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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69화 (69/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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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미궁과 그림자, 그리고 심연 – 8

강만수의 죽음은 성무연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성무연은 혐오와 두려움 그리고 그 외 표현하고 형용하기 어려운 갖가지 감정들의 쓰나미에 쓸려버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강만수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 것은 물론 아니었다.

성무연은 오랫동안 정동후와 강만수 등의 죽음을 꿈꿔왔다. 결국 실현할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살인 계획도 정말 여러 가지로 많이 짜보기도 했다. 강만수의 죽음은 기뻐하면 기뻐할 일이지 죄책감을 느낄 일은 전혀 아니었다.

성무연이 혼란에 빠진 것은, 살인이라는 그 행위 차체가 가져온 정신적 충격 때문이었다. 대상에 상관없이 그저 자신이 누군가 인간을 죽였다는 자체가 그녀에게 극심한 충격과 혐오를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충분히 성숙된 사회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되는 현대인은 인격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생명의 존귀함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세뇌 수준의 교육을 받게 된다. 자신을 구성하는 인격이라는 존재 내에, 생명을 해치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커다란 영역을 차지하며 형성되는 것이다.

그건 그냥 절대적이고 본능적인 영역의 것이었다. 그런 탓에 상대가 설혹 죽어 마땅한, 그리고 꿈에서라도 죽이고 싶었던 원수일지라도 직접 살인 이라는 행위를 저지르고 나면, 죽은 사람 말고 죽인 사람도 그에 대한 정신적 타격을 받게 된다.

그게 정상적인 현대 사회의 인간이었다.

정동후같이 인간을 구별해서 존엄을 가진 인간과 인간의 형상을 한 하찮은 무엇인가로 구별하거나, 아니면 강만수 등과 같이 생각 없는 병신 머저리라서 자신들이 저지르는 범죄에 대해 구별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특이한 것이지, 원래 성무연 같이 반응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그런 성무연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진처럼 엄마 뱃속에서 벗어나자마자 인간의 존엄성이나 생명의 귀함 따위 전혀 느낄 수 없는 환경에 노출되어 평생 살아왔고, 죽음은 어떤 면에서 삶보다 더 가깝고도 친밀한 것이었다.

유진은 전기 충격기를 떨어뜨린 다음 충격으로 벌벌 떨고 있는 성무연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놀랐나? 하지만 애초부터 죽이려고 하지 않았나? 죽었다고 왜 새삼 놀라고 있지? 어차피 죽어야 할 죽어 마땅한 놈이 죽은 것뿐인데.”

유진의 이야기는 공감 능력이 제거된 반사회적이고 비인도적인 내용이었지만, 너무도 담담한 그 목소리는 혼란스러워하던 성무연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요. 죽어 마땅한 놈이었죠. 죽어야 할 놈이 죽은 거예요. 그러니 내 잘못 아니에요.”

성무연이 하는 말은 유진에게 한다기보다 자기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듣고 있던 유진으로서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는 말이기도 했다.

“잘못? 무슨 잘못?”

“그렇죠? 내가 잘못한 거 없는 거죠?”

“너무 쉽게 죽인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너 같은 초보자에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굳이 잘못이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다.”

약간 핀트가 안 맞는 대화이기는 했지만, 성무연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유진이 괜찮다고 말했으니, 자신의 살인은 괜찮은 거라고 자신을 설득할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책임과 충격을 유진에게 전가 시켜 버리는 것으로, 본능적인 죄책감과 충격을 외면해 버렸다.

그걸로 성무연은 미리 마음의 대비도 없이 갑작스러운 살인으로 인해 받은 충격을 추스르고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유진도 다섯 중 하나가 시체가 되었으니,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원래는 산채로 할 생각이었지만, 아직 살아 있는 놈이 넷이나 더 있으니 하나는 죽은 상태로 실험해보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닐 것 같았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지. 이것만 처리하고 같이 올라가자.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에는 너도 동의 하겠지?”

유진의 이야기에 성무연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이곳에 내려오기 전까지 유진과 그녀가 나눈 대화는 이놈들을 어떻게 고문하고, 어떻게 죽이고, 시체는 어떻게 처리할까에 대한 계획뿐이었다. 대부분 성무연의 머릿속에서 상상으로만 계획되던 것들로,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 결과를 내기에 부족한 것들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그 이상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은 것은 둘에게 그 이상의 이야기를 나눌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무연은 유진이 증인이 될 자신과 어머니도 죽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죽이기 전에 정동후와 강만수 일당부터 자기 손으로 죽이게 해달라고 애원했던 것이었다. 시간을 미뤘더라도 결국 유진의 손에 죽게 될 상황에서 유진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더 이상 없었다.

유진의 경우는 성무연도 장화진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그녀들이 뭔가 끔찍한 꼴을 당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녀들이 남자들의 적이라는 뜻은 될 수 없었다.

유진도 상식은 좀 있었다. 세상에는 고문당하고 학대당하면서 거기서 쾌락을 얻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차민영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납치 강간 폭행 등의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해자인 남자에게 종속되어, 그가 죽기 전까지 진심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되었던 여자들의 예도 들을 수 있었다.

