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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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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미궁과 그림자, 그리고 심연 – 9
유진은 목이 잘린 강만수의 시체를 욕조 위에 매다는 작업을 마치고, 잠시 상태를 확인했다. 욕조의 배수구를 통해 피가 잘 빠져나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위장에 있을 소화가 덜 된 음식물 같은 것이 같이 쏟아지면 욕조 배수구를 막을 위험이 있었지만, 다행히 쏟아지는 것은 피뿐이었다.
욕조에 살짝 따뜻하게 물을 틀어 피가 더 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조처를 하는 것으로 관련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다음으로는 고문 의자에 묶여 있던 유정수를 고문 의자에서 풀어서 천장에 매달았다. 유정수는 기절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비교적 간단하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위층에서 들고 내려왔던 정동후와 일당의 핸드폰을 챙기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이제 올라가지.”
“괜찮나요? 우리 없는 사이에 저놈들이 탈출이라도 하면.”
성무연의 걱정에 유진이 피식 웃었다.
유진이 놈들을 묶은 결박은 인체공학을 고려해서 철저하게 계산된 고도의 정밀 기술이었다. 연구소에서 초인 실험체들을 제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라, 유진이 몸으로 당해가며 익힌 방법이기도 했다. 지금의 유진이라면 염동력이나 기타 초능력으로 밧줄 자체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풀 수 있지만, 보통 사람이 힘이나 기술로 푸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다.
“저건 저놈들이 특수 훈련을 받은 군인이나 스파이라고 해도 못 풀어. 칼을 손에 직접 쥐어져도 어림도 없지.”
그걸로 진짜 끝이었다.
유진은 기절한 장화진까지 들쳐 안고 방 밖으로 향했다.
성무연은 벌거벗은 엄마의 몸에 유진의 손이 닿는 것에 기겁했지만,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며 유진을 뒤따랐다. 워낙 지금 몸이 엉망인 상태라 자신이 들겠다고 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둘이 방을 떠나고, 원래는 SM플레이를 위해 만들었던 그리고 지금은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고, 시체를 처리하는 방이 되어 버린 곳에는 시체 하나, 의식 불명 3명 그리고 정동후만이 남게 되었다.
혼자가 된 정동후는 잠시 시간이 지나길 기다려 상대가 윗 층으로 충분히 올라갔을 시간이 되자 묶인 줄을 풀어보려고 했다.
유진이 절대 못 푼다고 한 이야기를 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발버둥 쳤다.
어떻게든 줄만 푼다면 탈출은 금방이기 때문에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 방을 나서면 바로 방문 앞에 지하 주차장이 있고, 그 주차장에는 정동후가 타고 온 차가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그 미친놈과 마주치지 않고 차까지만 갈 수 있으면 얼마든지 탈출할 수 있었다. 탈출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경호원들과 연락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도저히 몸을 묶은 밧줄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발버둥 치던 정동후는 결국 힘이 빠지고, 조여오는 밧줄의 통증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진짜로 후회하기 시작했다.
물론 자신이 저지른 지금까지의 과거나 장화진이나 성무연에게 저지른 무참한 악행에 대해서 후회한 것은 아니었다.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경호원들 떨구는 것이 아니었는데.’
사실 이 부분에는 유진의 실수가 있었다.
정동후쯤 되는 재벌집 자식에게는 사실 신변안전을 위한 경호 조치가 당연히 붙어야 하지만, 유진은 그 부분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정동후가 스스로 만든 문제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정동후의 위험을 파악한 경호원들이 정동후를 구하기 위해 이 집에 들이닥치고 있어야 했다.
납치 대상이 대기 쉽고, 주변에 원한 산 것도 많은 부자들의 경우 가족의 경호와 신변안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보통은 위급상황을 알릴 수 있는 장치나, 건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비, 위치 파악을 위한 정밀한 GPS 등이 이용된다. 최근에는 개인들도 이런 장치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상황이라서 크게 과한 일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재벌 그룹의 직계로, 그룹 후계 싸움에 연관될 정도의 급이 되면 전담 비서와 운전기사, 경호원 등이 붙어서 24시간 서포트 체계를 구축하고, 이 정도는 되어야 사실 거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정동후는 사실 본가에서도 외가에서도 거의 내놓은 자식이라서, 전담 인력이 붙을 정도의 거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동후에게는 반대의 이유로 상시 경호원들이 붙어 있었다. 워낙 사고를 많이 쳐서 감시를 위한 인력이 붙어 있는 것이었다.
