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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66화 (66/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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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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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미궁과 그림자, 그리고 심연 – 5

성무연은 아직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해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엄마를 끌어안고, 수상한 침입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금속 마스크로 가린 수상한 침입자–유진이 정동후의 부하 중 하나를 의자에 묶고 있었다. 의자는 사지와 몸통은 물론 목까지 결박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유럽식 고문 의자라는 가구였다. 원래는 이용자가 다치지 않도록 부드러운 쿠션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유진은 쿠션은 다 떼어내고 금속 뼈대만 남긴 채로 남자를 그곳에 묶고 있었다.

정동후를 포함한 그 외의 다른 인물들은 팔다리가 뒤로 모아서 묶인 상태로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마치 냉동고에 걸려 있는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저렇게 묶으면 위험하지 않나?’

성무연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밧줄로 사람 몸을 결박해서 매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기술이었다. 정동후 부하들에게 어설프게 묶여서 매달렸다가 병원에서 치료까지 받아야 했던 성무연은 그 점이 걱정되었다.

물론 다치거나 아플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너무 일찍 죽기라도 하면 어쩔까 하는 걱정이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은, 그녀들의 집 지하층의 멀티룸이었다. 모녀는 지하 주차장이랑 연결된 이 커다란 방을 원래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다. 지상층의 방만으로도 충분히 여유로워서 지하까지 쓸 필요가 없었던 때문이었다.

그걸 정동후가 모녀를 지배하게 된 이후에, SM 플레이용 고문실로 꾸며 놓았다. 피나 오물이 흘러도 청소하기 쉽도록 사방의 벽과 바닥에는 도자기 타일을 시공했고, 고문이나 감금, 구속 등에 사용하는 각종 SM 스타일의 가구와 도구들도 잔뜩 설치되어 있었다.

정동후나 그 부하들이 매달려 있는 곳은 사람을 매달기 좋게 만들어진 인체용 행거 프레임이었고, 지금 유진이 작업하고 있는 고문 의자도 그 일환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모든 물건은 원래 성무연과 그녀의 어머니인 장화진 그리고 아주 가끔 정동후와 다른 남자들이 데려오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여자들에게 사용되던 물건들이었다.

성무연 본인이 저 고문 의자에 묶인 채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각종 딜도나 전기 충격기 등으로 고문당하고, 장화진은 행거 프레임에 매달린 채로 고문당하는 딸의 모습에 울부짖으며 보지와 항문을 동시에 윤간당했던 것이 멀지도 않은 바로 일주일 전이었다.

그리고 지금 거기에 정동후와 그 일당이 그들이 묶이고 매달리던 여자들 대신 묶이고 매달리고 있었다.

성무연이 꿈꾸던 대로.

그녀의 시선이 유진에게로 향했다.

‘뭐 하는 사람일까?’

성무연은 유진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녀는 이제 유진이 킬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문가라고 보기에는 뭔가 어설픈 모습들이 많았다. 타겟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도 안 되어 있었고, 일을 어떻게 진행하고,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딱히 없어 보였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건 프로와는 너무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능력 없는 어설픈 싸구려 청부업자도 아니었다. 차갑고 냉정한 태도, 압도적인 힘과 분위기. 그냥 보고만 있어도 이 남자가 굉장히 위험하고 무서우며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져 왔다.

원한에 찬 복수자도 아니었다. 이 남자가 정동후와 그 일당을 대하는 너무도 무미건조하고, 기계적이었다. 정동후에 대해서는 조금 반응이 다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정동후에게 원한이 있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성화 그룹에 뭔가 원한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정동후를 노린 것이 그 이유는 확실히 아니었다. 정동후가 성화 그룹 직계라는 것을 모르고 있던 것이 분명하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질문이 있었다.

- 넌 무엇을 원하느냐, 어린 여자야. -

차갑지만 끈적거리던 너무도 이상한 그 목소리와 말투의 질문을 듣는 순간, 성무연은 자기도 모르게 간절하게 외쳤다.

- 복수를! 복수를 원해요! 죽어서 도망가지 못하게! 살아서 지옥을 경험하는 그런 복수를! -

원래 그렇게 대답할 생각이 아니었다.

원래 성무연은 이대로 떠나라고 설득할 생각이었다. 성화 그룹 건드려서 패가망신 당하지 말고, 정동후도 자신들도 다 그냥 두고 떠나라고.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서 자기 모녀와 이들 전부가 시체로 발견되면 그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가 무섭기 때문이었다.

성무연은 정동후와 그 일당에 대한 증오가 가득한 만큼 그들을 죽이려는 계획도 많이 세웠다. 그중에 일부는 정말 실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실행은 못 했다. 자살조차 할 수 없었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정동후가 죽은 다음에 성화 그룹이 남은 자기 가족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가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했다. 여동생들은 이제 고작 중학생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엄마나 자신과 같은 꼴이 되거나 그보다 더 심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그녀에게 죽음보다 더한 공포였다.

