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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78화 (78/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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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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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미궁과 그림자, 그리고 심연 – 17

유정수는 정동후와 고등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내긴 했지만, 같은 고등학교 출신은 아니었다.

정동후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이른바 재벌학교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자기 집안이 대한민국 상위 1%에 든다고 여기는 집안이거나, 아니면 학생 본인의 학업성적이 그 이상이 되는 정도의 학생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유정수는 감히 그런 학교에 다닐 정도는 아니었고, 이웃한 평범한 사립 인문계 학교였다. 그래도 유정수의 학교도 강남 8학군에 속하는 명문이라고 불리는 곳이었고, 자식을 이 학교로 보내기 위해 부모가 불법 전입 할 정도는 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유정수와 친구들은 이 학교에서 그대로 평균 이상은 되는 집안과 평균 이상은 되는 성적을 가진 비교적 흔해 빠진 학생들로, 어쩌다 보니 어울려 다니게 된 친구 사이였다.

평범하던 그들의 인생이 바뀐 것은, 그들이 알고 지내던 어떤 여학생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주 친한 것은 아니고 친구 중에서 썸을 타는 멤버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노래방 정도는 같이 가던 그런 사이였다.

그녀를 노리고 정동후가 접근했다. 정동후는 고등학생인 그들 수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부와 권력을 보여주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는 감히 어림도 없는 일류 클럽에 들어가, 끝내주는 여자들과 부팅까지 연결해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동정까지 뗄 수 있게 해주었다.

그걸로 끝이 났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과는 수준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정동후를 기꺼이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정동후가 관심이 있다는 말로 자신들이 알고 지내던 그녀를 만나보려고 했을 때, 기꺼이 그녀를 설득해 정동후의 준비한 팬션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는 정동후에게 강간당했다. 술과 약을 억지로 먹이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녀를 정동후가 짓밟아버렸다. 그녀는 처녀의 몸으로 입과 보지와 항문까지 모두 강간당하는 충격적인 첫경험을 해야 했다. 거기에 정동후는 단지 강간만으로 끝내지도 않았다. 그들도 공범이라고 협박하고 강요해서 유정수를 포함한 그들 모두 번갈아 가며 그녀를 윤간하게 했다.

처음에는 겁도 났고 두려웠지만, 신고하거나 말을 안들으면 찍어놓은 비디오를 인터넷에 공개하겠다는 정동후의 협박에 그녀가 굴복하면서 죄의식은 사라졌다.

넘쳐나는 성욕을 가진 고등학생 무리에게 언제든지 자신들 맘대로 다룰 수 있는 여자 성노예의 존재는 그들이 가진 양심과 죄의식 따위 순식간에 사라졌다. 애초에 정동후가 그들 무리 중에서 그럴만한 놈들만 선별해서 고른 놈들이기도 했다.

거기서 끝나지도 않았다. 정동후는 그렇게 손에 넣은 여학생을 이용해서 그녀의 언니를 유인했다. 동생에게 유인당한 언니도 동생과 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정동후는 자매를 함께 짓밟는 정도로 끝내지 않고, 동원할 수 있는 남자들은 최대한 동원해서 그녀들을 윤간했다. 그녀들은 하루가 멀다고 열 명도 넘는 고등학생들에게 자매가 함께 윤간당했다.

나중에는 인터넷을 통해 관계없는 외부자들을 모집해서 돈을 받고 집단으로 매춘도 시켰다. 정동후에게 그런 푼돈 따위 필요 없다는 것을 아는 유정수와 친구들은 그걸 매우 의아하게 여겼지만, 그렇게 벌어들인 돈들이 자기들 용돈이 되는 상황에서 그걸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파멸이 순간이 왔다. 어느 날 정장을 입은 무서운 사람들이 그녀들이 창녀로 팔리던 오피스텔에 쳐들어왔다. 유정수와 몇몇은 그날 마침 그 자리에 없어서 습격을 피했지만, 정동후를 포함 그 자리 있던 운이 없던 친구 여럿이 그들에게 잡혀갔다.

현장에서 잡혀간 정동후와 친구들과의 연락이 끊겼다.

친구 부모님들이 실종 신고를 했지만, 유정수를 포함해 남겨진 친구 그 누구도 그 부모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았다.

친구들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실종된 친구와 잡혀가지 않은 친구를 막론하고 모두 부모님들이 갑자기 실직하거나, 사업이 망했다. 시청 공무원이었던 유정수의 아버지는 뇌물 독직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았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유정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정동후와 친구들의 실종과 관계된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유정수와 남은 친구들은 자신들도 실종된 친구들처럼 잡혀갈까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 공포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모든 것이 없었던 것처럼 되었다.

최소한 유정수를 포함해 살아남은 친구들의 집안은 고비를 넘기고 정상화되었다. 유정수 아버지의 수사는 무혐의 처리되었다. 실직했던 다른 친구 부모님은 새로 직장을 얻었다. 사업이 망했던 친구 아버지는 새로 사업을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정동후는 다시 나타나 그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날 유정수는 알게 되었다.

정동후가 굳이 필요도 없는 돈을 벌겠다고 인터넷으로 사람을 모집해서 매춘까지 시켰던 이유를.

