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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미궁과 그림자, 그리고 심연 – 10
장화진은 부서졌다. 그리고 망가졌다.
어느 날 갑자기 집안에 침입한 남자들에게 집단으로 강간당했고, 그것이 하루로 끝나지도 않고 지속해서 윤간이 계속되었다. 하다못해 자신을 윤간하는 남자들은 평상시에 그놈들 등록금 내주실 부모님을 안쓰럽게 여기던 쓰레기 같은 제자들이었다. 그놈들에게 보지도 아닌 항문을, 찢어져서 헐 정도로 집중적으로 윤간당하면서 그녀가 겪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사실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한 윤간만으로 끝나지도 않았다. 본디지나 사디즘적 플레이로 고통을 주는 체벌 반복되었고, 그 와중에 그런 성적인 개념도 벗어난 육체적 폭행도 수시로 있었다.
어설픈 물고문으로 익사의 위험도 여러 번 있었고, 한번은 실제로 숨이 끊어지기도 했었다. 당황해서 쳐다보기만 하는 남자들을 제치고 딸인 성무연이 미친 듯이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을 시도해서 간신히 살아났다. 그러고도 놈들은 그 후로도 물고문을 반복했다.
그 외에도 정말 그 이전에는 상상도 못 한 방법으로, 수도 없이 수치와 고통 그리고 쾌락을 강요당했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보냈다.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망가져 갔다. 돌이킬 수 없는 지점 따위는 시작 며칠 만에 이미 지난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최소한의 것은 남아 있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부서진 것은 가족 때문이었다.
성무연은 엄마가 고통에 참지 못해서 자신을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무너졌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사실 장화진은 그전에 부서져 있었고, 그래서 더 이상 딸을 지키지 못했으며, 그래서 아예 망가져 버렸다.
가장 중요한 방아쇠는 가족 중에서 딸인 성무연이 아닌 남편이었다.
성무연은 모르는 어떤 사이, 정동후가 그녀에게 이혼신청서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남편의 인감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 양반도 교수라서 그런지 확실히 똑똑하더군. 자기와 남은 딸들이라도 지키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쉽게 납득하더군.”
장화진은 그걸 정동후의 이간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남편은 딸인 성무연의 강간 수사에도 비협조적이었다. 이런 걸 괜히 공론화해서 자기 체면만 상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고, 가족보다 자신의 입지가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재벌집 사람의 회유에 충분히 아내와 딸을 버릴만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그녀를 무너지고, 부서지고, 망가져버리게 한 진짜였다.
언젠가 이 지옥의 시간이 끝나면 돌아가야 할 마지막 보루인 가족이 그녀들을 버린 상황에서, 그녀는 더 이상 버텨야 하는 이유를 남기지 못했다.
중요한 점은 그녀가 무너지고, 부서지고, 망가져 버렸다고 해서 유아 퇴행을 했다거나, 먹는 것과 섹스만 생각하는 개돼지가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무너지고 부서지고 망가져 버린 것은 법과 정의와 사회에 대한 신뢰, 가족에 대한 사랑, 신에 대한 믿음, 도덕과 윤리와 양심 같은 것들이었다.
그녀의 지식과 지혜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책임은 견고하게 남아 있었다.
그 후로 반항하던 마음을 멈추고 정동후의 원하는 대로 행동했다.
창녀라도 된 것처럼 상대가 누군지 가리지 않고 벌리라면 벌리고 빨라면 빨고 때리면 맞고 죽으라면 죽는시늉하며 철저하게 굴복하고 복종했다. 딸의 보지를 빨고, 딸의 오줌을 마시고, 딸과 동성 간의 섹스하면서도 그걸 그냥 즐겼다. 개돼지가 된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연기했다.
완전히 포기하거나 절망한 것과는 아주 약간 달랐다.
딸인 성무연이 그 혹독한 시간 속에서도 복수에 대한 기회를 노리며 그 방법을 상상했던 것과 비슷하게, 장화진은 벗어날 수 없게 된 상황을 받아들이고 차라리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변화를 기다리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장화진은 정동후가 돈과 권력을 자신 정도는 가볍게 유린하고 있지만, 정작 그 돈과 권력의 근본인 성화 그룹에서는 일가 중에서는 찌그래기에 불과하다는 정도는 익히 소문으로 들어둔 바였다. 그리고 그런 주제에 정동후가 자기 자신이 아주 특별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자의식 과잉에 차 있다는 것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견했다. 주제를 모르는 정동후의 행태로 보아 멀지 않은 시점에 진짜 권력자를 제대로 거스르게 되고, 그로 인해 파멸하리라고.
