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재미있게 보셨나요?
재미있으셨다면 [추천]과 [즐겨찾기 등록] 부탁드립니다.
#006 미궁과 그림자, 그리고 심연 – 19
정동후만을 남긴고 일을 끝낸 유진은 모녀의 집에서 다시 한번 깨끗하게 씻었다.
피에 젖은 옷은 미리 준비해둔 밀봉 비닐백에 잘 보관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혹시 흔적이나 냄새등이 남아 있지 않은지 머리카락까지 세밀하게 확인하며, 꼼꼼하게 처리했다.
어떤 흔적도 냄새도 남기지 않았다. 둔해진 후각을 다시 재조정해서 완전히 예민해진 상태로 재확인까지 했다.
그런데도 현관을 열고 들어서는 유진을 반가워하며 다다다 달려왔던 소진이가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오빠, 또 이상한 냄새나! 기분 나쁜 냄새!”
유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을 유진의 몸에서 특별한 냄새를 맡는 것은 소진이가 이미 몇 번 보여준 특별함이었다. 이 이야기는 어제도 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예상하였던 일이었다.
이 기회에 확인해볼 것도 있었다.
“어떤 냄새야? 생선 비린내 같은 냄새야? 아니면 쓰레기 섞는 것 같은 냄새야?”
소진이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건 잘 모르겠어. 그냥 나쁜 냄새, 싫은 냄새야.”
“어제보다 심하니?”
“응! 몇 배는 더 심하게 나!”
유진이 예상하던 대답이었다.
유진은 씁쓸하게 웃으면서 살짝 소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맛있는 것 먹으면 이 냄새 없어질 거야. 그러니까 우리 저녁 먹을 때까지 조금만 떨어져 있을까?”
소진이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하는 거야?”
“응, 빨리할게.”
유진의 약속에 소진이는 순순히 원래 자기가 하던 일을 하러 돌아갔다. 소진이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TV나 동영상 등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토요일에 하는 아이돌과 요리사가 나오는 요리쇼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다.
유진은 곧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외출한 유진이 돌아오지 않자 본인이 저녁을 차릴 준비를 하고 있던 차민영이 살짝 반색한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그녀는 아는 사람도 없을 유진이 어디서 뭘 하고 왔을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남자가 쉬는 날 주말에 뭘 하는지 캐묻는 여자처럼 매력 없는 여자가 없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기도 했고, 솔직히 유진이 밖에서 자신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슨 짓을 하고 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서이기도 했다.
대신 그녀는 유진의 몸에 살짝 기대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딸이 말하던 그 어떤 이상한 악취도 없었다.
땀 냄새와 살냄새가 살짝 났지만 그건 악취라기보다 은근슬쩍 남자의 관능을 과시하는 그런 냄새였고, 그보다도 유진 특유의 독특한 복숭아 냄새 비슷한 살 내음이 훨씬 진하게 느껴졌다.
차민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소진이는 무슨 악취가 난다는 거야?”
“그런 것이 있어.”
유진은 설명해주지 않았다.
이건 아무리 차민영이 소진이 엄마라고 해도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가능하면 소진이도 모른 채 영원히 유진 혼자만이 알면 좋을 그런 이야기였다. 어쩌면 소진이가 더 자라면 이런 특별함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며 유진은 침묵을 선택했다.
유진이 말을 돌리자, 차민영은 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는 떨어질 수 없을 가족이 되어 버리긴 했어도, 이 남자가 음모와 비밀로 가득 찬 과거를 지닌 위험한 남자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유진이 말해주지 않으려는 것들은 절대로 파고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숨겨진 그 대답 속에 어떤 심연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딸의 일이라는 것이 좀 마음에 걸려도 말이다. 현명한 태도였다.
“그보다 점심은 결국 내가 만들어 둔 샌드위치와 샐러드로 해결한 것 같은데, 저녁 메뉴는 합의 봤어?”
차민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하아. 스파게티로 타협 봤어. 대신 로제와 크림 두 종류.”
