈기 때문에 느낀 감정이었다.

차민영의 첫 만남에서부터 쭉 이어진 계속된 위화감과 소진이에게 지나칠 정도로 쉽게 정과 사랑을 느낀 그 이상함이 모두 성화라는 이름으로 초월적인 인과와 인지 범위 밖의 설득력을 제공한다.

성화는 유진에게도 그런 의미였다.

물론 그런 것들은 깊고 긴 시간이 필요한 이야기들이었고, 지금 당장 유진에게 가장 우선적인 고민은 식사 메뉴였다.

본인 먹고 싶은 것 해 먹자는 생각에 신나게 고기와 밀가루 그리고 단 거 위주로 먹었는데, 슬슬 차민영의 눈치가 보였다. 소진이 몸이 통통해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것도 문제였다.

유진은 소진이가 좀 더 살이 쪄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뼈저리게 아는 처지에서 너무 살이 찌면 나중에 소진이가 원망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많이 먹은 소진이 잘못 아니냐고? 초등학생도 아니고 유치원 다니는 다섯 살 아이의 문제는 무조건 부모의 문제지 아이 책임이 아니다.

그렇다고 인제 와서 너무 까다롭게 굴면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 소진이가 난리 칠 것이 분명했다.

아예 주지 않았다면 모를까, 줬다 뺏는 것은 범죄다.

결국 절묘한 메뉴 조절과 추가적인 건강 관리 방법의 강구가 필요했다.

두 번째는 안전 문제였다.

소진이의 출생의 비밀과 그에 얽힌 성화그룹 문제에 대해서, 유진은 본인의 안전에 관해서는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억눌렸던 육체의 능력과 초능력이 완전히 복구되었다.

애초부터 봉인 중에도 전혀 위축된 적이 없었던 초재생능력은 물론이고 근력, 순발력, 오감 등의 육체적인 능력은 나이를 먹고 성장한 덕인지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강화되었다. 염동력 등의 다양한 초능력은 육체에 비해 큰 변화는 없었지만 그래도 예전 수준으로는 복구되었다.

무엇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영화와 인터넷 특히 너튜브를 통해서 다양한 격투와 무술, 총화기 사용법과 전투에 필요한 전략과 전술 등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인터넷으로 그런 것들을 본다고 해봐야 지식으로만 아는 정보에 불과하겠지만, 유진의 가장 근본적인 초능력은 정보를 흡수해 육체로 자연스럽게 체화하는 것이었다.

면 요리 장인이 수타면 뽑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본 것만으로 짜장면용 수타면 정도가 아니라 최고 수준의 용수면도 뽑아낼 수 있는 유진에게, 영상과 실전으로 자세한 설명이 첨부되는 그런 지식은 몸으로 받는 군사 훈련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문제는 차민영과 소진이의 안전이었다.

유진의 초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서울에 출퇴근하는 차민영은 고사하고, 근처 신도시 유치원에 있는 소진이도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처음 차민영과 함께하기로 했을 때, 유진은 만약 누군가 소진이나 차민영을 이용해서 자신을 협박한다면 두 사람을 포기하고 대신 처절하게 보복하겠다고 결정했었다.

이 방침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예전과 달리 지금은 그런 상황 자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쁘고 가슴이 아팠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당연히 천배 만배로 복수하겠지만, 그전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능력 내에서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지원팀이나 협조자는 어려워도 최소한 기동력과 기본적인 감시 장비는 갖추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나 루트가 없어서 고민 중이었다.

그리고 섹스 문제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단지 유진이 생각하는 섹스 문제는 차민영이 고민하는 섹스리스의 문제와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유진에게 섹스에 관한 관심은 차민영이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이지 않았다.

차민영은 당연히 스무 살 남자, 그것도 정력이 넘쳐흘러서 자신 같은 나름 노련한 경험자를 밤새도록 죽을 정도로 몰아붙이고도 아침에 여유가 넘치는 유진 같은 남자는 당연히 섹스에 대한 욕망이 넘쳐흐르리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보통의 스무 살 남자가 넘쳐흐르는 욕망을 해결할 만한 기회가 부족하여 욕망이 쌓이는 것과 달리, 유진의 경우 2차 성징이 시작될 무렵부터 여성들에게 착취적으로 섹스를 강요당하는 삶을 살아온 탓에 섹스에 대한 욕망이 낮은 편이었다.

