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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이지만, 히어로나 빌런이 되는건 거절한다-79화 (79/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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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미궁과 그림자, 그리고 심연 – 18

유정수가 늘어놓은, 듣고 있던 정동후가 발작하던 그 이야기는 유진에게도 제법 흥미로웠다.

정동후가 사촌 형의 여자와 그 여동생까지 한꺼번에 부숴버린 것이 들킨 이후, 정동후는 우선 외가인 성화 그룹 쪽에서 의절 당했다. 단지 범죄를 저질러서도 아니고, 근친상간의 금기를 범해서도 아닌 뭔가 다른 이유였다.

정동후가 그 부분은 정확하게 말한 적이 없어서 유정수도 정확한 이유는 몰랐다.

하지만 정동후의 외조부이자 성화 그룹의 회장인 유명선 회장이 유언장에서 정동후에 대한 재산 상속 내용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법적으로도 상속 권한을 완전히 박탈해 버렸다는 것은 알았다.

재벌 가문에서 그건 족보에서 파내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이었다.

외가에서 이어 친가에서도 정동후를 손절 했다. 그쪽은 손절 한 이유가 좀 명확했다. 상류층에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범죄를 저질러도 괜찮고, 근친상간을 저질러도 괜찮고, 나라를 팔아먹어도 괜찮지만,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은 용납이 안 되는 것이 정동후의 친가였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에 그 사건이 터진 이래로, 정동후는 친가와 외가의 그 어떤 공식행사나 가족 일정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유정수는 할아버지 칠순 잔치에도 참여 하지 못하고 울분을 토하는 정동후와 같이 술자리를 하거나, 정동후가 그룹 창립 기념식에 참석 못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 받고 싸움을 벌인 꼴을 본 적이 있어서 알 수 있었다.

이쯤에서 유진은 약간 궁금함이 생겼다.

“그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이런 짓을 계속 저질렀다고? 그리고도 경찰에 잡히지 않았고?”

“그 집안에서 완전히 개털이 된 것과 별개로 저 새끼 부모님은 여전히 끔찍하게 저 새끼를 챙깁니다. 저 새끼 부모님은 그 두 분만으로도 엄청난 사람들이라서, 그분들만으로도 충분히 뭐든 하더라구요.”

이 대답도 유진에게는 꽤 재미있었다.

유정수는 정동후에 기가 죽어 있었음에도 말문이 터지자마자 정동후를 선배나 형 같은 경칭 대신 거침없이 새끼라고 불렀다. 평소에도 정동후에게 존경심이나 동지 의식 같은 것은 없다는 증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후의 부모를 호칭하는 말에는 님자를 꼭 붙이고 그분들이라는 경칭을 썼다. 이놈들의 수준을 볼 때 그것이 연장자에 대한 예의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알지?”

“예?”

“저놈의 부모가 여전히 저놈을 그렇게 끔찍하게 챙기는지 네가 어떻게 아냐고? 저놈이 그렇게 이야기해?”

이 질문에 유정수가 정동후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명백하게 두려움의 감정이 떠올라 있었지만, 그건 정동후를 향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유진은 이 상황에서도 다른 두려움을 느끼는 그의 모습에, 이 부분에 대한 두려움이 정말 유정수의 뼛속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진 유정수의 말에 그에 대한 대답이 들어 있었다.

“만나본적이 있습니다. 저새끼 모르게 저새끼 부모님과 만나본 적 있습니다.”

이건 정동후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정동후도 발광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언젠가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에게 잡혀서 어떤 호텔로 끌려갔습니다. 저랑 여기서 죽은 다른 애들, 그리고 여기 없는 애들 다 합쳐서요.”

‘아!’

유진은 이 부분에서 이놈들의 일당이 여기 있는 이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것은 유진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장화진과 성무연 모녀와의 커뮤니케이션 부족도 느꼈다. 이건 유진이 직접 생각하지는 못했더라도 그녀들에게 들었어야 할 이야기였다.

이러면 이놈들을 정리하는 걸로 끝낼 수 없었다. 남은 놈들도 여기를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놈들이 지금 여기에 이들이 와 있는 것을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가능한 그놈들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귀찮게 되었군.’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확인할 일이고, 일단은 유정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대로 죽는가 싶었는데, 어디 으슥한 곳이 아니라 화려하기 그지없는 호텔에 도착했어요. 우리도 이름만 들어봤지 한 번도 가보지는 못했던 우리나라 최고 호텔 중의 하나였어요. 그리고 거기 꼭대기 층 펜트하우스에서 그분들을 만났어요.”

유진은 이 이야기에서 약간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잠깐. 납치되어서 호텔로 펜트하우스로 끌려갔다고? 그 와중에 아무도 너희를 보는 사람이 없었어? 최고급 호텔인데?”

“있었어요. 주차장에서도,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복도에서도 호텔 직원과 계속 마주쳤어요. 감시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는 것도 보였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우리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어요. 마치 우리가 아예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했어요.”

