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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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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미궁과 그림자, 그리고 심연 – 16
목청이 찢어지라 지르는 비명이 고문실을 메아리쳤다.
유정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발광했다. 자벌레처럼 묶여 있는 몸으로 좌우로 이리저리 구르며 자기 몸이 느끼는 고통을 표현했다.
유진은 차가운 눈으로 그런 유정수의 발광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발로 밟아 그의 발광을 멈추게 했다.
다시 유진과 유정수의 눈이 마주쳤다.
유정수는 이빨을 덜덜 떨며 애원했다.
“사, 살려주세요. 뭐든지, 원하시는 건 뭐든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잘못된 애원이었다.
유진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얼굴이 보이나?”
“네, 보입니다.”
“왜, 보일까?”
“네?”
“난 원래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그냥 벗어버렸어. 난 왜 마스크를 벗고 너희들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걸까?”
유정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몰라서가 아니다. 그전까지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유진이 말하는 순간 깨달아 버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정동후가 덩달아 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진은 다시 물었다.
“말해봐라. 난 왜 너희들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걸까?”
유정수는 덜덜 떨며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유진이 웃었다.
“대답이 틀렸어.”
유진은 다시 한번 도끼날을 거꾸로 돌려 쥐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아는 정도후가 몸을 마구 비틀며 애원했다.
“안돼! 제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유진은 간단하게 발로 밟아 그의 다리를 고정하고는, 이번에는 반대쪽 새끼발가락을 내리쳤다.
“으아아아악!”
목청이 찢어지라 지르는 비명이 다시 한번 고문실을 메아리치고, 유정수는 또 한 번 자벌레처럼 온몸을 꿈틀거리며 발광했다.
유진은 이번에도 유정수가 충분히 고통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발로 밟아 그를 고정했다.
유정수는 벌벌 떨면서 이번에는 유진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처음 겪어보는 진짜 고통이 그의 정신을 유진에 대한 진짜 공포를 새겨 넣고 있었다.
전기 충격기로 당한 고문은 어제의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유진이 그에게 사용한 전기 충격기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물건도 아니었다. 원래 몸도 약한 여자들인 장화진이나 성무연 혹은 여기에 끌고온 다른 여자들에게 사용하기 위한 물건이었다. 사람에게 위험하거나, 트라우마가 남을 정도로 강력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건 괴롭고 고통스러웠지만 진짜 공포는 아니었다.
친구인 강만수의 죽음과 그의 시체에 행해진 일들을 보는 것은 물론 끔찍한 경험이었다. 바로 직전에 친구 둘이 어이없게 죽고, 그 시체가 난도질당하는 꼴을 본 것은 아마 살아남는다면 일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정신적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궁극적으로 남의 일이었다. 무섭고 두려워도 직접적인 아픔은 느끼지 못했다.
유정수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다른 사람들, 특히 자신들에게 대항할 힘이 없는 여자들에게 얼마든지 고통을 주고 폭력을 행사하던 개 쓰레기였다. 눈으로 보고 잔인함과 끔찍함에는 익숙했다. 그것이 비록 내편의 것일지라도 다를 것은 없었다.
아무리 그것이 친구들의 것이라고 해도, 그 광경이 바로 눈앞에서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이었다고 그것은 남의 고통이었다. 그것에 진심으로 동조해서 진짜로 고통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면 이런 집단 범죄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 반해 진짜로 자신보다 강할지도 모르는 누군가와 진짜 싸워본 적도 없었고, 하다못해 집에서나 학교에서 체벌 한번 겪어본 적도 없었다. 진짜 고통은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고작 새끼발가락 뼈가 다 으스러지고, 살점이 뭉개지고, 발톱이 깨져 뽑혀 나가는 정도로 그는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유진이 유정수의 몸을 묶고 있는 밧줄들을 잘라 내었다.
유정수는 간단하게 완전히 신체의 자유를 되찾았지만, 감히 반항하거나 저항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유진이 그를 첫날 사용한 고문 의자에 다시 묶으려 하자 잠시 발버둥치려고 했지만, 유진의 그의 눈앞에 손도끼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온 몸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엉엉! 싫어요. 살려주세요. 제발. 싫어요!”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면서 애원했지만, 몸은 유진이 움직이는 대로 꼼짝도 못 하고 따라 움직였다.
유정수를 고문 의자에 완전히 고정한 유진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자 다시 묻지. 난 너희들에게 왜 얼굴을 보여주고 있을까?”
유진은 울면서 대답했다.
“저희를 죽일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죽을 놈들이니까, 얼굴 같은 것 숨길 필요가 없어서입니다.”