유진에게 운이 좋았던 부분은, 정동후가 이번에 장화진과 성무연 모녀를 학대하기 위해 방문한 경호원들을 다 따돌리고, 추적 및 감시 장비도 다 다른 곳에 둔 채로 이곳을 방문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장화진과 성무연 모녀는 차민영을 노린 미끼였다. 차민영은 그룹 본사에서 관리하는 인물이었고, 이미 정동후는 차민영에 관련하여 경고를 한번 받은 상태였다. 그러니 경호원들이 알게 이 일을 알게 할 수가 없어서 자신을 추적할 모든 방법을 자기 스스로 차단하고 이곳을 방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태어나서 거의 처음으로 진짜로 위급 대응과 경호원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는데, 그에게는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없었다.
‘씨발! 씨발! 씨발!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저런 미친놈은 도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정동후는 진짜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차별 없이 천장에 매달고 전기 충격기까지 당했으면, 눈앞에서 강만수의 죽는 꼴을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정동후는 의심 없이 믿고 있었다. 감히 이 연놈들이 자기까지 해치지는 못할 거라고.
비록 본가와 외가 양쪽 집안에서 거의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은 대통령도 좌지우지한다는 거물 정치인의 손자이자,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재벌 회장의 외손자였다.
거기에 친가나 외가의 분위기와는 별도로 여전히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극진한 보호와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아버지는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거대 건설사의 사장이고, 어머니는 공식적으로 맡은 직위는 없지만, 외할아버지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거물이었다.
자신이 대놓고 성무연을 강간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나 검찰도 자신에게는 감히 전화 한 통 하지 못했고, 언론도 자신에 대해서는 이니셜이나 대략적인 설명으로 쓰지 못했다. 성무연도 장화진도 강만수와 싸웠지 감히 자신에게는 눈길도 주지 못했었다.
정동후가 알기로 이 나라에서는 어떤 경찰도, 어떤 검찰도, 그리고 어떤 언론도, 그리고 나라에 속한 그 누구도 진짜 재벌과 진짜 권력자는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법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진짜 재벌의 일원이자, 진짜 권력자의 혈족이었다.
정동후는 그 어떤 법과 권력도 감히 자신에게는 손도 대지 못하는 이 나라의 진짜 지배층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러니 상식이 있는 인간이라면 감히 자신을 죽이는 미친 짓은 저지르지 못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고요해진 방에서 눈앞의 광경을 계속보고 있자니, 그런 병신 같은 굳은 믿음도 서서히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조명을 꺼지고 온통 암흑으로 변한 방에서 정동후는 몸종으로 부리는 후배 놈들과 같이 알몸으로 꽁꽁 묶여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자기 스스로 봐도 정육점 냉동실에 매달린 고기덩어리들 같은 느낌이었다.
방 안에 아주 빛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방에 설치된 욕조는 고가의 유럽제품으로 로맨스한 분위기를 위해서 은은한 자체 조명이 달려 있는데, 그게 지금 이 방의 유일한 빛이었다.
그 빛이 죽은 후배 놈의 목이 잘린 대가리가 눈도 감지 못한 채로 정동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강조하듯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 위로는 도축 당한 짐승같이 거꾸로 매달린 시체의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그 광경이 어슴프레해서 더 무섭고 혐오스럽게 보이고 있었다.
이런 광경 속에서 자기만은 절대로 죽을 리 없다고 믿게 된 근본인, 잘못된 가정환경과 교육으로 만들어진 병신같은 특권의식과 과잉 자의식 따위가 버텨낼 수가 없었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핏방울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심장이 뛰는 리듬과 구별되지 않을 지경이 되자, 정동후는 결국 무너졌다.
‘엄마, 살려주세요. 엄마. 앞으로는 엄마 말 잘 들을게요.’
23살이나 처먹고도 전혀 어른이 되지 못한 병신은 그렇게 밤새도록 엄마를 부르며 공포에 부서져 갔다.
자신이 부순 그 어떤 여자들보다 더 빠르고, 손쉽게.
지하실에서 정동후가 그렇게 부서지고 있는 동안 유진은 2층 안방에 딸린 욕실에서 샤워 중이었다.
원래는 혼절한 장화진을 그녀 침실까지만 배송해주고 떠날 생각이었는데, 혼절했던 장화진이 생각보다 너무 일찍 깨어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겁먹고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이 침착한 목소리로 유진을 붙잡았다.
“그러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 눈에 뜨일 거예요. 괜찮나요?”
나름 조심하기는 했지만, 유진의 몸 여기저기에는 시체 처리 과정에서 튄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죽은 강만수의 몸을 고정 장치에서 풀어낼 때 그의 항문에서 흘렀던 피가 좀 묻을 수밖에 없었고, 목을 자른 시체를 거꾸로 매다는 과정에서도 어느 정도 피가 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 특히 목을 자르는 과정에서 뒤집어쓴 피가 제일 많았다.