그때의 두려움이 떠올랐는지 유정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거기가 쟤들 부모가 소유한 호텔이라도 되었던 거야?”

“아니오. 제가 알기로 그분들이 소유한 재산중에 호텔은 없어요. 성화 그룹에 호텔이 없는 것은 아닌데, 우리가 간 호텔은 그 호텔도 아니었어요.”

유정수는 그때 거기서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진짜 지배자라고 여겨지는 재벌의 두려움을 뼛속 깊이 느꼈다. 자기들 소유의 호텔도 아닌 곳에서, 그 직원들 눈앞에서 사람을 납치하는 모습을 보여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게 만드는 그 능력은 이 나라에 공정한 법과 질서 따위 진실을 유정수의 뼛속에 심어 주었다.

“재미있군. 계속해라.”

“펜트 하우스에서 저 새끼 부모님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분들을 저희를 바닥에 무릎 꿇리거나 하지 않았어요. 거칠게 데려와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시고 편안한 소파에 앉게 하셨어요. 그 다음 아버님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대신 어머님이 저희에게 이야기하셨어요.”

“뭐라고?”

“저 새끼 밑에서 시중드느라고 고생한다면서, 지금은 저 새끼가 아직 어려서 철이 덜 들어서 그러는 건데, 지금 좀 고생해도 나중에 저 새끼 철들고 제 몫을 하기 시작하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 저 새끼가 아니라도 나중에 그분들이 직접 지금의 고생을 충분히 보상해 주겠다고도 하셨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고생하라고, 저 새끼의 말 잘 듣고 잘 따라다니라고.”

여기까지 말하고 유정수가 잠시 망설였다. 유진은 이번에는 굳이 협박하기보다는 좀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 수고해준다고 격려해 주려고 납치까지 해서 그런 분위기를 연출할 리는 없으니까.”

유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저새끼 옆에 잘 붙어 있다가 혹시라도 문제가 되면 저희가 적당히 방패 노릇을 잘하라고 말했어요. 논란이 되거나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저희가 돌아가면서 적당히 책임을 지라구요. 가신은 원래 그렇게 하는 거라고, 이 나라에서 돈과 권력만 있다면 전과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고, 저희가 전과자가 되더라도 두 분이 충분히 보상해 주실 거라고요. 그리고.”

“그리고?”

“어쭙잖은 정의감에 배신이라도 하면 후회하게 될 거라고 했어요. 밀고자 따위 아무도 좋아하지 않고, 어디서도 받아 주지 않는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잠깐 유명해질지도 모르지만, 금방 사람들에게 잊히고 나면 어떻게 될 거 같냐고요. 그러면서 남자는 갈아서 물고기 먹이로 만들고, 여자는 씹창을 내서 섬마을 노예 창녀로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라고 했어요. 단지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보여줬어요.”

“보여줘?”

“예전에 저 새끼 때문에 잡혀가서 죽은 친구의 엄마랑 누나가 곰팡이 핀 더러운 골방에서 남자들에게 몸을 팔고 있는 사진들 보여줬어요. 보여주기만 한 것도 아니라 원한다면 저희도 거기 가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어요! 친구 엄마랑 누나랑 빠구리해보고 싶지 않냐면서요. 전 싫었어요. 절대로 싫었어요.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어요. 목숨 바쳐 충성하겠다고 맹세했어요! 우리 엄마, 내 동생을 그렇게 만들 수 없었어요!”

말을 하던 유정수가 감정에 북받쳐 절규했다. 그 절규에는 고통과 절망, 분노와 공포가 함께 버무려져 절절하게 드러났다.

유진은 혀를 찼다.

이놈은 꼴에 자기가 무슨 대단한 협박이라도 받아서 스스로 한몸 희생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진은 잊지 않았다.

이놈들의 시작은 이 새끼들이 정동후를 도와 동급생 친구를 납치 강간하고, 그 언니까지 끌어들여서 자매를 윤간하고, 창녀로 팔아먹는 등의 개 쓰레기 짓을 저지른 것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전반적으로 유정수의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보니 이놈들 부모들 다 자기 자식들 수준에 걸 맞는 그런 부모들로 여겨졌다. 자식과 형제 때문에 덤태기를 쓴 것이 좀 가혹하기는 해도, 무고하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유진은 갑자기 심술이 돋았다.

“그런데 이렇게 다 이야기해도 괜찮아? 이거 아무리 고문을 당해서라고 해도 엄밀히 말하면 배신이다. 저놈이나 저놈 집안이 네 사정을 생각해서 정상참작 같은 거 해줄 것 같지는 않은데?”

유정수의 얼굴이 정말 새파랗게 질렸다.

“어? 어? 어? 저 새끼도 죽일 거잖아요? 나만 죽는 게 아니라 저 새끼도 죽일 거잖아요? 그러면 모르잔항요. 제가 무슨 이야기 했는지 비밀인 거잖아요. 그렇죠? 그런 거죠? 이거 다 우리들끼리의 비밀인 거죠? 그분들은 모르는 거죠?”

