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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피가 흐른다 – 05
“최 과장, 확인됐어?”
“건들지 마, 윤 과장. 그거 벌집이다.”
“뭐?”
“씨발, 성문후 차장이 나랑 부하직원들 다 있는 곳에서 까일 정도더라. 쓰레기차 피하려다가 똥차에 치이는 수가 있으니까 무조건 철수해.”
“하지만 최 과장...”
“씨발, 유성준이나 유 이사장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모님이 나오고, 회장님이 나왔다.”
“이런 씨, 아 미안.”
“괜찮아. 괜찮아. 씨발 좇 같은 상황 맞으니까.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다른 구멍 하나 나왔으니까 가서 이야기해줄게. 넌 문제 생기기 전에 애들 데리고 빨리 철수해라. 본사에서 보자.”
“알았어. 그렇게 하지.”
통화를 끝낸 윤현수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무리수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죽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할 판이라서 노린 것이 차민영이었다.
얼토당토않은 목표는 아니었다.
사실은 차민영은 너무 그럴싸해서 오히려 문제인 목표였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정동후는 고등학생 때 사이가 나쁜 사촌 형 유성준을 엿 먹이겠다고, 당시 유성준이 결혼 상대로까지 생각하고 있던 유성준의 여자 친구를 납치 감금해서 감금한 후, 고문과 강간, 윤간 등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그 와중에 아직 학생이던 여자 친구 여동생까지 같이 그 꼴을 당했다.
훗날 확인된 바에 의하면 정동후 본인은 이미 중학생 시절부터 한두 번 해본 짓이 아닌 터라 들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고, 들켜도 별일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유성준이 결혼 상대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평범한 집안 출신인 그 여자를 집안 어른들이 허락할 리가 없으니, 설혹 들켜서 유성준이 열 받아서 지랄하더라도, 집안 어른들은 자신을 크게 탓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약혼녀가 뭔가 점점 이상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유성준이 움직이고, 그 이후에 그녀가 실종까지 되어 버리자 손자의 연인이 행방불명이라는 소식을 들은 유명선 회장이 직접 나섰다.
그룹의 역량이 총동원되었고, 혹시나 모를 구설수를 우려해 경찰을 배제하고도 어렵지 않게 납치된 여성을 구출해냈다.
하지만 그사이 고문, 강간, 폭행, 매춘 등 차마 말로 할 수 없이 끔찍한 꼴을 당한 여성과 그녀의 동생은 이미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관련해서 그녀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잡혀 온 인원 중 정동후를 뺀 나머지는 유명선 회장의 묵인하에 유성준이 직접 패 죽였다.
그 후 유명선 회장은 그래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손자 유성준의 애원을 냉정하게 잘라내고는 여성과 그녀의 동생을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을 외국의 특별한 요양시설로 보냈다.
그리고 성화 그룹에 약간이라도 발을 걸치고 있는 친인척들은 물론이고 이사급 이상의 회사 고위 임원 전부에게 정동후는 더 이상 당신의 손자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외손자가 아니라 친손자였으면 호적에서 파냈을 것이라는 소문도 돌 정도의 강경한 태도였다.
말로만 끝낸 것도 아니었다.
정동후의 모친인 유인영 여사는 당시 맡고 있던 그리고 본인의 그룹 내 영향력의 상징이던 성화 의료 재단 이사장직을 박탈당했다.
유명선 회장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의료 재단 내 유인영 여사의 인맥에 속하는 인원은 전부 다른 곳으로 발령 내거나 해고 한 후, 성화 의료 재단 자체는 유성준 이사의 모친인 유인영 이사장의 성화 장학 재단 산하로 합쳐 버렸다.
재벌의 방식으로 자식 잘못 가르친 처벌을 확실히 한 것이었다.
당시 막 성화건설 사장으로 임명되었던 정문철 사장이 해고당하지 않은 것은, 정문철 사장의 부친이자 정동후의 친할아버지인 정지운 전 의원 덕이었다.
망나니 둘째 손자놈은 어쩔 수 없고, 딸을 처벌하는 것은 사돈 맘이지만, 이걸로 자기 아들과 큰 손자까지 처벌하면 그건 자신을 향한 선전포고라고 나온 탓이었다.
정지운 전 의원은 재벌 총수인 유명선 회장으로서도 막 대하기는 조금 껄끄러운 상대였다.
정지운 전 의원은 은퇴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여당의 원로이자 정계 실세였다.
자기가 은퇴한 국회 의원 자리는 장남에게 물려주고, 차남은 재벌 가문 여자와 결혼시키고, 삼남은 법관으로 키웠다.