징조도 있었다.
차민영.
정동후는 그녀를 원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그녀와 딸을 이용하려고 했다. 자신과 딸에게 한 것처럼 그냥 짓밟아 버리고 돈과 권력으로 누르려 하지 않았다.
소문에 따르면 차민영은 혼자였다. 대한민국 최고 학벌 출신에, 부부가 함께 대학교수가 될 정도의 인맥이 있는 자신조차 그렇게 쉽게 짓밟았는데, 일가친척 하나 없다는 애 딸린 과부를 조심하고 있었다.
그 부분이 장화진에게 위화감을 일으켰다.
장화진과 성무연은 정동후의 성노예로 전락했고, 사회적 평판은 완전히 망가졌으며, 정동후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외출도 할 수 없는 신세이기는 했다.
그래도 정동후가 그녀의 전화 하나하나까지 모두 감시하는 것은 아니었고, 장화진의 인맥에는 정동후로부터 그녀와 딸을 구해줄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은 없어도, 차민영에 대한 최상류층의 소문 정도는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 정도는 있었다.
사회부 기자인 후배 하나가 차민영에 대한 소문을 조심스럽게 귀띔해 주었다.
많은 것은 아니었다. 아주 간략한 정보였다.
차민영이 정치, 사회, 경제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여럿 얽힌 핵폭탄급 스캔들의 핵심 인물로 거론된 적이 있다는 것과 그녀를 지급 관리 보호하고 있는 것이 성화 그룹으로 추정된다는 정보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장화진은 결정을 내렸다.
정동후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할 것처럼 굴복하는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차민영에게는 절대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녀의 주변을 이전보다 더 신경 써서 관찰하기는 했지만, 그녀에게 해가 될만한 일이나, 친분을 쌓는 일은 고의로 피했다.
그로 인해 받게 되는 폭력과 고문의 처벌은 정말 무섭고도 힘 무서웠지만, 그것들은 딱히 그 일이 아니어도 반복되던 것들이었다. 그걸 피하려고 죽을 자리를 찾아가지 않을 정도의 지식과 지혜와 판단력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그녀가 예견하던 정동후의 파멸이 찾아온 것이다.
딸과는 달리 장화진은 유진을 살펴볼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일이 그녀가 예견하던, 예정된 파멸이라는 것을 판단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래서 유진을 그대로 보낼 수 없었다.
정동후는 그녀들을 가끔 심심할 때마다 가지고 놀다가 적당히 위험한 일에 미끼로나 던질만한 쓸모없는 존재로 여겼다. 이 새로운 존재에게도 첫인상은 비슷했을 것이었다.
그걸로는 안되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이 새로운 권력자이자 지배자이자 주인이 될 인물에게, 자신들이 충분히 보살피고 관리할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점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눈앞의 어린 청년과 등 뒤의 딸이 자신을 정말 미친년처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저 같은 늙은 년의 목욕 시중이 불편하시면, 제 딸년을 시중을 들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혹시 저희 같은 더러운 년들은 젊거나 늙거나 상관없이 꺼림직하신가요?”
장화진이 욕실 문을 열고 들어온 후 닫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성무연은 엄마의 모습과 말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엄마? 정말 미친 거야?”
성무연은 바닥에 주저앉아 울상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유진의 생각은 성무연과 조금 달랐다.
유진은 말없이 장화진을 내려다보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으로, 차가운 욕실 타일 위에 무릎 꿇고 엎드린 굴욕스러운 자세로, 가슴과 엉덩이를 은근히 강조하며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입으로는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고 존재와 가치를 깎아내리는 말을 망설임 없이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고, 그 눈빛에는 두려움 따위 전혀 없이 광기나 어리석음이 아니라 깊은 지성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유진은 장화진이 미쳐 있는 것도, 발정이 난 것도, 노예로 훈련받은 본능대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유진을 실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진은 그런 그녀에게 어울려줄 생각이 없었다. 소진이를 옆집에 맡겨두고 이제 두 시간쯤 지났다. 잠들기 전에 데려오려면 서둘러야 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말하고, 아니면 나가라. 너희와 이런 식으로 어울려 놀아줄 생각 없다.”