유정수가 패닉에 빠져 마구 횡설수설했다.

유정수의 본능 깊은 곳, 뼛속까지 드리워진 그들에 대한 공포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바로 눈앞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죽음을 선언할 유진이 있는데도, 유진보다 그들을 더 무서워하고 있었다.

유진은 이 상황에 흥미를 느끼며 분석해봤다.

‘가족 때문인 걸까?’

눈앞의 자신은 그를 죽일 수는 있어도 가족까지 해칠 존재는 아니지만, 정동후의 부모는 가족까지 전부 지옥으로 처박아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더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생각 솔직히 유진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별로 설득력이 없었다.

이 쓰레기가 정말 그렇게까지 가족을 사랑해서, 가족을 위해서 기꺼이 자기 목숨 받칠 수 있는 그런 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 놈이라면 이렇게 살 리가 없었다.

유진은 인정했다. 정동후의 부모가 뭘 얼마나 어떻게 한건지 몰라도, 이 놈에게 그리고 아마 다른 모든 놈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새겨넣었다는 것을.

단순한 폭력과 죽음만으로 그걸 뛰어넘을 수 없을 수 없을 정도의 공포란 곧 압도적인 통제력과 지배력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확실히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뭐 그 정도는 예상했었으니까.’

먼 옛날 오직 단 한 번 스치듯 보았을 뿐이지만,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여자의 인상을 생각하면 그럴만한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었다. 나중에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오히려 좋았다.

유진은 이 정도면 유정수에게 얻어낼 만큼 얻어내었다고 생각했다.

흥분한 유정수를 달래고, 이후로는 자잘한 사항들을 확인했다.

이곳에 없는 그들 무리 나머지 멤버들의 신상, 그들이 손에 넣거나 부숴버린 사람들 리스트, 협박을 위해 모아둔 자료들의 위치, 증거를 남기지 않고 추적을 피하고자 사용한 방법들을 차분하게 확인했다.

제일 쓸모 있는 정보는 정동후가 가끔 사용하는 그들 부모의 현금 비자금 금고 위치와 마약이나 총기 같은 것을 모아둔 비밀 창고의 위치였다.

정동후는 설마 유정수가 그것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몰랐는지, 이 부분을 이야기할 때 다시 한번 발광을 일으켰다.

그 지치지도 않아 보이는 정동후의 모습은 나중을 생각하며 유진을 조금 기쁘게 했다.

어쨌든 유정수는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어, 그러니까, 그게.”

뭔가 더 말하고 싶어서 고민하기는 하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억지로 생각을 짜내서 이야기를 계속하기는 했지만, 이미 한번 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유진은 끝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만해도 되. 수고했다. 도움이 되었어.”

유진은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 웃는 표정이 정말 선량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유정수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어쩌면 자신의 쓸모를 인정하고 살려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기대였다.

물론 유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건 상이야. 고통은 없을 거야.”

유진은 싱긋 웃어주며, 유정수의 머리를 앞뒤로 감싸 잡고 빠르게 비틀어 버렸다.

- 우드득.

목뼈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정동후의 얼굴이 순식간에 등 뒤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향했다.

확실히 그건 상이었다.

유정수는 그의 삶에 어울리지 않게, 자기 죽음을 느끼지도 못한 채로 고통 없이 즉사했다.

“으으읍!”

정동후가 막힌 입으로 고함을 질렀다.

유진은 그것이 유정수에게 죽음에 대한 슬픔인지, 아니면 또 다른 죽음을 목격한 공포인지, 유진 자신을 향한 분노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정동후가 무슨 반응을 하든 관심이 없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유진은 차분하게 유정수의 시신을 고문의자의 결박에서 풀어낸 다음, 이전 강만수에게 했던 것처럼 욕조로 끌고 가 목을 치고, 피를 빼기 위해서 거꾸로 매달았다.

오늘 피를 뺀 시체 하나와 피를 빼지 않은 즉사한 시체 두 개를 분해해 본 결과, 역시 분해 작업 전에 피를 빼두는 것이 작업 하기 좋다는 학습 결과에 따른 행동이었다.

정동후는 눈을 부라리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놀랍게도 정동후는 아직도 체력과 독기가 다 빠지지 않았고, 유진에 대한 두려움보다 유진에 대한 분노가 더 크게 남아 있었다.

유진은 그런 정동후를 보며 말했다.

“오늘 너까지 처리하면 좀 편할 것 같은데, 아쉽지만 벌써 저녁 식사 준비할 시간이래서. 이래 보여도 가족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사람이라서 말이지. 내일 보자고.”

유진은 정동후의 속을 뒤집어버리는 한 마디만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우으읍! 우으으으읍!”

발광하는 정동후만이 이제는 오로지 유일하게 살아서 한때 시다바리였던 시체들과 함께 불빛 하나 없는 그 방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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