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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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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피가 흐른다 – 11
유진을 태운 차는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
도착한 장소는 유진에게도 매우 익숙한 장소였다.
며칠 전 유진이 인간 돼지로 만들어버린 정동후를 내다 버린 그 장소, 성화 건설이 건설 중인 대규모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바로 며칠 전에 사람 하나가 끔찍한 꼴이 되어서 발견되었고, 그 사람이 이 아파트를 건설 중인 건설사 사장의 아들이었음에도, 아파트 건설 현장은 일하는 사람과 기계들로 가득 차 북적거리고 있었다.
차는 인부들과 각종 공사 차량 들을 피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운전 중이던 조우식이 말했다.
“거, 이상하게 생각 할까봐 미리 이야기 말해 드리는데, 여기가 사건 현장이라서 들리는 겁니다. 현장 검증이라고 하죠.”
유진은 이 정도면 성의는 있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지금 그들이 가고 있는 곳은 정확하게 유진이 정동후와 그 외 떨거지의 조각들을 가져다 버렸던 그곳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는 체도 하지 않았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유진은 애초에 사교성이 좋은 성격도 아니었고, 적과의 대화는 적을 완전히 제압하고 심문할 때 외에는 불필요하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바렐라는 어떻게 되었으려나?’
유진은 탈출 당시 자신의 손을 피해 결국 도망치는 것에 성공한 바렐라 팀장을 떠올렸다.
유진의 첫 탈출 시도 당시 유진의 친구들을 막아선 UE의 전투 지휘관으로 유진이 꽤 증오할 수밖에 없는 적인 그는, 개인적으로는 유진에게 전투 훈련이나 실전 상황에서의 대처법, 주의 사항, 심문 기법이나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고문법 등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관심도 없었던 사람을 떠올릴 정도로 지금 유진은 여유를 넘어 무료함까지 느끼는 중이었다.
그런 유진을 옆에서 지켜보던 전직 경찰 김병철의 속은 점점 더 타들어 갔다.
김병철은 옆에 앉아 있는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자신들의 연극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것도 그런데도 조금도 겁을 먹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강력계 형사 경력 10년이면 그 정도 눈치 정도는 없을 수가 없었다.
그는 유진이 오히려 무료한 듯 딴생각을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자신을 해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그 너무도 거물다운 태도가 겨드랑이 사이에 튀어나와 보이는 물건과 함께 계속해서 김병철의 위기의식을 자극하고 있었다.
‘씨발, 이거 정말 괜찮은 거 맞나?’
김병철은 지금이라도 진행 중인 계획을 취소하고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대규모 아파트의 초거대 지하 주차장이라고 해도 차로 이동하자고 들면 얼마 안 되는 크기였고, 그들의 차는 금세 목표한 지점에 도착했다.
차가 멈춘 곳은 공사 자재 중 도난의 우려가 있는 고가의 물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벽을 세우고 문을 달아 놓은 주차장 가장 안쪽의 구석의 임시 창고 앞이었다.
차가 서자마자 유진이 타고 있던 쪽의 차 문이 벌컥 열렸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덩치 큰 사내가 바깥쪽에서 문을 연 것이었다.
“야, 내려.”
어린애도 속지 않을 연극은 인제 그만두기로 한 것인지 문을 연 남자는 거칠게 외치며, 유진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유진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잡아서 끌어내려는 동작이었다.
유진은 그렇게 자신의 멱살을 잡으러 들어오는 상대의 손목을 오른손으로 잡아서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어어하며 당황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팔을 비틀어 팔꿈치 바깥쪽이 위로 올라가게 만든 후 왼팔로 내려쳐 버렸다.
으적!
둔탁하면서 듣기에 끔찍한 소리가 나면서 팔꿈치가 꺾여서는 안 되는 방향으로 꺾였고, 팔의 주인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으아아!”
막 운전석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던 조우식도, 도착은 했지만 내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긴장한 얼굴로 유진을 바라보고 있던 김병철도, 주변에서 유진을 기다리고 있던 다른 인원들도 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동작을 멈춰버렸다.
원래 유진의 계획이 이렇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접근해올 것은 예상하였고, 상대방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접근해오는 적들에게 가능한 끝까지 고분고분하게 협조할 계획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최대한 많은 인원을 접하고, 그중에서 누가 지휘관이고 누가 말단 행동책이며, 누가 이 일에 얼마만큼 관여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생각이었다.
죽여도 되는 자와 살려서 심문해야 할 자를 구별하고, 이번 일을 통해 어느 선까지 불을 지르는 것이 알맞을 것인지 계산하는 것이 목표였다.
문제는 유진에게는 그런 계획의 진행을 위해 이런 병신 같은 새끼가 자신의 멱살을 잡으려는 것을 참을 정도의 인내심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일단 거의 반사적으로 감히 자신의 멱살을 잡으려고 한 놈의 팔을 박살 낸 유진은 사전 계획 정도는 가볍게 잊어버리고 곧바로 다음 행동을 이어갔다.