유진은 솔직히 스파게티나 피자나 햄버거나 열량이나 성분 등을 고려할 때, 뭐가 그렇게 차이가 나서 타협까지 필요했을까 싶었지만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차민영과 소진이가 이런 사소한 취향에 관련된 걸로 싸울 때는 절대로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난 시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아예 심각한 주제라면 유진이 권위로 눌러버릴 수 있었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은 그럴 수도 없어서 싸우던 둘이 연합해서 자기를 공격하는 꼴을 당할 수 있었다.
“준비하지.”
그 후 저녁 식사 시간 동안 내키지 않지만, 딸을 위해 양보했다는 식으로 스파게티를 고른 차민영은 딸 만큼이나 한가득 스파게티를 해치웠다. 그리고 요리를 끝내고 저녁을 먹는 동안 소진이는 더 이상 유진에게서 악취를 맡지 못했다.
전자는 유진에게 차민영의 은근한 귀여움을 느끼게 했고, 후자는 유진이 앞으로 일을 처리할 때의 방식에 대해 고민할 여지를 남겼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아침 먹고, 점심 차려 놓은 후 외출하는 유진을 보며 차민영은 슬슬 불편한 마음이 되었다. 주중에 별다른 육체관계가 없었음에도 오랜만에 찾아온 주말 저녁을 그냥 보낸 유진의 모습과 토요일에 이어 일요일에도 다시 외출하는 유진의 모습에서 살짝 기분 나쁜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빠 또 그 나쁜 냄새나는 일 하러 가는 거야?”
“음. 약간 달라. 그건 이따가 확인해볼까?”
딸과의 대화는 더욱 그랬다.
차민영은 전화를 좀 돌려봐야 할 필요를 느꼈다.
집에 남겨두고 온 사람들의 마음과 달리 유진은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장화진과 성무연의 모녀 집으로 향했다.
여러 가지로 고민하던 것들에 대해서 다 결정을 내린 상태이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로 신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흔적 없이 숨어 들어간 집에서 갑자기 나타난 자기 모습에 놀란 모녀에게 어제와 달리 상냥하게 대하기까지 했다.
“식사 중이었나? 난 먹고 왔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먹어. 확실히 어제보다 몸도 많이 좋아졌군. 다행이야. 신체 회복에 필요할 테니 많이 먹어두라고.”
모녀는 그런 유진의 태도에 매우 어색해했다.
차갑고 잔인하며 위압적이던 모습만 보여주던 남자가, 갑자기 젊다기보다 아직 어린 본인 나이처럼 느껴지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을 거는 것은 갭차이가 너무 컸다.
거기에 어제 침대도 아닌 화장실에서 그의 자지를 빨고, 섹스하고, 정액을 받아먹었던 일까지 생각나면 얼굴을 마주보기도 어쩐지 부끄러웠다.
이 와중에 마치 돼지라도 된 것처럼 라면 냄비에 고개를 처박고, 입에 밥을 욱여넣고 있던 모습을 보였으니 더욱 그랬다.
장화진은 고개를 더 숙여서 유진의 시선을 피했다.
딸을 지키기 위해 독하게 나섰던 엄마이기는 하지만, 그녀는 원래부터 딸보다 좀 더 성격적으로 부드러운 편이었고, 정동후에게 훨씬 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망가져 버리기도 했었다. 극단적인 상황이 지나가자 아직 유진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처음부터 엄마보다 적극적이었던, 정동후가 장화진을 더 괴롭히려고 일부러 덜 망가뜨렸던 성무연은 씹고 있던 음식을 얼른 삼키고서 유진에게 말을 걸었다.
“기분이 좋으신 건가요?”
“좋군.”
“그 일을 하는 것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어떻게 하면 그 일을 그런 기분으로 그렇게 할 수 있나요?”
성무연의 질문에 장화진이 깜짝 놀랐다. 얼핏 들으면 살인과 시체 처리에 대해 유진을 비난하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진은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성무연의 표정과 어투에서 그 말이 비난이 아니라 자신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성무연은 아직 살인에 대한 충격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했고, 유진이 시체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대한 두려움도 떨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약한 마음을 부끄럽고 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유진은 그런 그녀에게 부드럽게 대답해 주었다.