친척들 대부분이 정치판, 법조계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그와 그의 아들의 지역구에서 유지 소리 드는 사람들이었다.
성화 그룹의 정치 법조계 관리 인맥의 핵심이기도 했다.
대를 이어 국회와 법조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돈과 사돈 가문의 체면을 봐서 유명선 회장은 그쯤에서 일을 끝냈다.
하지만 정동후는 완전히 끝장이 났다.
정동후는 외가인 성화 그룹은 물론이고 친가인 정씨 가문의 가족 공식 모임 등에도 일절 참가할 수 없게 되었고, 모르는 사람들은 화려한 외모와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에 속을지 몰라도 상류층 사이에서는 가까이하면 안 되는 폐기물 취급을 받게 되었다.
웃기는 점은 정동후의 개망나니 짓에 정동후는 물론 모친 유민영 여사가 회장님에게 크게 처벌을 받기는 했지만, 어울리지 않는 여자와 사랑놀이나 하다가 그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한 유성준 이사와 그런 아들의 행태를 묵인한 모친 유인영 이사장도 사람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어 버렸다.
권력자는 증오와 혐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상관없지만,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면 안 되는 법.
욕을 먹고 체면이 상한 것은 정동후의 일가였지만, 권위와 신뢰를 잃은 것은 유성준과 유인영 여사쪽이었다.
후계 싸움에서 정동후의 친형으로, 정동후와 달리 크게 흠잡힐일을 들킨 적이 없는 정동성 이사의 평가가 크게 올랐고, 실권을 빼앗긴 것과 상관없이 유민영 여사의 영향력도 오히려 더 커졌다.
그래서 유민영여사도 그 남편인 정문철 사장도 정동후를 크게 꾸짖지 않았고, 아들을 이런 쓰레기 망나니로 키운 사람들답게 너무 한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아들을 감쌌다는 것이다.
그 탓에 정동후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아니라 고작 하찮은 여자 하나 때문에 자신이 신세를 망쳤다고 분해했고, 적반하장격으로 사촌 형 유성준을 오히려 원망했다.
그리고 당연히 유성준은 그런 정동후를 갈아 마시지 못해 한이 쌓일 정도여서, 그나마 멀쩡한 정동후의 형 정동성은 물론이고 이모인 유민영이나 이모부 정문철과도 그 이후 말도 나눈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동안 회장님 눈치를 보느라고 적당히 적당히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만 사고를 치고 있었지만, 정동후가 오랫동안 참다가 드디어 유성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의 사생아를 키우고 있는 여자를 건드리려 했다고 해도 모두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최지용 과장과 윤현수 과장이 호시탐탐 정동후를 노리고 있던 유성준 이사가 이 기회를 틈타 정동후를 담가 버렸다는 시나리오를 쓰자, 굉장히 설득력 있게 관계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차민영은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 이런 상황에서 모든 일의 시작이 결국은 유성준 이사가 천한 여자 가까이하다가 자기 아들 망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유민영 여사에게 제물로 바치기에 가장 알맞은 대상이기도 했다.
유성준 이사의 사생아를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유성준 이사에게 복수할 수 있는 인물이면서, 그렇게 중요하거나 드러난 존재는 아니고, 그래서 일을 벌여도 그나마 뒷수습할 수 있어 보이는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룹 내의 암묵적인 규칙으로 절대 사생아 본인은 건드리면 안 되지만, 그 모친은 상황에 따라 작업이 묵인되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도 이전 사건에서 회장님이 보이셨던 모습이 있어서 일 벌이기 전에 최지용 과장이 슬쩍 본사의 분위기를 떠보러 간 것이었는데, 거기서 회장님과 사모님이 언급되리라고는 윤현수 과장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씨발, 정말 선을 잘 못 탄 건가?’
윤현수는 아무리 그래도 셋째 딸인 유인영 이사장의 아들로 유약하다는 평가를 듣는 유성준 이사보다는, 장녀인 유민영 여사 소생이자 회장님의 장손자이기도 하고 망나니 동생과 달리 사업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카리스마가 넘친다는 평가를 받는 정동성 이사가 후계자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믿음이 흔들렸다.
회장님과 사모님이 유성준 이사의 사생아까지 직접 챙기고 있다는 이야기에 두 분이 정동성 이사보다 유성준 이사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불안해진 것이다.
전반적인 평판이 어쨌든, 후계는 회장님과 사모님의 결정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이미 말을 갈아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어쩌면 딱히 유성준 이사만이 아니라 딸들과 손자 손녀들 전부를 관리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도 아니었다.
윤현수 과장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후 자신의 통화를 지켜보고 있던 부하직원인 강민기 대리에게 말했다.