팔꿈치가 부서진 팔을 부여잡고 있던 손목을 놓아주고, 그 오른손을 그대로 수평으로 휘둘러 옆자리의 김병철의 목을 후려쳤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긴장한 채로 유진을 주시하고 있던 김병철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굳어 있는 상태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진 유진의 손을 피하지는 못했다.
“커걱!”
김병철은 잠시 목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울대뼈와 목뼈가 부서진 그는 즉사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그냥 방치하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부상이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 없는 유진은 김병철이 의식을 완전히 잃기도 전에 다리를 들어 올려 어정쩡하게 자리에 걸터앉아 있는 조우식을 노리고 좌석을 밀어 찼다.
콰직!
쇠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운전석 좌석이 등받이가 핸들과 거의 붙을 정도로 앞으로 밀려 나갔고, 그사이에 끼어 있던 조우식의 몸은 핸들이 몸에 파묻힌 것이 아닌가 싶은 정도의 모습이 되었다.
조우식은 한쪽 갈비뼈들이 완전히 박살 나며 악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차에서 내리려고 몸을 왼쪽으로 기울이고 있었던 덕분에 오른쪽 갈비뼈들 위주로 박살이 난 것은 그에게 약간은 행운이었다.
반대쪽이었다면 아직은 살아서 뛰고 있는 심장이 박살 났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조우식도 김병철처럼 이대로 방치당하면 아직은 살아 있는 그 심장이 얼마 가지 않아 멈출 것이 분명한 중상이었지만, 유진에게는 김병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관심 없는 사항이었다.
그들이 살아 있는 것은 유진이 반항할 가능성이 없이 제압된 상대를 죽이기 위해 다시 한번 손을 쓰기 귀찮아서 일뿐, 그들을 굳이 살려두려고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모두 모여!”
“전원 준비해!”
바깥에서 약간 뒤늦게 소란이 벌어지는 사이, 가까운 인원들을 모두 제압한 유진은 약간 신경 쓰이던 옆자리 김병철의 허리 뒤춤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권총이 있었다.
한 번도 써본 적은 없지만, 모양만 봐도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TT-33 주로 토카레프라고 불리는 권총이었다.
탄창을 꺼내자 처음 보는 크기의 탄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래는 못 쓰겠군.’
유진이 프랑스에서 챙겨온 권총 중 하나는 9미리 파라플럼 탄을 쓰는 물건이었고, 하나는 45구경 ACP탄을 쓰는 콜트 M1911이었다.
유진은 두 총을 사용하기 위한 탄환도 아주 넉넉하게 챙겨왔다.
하지만 지금 손에 넣은 토카레프는 전용의 7.2미리 토카레프 탄을 사용하는 총이었고, 그나마 8발이 들어가는 탄창에는 6발 밖에 장전되어 있지 않았다.
6발 다 쏘면 추가로 사용할 탄환을 장만하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잠깐, 아닐 수도 있겠군.’
유진은 잠시 이 인간이 왜 소련 본토에서도 이제는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이런 구닥다리 옛날 총을 가지고 있었을까를 고민하다가, 토가레프의 중국 카피 판인 54식이 아시아의 범죄조직에 워낙 많이 유통되어서 ‘야쿠자의 제식 권총’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야쿠자의 총으로 제일 유명하지만 그건 일본 야쿠자의 이야기가 일본에서 야쿠자를 주제로 만들어진 서브 컬쳐를 통해서 외국에 알려지면서 유명해진 것이고,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나 한국에서도 암흑가에서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총이 토카레프인 것은 확실했다.
이 이야기는 어차피 합법적인 루트로는 총알을 구할 수 없는 한국에서는 어쩌면 7.2미리 토카레프탄을 세상에서 제일 흔하다는 9미리 파라블럼탄이나 45미리 ACP탄보다 더 쉽게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여기에 토가레프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이 인간 하나일 리도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 인간이 하나만 있는 무기를 혼자 소지하고 있을 중요 인물이거나, 다른 팀원들 모르게 금지된 무기를 허리 뒤춤에 대충 소지하고 있을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걸 확인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유진이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9명의 인원이 차량을 둘러싸고 유진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중에 몇 명은 손에 경찰이 주로 쓰는 집압봉을 쥐고 있었고, 몇몇은 손잡이 부분에 테이프를 두른 야구 배트처럼 생긴 몽둥이를 들고 있었고, 몇 명은 그 유명한 청테이프 감은 사시미를 쥐고 있었다.
유진은 이들이 제각각의 무기를 들고 있기는 하지만 사용하는 무기와 상관없이 비슷한 부류의 인간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모두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고, 그 분위기에는 군사 훈련받은 전직이나 현직 군인 특유의 분위기도 전혀 없었다.