“익숙해지면 작업 그 자체보다는 그 결과를 생각할 수 있게 되지. 하지만 내 생각을 말하자면 할 수 있다면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일이다. 그리고 당신들은 익숙해질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하고. 앞으로 다시는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니까.”
어제의 그 잔인하고 무서운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정한 유진의 모습에 장화진도 성무연도 어색함과 함께 안도감을 느꼈다.
이건 장화진의 도발로 시작되고, 성무연이 얼떨결에 딸려 들어갔던 어제의 섹스에 의한 결과였다. 어쨌든 유진과 그녀들의 섹스는, 그들 사이를 결정지었다.
유진은 이제 그녀들을 책임져야 하고, 그녀들은 이제 유진의 성노예가 되었다. 그녀들이 성노예라고 해도 딱히 차민영과 크게 다른 점은 못 느끼는 유진이었기에, 태도가 부드러워진 것이었다.
그런 유진의 태도에 성무연이 조금은 용기를 내서 어젯밤부터 결심했던 바를 말했다.
“이제 그 개새끼를 처리하실 건가요?”
“음. 그냥 그놈이라고 하지. 굳이 그놈을 동물과 비유하기는 싫군. 질문의 대답은 예스다. 이제부터 그 놈을 처리할 거다.”
유진에게는 나름 정동후를 개에 비교하기 찜찜한 이유가 있었지만, 성무연은 그걸 정동후가 개만도 못한 놈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건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보고 싶어요. 저도 그걸 보고 싶어요.”
“무연아! 안돼! 그러지 마!”
유진이 대답도 하기 전에 장화진이 기겁을 하고 딸을 말렸다.
어제의 그 참혹한 현장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던 일은 둘째였다. 유진과의 섹스가 끝난 직후부터의 낮잠은 비교적 편하게 잤지만, 밤늦게 깨어난 후에 오히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공포와 두려움에 시달렸던 딸이었다.
굳이 그 트라우마를 추가로 늘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유진도 반대했다.
“굳이 권하고 싶지 않은데?”
“어제처럼 그러지 않을게요. 꼭 보고 싶어요. 그 새끼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천박하게 죽어가는 꼴을 꼭 보고 싶어요. 그건 내 소원이었어요. 언젠가 그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그 모든 일을 견디고 버텨냈어요. 그러니까 꼭 보고 싶어요.”
성무연이 원한에 가득 찬 목소리로 애원했다. 목소리에 가득 찬 원한과 진심에 장화진도 딸을 말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유진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난 일단 반대하고 싶군. 지금 지하실은 시체의 부패가 시작되어 굉장히 악취가 심해. 넌 냄새도 견디기 힘들거야. 거기에 난 네 생각과 달리 정동후를 안 죽일 거야.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천박한 꼴도 볼 수 없을 거야. 고통이 너무 크면 위험하니까 가능한 통증 없이 정밀하게 처리할 예정이거든.”
성무연이 의아해했다.
굳이 이제와 정동후를 봐주겠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은데, 유진이 뭘 하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유진이 그녀들을 향해 말했다.
“혹시 들어봤어?”
유진의 입에서 나온 단어를 성무연은 몰랐지만, 딸보다 훨씬 배운 것도 많고 교양 수준도 높은 장화진은 알아들었다. 장화진은 딸을 끌어안았다. 그것이 뭔지 설명해주지는 않았지만, 절대로 보러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성무연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유진과 엄마가 보여준 태도에서 불길함을 느끼고 마지막 작업에 참석하지 않는 것에 동의했다.
유진은 두려움에 떠는 장화진과 그런 엄마에게 안겨 어리둥절해하는 성무연을 남긴 채 지하로 향했다.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그 참혹한 지하실에 혼자 버려져 있던 정동후는 아직도 독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유진을 향해 눈을 부라렸고, 유진이 그의 입마개를 풀자 마르고 거친 목소리로 협박부터 내 질렀다.