“철수한다. 애들 다시 집합시켜.”
“예?”
강민기 대리는 윤현수 과장이 최지용 과장에게 되물었던 것처럼, 윤현수 과장에게 따졌다.
“하지만 과장님!”
“본사에서 최 과장에게 이 여자가 회장님과 사모님의 관리 대상이라고 확인해 줬다고 한다. 이거 잘못하면 진짜 우리 전부 좆되는 수가 있다. 감시만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빨리 철수해야 해.”
“전 반대입니다, 과장님.”
윤현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강민기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리고 어이없어하는 윤현수에게 조곤조곤 자기 생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건설은 이미 말만 성화 그룹의 일원이지 사장님이 사장단 회의에서도 배제될 정도에, 지분 관계도 거의 정리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과 사모님이 당장 정동후 도련님 때문에 저희를 전부 갈아 버리시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그쪽 눈치까지 볼 여유가 저희에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막말로 회장님이 저희 같은 애들에게까지 신경 쓰시겠습니까? 하지만 사장님은 저희를 직접 갈아 버리실 겁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소리에 윤현수 과장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버럭 화를 내는 대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지금 강민기 대리가 하는 소리가 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비교적 경력이 얕거나 회사 깊은 곳까지 본 적이 없는 직원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주변 부하직원 중 강민기 대리를 탓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었다.
윤현수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화내지 않고 강민기 대리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지금 자신들에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다른 부하직원들도 모두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였다.
“민기야.”
“네, 과장님.”
“너도 정동후가 고삐리 때 친 사고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 있지?”
“네, 물론 들어봤습니다.”
“그럼 혹시 그때 누가 누가 정동후가 일으킨 그 망나니짓에 참여했는지도 들어봤니?”
“어? 거기까지는...”
“그래 못 들어 봤을 거야. 정동후와 어울리던 다른 그룹 방계 들도 몇 있었고, 정동후의 학교 선배와 후배, 돈 주고 부리던 불량배들 그리고 뒤처리 담당하던 비서실 직원도 몇 관련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누구인지 정말 아무도 몰라. 왜인 줄 아니?”
윤현수 과장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담담했지만, 강민기 대리는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지며 대답할 수가 없었다.
윤현수 과장은 강민기 대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자신의 질문에 자신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 사건에 관계되어서 본사 직원들에게 끌려갔던 인원들은 그 후로 전부 행방불명이야. 뭘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하기는 했는데, 경찰은 찾으려고 들지도 않더라. 나중에는 가족들도 어느 순간 사라졌어. 또 정동후를 도운 우리 회사 직원들도 있었는데, 걔들도 다 어느 순간 행방불명이야. 걔들은 아예 회사에 근무했다는 인사기록 자체가 없어졌어. 걔 중에 몇 명은 나랑 같이 근무한 적도 있는데 난 이제 걔들 이름도 얼굴도 생각이 안 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말이지. 살아남은 건 그 와중에 나중을 생각해서 사장님과 사모님이 동후 방패로 삼으려고 직접 건진 몇몇 소소한 애들 뿐이야.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니?”
강민기 대리의 얼굴이 핼쑥해져 버렸다.
듣고 있던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것 윤현수 과장은 멈추지 않았다.
“혹시 회장님에게 죽나 사장님에게 죽나 마찬가지 아니라고 생각할까 봐 하나만 더 이야기해줄게. 그때 당시에 아직 너처럼 겁을 몰랐던 내가 당시 부장이셨던 추 실장님에게 따졌어. 사고 친 건 정동후인데 왜 우리만 이 꼴을 당하냐고. 그때 추 실장님이 내게 물어보셨던 것 너에게도 똑같이 한번 물어볼게. 너도 회장님의 죽은 장남 유건영 전무님에게 대해서 들어본 적 있지? 지금 FS E&A의 사장인 유성혜 사장의 부친.”
“네. 들어봤습니다.”
“그래. 돌아가신 지 벌서 20년 가까이 되었지. 그럼 혹시 그 부인 되시는 분에 관한 이야기 들어본 적 있니?”
“네?”
“유건영 전무님은 없어도 유성혜 사장은 여자이기는 하지만 가문 직계로 당당히 그룹 내에서 일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고, 덕분에 지금 유정명 유통 사장님이나 우리 사장님이 있는데도 정작 후계 싸움은 3세대에서 하고 있을 정도잖아. 그런데 그 정도로 중요 인사인 유성혜 사장 어머니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냐고?”
“어, 없습니다.”
“그래. 없지. 나도 없을 정도니까.”
“어 그럼?”