유진은 장화진과 성무연이 정동후와 그 일당을 증오하는 것과 별개로 그들에게 복종하고, 그들을 위해 행동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실제로 성무연은 처음에 보여준 태도도 그랬기 때문에 더욱.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성무연은 자기 손으로 강만수를 고문했고, 또 죽였다. 이제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정동후가 아무리 그녀의 정신을 부숴서 자신에게 복속하게 만들어 두었다고 할지라도, 그 정신적 족쇄는 살인으로 완전히 부서져 버려 이제 의미가 없었다.

유진은 이제 장화진과 성무연이 조금쯤은 미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성무연의 경우는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유진의 분위기를 눈치챘다. 이 수상하고도 위험한 남자가 자신과 엄마를 죽일 생각이 별로 없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나중에라도 죽일 생각이었다면 둘의 결박을 풀어줄 이유가 없었다. 또 이 고문실에 남자들만 매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들도 결국 죽일 생각이라면 관리의 편함을 위해 두 사람도 남자들 옆에 매다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유진은 그녀들에게 호의적으로 대했고, 성무연이 강만수를 상대로 마음껏 화풀이를 할수 있도록 허락하고 도와주었으며, 이제 그녀가 저지른 살인으로 받은 충격을 달래주기까지 하고 있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사람의 감정 변화도 극단적인 법이었다. 성무연은 이제 유진을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함과 친근감을 느끼게 될 정도였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그럼 올라가기 전에 마지막 정리와 준비만 좀 하도록 하지.”

“정리? 준비?”

“이걸 깨끗하게 처리하려면 이대로 두면 곤란하지.”

유진은 죽은 강만수의 시체를 결박용 디바이스에서 풀렀다. 사후 경직이 오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에 강만수의 몸을 움직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성무연도 시체의 사후 경직 같은 것은 조금 알아서, 이대로 강만수 시체를 디바이스에 계속 묶어 둔 상대로 두면 나중에 많이 문제가 될거라는 것을 알아서 유진의 행동을 이해했다.

하지만 유진이 그 시체를 욕조로 가져가서 상체를 욕조 턱에 걸쳐두는 것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 뭐하려구요?”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미리 챙겨왔던 그리고 지하실 입구 쪽에 내려두었던 도끼를 찾아 들었다.

“어? 어? 어?”

뭐라고 말은 할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이상한 분위기에 성무연이 말을 더듬었다.

친구 혹은 시다바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놀라 두려움에 빠져 있던 정동후와 그 외의 시선들도 자연스럽게 유진과 유진의 도끼를 따라 이동했다.

아무도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강만수의 시체가 놓여 있는 자세와 작은 손도끼이기는 하지만 도끼를 들고 있는 유진의 모습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를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했다.

그리고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왼손으로 강만수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어 시체의 자세를 고정한 유진은, 오른손에 든 도끼를 사정없이 죽은 강만수의 목덜미를 향해 내리쳐 버렸다.

- 서걱.

작은 손도끼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강만수의 목이 잘려 나갔다.

“으으음.”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장화진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혼절했다.

“꺄아악! 꺄아아아악! 꺄아아악!”

놀란 성무연은 주저앉아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정동후와 기타 등등 들도 강만수의 죽음을 알았을 때보다 더 놀라서 마구 몸을 흔들며 발광했다.

“으으읍! 으으읍! 으으읍!”

막혀 있는 그들 입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진은 잘라버린 머리를 욕조 가장자리에 세워둔 다음에 강만수의 시체의 발목 부분을 붙잡아 욕조에 거꾸로 세웠다. 아직 굳지 않은 피가 잘린 목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음. 괜찮군.”

유진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피 빼기에 만족을 표현했다. 그리고 능숙하고 여유있게 강만수의 시체를 욕조 위에 거꾸로 매다는 작업을 진행했다.

욕조 위에는 정동후가 장화진이나 차민영을 거꾸로 매달아서 물고문하기 위한 용도로 설치한 결박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건 이제 죽은 강만수의 시체에서 피를 빼기 위해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지켜보는 모두는 거기에 매달리게 될 시체가 지금 매달린 강만수 하나만이 아닐 것임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유진은 넓은 여유 공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만수의 시체를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았다. 그건 틀림없이 다음에 뭔가를 추가로 매달기 위한 자리 배치였다.

이쯤 되었을 때 지켜보던 강만수 친구 셋 중 둘은 이미 기절해 버렸다. 남은 하나는 완전히 망가진 상태로 소변을 줄줄 흘리면서 울고 있었다.

그나마 정동후는 다른 셋보다는 조금 나았지만, 겁에 질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었다.

성무연도 공황 상태였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성무연은 혼잣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성무연의 마음속에서 작게나마 생겨나고 있던 유진을 향한 유대감과 친밀감 등은 흔적도 없이 부서지고 불타 없어졌다.

성무연은 확실하게 느꼈다.

자신이 늑대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호랑이를 그것도 아무래도 식인 호랑이를 집에 들였다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직접 들인 것이 아니라 호랑이가 쳐들어온 것이기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제 저 식인 호랑이로부터 엄마와 자신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주어졌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그게 가능할지 막막하다는 것이었다.

그녀들에게 유진에게 뭔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들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오직 한가지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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