“씻고, 옷 갈아입고 가세요. 그 남자가 갈아입을 용도로 가져다 놓은 새 옷이 몇 개 있어요. 그 남자 옷이라서 싫지 않으시면 대충 걸치실 수는 있으실 거예요.”
성무연도 옷도 꺼내놓았다.
정동후의 것으로 보이는 그 옷 중 속옷은 도저히 입을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었지만, 넉넉한 크기의 후드티와 역시 프리사이즈로 보이는 운동복 바지는 쓸만해 보였다. 정동후와 유진의 키와 체구 차이가 작지 않았지만, 바지 기장이 좀 짧은 것을 빼면 잠깐 입기에는 괜찮아 보였다.
사실 지금 상태로도 남들 눈에 띄지 않고 돌아갈 자신이 있으니 별로 큰 문제는 아니지만, 어차피 씻어야 한다면 집에 돌아가서 씻는 것보다 여기서 씻고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집까지 가는 것은 상관없어도, 집안에서 소진이를 피해야 하는 것은 문제였다.
사실 옷도 옷이지만, 머리카락과 손에 묻은 피와 오물이 신경이 많이 쓰여서 당장 씻고 싶은 참이기도 했다.
“나쁘지 않겠군.”
유진은 욕실로 향했다. 손이 더럽혀진 참이었기 때문에 옷은 받아가지 않았다.
유진이 욕실로 들어가자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성무연이 급하게 장화진에게 속삭였다.
“엄마, 무슨 생각이에요. 얼른 내보내야지, 왜 위험한 사람을 왜 붙잡아요?”
장화진은 겁에 질려서 자신을 재촉하는 딸의 모습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무연아. 이제 다 괜찮아. 엄마가 알아서 할게.”
“엄마?”
너무 다정하고 부드러운 오히려 더 무섭고 생소한 엄마의 모습에 성무연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뒷걸음쳤다.
원래 약간 딱딱하고 원리원칙주의자에 자상함과는 거리가 먼 엄한 성격이었던 장화진은 정동후의 손에 완전히 부서져 버린 후로 지금처럼 부드럽고 자상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건 정동후의 앞에서 보여주는 일종의 연기였다.
정동후 없이 둘만 있을 때의 장화진은 슬픔에 잠겨 무기력한 모습으로 능동적인 행위라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반쯤 시체나 다른 없는 모습이었다.
정동후가 이미 그 꼴이 되었고, 이제 자신과 단둘만이 있는 상황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너무 이질적이었다.
성무연이 그러거나 말거나 장화진은 성무연을 두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그녀들이 있는 2층 안방은 장화진의 방이었고, 방에는 자질구레한 정동후의 물건들이 여럿 있었다.
성무연이 엄마인 장화진보다 더 젊고 이뻤지만, 정동후가 선호한 것은 장화진이었다. 정동후가 보기에 제법 이쁘기는 해도 연예인 수준은 아닌 비슷한 또래의 성무연은 주변에 흔해 빠진 여자 중 하나지만,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성공한 대학교수인 장화진은 성노예로 삼아 짓밟는 보람이 있는 나름 귀중한 트로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 집을 방문하면 정동후는 장화진과 그녀의 침실을 주로 이용하고는 했고, 그래서 하나 둘 그의 사적인 물건들도 이 방에 추가되었다.
장화진은 그 중 한번도 사용한 적 없는, 하지만 정동후가 꽤 즐겨 애용한 상표의 고급 바디 샴프와 스폰지, 타월 등을 챙겼다.
그리고 유진이 들어간 욕실로 향했다. 여전히 정동후에게 강간당하며 벌거벗은 몸 그대로였다.
“어, 엄마!”
기겁한 성무연이 그녀를 막아서려 했지만, 장화진은 가볍지만 단호한 손길로 딸을 밀어내고 욕실 문을 밀었다. 좌우 미닫이 형식의 그 욕실 문은 정동후가 장화진을 능욕하는 방법의 하나로 잠금장치를 없앴기 때문에, 아주 부드럽게 열렸다.
밖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던 유진은 벌거벗은, 하지만 마스크는 벗지 않은 상태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장화진을 바라보았다.
이제 막 샤워기에 물을 틀은 참이었다.
유진이 아무 말도 없자 장화진은 공손한 자세로 유진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목욕 시중을 들겠습니다, 주인님.”
“주인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뜬금없는 호칭은, 뒤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던 성무연은 물론 유진조차 조금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