놀랍게도 그들에게 윤간당하고, 창녀로 팔려나갔던 그 언니는 정동후의 사촌 형의 연인이었다. 그리고 정동후가 재벌 가문 사람인 것처럼, 당연히 그의 사촌 형도 재벌 가문의 사람이었다. 알고 노렸던 정동후는 사촌 형의 눈은 피했지만, 집안 자체가 움직이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정동후가 저지른 미친 짓에 경악하는 그들에게 정동후가 선언했다.

잡혀간 친구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고, 그들 집안도 끝장났다는 것을.

유정수를 비롯해 운이 좋았던 친구들이 아직 살아 있고, 집안이 망하지 않은 것은 정동후와 그 부모님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무 때라도 정동후가 손을 놓으면 그들은 물론이고 집안 전체가 파멸이라는 것을.

그들은 이제 정말로 다른 길이 없었다. 정동후가 짖으라면, 죽으라면 죽는 개가 되는 것밖에는.

그리고 정동후의 개로 사는 것도 별로 나쁘지 않았다.

사촌 형의 연인 정도의 거물은 아니어도 정동후는 지속해서 여러 여자를 비슷하게 가지고 놀았고, 그건 그들에게도 충분한 즐거움이었다. 성무연과 장화진 모녀같이 자기들 교양수업을 가르치는 교수와 딸을 따먹는 것은 짜릿하기 그지없었고, 최근에는 전직 아이돌 출신 여자 연예인도 손에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유정수는 쉬지 않고 정동후가 유인하거나, 납치하거나, 약을 먹여 강간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말 수많은 여자의 이름과 그녀들이 겪은 지옥들이 유정수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유진에게 별로 흥미로운 것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돈과 힘을 가진 세상 최고의 권력자들이 사람을 납치해서 생체실험에 사용해 학살하는 일을 태연히 저지르는 세계에서, 세상 무서운 것 없는 재벌집 아들놈의 강간 행각 따위 그리 특별하지도 않았다.

더럽고 구역질 나는 추악한 이야기지만, 그런 것은 이미 유진이 살아온 세계에도 충분했다.

유진이 알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만.”

유진은 계속 떠벌리는 유정수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어리둥절해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런것 말고, 저놈의 개인적인 것들에 대해 말해봐. 가족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 가족과의 관계는 어떤지, 집안에서의 입지는 어떤지, 저놈 집안은 어떤 분위기인지, 사촌 형수를 강간하고도 어떻게 저렇게 멀쩡한지 같은 거.”

유정수가 당황했다. 이를 악물고 같이 지켜보고 있던 정동후도 당황했다.

그들은 유진이 장화진과 성무연 모녀를 구하러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녀들을 대하는 태도가 좀 과격한 것을 보고는, 자기들이 과거에 원한을 산 사람이라거나, 혹은 지금 건들고 있는 여자들 중 누군가의 청부를 받은 사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유정수는 최근 이 집에 끌고 와서 허벌창을 냈던 전직 아이돌 여자를 생각했다.

그녀는 끔찍한 꼴을 겪으면서도 독기가 꺾이지 않은 여자였다. 연예계에 조폭 인맥이 얽혀 있다고 알고 있는 유정수는 그녀가 그 인맥을 동원해서 전문 킬러를 고용했다고 생각했다. 어림도 없는 생각이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유정수가 할법한 생각이었다.

정동후는 유진이 사촌 형이 보낸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차민영을 노리던 중이었기 때문에,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이 정동후가 이 와중에도 자기는 죽지 않을 거로 생각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사촌 형이 직접 보낸 사람이건, 아니면 임무를 맡고 파견된 직원이건 상관없이 그룹 관계자라면 절대 자신을 죽일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둘의 예상은 이 질문으로 깨져버렸다.

당연히 유진은 그런 둘의 생각과 전혀 다른 존재였고, 이 질문은 유진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는 질문이기도 했다.

본인이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던 것인지와 상관없이 유정수는 유진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고민했다. 무엇을 물어보든 뭐든지 대답할 생각이던 그에게, 자기와 엮인 과거도 아닌 정동후의 개인 이야기는 거리낄만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저질렀던 일탈의 결과로 친구들을 잡아다가 죽여서 흔적도 남기지 않은 것도, 자기들 집안을 다 망하게 했던 것도, 그것들을 모두 다시 원상 복구시킨 것도, 넓게 보면 다 정동후의 집안에서 저지른 일이었다.

유정수는 물론이고 살아남은 친구들 모두 정동후의 집안에 대해서는 의식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재벌 가문의 어둠을 직접 겪어본 입장에서, 그 가문에 대해서 뭔가 알기가 무서웠다.

그러다가 그래도 문득 한가지는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정수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정동후를 향했다. 그리고 둘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정동후는 유정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으으읍! 으으읍!‘

정동후가 눈을 부라리며 몸을 마구 흔들었다.

오랜 시간 정동후에게 눌려 살았던 유정수는 그런 정동후의 모습에 순간 기가 죽어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당연히도 유진은 그런 유정수의 모습을 용납하지 않았다.

”좀 쉬었더니 이제 좀 견딜 만 한가 보지?“

유진이 도끼를 들었다.

유정수가 기겁했다.

”잠시만요! 말할게요! 말할게요!“

그러거나 말거나 유진은 움직이기 시작한 도끼를 끝까지 사용할 생각이었다. 유정수가 발악하듯 외친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저 새끼 집안에서 의절 당했습니다! 이미 죽은 놈 취급이에요!“

유진이 휘두르던 도끼 뒷날이 유정수의 엄지손가락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으으으으어어어어!“

정동후가 미친 듯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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