“씨발, 그래 죽여봐. 이 새끼야. 날 죽이고 저 새끼들처럼 산산조각 내서 흔적도 없이 처리하면 아무도 모를 것 같지? 좆까라 그래! 우리 집안을 우습게 보지 마라! 성화를 우습게 보지 마라! 대한민국 재벌이 좆인 줄 아냐? 그들은 찾아낼거다. 널 기필고 찾아낸 다음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다. 너만 아니라 이 집 씨발년들도. 그리고 네놈 가족 친척 친구 동료 그 모두를 다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다!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을거다, 이 씨발 새끼야!”
3일 가까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피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몸으로 허공에 묶여 있었음에도 정동후는 아직도 멀쩡해 보였다.
유진은 그 모습을 굉장히 신기하게 여겼다. 유진 같은 초인이 아닌 이상 평범한 일반인의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이것도 어쩌면 혈통적 특성인가?’
잡생각을 좀 하면서 유진은 정동후의 밧줄을 풀어 바닥으로 끌어내린 다음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리게 했다.
어쩐지 굴욕적인 그 자세에서 정동후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첫날 죽었던 강만수가 겪은 일이었다.
정동후가 악을 썼다.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마라! 내 항문은 어림도 없어! 절대로 안 돼!”
발광하는 정동후에게 유진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여자도 아니고 남자 새끼 항문을 쑤시는 취미는 없다.”
성적으로 자유롭고 개방적인 유럽의 연구소에서 유럽인들의 손에 유럽식 사고방식을 주입받으면서 자란 처지이기는 하지만, 유진을 기른 유럽인들은 극렬한 보수주의 성향의 인간들이었다. 게이는 그들에게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행위 비슷하게 여겨졌고, 유진의 성향에도 그런 영향이 좀 남아 있었다.
웃기는 점은 남자 간의 섹스를 그렇게 혐오하던 인간들이, 여자들 간의 섹스에는 굉장히 관대했다는 것이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동후가 조금 진정하자, 유진은 원하는 형태로 정동후의 몸을 조절해서 다시 묶으며 친절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해주었다.
“일단 우선 난 너를 죽이지 않을 거다.”
“어?”
정동후는 조금 당황했다. 이건 죽음을 각오하고 있던 정동후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정동후는 그렇다고 희망에 불타지는 않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제 타협이 불가능하든 것은 모를 수가 없었다. 정동후가 설사 약속하더라도, 상대가 그걸 믿을 리가 없었다. 또 상대가 뭘 하든 정동후도 상대를 용납할 수 없었다.
“무슨 생각하는 거냐, 이 씨발새끼야!”
유진은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새끼가 들어가는 단어의 욕이 좀 많이 거슬리기는 하는데, 그건 넘어가지. 앞으로의 네 삶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봐줄 수 있어.”
“뭔 개소리야?”
“한국에 온 김에 최근 한국사와 동양사를 좀 공부하고 있어. 그러다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봤지. 고대 동양의 특별한 형벌에 관한 이야기를. 역사상 최악의 형벌이라고 하고, 어미가 아버지 첩을 그꼴로 만든 것을 본 황제가 충격을 받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전설까지 있는 재미있는 형벌이 있더라고. 너도 혹시 들어봤나, 인간 돼지라고? 한자로는 인체(人彘)라고 하지.”
정동후의 안색이 변했다.
비슷한 또래인 성무연은 이제는 사용하는 경우가 없는 그 단어를 몰랐지만, 정동후는 알았다. 동양사를 공부해서 교양으로 아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 잔혹한 고문이나 형벌에 관심이 많었던 탓에 그걸 모르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정동후가 정말 진심을 다해 절규했다.
“차라리, 죽여! 이 개새끼야!”
유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걱정 마라. 죽이지는 않을 거다. 고통도 없을 거다. 그냥 앞으로 푹 쉬면 되는 거야.”
그 말과 함께 유진이 날카로운 메스 형태로 조정한 ‘바벨의 기억’이 정동후의 뒷 목을 파고들어 하반신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척추 신경을 잘라버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006 미궁과 그림자, 그리고 심연 –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