“그래, 그 정도는 알고 있을 줄 알았지.”
“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유정수는 계속 울었다. 눈물을 멈추지를 못했다.
알몸으로 매달린 상태에서도, 전기 충격기로 고문을 당하면서도, 눈앞에서 친구들이 죽고 그 시체가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보면서도 유정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죽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는 살거라도 어떻게든 될거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그의 본능 깊숙한 곳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자기 입으로 자기 죽음을 직접 말함으로써 그의 본능 깊은 곳에 숨어 있던 희망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죽은 사람 같던 그의 눈빛에서 이제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은 담담해졌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더 이상 유진에게 애원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서 살짝 싹터 올라왔다. 반사회적인 사이코패스 기질의 양아치답게,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유진을 조금이라도 엿 먹여 보겠다는 의지의 발산이었다.
유진도 그런 그의 태도를 쉽게 알아봤다.
“넌 지금 생각하고 있을 거야. 어차피 죽을 건데 이 새끼 하는 말에 대답할 필요 없다고 말이야.”
유정수는 침묵하는 것으로 긍정했다.
유진은 웃었다.
그리고 유정수의 왼손을 붙잡고, 손을 펴서 손잡이 바닥에 대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새끼손가락을 다른 손가락들과 확실히 구별해서 벌렸다.
“어? 어?”
유정수는 병신은 아니어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를 수가 없었다.
“자, 잠깐! 잠깐만요!”
물론 그런다고 유진이 손을 멈출 리는 없었다. 손도끼 뒷머리가 그의 손가락을 내리쳤고, 새끼발가락이 그랬던 것처럼 유정수의 왼손 새끼손가락도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뭉개지고, 손톱은 부서져 뽑혀 나갔다.
“으아아아악!”
또다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유정수는 제법 무거운 고문 의자가 들썩거릴 정도로 몸을 흔들며 발광했다. 유진은 이번에는 유정수가 그 고통을 소화하도록 기다려주지 않았다. 왼손 새끼손가락을 날려버린 직후, 유진은 유정수의 오른손을 붙잡았다.
비명을 지르던 유정수가 다급하게 외쳤다.
“제발! 제발!”
물론 유진은 멈추지 않았다. 오른손 새끼손가락도 새끼발가락들과 왼손 새끼손가락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
“아아! 아아! 아아!”
유정수는 이제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너무 극심한 고통이 계속된 탓에 호흡조차 제대로 길게 들이쉬게 어려웠던 탓에 가쁜 숨만큼이나 비명도 끊어서 질렀다. 무거운 고문 의자가 들썩거릴 정도로 발광하기도 했다.
유진은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은 얼굴로 그런 유정수를 바라보았다. 유정수가 숨이라도 비명을 그만두고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게 되는 것에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유진은 유정수가 숨은 제대로 쉴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너에게는 스무 개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있지. 그리고 지금 내가 뭉갠 것은 제일 작은 것들 4개야. 뭉갤 수 있는 손가락과 발가락은 아직 16개가 더 남아 있지. 그리고 다 뭉갠 다음에는 도끼를 거꾸로 쓸 필요 없이 제대로 날이 있는 쪽으로 20번 더 쓸 수 있겠지. 혹시 이제는 네가 왜 어차피 죽을 몸으로 내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겠니?”
“네. 이해했습니다. 이해하고 있습니다. 뭐든지 뭐든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뭘 말할까요? 뭐가 궁금하신가요?”
유정수는 정말 간절하게 물었다. 유진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수준이었다.
유진은 그런 유정수에게 고개를 삐딱하게 비틀며 물었다.
“내가 물어봐야 해? 내가 세세하게 네가 대답하기 편하게 골라줘야 하는 거야? 그게 네 대답이야?”
유정수가 기겁해서 외쳤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다 말할게요! 그냥 전부 다 말하겠습니다!”
유정수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 눈앞의 남자가 정동후에 대해 무엇이 궁금한 것일지 고민했다. 그리고 이 남자가 어제 자신들의 성노예였던 모녀의 편을 들어, 그녀들이 자신들을 고문하게 돕고, 친구인 강만수를 죽였을 때 그게 잘못이 아니라고 편을 들어주던 것을 기억해냈다.
아무래도 지금 자신들이 겪고 있는 일이 그간 자신들이 저질렀던 어떤 잘못 때문인 것이 분명했고, 그들이 저지른 잘못 대부분은 매우 비슷한 것들이었다.
유정수의 기억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가장 오래된 기억, 정동후와의 첫 만남이었다.
유정수는 거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