장화진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는 입술을 깨물며 머리를 바닥에 숙였다. 그리고 외치듯이 말했다.
“살려주세요. 제 딸은 이대로 죽기에 너무 어려요. 이제 고작 21살입니다.”
그녀의 간절한 호소에서 파리에서의 차민영의 첫 만남이 생각났다. 그녀의 첫마디도 이거였다.
- 살려주세요, 딸이 있어요, 다섯 살이에요. -
유진이 연구소를 떠나서 만난 엄마들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다들 자기보다 자식이 우선이었다. 이건 유진의 마음을 조금 약하게 함과 동시에,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좌절과 분노를 일깨우는 되새기는 일이었다.
유진은 들끓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약속하지. 너희를 해치지 않겠다. 그러니 이런 짓 하지 않아도 된다.”
유진의 장담에도 그녀의 말은 계속되었다.
“정말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하고 복종하겠습니다. 시키면 뭐든지 하겠어요.”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아도 너희를 해치지 않는다.”
“좀 많이 더럽혀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어요. 거기에 친 모녀예요.. 모녀를 한꺼번에 가지고 노는 건 제법 괜찮지 않나요?”
“굳이 그런식으로 너희를 원하지 않는다.”
“살려주세요.”
서로 간에 핀트가 맞지 않아 보이는 대화가 오갔지만, 장화진은 절실했다. 그리고 유진도 그녀의 생각을 서서히 눈치챌 수 있었다.
“내가 너희를 죽이지 않아도,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고 확신하는군.”
“당신 그를 죽일 거죠? 당신이 우릴 죽이지 않아도, 그의 부모가 저와 제 딸을 죽이겠죠. 어쩌면 제 다른 가족들도 덤으로 죽일 테고.”
“내가 없으면 말이지.”
“네. 당신이 저희를 지켜주지 않으면, 그가 죽는다고 해도 우리가 이 지옥을 빠져나갈 길은 없어요. 그의 무덤에 진짜로 제물로 바쳐질지도 모르죠. 그의 부모라면 그러고도 남을 인간들이에요.”
그녀의 말을 꽤 설득력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었다.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지옥에 들어오겠다고?”
정동후의 노예 생활과 그 부모의 보복을 피하려고 자기 노예가 되겠다는 그녀의 말은 너무 자기모순 적이었다.
하지만 장화진에게도 나름 믿는 바가 있었다.
“당신이라면 정동후 따위보다는 그래도 더 좋은 주인님이 되어 주실 것 같으니까요. 당신이 아이에게 보이는 미소는 거짓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미소를 가진 사람이라면 내 딸에게도 조금은 덜 잔인할 테니까.”
장화진의 말에 담긴 의미에 마스크로 가려진 유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유진은 으르렁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살의를 담아 말했다.
“너, 나를 아는군.”
장화진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몰라보기에는 당신의 몸매는 너무 특별하니까요, 유진씨.”
유진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혹시 몰라 목소리로 변형시켰다. 하지만 몸 자체는 어쩔 수가 없었다.
유진 본인은 생각도 못 한 부분이지만, 그를 아는 사람 입장에서 190이 넘는 키에 보통의 한국인과는 전혀 다른 체형과 체격을 가진 유진의 몸은 너무도 유니크해서 알아보지 못하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유진은 굳이 피해자인 그녀들까지 해칠 생각은 없었다. 자신에 대한 정보가 좀 노출될 위험성이 있더라도, 그 정도는 감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장화진이 가면으로 가려진 자신에 대해 알아보았다면, 그건 이야기가 달랐다.
유진은 진심으로 살기를 담아 장화진을 노려보았다.
“경솔하군. 굳이 내가 너희를 죽여서 입막음하도록 만들고 있어.”
그 살기는 정말 진하고도 거세서, 평범한 일반인인 장화진이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화진의 몸이 벌벌 떨렸다. 무릎 꿇은 다리 사이로 그녀가 흘린 소변 줄기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당신에게 버림받으면 죽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제발 살려주세요.”
유진에게 그녀의 살려달라는 말의 의미와 무게가 처음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