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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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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미궁과 그림자, 그리고 심연 – 11
하룻밤이 지났다.
유진은 밤새도록 고민했지만, 장화진 성무연 모녀를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상황과 앞으로의 일을 고려했을 때, 그냥 깨끗하게 처리해 버리는 일이 깔끔했다.
하지만 그렇게 깔끔하게 결정하기에는 뭔가 좀 나쁜 기분이 들었다.
무고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은 확실히 아니었다. 유진이 스스로를 아무리 돌이켜봐도 자신에게는 그런 것은 없었다.
모녀의 죽음이 가져올 경찰 수사 따위도 고려 사항은 아니다. 이미 정동후와 그 일당에 대한 처리가 결정된 상황이었다.
성무연도 말했다시피, 시체가 없으면 살인도 없다. 유진에게는 완벽하게 시체를 처리할 방법이 있었고, 거기에 모녀가 추가된다고 해서 딱히 더 부담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장화진이 자신에 대해 눈치챈 상황에서, 그녀들이 살아 있는 것이 더 문제가 크다. 그녀들이 살아 있다면 언제 어떻게 그녀들이 고의나 실수로 자신에 대한 정보로 유출될지 알 수 없고, 그로 인해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차민영과 소진이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새도록 고민해도 왜 내키지 않는지 명확하게 설명이 되지 않았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엄마에게 떼를 쓰는 소진이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너무해! 주말에 특식 먹어도 된다고 했잖아!”
“그건 네가 약속을 지켰을 때 이야기지! 너 어제 효은이랑 지훈이랑 피자에 치킨에 콜라까지 먹었다면서! 그것도 저녁도 유진이 해준 돈까스 먹은 다음에 야식으로! 그러니까 안돼!”
성효은, 성지훈은 고영은의 의붓 딸과 의붓 아들로 세 사람의 야식 먹방은 어젯밤 장화진, 성무연 모녀의 일을 처리하는 동안 유진이 소진이를 고영은의 집에 잠시 맡겨둔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소진이는 엄마가 모를 거로 생각했지만, 고영은은 소진이를 이뻐하기는 해도 같이 자식 키우는 처지에서 엄마인 차민영 편이었고, 그래서 소진이의 일탈은 금방 들켰다.
“하지만! 하지만! 언니랑 오빠 사이에서 조금 맛만 본 거란 말이야!”
“맛만 본 걸로 닭 반마리에게 피자 2조각을 먹어! 그 정도 먹었으면 오늘은 케이크 안 먹어도 돼!”
달고, 기름지고, 설탕 들어가는 음식을 소진이에게 최소한으로 먹이려는 차민영과 아이답게 그런 음식 좋아하는 소진이의 싸움은 유진의 앞에서 자주 벌어지는 것이었다.
이건 유진이 같이 살기 이전에는 거의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차민영은 소진이가 유진이 너무 오냐오냐해줘서 버릇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가끔 투덜거렸지만, 별로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고영은의 말에 따르면 소진이는 싫어도 엄마가 하라면 무조건 따르는 너무 말을 잘 들어서 차민영은 오히려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소진이가 고작 다섯 살에 자기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는 것이었다. 말 잘 듣고 착한 것과 고작 다섯 살에 집안 분위기를 살피고 어른 눈치를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
그들의 말이 맞다면 이 변화는 유진이 가져온 것이었다. 심리적인 관점에서 소진이가 유진의 존재로부터 안정감을 느끼고 좀더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변한 것이었다.
하지만 반대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파리에서의 그날. 딸이 있으니 살아야 한다는 차민영의 애원에 유진이 그녀를 구하지 않았다면, 소진이는 지금 고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유진은 고사하고 엄마조차 잃은 소진이가 어떤 성격이 되어 어떻게 지내고 있게 되었을지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한가지다.
딸아이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차민영이 애원이 유진의 마음을 움직였고,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관계는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였다.
유진은 거기에서 장화진과 성무연을 죽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자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유진은 스스로 생각해도 좀 어이가 없기는 하지만, 자식을 지키려는 어머니라는 존재에게 마음이 약해지는 성향이 있었다.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내 생모, 계모도, 어머니가 되어주길 바랬던 여자도 모두 다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다행스럽게도 이걸로 장화진과 성무연 모녀에 관한 결정은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차민영과 소진이의 아웅다웅이 자신에게 번져오는 것은 다행이 아니었지만.
“엄마, 미워! 오빠! 케이크 줄 거지! 소진이 케이크 해 줄 거지!”
“절대 안 돼! 진! 오늘은 간식 절대 주지마!”
“난 외출할 거니까, 그건 두 사람 사이에서 해결해. 나 끌어들이지 말고. 결정되면 케이크든 피자든 치킨이든 만들어주기는 하지.”
“오빠!”
“진!”
유진은 서둘러 모녀간의 싸움을 피해 탈출했다.
차민영과 강소진 모녀가 간식을 두고 아웅다웅거리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또 다른 집. 장화진과 성무연 모녀의 처지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성무연과 장화진은 화장실 욕조에 몸을 겹친 채로 감금되어 있었다.
여전히 벌거벗은 몸에 팔다리는 가죽 벨트 형식의 수갑으로 결박되어 있었고, 목에 채워진 쇠사슬이 욕조 벽면의 수건걸이에 연결되어서 있어서 욕실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녀들을 믿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당장 죽이지도 못한 유진이 취한 최소한의 구금 조치였다. 그래도 이불을 욕조 바닥에 깔아 최소한의 추위는 피할 수 있게 조치해주기는 했다.