한국 재벌 그룹들이 경호를 위해 전직 특수부대 출신을 많이 고용한다는 이야기를 본 적 있었던 유진은, 자신이 상대하게 될 인원들이 그런 전직 특수부대 출신들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이 인간들은 유진이 말로만 들었던 한국 특유의 범죄 조직인 깡패들이 분명했다.
가장 특이한 점은 자신들의 동료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하고, 그중 한 명은 바로 눈앞에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고 있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거리를 유지하며 유진을 포위만 할 뿐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철저하게 훈련된 전쟁 병기인 특수부대원들조차 동료가 위험한 상황에서는 냉정을 유지하기 힘든 법인데 이들은 오합지졸 깡패 주제에 너무 침착했고, 그 점이 유진의 관심을 끌었다.
유진은 몇 가지 확인을 위해 자신의 발밑에서 부러진 팔을 부여잡고 뒹굴고 있는 인간의 발목 위에 발을 올렸다.
“하지마!”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과 몸부림을 치던 인간이 유진의 그 행동의 의미를 눈치채고 고함을 질렀지만, 소용은 없었다.
으적.
유진은 가볍게 밟은 것으로 그의 발목에서 뼈의 의미를 삭제해 버렸고, 발목뼈가 가루가 된 남자는 극도의 고통에 목이 쉬도록 비명을 질러댔다.
놀랍게도 유진을 포위하고 있던 9명은 그러거나 말거나 정확한 거리를 유지하고 유진을 경계하며 공격을 위한 기회를 노릴 뿐, 동료의 고통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동료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유진은 이 발밑의 남자만 9명의 동료가 아닌지, 아니면 전원 같이 싸우고는 있지만 서로 동료는 아닌지가 살짝 궁금해졌다.
유진이 그들을 좀 더 떠볼 방법을 생각 하기 전에, 유진의 목적지가 분명했던 창고의 문이 열리고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병신 같은 새끼.”
창고 안에서 나온 남자는 우선 유진의 발밑에서 울며불며 난리를 치고 있던 인간을 경멸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욕부터 뱉어냈다.
유진의 발밑에서 비명을 지르는 남자나 무기를 들고 포위망을 짠 9명과는 명백하게 다른 분위기의 사내였다.
그는 유진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사무적이고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인질 가치 따위는 없어. 여기 그 친구가 죽더라도 눈 하나 깜박할 사람 아무도 없다고.”
새로운 사내도, 다른 인간들도 모두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사내를 걱정하거나 동정하는 눈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유진은 자신의 취향대로 행동했다.
비명을 지르는 사내의 목에 발을 올리고는 놀라서 눈을 부릅뜬 그의 목을 사뿐히 지르밟아 버렸다.
우드득.
유진의 손날 공격에 울대뼈와 목뼈가 심하게 다쳤어도 적당히 죽음은 피할 수 있었던 전직 경찰 김병철과 달리, 목이 밟힌 사내는 피부를 뺀 목의 구성품 전부가 박살이 나며 즉사했다.
유진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가 태연한 표정으로 사람을 밟아 죽인 유진의 모습에 약간 움찔하다가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죽어도 상관없는 놈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그렇게 죽일 필요가 있었나? 그놈 그렇게 죽이면 우리가 겁이라도 먹을 것 같다고 생각한 건가?”
유진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유진이 처음 이 죽은 남자의 팔꿈치를 부숴버린 것은 그냥 멱살을 잡으려는 것에 대한 반응이었지만, 다시 한번 발목을 부숴버린 것은 테스트를 위한 것이었고, 마지막에 죽여 버린 것은 슬슬 비명이 귀에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유진은 심문이 필요한 상대가 아니라면 죽여 없애 버리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일부로 부상자를 남겨서, 부상자가 지르는 비명 등을 통해서 적의 사기를 낮추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우기는 했지만, 고작 10명 남짓한 그것도 완전 무장 한 특수부대도 아닌 둔기와 사시미 따위로 무장한 깡패 상대로 그런 귀찮은 짓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유진의 침묵이 거슬렸는지, 창고에서 나온 남자가 다시 한번 말했다.
“어이, 니가 제법 괜찮은 솜씨를 가졌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래봐야 혼자서 9명 감당할 수 있겠어? 현실은 영화가 아냐.”
유진도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 동의했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둔기나 칼로 총을 상대해서 이기려면 최소한 유진처럼 어지간한 총탄 따위는 몸으로 버틸 수 있거나, 총탄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춘 초인이어야 한다.
유진이 보기에 이들 중에 그런 초인은 없었다.
그리고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는 원래 싸우기 전에 대화 따위로 시간을 끄는 법도 아니었다.
탕! 탕! 탕! 탕! 탕! 탕!
유진이 김병철에게서 습득한 토카레프가 탄창이 빌 때까지 연속으로 불을 뿜었다.