“아니야. 죽어서 모르는 것이 아니야. 그냥 아무도 몰라.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대신 나도 이 건에 대해서 들은 것은 딱 하나뿐이야.”
“뭔가요?”
“유건영 전무 죽고 난 다음 언젠가 사모님이 사장단 회의하는 회의실에 갑자기 쳐들어오셔서 회장님 바짓단을 부여잡고 엎드려서 눈물 펑펑 흘리면서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신 적이 있데.”
“예?!”
강민기는 이번에는 진짜 기겁하고 놀랐다.
성화 그룹 회장인 유명선 회장의 부인인 유초혜 여사는 그냥 재벌 회장의 부인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대 회장의 장녀였고, 남편인 유명선과 결혼하여 유명선 회장을 남자 신데렐라로 만든 존재였다.
성화 그룹 지배지분조차 유명선 회장이 아닌 유초혜 여사 명의일 정도였다.
애초에 유명선 회장이 그룹을 장악하던 후계 싸움 당시의 싸움도 유명선 회장 같은 사위들의 싸움이 아니라 유초혜 여사 같은 딸들의 싸움이었고, 그 싸움에 유초혜 여사의 손을 들어준 인물조차 아직도 살아계신 전대 회장의 사모님인 유혜선 여사이셨다.
애초에 전대 회장이자 그룹 창업주인 고 유정웅 회장조차 데릴사위였다.
성화그룹 유씨는 전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여계로 이어지는 재벌 가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유명선 회장 직계는 물론, 유초혜 여사의 동생들의 핏줄인 방계의 인물들도 회장님보다 사모님을 더 무서워한다는 것이 그룹 내에 공공연하게 드는 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남편을 전문경영인으로 부리는 실질적인 성화 그룹 총수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인 그녀가 사장단이라고 해봐야 고용인에 불과한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꼴을 보였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그런 비슷한 소문조차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었다.
반대로 회장님이 사모님이 무서워서 재벌 회장이라면 누구나 한둘쯤은 있는 세컨드도 하나 없이 사신다는 소문만 들어봤을 뿐이었다.
윤현수 과장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거기서 무슨 이야기가 어떻게 오갔는지는 나도 몰라. 단지 당시만 해도 약간은 회장님보다 사모님을 더 어려워하던 사장님들이 회장님이 말씀하시면 사모님 눈치는 전혀 보지 않게 되었다고만 들었어. 그리고 그 이후로 아무도 유건영 전무의 아내이자, 유성혜 사장의 모친 되시는 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도.”
어쩐지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라는 생각에 강민기 대리는 목이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윤현수 과장이 그런 정민기 대리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추 실장님이 나에게 말했지. ‘야 지금 정동후가 살아 있는 것이 회장님 손자여서인 줄 알아? 아니야 유 씨가 아니라 정 씨라서야. 회장님 손자만이 아니라 정지운 의원 손자라서 그래서 살아 있는 거야.’ 라고.”
꿀꺽.
강민기 대리는 타오르는 목을 견디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강민기 뿐만 아니라 조용히 엿듣고 있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 이번 정동후 사건으로 정문철 사장이나 유민영 여사가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서 자신들의 진짜 목숨까지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목숨처럼 귀중한 자신들의 직장, 커리어, 재산 정도가 개박살나고 앞으로 다른 일 하기 어렵게 될지 모른다는 것까지는 했다.
그 정도면 죽을 만큼 괴로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진짜 죽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재벌 그룹 회장 중에서 제일 신사답고 유약하다는 평을 듣는 자기들 회장의 숨겨진 모습에 정말 두려움을 느꼈다.
“더 설명 필요 없지. 전부 철수. 본사로 간다. 최 과장이 그래도 뭐 하나 건졌다고 하니까 가서 그거 들어보자.”
강민기 대리는 왜 그거부터 이야기해주지 않았느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용히 철수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별로 준비할 것은 없었다.
준비 작업이라고 해봐야 차민영이 현재 업무 미팅 중인 건물 지하 주차장의 차민영 차 주변에 여러 대의 벤을 주차해두고 차민영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주변에서 상황 파악하고 목격자 시선을 차단할 준비 하고 있던 인원만 태우고는 빠져나가면 그만이었다.
“출발합니다.”
하차해 있던 인원 모두 금방 다시 탑승했고, 운전자의 신호와 함께 벤이 출발했다.
그리고 그 순간 멀리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차민영과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여직원 하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른 직원들은 그녀들을 보면서 별생각이 없었다.
대부분 아쉽다기보다 오히려 문제가 될 상황을 피한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오직 위험을 알리고 철수를 결정한 윤현수 과장만이 차민영을 보면서 복잡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눈빛은 확실히 업무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