모녀는 피곤함에 지친 모습으로 서로를 끌어안고 잠들어 있었다.
다정해 보이는 모습이기는 했지만, 사실 잠들기 직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 사이에서는 싸늘한 분위기가 맴돌았었다.
유진이 자신의 모녀를 어느 정도 자유스럽게 놔주려는 분위기를 느끼고 있던 성무연은 엄마인 장화진이 갑자기 급발진해서 사태를 이렇게 만든 것에 화가 났다. 또 장화진이 어제 유진을 상대로 보여준 태도와 그 내용, 특히나 엄마와 자기를 같이 성노예로 삼아달라고 오히려 애원하던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물론 성무연도 엄마의 생각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유진이 정동후 등을 처리한 후 그녀들을 죽이는 것이 정상적이고, 설혹 유진이 자신들을 죽이지 않더라도 자신들끼리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성무연도 알고 있었다.
단지 성무연은 정동후의 성노예를 벗어나기 위해 다시 누군지 모르는 다른 남자의 성노예로 살아가느니 그냥 깨끗하게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거였다.
그에 비해 장화진은 장화진대로 딸이 살아볼 의지조차 갖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다.
실낱같더라도 희망이 보이면 그것을 잡고 기회를 노려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딸은 이제 고작 21살이었다. 최근에 겪은 지옥 같은 삶이 아무리 절망스러운 것이었다고 해도, 그리고 앞으로서의 삶이 그렇게 희망찬 것이 아닐지라도, 그래도 살아서 희망과 행복을 꿈꿀 기회라도 노렸으면 하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두 사람은 밤새 이 주제로 싸웠지만,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결론은 내지 못한 상태로 지쳐 잠든 상태였다.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이 집을 다시 찾은 유진은 그렇게 잠든 모녀를 내려다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마지막으로 고민하던 유진은 결정을 굳히고 모녀를 깨웠다.
“일어나라.”
물을 뿌린 것도, 몸을 흔든 것도 아니라 작은 목소리로 말한 것뿐인데 모녀는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는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아주 잠시 후 자신들의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동후나 그의 일당이 아니라, 마스크 쓴 수상한 남자 유진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조금은 편한 자세와 표정을 취했다.
정동후와 그의 일당에게 평소에 어떻게 시달렸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유진을 그들보다는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한다는 것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유진을 혀를 차고는 그녀의 몸에 채워두었던 수갑과 족쇄 쇠사슬 등을 풀어주었다.
그런건 자신이 없을 때 돌발행동을 하지 못하기 위해서 채워놓은 것들이었다. 자신의 반경 내에 있는 동안에는 그녀들을 제압하거나 제어하기 위해 그런 것들은 필요 없었다.
그런 유진의 행동에 장화진과 성무연이 오히려 조금 낯설어했다.
개목걸이, 가죽 수갑, 족쇄, 쇠사슬 등은 이제 그녀들에게는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그런 물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들을 풀어준 유진은 짧게 말했다.
“옷을 입고, 지하실로 와라.”
장화진이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어제의 제 이야기는 혹시 결정하신 건가요?”
“생각은 해 두었다. 하지만 당신 생각에 당신 딸은 동의하지 않는 듯 보이는군. 그러니 그건 일단 내일 결정하도록 하지. 어떤 결정이 내려지든 내일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
장화진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유진의 말속에서는 명백하게도 죽음에 대한 암시가 드리워져 있었으니까.
성무연은 자기 엄마에 비해 조금 태연했다. 그녀도 유진의 말속에 담긴 죽음에 대한 암시는 인지했지만, 어차피 그녀의 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에도 이런 말도 던질 수 있었다.
“그 전에 뭐 좀 챙겨 먹어도 될까요? 어젯밤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유진은 가볍게 허락했다. 그는 식사에 대해서는 정말 관대했다.
“마음대로.”
그 말을 끝으로 유진이 먼저 지하실로 내려갔다.
남겨진 모녀는 잠시 서로 서먹함을 느꼈지만, 자신들끼리 있는 상황이 아니라 유진이 있는 중에 어젯밤의 말다툼을 이어갈 생각은 둘 다 없었다.
그리고 밑에서 유진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도 있었다.
둘은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1층에 주방에 들려 간단히 식빵과 햄 간단한 샐러드를 준비해 샌드위치와 우유 등으로 허기를 때웠다.
유진이 허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식사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녀들의 명백한 실수였다.
그녀들은 지하실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생각 없이 지하실에 도착한 그녀들은 문을 열기 직전에야 이 안에 정동후와 그 일당들이 매달려 있고, 그중 하나는 어제 시체가 되었었다는 것을 기억해 내었다.
그래도 계속 문밖에 있을 수는 없어서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어젯밤 목을 잘라 욕조 위에 매달아 놓았던 시체가 그사이 바닥으로 옮겨져 있었고, 그녀들이 막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유진이 막 손도끼를 내리쳐 시체의 손목을 잘라내고 있었다.
피를 빼기는 했어도 약간 남아 있던 피와 살점이 유진의 얼굴로 튀어 오르고 있었다.
“우웨엑”
그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준 충격에 장화진도 성무연도 방금전 먹은 음식을 토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