유진에게 섹스란 잠이나 식사와 같이 주기적으로 필요해서 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물론 기왕에 먹는 것 맛있는 것 먹으려는 식사와 같이 섹스도 기왕에 하는 것 즐겁게 하고 싶어 했지만, 섹스에 눈이 벌게 여자만 보면 눈이 돌아가거나 욕망을 풀기 위해 여자가 없으면 자위라도 해야 하는 그런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에 유진에게 성욕은 자연스러운 생물의 욕망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의 방식으로 발전했다. 지금처럼 맛있는 것 먹고, 즐거운 일 경험하는 스트레스 적은 상황에서는 성욕이 상당히 감소하는 편이었다.

그런 면에서 차민영과의 섹스는 그녀의 소극성과 집안에서 소진이 눈치를 봐야 하는 점 등의 문제로 유진에게 그렇게 간절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진은 차민영이 섹스 문제로 자신과 소진이의 눈치를 보는 부분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래도 워낙 습관적으로 자주 하다 보니 습관적인 욕구는 좀 있었다. 성욕이라기보다 배설 욕구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 부분에서 유진은 필요할 때 편하게 쓸 수 있는 상대가 필요하다는 고민은 하고 있었다.

차민영과의 애정이나 감정적 교류 등이 포함된 섹스와 달리, 그냥 배설을 위한 상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로 생각했던 차수연은 생각보다 연락이 뜸했다.

스튜어디스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일정이 불규칙하고 빡빡한 업무 주기를 가진 직업이었다. 스튜어디스로의 업무 외에 개인적인 재산 관리와 집안일까지 있는 차수연은 유진을 만나러 시간을 내는 일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실제로 시간이 안 나는지 유진과의 만남에 새삼 거리낌이 있는 것인지는 애매했지만, 본인 주장은 일단 그랬다.

거기에 그녀는 이제 어쩐지 자위기구 정도로 취급하기에는 좀 그런 상대였다.

두 번째로 차민영이 은근히 이야기했던 상대인 고영은의 경우는 관계가 너무 담백했다.

그녀의 유진에 관한 관심은 유진의 뛰어난 요리 실력과 언어 능력, 그리고 진상 대응을 위한 존재감 등이었다.

화려했던 과거와 별개로 그녀는 현재의 남편에게 충실했고, 새로 파트너 같은 것을 만들려는 생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차민영이 개인적인 자리에서 은근하게 떠봤을 때 관심을 보이던 것과 달리 실제 행동에서는 차민영 보다 오히려 더 누나 같은 포지션으로 유진을 대하고 있었다.

유진은 고영은에게 꽤 여성으로서 매력을 느끼는 편이었지만, 섹스 상대로 보다는 지금의 관계가 더 마음에 들었다.

함부로 하기에 꽤 어렵게 느껴지는 상대라는 점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유진의 최근 섹스 상대로의 관심은 새로운 인물에게로 옮겨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소진이 오빠. 안녕 소진아. 오늘도 오빠랑이네?”

“안녕하세요, 어머님.”

“안녕하세요.”

“안녕 소진아. 안녕하세요, 형.”

강준이 엄마와 강준이, 그리고 유진과 소진이가 유치원 버스 대기 장소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요 며칠 늘 그렇듯이 이른 시간 대기 장소에는 그들만이 전부였다.

다른 어머니들과 아이들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나오길 시작할 터였다.

그리고 초기 만남 때와는 달리 유진의 첫 아르바이트 날 파티 이래로 강준이 엄마의 태도는 무척 친절하고 사교적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 소진이 어제도 맛있는 것 먹었어?”

“네! 오빠가 어제는 오므라이스랑 돈까스 해줬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어머? 좋았겠다.”

“엄마. 나도 먹고 싶어.”

“그래, 오늘은 강준이도 엄마가 오므라이스 해줄게.”

강준이 엄마는 소진이와 강준이를 데리고 자상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유진에게는 따로 더 말을 걸지 않았지만, 유진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약간 얼굴을 붉히며 웃는 얼굴로 대했다.

더 이상 비꼬거나 틱틱 거리지 않는 그녀는 정말 자상한 어머니이자 친절한 친구 어머니 그 자체였다.

하지만 유진은 그 모습을 그냥 웃으면서 만 바라볼 수는 없었다.

약간의 투시력을 쓴 그의 눈에 역시 예상했던 것이 보였다.

최근 며칠 계속해서 보게 된 그 물건들이었다.

살짝 주먹을 쥔 그녀의 손에 작은 핑크색의 리모컨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치마 속, 생리 중도 아닌데 생리대를 붙인 속옷 안쪽에서 무선 바이브레이터가 맹렬하게 진동하며 맑은 액체를 뿜어내고 있었다.

가끔 유진과 눈을 마주치는 강준이 엄마의 눈동자가 살짝 충혈되어 있었고 볼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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