그녀가 알게 된 정동후의 가족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악마들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이성적인 생각 따위는 모두 머리에서 사라지고 성무연은 마음속 싶은 곳에 숨겨진 가장 간절히 원하는 소원을 외치고 말았다. 길고 자세하게,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속 싶은 곳의 숨겨진 욕망과 소원을 남김없이 토해냈다. 말을 하는 스스로에 놀라면서, 속으로는 안 된다고 외치면서도 입은 꿈 꾸던 계획들을 세세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꽤 길게 이어진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대답도 스산했다.

- 소원대로 이루어지고, 대가는 그에 따르리라. -

성무연은 질문을 듣고 자기가 말하던 순간에도 그랬지만, 대답을 듣던 순간은 더욱 소름 끼쳤다. 지금 다시 생각한 것만으로도 다시 소름이 돋고, 헛구역질이 나오며, 몸의 피가 차갑게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그런 탓일까?

성무연은 자기 소원에 따라 일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도 그렇게 크게 기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손끝이 흥분을 참지 못해 떨리는 중인데도.

성무연의 생각이 맞는 부분이 있었다.

사실 유진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고문으로 정보를 뽑아내고, 그 와중에 고문법이나 인체 해부 실습의 경험 등을 쌓겠다는 정도의 생각밖에 없었다.

그다음 그렇게 나온 시체를 어떻게 할 건지, 목격자이자 간접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이 모녀는 또 어떻게 할 건지, 이후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어떻게 대응할지 같은 것은 전혀 생각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성무연의 이야기는 유진에게 전반적으로 꽤 재미있었고, 특히나 흥미로운 부분도 있었다.

“우리 같이 돈도 권력도 부족한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고 처벌받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요? 시체가 없으면 살인도 없어요. 시체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으면 살인도 완벽하게 은폐할 수 있는 거예요!”

시체가 없으면 살인도 없다는 성무연의 아이디어는 유진이 생각하기에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녀가 그걸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들은 대부분 비현실적이고, 실용성이 없으며, 잘못된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쓸만했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쓸만한 이상 방법은 유진 자신이 찾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일단 성무연의 아이디어를 따를 생각이었다.

마지막 놈까지 매다는 것으로, 드디어 준비를 끝낸 유진은 성무연을 확인했다.

그녀는 이제 좀 진정된 것 같지만,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기 엄마를 품에 끌어안고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은 여전히 죽어 있어 보였지만, 유진은 그 안쪽 깊은 곳에서 검붉게 타오르고 있는 불길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본인보다 덩치도 작은 딸에게 안겨 있는 모친 쪽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 딸과 비교하면 그녀는 확실히 상태가 훨씬 나빴다.

성무연은 원래 엄마를 따로 떨어져 방으로 보내고 싶어 했다. 엄마가 이 지하실을 너무 무서워한다면서 유진에게 부탁했었다. 유진은 그 부탁을 거절했다.

그녀들이 당한 참혹한 상황과 그녀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는 별개였다. 성무연도 원래 정동후를 살리려고 유진을 설득하려고 시도했었다. 장화진의 속내는 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나이 먹은 여자가 자기보다 작은딸을 끌어안고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떠는 모습은 약간의 동정심을 일으켰다.

유진은 그녀들에게 약간의 호의를 베풀었다.

“내보내 줄 수는 없지만, 원한다면 네 모친을 잠재워주겠다. 고통 없이, 후유증 없이 잠재우는 거다. 지금부터 펼쳐질 광경을 생각하면 나쁜 일은 아닐 거다.”

놀랍게도 성무연이 아니라 겁먹고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던 장화진이 거부했다.

“싫어요, 무연이 혼자 두지 않을 거예요.”

“엄마. 괜찮아.”

“엄마는 안 괜찮아. 절대로 널 혼자 두지 않을거야. 절대로. 절대로.”

장화진은 여전히 겁을 잔뜩 먹은 모습으로 유진은 물론이고 정동후나 그 부하들을 향해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지만, 딸을 끌어안은 팔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건 꼭 공포와 두려움으로 딸을 의지하고자 하는 몸짓만은 아니었다.

유진은 두 번 묻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그러나 이제 물러서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겁먹은 장화진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던 성무연도 유진의 단호함에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둘 다 유진의 말에 침묵으로 동의했다.

유진은 방 한쪽에서 미리 준비해둔 물이 든 양동이들을 들어서 차례로 기절해 있는 남자들에게 물을 끼얹었다.

“으브브브브!”

기절해 있던 그들은 하나씩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입에 입마개가 채워져 있어서 제대로 뭔가 말을 하지는 못했다.

유진이 허공이 아니라 고문 의자에 묶은 마지막 한 명을 제외하고.

“어푸푸! 어, 씨발! 이게 뭐야! 너 누구야!”

정신을 차린 남자가 눈앞의 유진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사지가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발버둥도 쳤다.

유진은 고문 의자가 넘어지지 않게 발로 밟아 고정하고 발버둥 치는 첫 번째 대상을 향해 손에 들고 있던 도구를 내밀었다. 그 손에 들린 것은 유진의 취향은 아니지만, 성무연이 요청한 도구였다.

지지직.

전기충격기가 스파크를 내며 사내의 사타구니에 닿았다.

“!!!!!!!!”

자지와 불알에 전기충격을 당한 사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발광을 시작했고, 허공에 매달려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도 끔찍한 표정으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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